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 직격①중국 군사개입은 캐리 람 행정장관이 중국에 반항해야 가능
  • ▲ 경찰이 쏜 스폰지탄 (海綿彈) 에 피격당한 홍콩 모 TV 여기자의 다리 모습. 홍콩기자협회는 18일까지 총 24건의 기자 폭행 사례를 접수했다고 밝혔지만, 이 여기자의 피격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피격 여기자 제공
    ▲ 경찰이 쏜 스폰지탄 (海綿彈) 에 피격당한 홍콩 모 TV 여기자의 다리 모습. 홍콩기자협회는 18일까지 총 24건의 기자 폭행 사례를 접수했다고 밝혔지만, 이 여기자의 피격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피격 여기자 제공
    홍콩 도주범조례(일명 중국압송악법) 파동이 11주째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18일 주최 측 추산 170만 명이 시위행진에 참가했다. 행진의 주최단체는 지난 6월 수백만 명이 모인 시위를 두 번 주최한 민간인권진선(民間人權陣線)이다.

    폭우로 인한 행동제약, 시위대-경찰 양측 충돌 자제

    18일 행진은 경찰과 충돌 없이 끝났다. 행진이 시작된 오후 3시경부터 오후 9시까지 계속된 폭풍우 때문이다. 충돌은 보통 경찰이 먼저 진압을 시도해서 생기는데, 100만 명 이상이 참가하는 시위행진은 가족단위와 어린이, 노인들이 많아 경찰이 불법행진이라도 무력진압을 시도하지 않는다.

    경찰은 이날 행진 출발점인 코즈웨이베이(銅鑼灣) 빅토리아 파크에서의 집회만 허용하고 행진은 불허했다. 그러나 수용능력이 20만 명 정도인 빅토리아 파크는 넘쳐나는 시민들이 우산을 펼치는 바람에 금방 한계를 넘어섰다.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서쪽으로 3.8 킬로미터 떨어진 센트럴(中環) 차터 가든까지 왕복하는 형태로 행진했다.

    행진 시작 무렵 폭력배들이 노스 포인트(北角)에 출몰하고, 중국 정부의 홍콩 출장소인 중앙인민정부 홍콩연락판공실(중련판, 中聯辦)의 경비가 삼엄해졌다는 소식이 텔레그램과 LIHKG(시위전용 레딧)에 올라왔다. 그러나 필자가 목격한 바로는 폭우 때문에 시위대와 경찰 모두 행동에 제약이 있었다.

    수만 명의 시위자들은 저녁 무렵 비가 약해지자 정부시설이 모여 있는 애드미럴티(金鐘)의 하코트 로드를 봉쇄하고 시위전략을 논의했다. 이들은 만반의 준비를 갖췄지만 비 때문에 많이 지친 듯 귀가하기로 결론내고 자정 무렵 해산했다.
  • ▲ 18일 170만명이 참가한 시위행진에 참가한 어린이ⓒ허동혁
    ▲ 18일 170만명이 참가한 시위행진에 참가한 어린이ⓒ허동혁
    외신들 “지난 주말이 분수령 될 것”…실제 중국 인민해방군은 조용

    지난 11일과 12일 시위대가 공항을 점거하여 수백 편의 항공편을 결항시키고 “중국 당국이 홍콩에서 10분 거리인 선전에 군대를 대기시켜 놓았다”는 중국발 보도 때문에 지난 주말 한국을 포함해 평소 보이지 않던 많은 외신 기자들이 홍콩에 나타났다. 이들은 지난 주말 시위가 중국군 개입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폭우 때문에 이들이 ‘기대’하던 과격시위는 벌어지지 않았다.

    많은 시민들은 중국의 위협에 비웃음으로 대응하고 있다. 행진에 참가한 한 20대 후반 직장인 여성은 필자에게 “정말로 인민해방군이 홍콩에 온다면 집에서 나오지 않는다. 다음 파업준비 때문에 바빠서 그런 뉴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며 개의치 않는다는 태도를 보였다.

    시위대가 점거한 애드미럴티 도로 위에서 만난 민주파 쿽가키(郭家麒) 의원은 필자에게 “선전에 왜 무장경찰이 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홍콩경찰이 시위대를 무리하게 압박하지 않으면 평화시위가 가능하다는 것이 오늘 증명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중국 인민해방군 개입설이 황당무계하다고 지적한다. 호주의 중국문제 전문가인 아담 니 (Adam Ni)는 트위터를 통해 “중국 인민해방군이 개입하려면 홍콩경찰이 시위진압을 소홀히 하거나, 캐리 람 행정장관이 중국에 반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홍콩에는 약 5000명의 중국 인민해방군이 주둔하고 있고, 가끔 이들이 홍콩 내 고속도로로 이동하는 모습이 외신을 타기도 하지만, 이들은 홍콩 일국양제 하에서 중국의 주권을 상징하는 존재일 뿐이다.

