이승만포럼 이복규 교수 "음보율 같은 최남선 ‘해에게서 소년에게’보다 10년 앞서"
  • ▲ 20일 오후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린 제102회 이승만포럼의 주제 강연 모습ⓒ박성원 기자.
    ▲ 20일 오후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린 제102회 이승만포럼의 주제 강연 모습ⓒ박성원 기자.
    이승만 전 대통령의 한글시 ‘고목가(영문명 Song of an Old Tree)'(1898)가 국내 최초의 신체시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초의 신체시로 학계가 인정하는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1908)와 같은 음보율로 구성된 데다, 시가 발표된 시점은 최남선의 시보다 10년 정도 앞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린 제102회 이승만포럼의 주제강연 ‘이승만 작 <고목가>의 문학사적 의의’에서 이복규 서경대(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이승만의 '고목가'는 최초의 신체시로 문학계의 인정을 받고, 한국문학사에도 (최초의 신체시로) 편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 강연을 맡은 이복규 서경대 문화컨텐츠학과 교수ⓒ박성원 기자.
    ▲ 강연을 맡은 이복규 서경대 문화컨텐츠학과 교수ⓒ박성원 기자.
    “고목가, 이승만 정치의식 표현한 작품”

    이 교수에 따르면 이승만의 순한글 시 ‘고목가’는 1898년 3월5일자 협성회보(제10호)에 발표됐다. 

    현대문으로 고쳐 쓴 시는 지난 6월18일 열린 ‘이승만포럼 100회 기념 학술세미나’에서 허경진 교수가 소개했다.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고목가(Song of an Old Tree)

    슬프다 저 나무 다 늙었네
    병들고 썩어서 반만 섰네
    심악한 비바람 이리저리 급히 쳐
    몇 백년 큰 나무 오늘 위태

    원수의 땃작새 밑을 쪼네
    미욱한 저 새야 쪼지 마라
    쪼고 또 쪼다가 고목이 부러지면
    네 처자 네 몸은 어디 의지

    버티세 버티세 저 고목을
    뿌리만 굳박여 반 근 되면
    새 가지 새 잎이 다시 영화 봄 되면
    강근이 자란 후 풍우 불외(風雨不畏)

    쏘아라 저 포수 땃작새를
    원수의 저 미물 나무를 쪼아
    비바람을 도와 위망을 재촉하여
    넘어지게 하니 어찌할꼬

    이 교수는 “이 시가 이승만의 정치의식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고목’은 대한제국, ‘땃작새(딱따구리)’는 친러 관료들, ‘비바람’은 러시아의 위협, ‘포수’는 독립협회나 협성회의 개화파 인사들을 지칭한다는 주진오 교수의 해석에 동의했다.

    이 작품의 원시는 조선후기 사람 이양연(1771~1853)의 ‘啄木(탁목)’이다. 

    啄木(탁목)

    啄木休啄木 딱따구리야 나무를 쪼지 말아라
    古木餘半腹 고목 속이 반 넘게 텅 비었구나.
    風雨寧不憂 비바람 까짓것 걱정 없지만
    木摧無汝屋 나무가 부러지면 네 집도 없지

    이 교수는 이 작품의 소재가 딱따구리이고, 늙고 병든 고목을 쪼는 딱따구리에 고목이 쓰러지면 네 둥지도 사라지니 나무 쪼는 행동을 중지하라고 권고하는 점 등으로 봤을 때 ‘고목가’의 원시가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탁목에는 없는 ‘고목더러(또는 고목을) 버티자’고 한 것과 ‘포수더러 딱따구리를 쏘라’고 한 대목을 ‘고목가’에 넣은 것은 현실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 노력을 기울일 것을 주장하는 이승만의 실천적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승만은 한문학을 경험한 사람이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을 여러 사람에게 알려 소통하며 공감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한시가 아닌 한글시로 작성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 ▲ 이복규 교수의 강연 모습ⓒ박성원 기자.
    ▲ 이복규 교수의 강연 모습ⓒ박성원 기자.
    “고목가, 노래로 불린 증거 없어 창가로 보기 힘들어”

    이 교수가 '고목가'를 우리 문학사 최초의 신체시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음보율 때문이다. 이 시의 각 연은 3음보, 3음보, 4음보, 3음보의 행으로 구성됐는데, 이는 최초의 신체시로 학계에서 인정받는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1908)와 같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고목가를 신체시가 아닌 창가로 봐야 한다’는 일부 학자들의 견해에 대해서는 “일부 학자들은 자수율을 기준으로 정형성 면에서 문제가 있어 이 작품을 신체시로 보지 않는다고 설명한다”며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의 작품들과 달리 우리 시가에는 자수율 면에서 정형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단지 자수율을 기준으로 고목가가 신체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작품을 창가로 보려면 이를 노래로 불렀다는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증거가 없기 때문에 창가로 보기도 힘들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이승만의 '고목가'가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보다 10년 앞서 나온 신체시로 우리 문학사적으로 새롭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5년 발간된 한국문학통사 제4판에는 빠져 있지만 추후에 새롭게 발간될 한국문학통사 제5판에는 국내 최초의 신체시로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