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이후 증인 소환 일체 불응… MB변호인단 "삼성 이학수 증언과 일치하지 않아"
  • ▲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뉴시스
    ▲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뉴시스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4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 재판에 또다시 불출석했다. 김 전 기획관은 이 전 대통령측 변호인단의 요청으로 지난 1월부터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재판에 총 아홉번 증인으로 소환됐으나 모두 거부했다.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이 김백준 진술에 상당부분 기초하고 있다"며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김 전 기획관의 증인신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가 모든 소환에 불응하면서 "의도적으로 증인출석을 회피하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 전 기획관이 이토록 '집요하게' 증인출석을 거부하는 이유는 뭘까.

    이 전 대통령측 변호인단은 그가 법정에 나와 신문을 하면서 검찰에서 했던 진술들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일각에선 그가 이 전 대통령을 마주하는 데 심리적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아니냐는 분석도 한다. 이 전 대통령의 '집사'로 불리다가, '검찰 도우미'로 변신한 그가 법정에서 이 전 대통령을 마주할 면목이 없다는 것이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 전 기획관은 4일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공판에 불출석했다. 재판부는 같은날 김 전 기획관의 국정원 특활비 수수 혐의와 관련한 항소심 선고공판이 있다는 것을 고려해 증인신문기일을 지정했으나, 김 전 기획관은 재판에 앞서 법원에 진단서와 함께 불출석사유서를 제출하고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이학수, MB 만났다" VS "안 만났다"...김백준, 이학수 증언과 안맞아

    김 전 기획관은 다스 자금횡령과 삼성 뇌물수수 등 이 전 대통령이 받는 주요 혐의에 대한 핵심증인이다.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MB 집사’ 라고도 불리던 그는 지난해 1월 구속 이후 돌연 입장을 바꿔 이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쏟아냈다. 검찰은 그의 진술을 근거로 이 전 대통령이 삼성에 다스의 미국 소송비 67억여 원을 대납하게 했다며 이 전 대통령을 뇌물죄로 기소했다. 1심은 검찰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이 전 대통령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문제는 김 전 기획관의 진술이 또 다른 핵심증인인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의 증언과 불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형법에 따르면 뇌물죄가 적용되려면 공여자와 수여자 사이의 뇌물수수 의사의 합치가 존재해야 한다. 김 전 기획관은 지난해 3월 검찰 조사에서 2008년 4월경 이 전 대통령과 이 전 부회장이 청와대 본관 2층에서 만나 뇌물수수에 대한 합의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 부회장은 "(본인은) 이 전 대통령의 재임 중에 청와대를 갔던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 전 부회장의 주장대로 실제 이 전 부회장이 청와대에 출입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검찰은 "이 전 부회장이 청와대 공용차량을 타고 출입했다면 연풍문 출입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진술을 김 전 기획관으로부터 받아냈다.
  • ▲ 이명박 전 대통령. ⓒ정상윤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 ⓒ정상윤 기자
    이에 대해 이 전 대통령측 변호인단은 공용차량을 타고 출입해 연풍문 출입기록이 없더라도 보안 검색대를 거치는 본관에서 만났다면 본관 출입기록이 남아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변호인단은 지난 3월 이 전 부회장이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도 이 전 부회장에게 이 부분에 대한 질문을 했지만 이 전 부회장은 "재임 중에 이 전 대통령을 만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 했다. 

    국정원 특활비·공직임명 대가 혐의도 김백준 증언 불일치

    김 전 기획관은 국정원 특활비 수수 혐의에 대해서도 이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다. 그는 검찰조사에서 "2008년 상반기 청와대 본관 2층 대통령 집무실에서 이 전 대통령에게 국정원 특활비로 조성된 현금 2억원이 든 캐리어를 받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와 운전기사가 몰고온 차에 실었다"고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김 전 실장의 주장과 달리 청와대 본관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없다.

    당시 국정원장으로 있던 김성호 전 국정원장은 특활비를 이명박 정부에 전달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담당 재판부의 무죄 취지는 "김백준의 진술을 신뢰할 수 없다"다.

    김 전 기획관은 또 "2007년 하반기 김소남 전 의원에게 공직임명 대가로 현금 2억원을 받아 이병모 전 청계재단 사무국장에게 전달했고 이 전 국장은 이를 이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지난 3월 이 전 대통령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이 전 국장은 "목숨걸고 말하는데, 재임기간 중 대통령을 만난 적이 없다. 김소남의 돈을 이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는 김 전 기획관의 해당 진술도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전 대통령측 변호인단은 "검찰의 공소장에는 증거는 없고 증언만 있다. 그 증언의 대부분이 김백준과 이학수의 진술로 구성돼 있는데, 그 둘의 증언이 불일치 하고 있다"며 "이 사건 핵심증인인 김백준을 반드시 증언대에 세워 실체적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백준, MB 마주볼 수 있겠나"

    일각에서는 김 전 기획관이 법정에서 이 전 대통령을 마주하는 것 자체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MB 집사’로도 불렸던 그가 검찰에 나와 이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고, 유죄판결을 받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만큼 이 전 대통령과 법정에서 마주치는 것이 심리적으로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전 대통령과 김 전 기획관을 잘 안다는 한 측근은 "김 전 기획관은 이 전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일 때부터 오랜기간 은(恩)을 많이 입은 사람"이라며 "자신이 과거에 모셨던 주군을 배신해놓고 법정에 나와서 서 있을 용기가 나겠느냐"고 했다. 또 다른 측근은 "본인에게 불리한 부분이 있으니까 (출석을) 피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냐. 검찰이 구인장을 제대로 집행하지 않고 있는데, 둘 사이의 거래 의혹도 제기된다"고 했다.  

    이 전 대통령측 변호인단은 전날 재판에서 김 전 기획관의 선고공판이 7월 25일로 연기됐다는 점을 고려해 재판부에 그의 증인신문기일을 재지정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김 전 기획관의 증인출석은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