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압송악법 파동의 현재와 내막⑨-중국군 개입설에 ‘웃기는 소리’라며 일축하는 홍콩 시민들
  • ▲ 3일 시위대에 의해 봉쇄당한 카우룬 지역 홍함(紅磡)과 홍콩섬의 코즈웨이베이(銅鑼灣)를 잇는 크로스하버 터널. 3일부터 5일까지 총 4회 봉쇄당했다.ⓒ허동혁
    ▲ 3일 시위대에 의해 봉쇄당한 카우룬 지역 홍함(紅磡)과 홍콩섬의 코즈웨이베이(銅鑼灣)를 잇는 크로스하버 터널. 3일부터 5일까지 총 4회 봉쇄당했다.ⓒ허동혁
    홍콩에서 중국으로 범죄 송환을 가능하게 하는 ‘도주범 조례’(일명 중국압송악법) 파동과 관련, 지난 3일과 4일 연이어 대형시위가 벌어졌고, 이어 5일 아침부터는 각지에서 공무원, IT업계, 금융계, 디즈니랜드 등 위락시설까지 망라한 총파업이 벌어졌다.

    특히 교통기관의 혼란이 심각하여, 곳곳에서 시위대가 지하철 운행을 방해하거나 도로를 막아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시민들의 출근길을 막았다. 또한 항공업계도 파업에 동참하여 캐세이 퍼시픽, 홍콩 에어라인즈 등 홍콩 거점 항공사 250여 편이 결항했으며, 8일 오후 홍콩 출발 인천 도착 예정이던 캐세이 퍼시픽 항공편 두 편도 결항됐다.

    이제 중국압송악법 반대시위는 어디서 어떻게 하는지 시위주도세력도 모를 정도로 복잡 다양화되고 있으며, 시위대의 기동성과 과격성도 증가되고 있다. 4일 시위의 경우 친중 방송 TVB본사가 있는 홍콩 동부 청콴오(將軍澳)와 서부 케네디 타운(堅尼地城)에서 동시집회를 예고했지만, 실제 시위대 주류는 청콴오에 집결했다가 정반대 쪽 케네디 타운에서 동쪽으로 1.5km 떨어진 중국 정부의 홍콩출장기관 중앙인민정부 연락판공실(중련판, 中聯辦)로 향했다.

    경찰은 중국 정부의 압력을 받은 듯 중련판에 시위대가 나타나자마자 최루탄을 쏘며 강경진압에 나섰다. 그러나 시위대는 경찰이 나타나면 정면 대결을 벌이지 않는다. 이들은 즉시 중련판에서 동쪽으로 6.6km 떨어진 쇼핑타운 코즈웨이베이(銅鑼灣)로 이동하여 도로와 바다 건너 카우룬으로 이어지는 터널을 봉쇄했다. 그 후 각지로 흩어져 다음날 새벽까지 몇몇 경찰서에서 경찰과 충돌했다.

    시위대는 5일에도 14개 지역에서 경찰과 충돌했으며, 그 중 2개 지역에서는 시위대와 폭력배가 충돌했다. 이때 일부 폭력배가 칼을 휘둘렀다.
  • ▲ 청콴오 경찰서 앞에서 항의하는 시위대ⓒ 허동혁
    ▲ 청콴오 경찰서 앞에서 항의하는 시위대ⓒ 허동혁
    한편 최근 유포되는 중국군 홍콩시위 개입설은 홍콩에서는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홍콩 언론에도 중국군 개입설이나 시위진압 훈련 보도가 매주 두세 번 꼴로 나오고 있다. 그러나 과거 대만 선거 때마다 중국군이 군사도발을 벌인 것이 도리어 대만인들의 반발을 샀듯, 비슷한 반응이 홍콩에서 나오고 있다. 과거 20년간 대만 반중정당 민진당이 선거 때마다 중국 군사도발의 역효과로 승리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코즈웨이베이 시위현장에서 만난 한 20대 여성은 필자에게 “올 테면 한번 와봐라. 환영한다. 중국 위안화는 세계기축통화가 아니라서 홍콩 달러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인민해방군이 홍콩에 들어오면 세계 대공황이 벌어질 것이다”며 자신 있는 태도를 보였다.

    영국 통치시절부터 7선을 기록 중인 민주파 렁이우충(梁耀忠) 의원은 시위 현장에서 필자에게 “중국군이 개입하면 홍콩 시민들을 더 화나게 할 뿐이며, 일국양제 붕괴를 의미한다. 개인적으로는 개입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들과 다른 입법회 의원 및 구 의원들도 한결같이 중국군 개입이 웃기는 소리라고 일축하며, 만약 개입할 경우 맞서 싸울 것이라는 의지를 보였다. 중국 정부가 홍콩 시위관련 담화를 발표하면 빠짐없이 거론하는 것이 ‘외세’지만, ‘외세’가 빠져나가면 홍콩은 영국 통치 전의 한적한 어촌으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것이 홍콩 시민들의 중론이다.
  • ▲ 5일 총파업 당시 시위 분포도. 검은 글씨는 시위대와 경찰, 빨간 글씨는 시위대와 폭력배가 충돌한 지역ⓒ허동혁
    ▲ 5일 총파업 당시 시위 분포도. 검은 글씨는 시위대와 경찰, 빨간 글씨는 시위대와 폭력배가 충돌한 지역ⓒ허동혁
    중국은 중국압송악법 파동 관련 자국의 권위에 대한 어떠한 도전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휘장이나 오성홍기가 홍콩 앞바다에 버려지는 사건이 나면 국가에 대한 도전이라며 즉각 반발한다.

    한편 <파이낸셜 타임즈>가 지난 7월 보도한 캐리 람 행정장관의 중국에 대한 사임 신청설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인사가 “중국 정부의 홍콩업무 관장부서인 ‘국무원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은 후일 <파이낸셜 타임즈>에 항의했다”고 필자에게 전했다.

    논란이 된 <파이낸셜 타임즈> 기사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람 장관에게 홍콩 사태에 대해 ‘결자해지 하라’며 사임 신청을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력 동원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정치적 식물인간 상태인 람 장관은 5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종전의 강경 태도를 전혀 굽히지 않았다.

    홍콩에서 2개월째 시위가 계속됨에 따라 대형 새총, 화염병 등 과격무기가 최근 등장했다. 그러나 시위대는 경찰서와 정부시설을 제외하고는 기물파손을 삼가하며, 폭력배나 경찰에 대한 집단린치가 벌어지면 일부 시위대가 울면서 막는 등 아직도 극단적인 폭력행위를 자제하고 있다. 반면 중국군 개입설, 홍콩 정부의 현금수당 살포설 등에 대해서는 ‘웃기는 소리’ ‘돈으로 자유를 살려고 한다’며 일축하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한편 중국군 개입설과 관련 외신을 모두 확인했지만, 이를 필요 이상으로 비중 있게 보도하는 매체는 일부 국내언론 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