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시가행진, 750만 인구 가운데 25% 이상 참가…물리적 충돌 없어
  • ▲ 16일 밤 11시 입법회 앞 하코트 로드 모습. 빈 버스가 지나가자 시위 참가자들이 잠시 길을 비켜주고 있다.ⓒ허동혁
    ▲ 16일 밤 11시 입법회 앞 하코트 로드 모습. 빈 버스가 지나가자 시위 참가자들이 잠시 길을 비켜주고 있다.ⓒ허동혁
    지난 16일 홍콩에서는 중국에의 범죄인 송환을 가능하게 하며, 한국인이 북송될 수도 있는 도주범 조례(일명 중국압송악법, 中國押送惡法) 반대 시가행진에 홍콩 사상 최대인 200만 명이 참가했다. 행진에서 만난 민주파 앨빈 융(楊岳橋) 의원은 필자에게 “중국압송악법이 통과되면 홍콩에 합법적으로 입국한 탈북자는 물론, 북한이 수배한 남한 여권 소지 탈북자가 홍콩에 입국한 경우, 북한으로 압송될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16일 행진은 홍콩 인구가 약 750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시민의 ¼ 이상이 참가한 셈이다. 이날 아침 행진 출발점인 코즈웨이 베이에서 한 시간 거리인 중국 심천 국경 부근 전철역에는 검은 옷을 입은 참가자들로 북적였다. 뿐만 아니라 버스, 페리, 전차 등 대중교통 수단에는 검은 옷 인파로 가득했다.

    검은 옷을 입은 이유는 행진 전날인 15일 밤 홍콩 입법회 부근 쇼핑몰에서 일어난 한 남성의 자살사건 때문이다. 이 남성은 5시경부터 건물 위 난간에서 중국압송악법 철회 플래카드를 내걸고 고공농성을 벌였다. 소방 당국이 에어 매트리스를 설치했지만 밤 9시경 남성은 에어 매트리스가 없는 장소로 뛰어내렸고, 1시간 후 사망했다.

    행진은 수많은 인파로 인해 당초 출발 예정시간보다 30분 이른 오후 2시 30분 시작됐다. 행진 구간인 코즈웨이 베이와 애드미럴티 사이의 모든 거리는 천천히 걷거나 서있는 것 이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난 9일 시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걸음은 멈춰도 ‘철회’ ‘캐리 람 하야’ 구호는 그치지 않았다. 한편 앰뷸런스가 나타나면 참가자들은 “奉人(봉얀, 사람을 도와라)”을 외치며 지나갈 수 있게 길을 터주는 광경도 연출됐다.

    투신자살 장소에는 수많은 조화와 향 등 추모물품이 놓여 졌으며, 100만 명이 참가한 9일 행진이나 충돌이 벌어진 12일 시위와 달리 이날 무력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 ▲ 16일 오전 홍콩 교외 전철 안을 가득 메운 시위 참가자들.ⓒ허동혁
    ▲ 16일 오전 홍콩 교외 전철 안을 가득 메운 시위 참가자들.ⓒ허동혁
    캐리 람 행정장관은 행진 전날인 15일 기자회견에서 중국압송악법 무기연기를 밝혔음에도 홍콩시민의 ¼이 거리에 나온 이유는 부상당한 시민들에 대한 사과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또한 하야에 관한 질문이 9번이나 나왔지만 람 행정장관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시민들의 분노는 좀처럼 가라않지 않고 있다. 16일 밤 정부는 부상시민에 대한 사과성명을 발표했지만, 민주파 의원들은 대응성명에서 “람 행정장관이 17일 안으로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거나 대화를 하지 않으면 18일부터 다시 행동에 들어간다”고 선언했다.

    또한 입법회의 유일한 중립파인 의사직군 비례대표 피에르 찬(陳沛然) 의원은 17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시위부상자가 병원에서 체포된 이유는 정부 병원관리국이 경찰에게 의료 기밀인 입원환자 자료를 불법유출했기 때문이라고 폭로했는데, 이는 상당한 파장이 일고 있다. 17일 오후 5시부터는 민주파 의원들과 수천 명의 시민이 행정장관 집무실을 포위하고 람 행정장관과의 대화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 등 서방세계의 압력도 점점 거세지고 있다. 미국 상하원 의원 12명은 최근 중국압송악법 발의나 통과에 관련된 인사들의 비자발급을 제한하고 미국 내 재산을 동결하는 홍콩인권법을 발의했다. 중국 인민일보는 어제 홍콩 정부의 중국압송악법 무기연기를 지지하는 사설을 실었지만, 동시에 외세 개입을 비난했다. 중국 언론은 중국압송악법을 두고 계속 외세를 거론하고 있다.

    중국압송악법 사태는 대만으로도 번지고 있다. 홍콩에서 시위가 벌어진 같은 날 타이페이 입법원 앞에서 열린 중국압송악법 반대집회에는 1만여 명이 참가했다. 홍콩 시위를 취재하러 온 한 대만기자는 필자에게 “이번 홍콩 사태로 대만에 반중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어, 반중성향 민진당이 2020년 총통선거를 쉽게 치르게 됐다. ‘今日香港, 明日臺灣(오늘의 홍콩은 내일의 대만)’ 구호가 쉽게 먹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