    홍콩에 중국 인민해방군 개입 시 중국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아

    또한 중국 인민해방군 개입은 홍콩과 중국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중국은 우선 내년 1월 예정된 대만 총통선거에 신경을 써야 한다. 과거 중국이 선거를 앞두고 무력도발을 하면, 대만인들은 그에 반발해 반중 성향인 민진당 후보들을 뽑아준 사례가 여러 번 있다.
  • ▲ 11일 노스포인트 (北角) 에 출현한 복건성 폭력배들ⓒ허동혁
    ▲ 11일 노스포인트 (北角) 에 출현한 복건성 폭력배들ⓒ허동혁
    중국 인민해방군이 홍콩시위에 개입한다면 중국이 희망하는 국민당 후보 당선은 사실상 물건너 가게 된다. 게다가 현재 국민당 총통 선거 후보인 한궈위(韓國瑜) 가오슝 시장은 각종 스캔들로 인해 지지율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

    두 번째 중국 인민해방군이 홍콩시위에 개입하면, 세계 금융허브인 홍콩에서 활동하는 서방 금융회사들이 대거 철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홍콩 달러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금융혼란을 각오해야 한다.

    세 번째 중국 인민해방군 개입은 일국양제의 종식을 뜻한다. 홍콩과 마카오의 고도 자치와 선거 제도를 보장한 일국양제는 중국이 대외에 정치체제의 유연성을 과시하며 대만에 수용을 요구해온 국가운영 시스템이다. 중국군이 일단 홍콩시위에 개입하면 언제 철수한다는 보장도 없다.

    중국과 홍콩 당국의 속내는 오는 10월 1일 중국 공산정권 수립 70주년 기념일 이전에 홍콩시위를 되도록 조용히 마무리하려 한다는 것이 현지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또한 과도한 군사위협은 대만처럼 홍콩인의 반중감정만 극대화 시킬 수 있다.

    정치력 상실한 캐리 람 행정장관, 다양화되는 시위대 전술

    이런 홍콩의 현지사정과 전문가들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비롯한 일부 외신들은 중국의 공갈을 과대평가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중국 인민해방군이 개입하려면 그 전에 홍콩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해야 하며, 캐리 람 행정장관이 수차례 관련 경고를 해야 한다.

    람 장관의 최근 태도는 계엄령 선포도 불사할 불굴의 지도자가 아닌, 홍콩 언론의 표현대로 정치적 식물인간에 가까웠다. 요즘 람 장관 기자회견장은 기자들과의 설전장이다. 람 장관이 시위대를 비난하는 발언을 하면 기자들이 도중에 반박하며, 람 장관은 때때로 밀리는 모습을 보인다.
  • ▲ 마카오폭력배: 19일 밤 마카오경찰에 연행된 친중시위대ⓒ허동혁
    ▲ 마카오폭력배: 19일 밤 마카오경찰에 연행된 친중시위대ⓒ허동혁
    시위대는 금주와 주말에도 홍콩 각지에서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시위대는 지난 10일과 11일 수백 명 단위로 나뉘어 지하철 내에서 구호를 외치며 목표를 정하고 이동하는 기동력을 보여줬다. 일주일 안에 게릴라 시위와 평화시위 능력을 동시에 보여준 시위대가 다음 주에 어떤 전략을 구사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 다른 변수는 폭력배다. 지난 11일에는 노스포인트의 중국 복건성(福建省) 동향회를 근거지로 한 폭력배들이 거리로 대거 몰려나와 시민을 구타하고 기자들을 위협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들은 우산을 거꾸로 들고 기자들을 구타할 포즈를 취하며 ‘흑기자’라고 소리쳤다. 폭력배들은 중국어와 복건어를 구사하며 광동어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했는데, 홍콩 기자들의 전언에 의하면 이들 중 일부는 복건성에서 선전까지 육로로 이동 후 홍콩에 밀항했으며, 시위현장에 나타나면 2000 홍콩달러(약 30만8000원) 정도를 일당으로 받는다고 한다.

    홍콩시위 확산 경계하는 마카오 당국

    폭력배 일부는 마카오에도 출현했다. 19일 밤 마카오 중심 세나두 광장에서 홍콩경찰 비난집회가 열릴 예정이었지만, 마카오 경찰은 이날 일체의 집회 금지령을 내렸다.

    관광지로 유명한 세나두 광장에는 19일 밤 100여 명의 경찰이 시민과 관광객 상대로 수시로 검문검색을 벌였다. 그 와중에 지난 7월 홍콩 윤롱(元郞)에서 시민을 폭행한 폭력배와 비슷한 흰 티셔츠 차림의 사내 30여 명이 중국 오성홍기를 들고 무리지어 광장을 배회하다 전원 경찰에 연행됐다. 이들은 중국어를 구사했으며 광동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마카오 기자들은 이들이 친중 시위를 계획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과거 마카오의 종주국 포르투갈의 성향처럼 정치적 사안에는 조용하게 의견을 표출하는 마카오는, 표면적으로는 홍콩 사태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아왔다. 그러나 마카오 경찰에게 연행됐다가 풀려난 한 시민은 기자들에게 “아무 이유도 없이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검문하는 것이 말이 되냐. 마카오는 행동의 자유가 있는 줄 알았는데 실망했다”며 분노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