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중국압송악법 파동의 현재와 내막 ①–“홍콩 시민들, 캐리 람 정신 상태 의심”
  • ▲ 18일 사과 기자회견을 하는 캐리 람 (林鄭月娥) 행정장관(왼쪽)과, 연단 아래에 놓인 티슈 ⓒ허동혁
    ▲ 18일 사과 기자회견을 하는 캐리 람 (林鄭月娥) 행정장관(왼쪽)과, 연단 아래에 놓인 티슈 ⓒ허동혁
    홍콩에서 중국에 범죄용의자를 송환하고, 한국여권을 소지한 탈북자가 홍콩에 입국하면 북한으로 송환할 수 있는 도주범 조례, 일명 ‘중국압송악법’과 관련해, 캐리 람 행정장관은 지난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일련의 사태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기자회견이 열리기 전 정부청사에 모인 기자들은 “제한적인 양보만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람 행정장관이 선 연단에는 눈물을 흘릴 것에 대비한 티슈가 놓여 있었는데, 그는 이전 홍콩TVB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홍콩을 팔아치운 적이 없다”며 눈물을 보인 적이 있다.

    16일 200만 행진에 대한 람 행정장관은 화답은 비교적 뻣뻣한 자세로 사과한 것뿐이다. 민주파 진영의 5개 요구사항(람 행정장관 사퇴, 법안 완전 철회, 시위 구속자 전원석방, 6월 12일 시위의 폭동규정 철회, 발포 명령자 조사 및 문책)은 하나도 수용하지 않았다.

    민주파 진영은 람 장관의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고 반발하며 7월 1일 연례행사인 홍콩 반환기념 항의행진 때 사상 최대 참가자수를 예고했다. 각 학생단체 연합은 기한인 20일 오후 5시까지 정부가 법안을 철회하지 않았다며 21일 오전 7시부터 정부총부(청사), 입법회, 행정장관 집무실, 예빈부(禮賓府, 행정장관 관저)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오전 8시 현재 약 2천여 명의 학생들이 몰려 와 있다. 정부 총부는 21일 임시휴무를 선포했다.

    이번 법안 파동의 한 특징은 중국인들이 다수 참가하고 있는 점이다. 21일 오전 입법회 포위대열에 참가한 한 중국인은 필자에게 “단지 민주주의가 좋아서 여기에 왔다. 후진타오에 비해 시진핑은 괴로운 존재다”라고 말했다.

    이런 행동들은 오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담과도 관련이 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참석하는 G20를 앞두고 긴장 분위기를 최대한 고조시키려는 의도다. 민주파 아우녹힌(區諾軒) 의원은 20일 오후 일본 고노 다로(河野太郎) 외상 및 각 정당 대표에게 G20에서 최근의 홍콩 사태를 거론해 줄 것을 요청하는 서한을 발송했다.

    16일 행진에 사상 최대 200만 명이 참가한 이후 홍콩은 20일까지 소강상태를 유지했지만 21일 오후부터 군중들이 다시 모이고 있다. 수천여 명의 학생이 경찰총부(경찰청)를 포위했다.
  • ▲ 입법회 내부의 12일 시위대의 공격이 시작된 당시 (위) 와, 19일 일반개방이 재개된 모습 ⓒ허동혁
    ▲ 입법회 내부의 12일 시위대의 공격이 시작된 당시 (위) 와, 19일 일반개방이 재개된 모습 ⓒ허동혁
    19일 재개된 홍콩 입법회 본회의에서 입법회 출입 기자들은 정부인사가 발언할 때 마다 기자실에서 야유를 보냈다. 한 홍콩기자는 필자에게 “람 행정장관이 예전부터 완고한 성격이라는 것은 알려졌지만, 이젠 정신 상태를 의심하는 기자들도 있다. 사과를 하려면 오래전에 하거나 기자회견 때 고개를 숙였어야 했다”고 말했다. 홍콩은 큰 잘못을 했거나 큰 도움을 받았을 때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표시하는 문화가 있으며, 람 행정장관은 장관 당선 시 지지자들에게 고개를 숙인 적이 있다.

    19일 입법회 본회의에서 민주파 의원들에게 시위진압 경찰의 직권남용을 추궁당한 존 리(李家超) 보안국 국장 역시 사과를 했지만, 왜 고개를 숙이지 않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미 여러 번 사과를 했으며, 홍콩의 번영을 위해 앞으로 시민들과 의견차에 대해 계속 대화하겠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그간 중국 관련 법안을 기습 처리해 온 정부와 친중파가 장악한 입법회에 대한 불신하고 있다. ‘철회’ 표현을 절대 쓰지 않는 정부가 언제 다시 법안을 꺼내들까 의심하기 때문이다.

    중국압송악법 파동은 친중파 내부에도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친중파 앨리스 막(麥美娟) 의원은 18일 입법회 출입 기자들에게 “행정장관이 다음 선거를 이미 다 망쳐놓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으며, 평소 법안을 반대해 온 마이클 티엔 (田北辰)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같은 의견을 표시했다.

    지금 홍콩은 21일부터 있을 항의 행동과 7.1 행진에서 얼마나 많은 인파들이 몰릴 것이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2014년 우산시위처럼 지도부가 3개로 분열되거나, 특정 세력의 이익을 내세우는 행동이 안 보이는 점이다.

    유언비어나 관심을 끌기 위한 개인행동도 보이지 않는다. 유일한 마타도어라면 14일 밤 시내에서 열린 한 집회에서 광주 사태 관련 가요가 틀어진 것 정도다. 일부 홍콩시민들은 이번 중국압송악법 파동의 성격을 광주 사태와 동일하다고 이해하고 있다. 다만 이번 파동에서 많은 홍콩시민들이 정부를 홍콩 친공정부(港共政府)로 부르는 반면, 광주 사태 당시 한국 정부는 반공 정권이었다는 점이 다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