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중국압송악법 파동의 현재와 내막③반중감정, 캐리 람의 고압적 정국운영이 문제
  • ▲ 26일 주 홍콩 미국 총영사관에 몰린 시민들. G20회담에서 중국에 홍콩자유보장 압력을 행사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허동혁
    ▲ 26일 주 홍콩 미국 총영사관에 몰린 시민들. G20회담에서 중국에 홍콩자유보장 압력을 행사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허동혁
    홍콩의 반중시위가 끝이 안 보인다. 이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홍콩인들의 반중감정 및 불신감이다. 마치 평소에 감정이 있던 상대와 우연한 일로 다툰 것이 크게 번지듯, 평소 중국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도주범 조례(일명 중국압송악법)를 촉매제로 해 수백만 명의 시위대를 홍콩 길거리로 끌어낸 것이다.

    중국압송악법 심의가 무기한 연기됐음에도 대규모 시위가 계속되는 이유는, 첫째 정부가 법안 완전철회요구에 명확한 답을 하지 않고 있고, 둘째 캐리 람 행정장관의 고압적 정국운영 방식에 대한 불만이 크기 때문이다.

    민주파 진영에서는 “법안 심의 무기연기 결정은 다시 정부에서 법안을 꺼내들 수 있다는 뜻”이라며 극렬 반발하고 있다. 실제로 과거 홍콩 고속철의 일지양검(홍콩 역사 내에서 홍콩과 중국의 출입국심사대 동시설치) 조례안 등 정부에 의한 법안기습상정 처리 사례는 여러 번 있었다.

    시위가 본격화되기 전 앤드루 렁(梁君彦) 입법회 주석은 6월 12일 법안 직권상정 → 20일 법안통과를 로드맵으로 제시했었다. 이는 언제든지 법안을 다시 꺼내들어 10일 이내로 통과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입법회 의원 임기가 끝나는 7월 이전까지 심의를 사실상 못하고 법안은 자연 폐기될 것이라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친중파 언론의 주장을 인용한 것이다.

    두 번째 캐리 람 행정장관은 지난 17일 기자회견에서 뻣뻣한 태도로 사과한 것을 제외하고는 전혀 물러서지 않고 있다. 17일 이후 공식석상에도 나타나지 않으며 시민과의 대화도 전혀 시도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홍콩 영자신문 SCMP는 26일 람 행정장관이 비공개 정부회의에서 시위 범법자를 모두 법대로 처리할 것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 ▲ 26일 밤 시위대에 의해 봉쇄당한 홍콩경찰총부 입구ⓒ허동혁
    ▲ 26일 밤 시위대에 의해 봉쇄당한 홍콩경찰총부 입구ⓒ허동혁
    시민들은 람 행정장관의 고압적 자세에 분노로 화답했다. 지난 24일 시위대는 세무국과 이민국에 난입하여 출입구를 막고, 엘리베이터의 모든 층 버튼을 누르고, 안내데스크에서 장시간에 걸쳐 정부를 비난하는 질문을 하는 식으로 업무방해를 벌였다. 26일 아침에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담을 겨냥해 1500여 명의 시민들이 홍콩주재 G19(중국 제외) 총영사관을 돌면서 홍콩 문제를 거론할 것을 촉구하는 청원서를 전달했다.

    시민들은 각국 영사관 앞에서 해당 국가 언어로 청원서를 낭독한 후 담당 영사에게 청원서를 전달했다. 대부분의 국가는 담당 영사가 건물 앞으로 나와 친절하게 시민들을 대하고 기념촬영을 했지만, 유독 한국만 시민 대표와 기자들을 건물 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게 한 다음, 청원서만 받고 별다른 설명과 사진촬영 없이 모두 내보냈다.

    이어 밤 8시부터는 ‘G20 프리 홍콩 대회’가 시내에서 열렸다. 대회 주최 측은 참가자를 추산하지 않았지만 10만 명은 족히 넘는 것으로 관측됐다. 200만 명이 참가했던 지난 16일 행진과 마찬가지로 참가자들은 모두 검은 옷을 맞춰 입었으며, 각국 언어로 번역된 G20 정상에 대한 호소문이 낭독됐다.

    진짜 시위는 이 대회가 끝난 직후 벌어졌다. 1만 명이 넘는 홍콩대 학생 중심 시위대는 ‘G20 프리 홍콩 대회’ 회장에서 15분 거리인 경찰총부로 옮겨가 21일에 이어 다시 포위했다.

    시위대는 경험이 쌓인 듯 재빨리 경찰총부를 포위했다. 주변 도로를 봉쇄하고 철제 난간으로 출입구를 막은 후 감시카메라가 작동하지 않게 스프레이를 뿌렸다. 증거 촬영을 시도하는 경찰에게는 계란을 투척하며 레이저 포인터를 쏘았다.
  • 시위 현장에는 민주파 의원들이 나와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테드 후이(許智峯) 의원은 필자에게 “시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보러 왔다. 경찰과 충돌 없이 시위를 부드럽게 마무리 시키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27일 새벽 3시 30분 경 시위대가 많이 줄어든 상태에서 경찰들은 병력 지원을 받아 충돌 없이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그러나 학생들은 27일 오전 10시 중국압송악법의 입안 주관부서인 율정사(律政司, 법무부) 포위를 예고했다.

    오는 7월 1일은 연례행사인 중국반환기념 행진이 있다. 민주파 진영은 이 행진을 최대 승부처로 삼고 있다. 실제로 2003년 7월 1일 국가안전법 파동 당시에는 50만 명이 행진에 참가해 법안이 철회됐었다.

    7월 3일에는 람 행정장관의 입법회 연설이 예정돼 있다. 안전 문제로 실제 람 행정장관이 입법회를 방문할 지는 미지수이다. 민주파 진영은 “한국에서도 몇 년 전 그랬듯 이번엔 물러날 때까지 투쟁할 것이다. 람 행정장관은 편안한 은퇴생활을 즐기기 바란다” (죠슈아 웡 黃之鋒, 2014년 홍콩 우산시위 리더) 라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