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펜 등 소모품은 타임캡슐에 봉인, 복사기 등은 그대로 사용… "구청의 쇼" 비난 쇄도
  • ▲ 지난 6일 서대문구청에서 진행한 '일본 경제보복 조치 직원 규탄 대회'에서 구청 일본산 사무용품을 봉인한 일명 '타임캡슐'이 구청 중앙 입구 한편에 위치해 있다.ⓒ오승영 기자
    ▲ 지난 6일 서대문구청에서 진행한 '일본 경제보복 조치 직원 규탄 대회'에서 구청 일본산 사무용품을 봉인한 일명 '타임캡슐'이 구청 중앙 입구 한편에 위치해 있다.ⓒ오승영 기자
    “복사기·프린터는 워낙 고가제품이라 사용할 예정입니다. (일본산 사무용품 봉인) 행사는 그냥 상징적 차원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서울 서대문구가 최근 반일운동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일본산 사무용품 봉인’ 행사를 진행했지만, 복합기·복사기 같은 고가의 일본산 사무용품은 그대로 사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구민을 위한 행정이 아닌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는 비난이 이는 이유다.

    서울 서대문구는 지난 6일 ‘일본 경제보복 조치 직원규탄대회’를 열고 각 부서의 일본산 사무용품을 모아 일명 ‘타임캡슐’에 봉인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철회될 때까지 일본산 사무용품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보여주는 행사였다. 당시 구청 측은 “각 부서의 일본산 사무용품을 자발적으로 모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봉인' 행사를 추진한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서대문구에서 2010년부터 내리 3선을 했다. 문 구청장은 노무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분과 자문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서대문구 "자발적 日 사무용품 봉인"… 고가 용품은 그대로 사용

    하지만 8일 방문한 서대문구청에서는 여전히 일본산 사무용품을 사용했다. 구청 종합민원실과 일부 부서에 비치된 고가의 일본산 복합기·복사기·프린터는 버젓이 이용 중이었다.

    구 관계자는 청사 내에서 모두 45대의 일본 C사 복합기를 사용 중이라고 밝혔다. 프린터와 복사기는 부서별로 관리해 정확한 갯수 파악이 어렵다고도 한다. 수량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본산 사무용품 봉인’ 행사를 진행한 셈이다.

    구 관계자는 “간단한 사무용품과 토너(복합기 등에 들어가는 소모품)만 봉인했을 뿐, 복합기나 복사기·프린터는 그대로 사용한다”며 “고가제품들은 기존 계약관계가 있기 때문에 당장 바꾸기 힘들어 계약기간 만료 후 판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대문구청의 이 같은 ‘보여주기식’ 행정 행태에 비난 여론이 일었다.

    서대문구 주민 최모(45) 씨는 “일본 경제보복 조치에 맞서 일본산 사무용품 봉인 행사 소식을 듣고 ‘일개 구청도 저렇게 의지를 보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고가 사무용품은 그대로 일본산을 사용한다니 구청장이 주민들을 바보로 생각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지역주민 "구청장이 주민을 바보로 생각하나"

    또 다른 지역 주민 A(41)씨도 “구청 해명을 들어보면 결국 일본산 볼펜만 안 쓰겠다는 건데, 무슨 초등학생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수준이 의심스럽다”며 “구청장이 거짓 행사라는 결과는 생각하지 않고 언론에 보도돼 이름 알리겠다는 것만 생각한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 ▲ 서대문구청 종합민원실에 배치된 일본산 프린터와 복사기 모습.ⓒ오승영 기자
    ▲ 서대문구청 종합민원실에 배치된 일본산 프린터와 복사기 모습.ⓒ오승영 기자
    정치평론가인 황태순 ‘황태순TV’ 대표는 “반일을 위해 일본산 사무용품을 봉인한다면서 정작 값비싼 복합기와 복사기·프린터는 빼고 사용하는 것은 선택적 반일이자 모순의 극치”라며 “이러한 이중적 행태를 국가기관인 구청이 하고 있으니 한심스러운 노릇”이라고 비판했다. 황 대표는 이어 “구청이 구민과 국민들을 위한 행정을 하지 않고 세금으로 각종 보여주기식 쇼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서대문구청의 일본산 사무용품 봉인 행사에 대해 네티즌들은 “세금이 녹는다” “유치한 발상으로 정치쇼를 하고 있다” “서울시 중구 해프닝이 왜 일어났는지 모르나보다”라는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이 같은 비판적 여론에 구청 측은 “일본의 경제제재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 행사로 봐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이 경제제재를 해제하면 (볼펜 등 봉인한 사무용품을) 다시 사용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