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우 전 다스 사장.권승호 전 다스 전무 증인신문…”자금 전달 과정도 의문”
  • ▲ 이명박 전 대통령. ⓒ박성원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 ⓒ박성원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비자금 횡령에 결정적 증언을 한 김성우 전 다스 사장과 권승호 전 다스 전무가 법정에서 서로 엇갈린 진술을 하면서 진술의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지난 12일 열린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 전 사장과 권 전 전무는 "1990년대 초 결산보고 때 이 전 대통령이 ‘이익이 너무 많이 나면 현대자동차가 다스 납품원가를 낮추려고 할 수 있으니 분식을 통해 이익을 줄이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다만 김 전 사장은 이 전 대통령이 "이익 조정 결과 남는 돈은 김재정(다스 대주주·MB 처남) 씨와 상의하라고 진술한 반면, 같은 자리에 있었던 권 전 전무는 "돈을 어떻게 하라는 말은 없었다"는 상반된 진술을 했다.

    MB가 비자금 조성을 지시했는가?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이 ▲1990년대 초 이들 두 사람에게 비자금 조성을 지시해 ▲1994년 1월부터 2006년 3월까지 허위 세금계산서 매입 등의 방식으로 다스 자금 339억원을 횡령했으며 ▲매년 초 두 사람으로부터 전년도 경영성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조정금액’이라는 명목으로 비자금 액수를 보고받았다고 주장했다.

    다스 비자금 횡령 혐의를 규명할 핵심 증인인 김 전 사장과 권 전 전무는 그동안 폐문부재(閉門不在, 문이 닫히고 사람이 없음) 형식으로 법원의 소환에 불응했다. 이날 공판이 시작되기 직전까지도 소환장 송달이 안 돼 출석이 불투명한 상황이었지만, 두 사람은 증인지원 절차를 통해 나란히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이 전 대통령의 이익조정 지시 직후 김재정 씨와 이영배(김재정 씨 직원) 씨가 허위 세금계산서를 통해 자금을 요청했기 때문에 이 전 대통령의 이익률 조정 지시를 비자금 조성 지시로 이해했다"는 기존 검찰 진술도 재확인했다. 그러나 김재정 씨를 만난 후 이 전 대통령에게 비자금 조성 지시 여부를 확인했느냐는 변호인의 질문에 확인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변호인단은 이들 두 사람이 이 전 대통령의 이익 조정을 지시한 시기에 대해 초기 검찰 조사에서는 “다스 이익이 많이 나기 시작한 1995년”이라고 진술했다가 이후 조사에서 1990년대 초로 진술을 번복한 이유에 대해 캐물었다. 김 전 사장은 “그 당시만 하더라도 제 자신도 보호해야 하지만, 이 전 대통령도 보호를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있어 아마 저렇게 진술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변호인이 납품원가 조정에 대한 대비가 필요할 정도로 다스 이익이 증가하기 시작한 시기는 1995년부터인데, 이익이 거의 나지 않던 1990년대 초에 이 전 대통령이 “이익을 줄이라”고 지시할 필요가 있었느냐고 다시 묻자 김 전 사장은 “1991년부터 다스에서 처음 이익이 나기 시작했다”고 답변했다.

    변호인은 김 전 사장이 검찰조사에서 “1992년 이 전 대통령이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대선 출마를 반대하여 현대건설에서 나온 뒤 현대차의 압력이 커져 회사 사정이 어려워졌다”고 진술했고, 실제로도 납품원가 조정에 대비할 정도로 이익이 크게 나기 시작한 것은 1995년인데, 그때부터 이익 조정 얘기가 나오지 않았겠느냐고 추궁하자 김 전 사장은 별다른 항변을 하지 못했다.

    재판부도 “이익률을 좀 조정하라는 말을 듣고 비자금 조성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회사 장부상 이익률을 조정하는 것과 회사의 자금을 빼내서 개인이 가져가는 것과는 다른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권 전 전무는 “이익률을 조정하면 돈을 빼야 하는데, 돈을 빼면 어디에 처리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답변했다.

    그러나 돈을 빼지 않고 이익률을 조정하는 분식회계가 다스에서 이루어졌음이 밝혀지면서, 재판부가 “재고자산을 조정해 이익률을 낮추는 방법은 돈이 안 남는 것 아니냐”고 묻자 권 전 전무는 “그렇다”고 답변했다. 재고자산 조정 분식은 재고자산을 낮게 평가해 장부상 이익을 줄이는 방식으로, 횡령을 동반하지 않는다.

    비자금 조성 내역을 MB에게 보고했나?

    김 전 사장과 권 전 전무는 검찰 조사에서 “매년 연초 이 전 대통령에게 결산보고를 할 때, 김재정 씨에게 건넨 비자금 액수를 ‘조정금액’이라는 항목을 만들어 보고했는데, 이 전 대통령이 김재정 씨로부터 따로 보고받으면서 크로스체크하는구나 생각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이날 공판에서 변호인단은 두 사람의 이 같은 진술에 채동영 전 다스 경리팀장의 검찰 진술을 제시하며 반박했다. 채 전 팀장은 검찰에서 권 전 전무가 “이익이 너무 많이 나면 현대차가 납품단가를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며 (횡령을 동반하지 않는) 재고자산 조정 방식으로 분식회계를 하여 이익률을 조정할 것을 지시했다는 진술을 했다.

    또 채 전 팀장은 매년 초 이 전 대통령에게 보고할 결산자료를 만들어 권 전 전무에게 줬는데, 이 결산자료에는 재고자산 조정 방식으로 조정한 금액을 적은 ‘조정금액표’도 포함돼 있다고 진술했다. 앞서 언급했듯 재고자산 조정 방식은 횡령을 동반하지 않는 방식이다.

    변호인이 결산보고에 포함된 ‘조정금액’은 김재정 씨에게 건네진 비자금 액수가 아니라 채 전 팀장이 작성한 재고조정 내역 아니냐고 물었다. 김 전 사장은 회계처리 방식은 자신이 모른다고 답변했고, 권 전 전무는 “재고자산 조정 방식은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방식은 아니다”라며 “이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조정금액은 김재정 씨에게 건넨 돈만 적었다”고 답변했다.

    이날 증인신문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다스의 비자금 조성은 허위 세금계산서 지급, 재고자산 조정, 단기 선수금 조정, 가지급금 지급 방식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중 일부는 이영배 씨를 통해 김재정 씨에게 전달됐고, 나머지는 김 전 사장과 권 전 전무가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두 사람이 사용한 비자금의 용처에 대해서만 의견이 갈리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전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다는 ‘조정금액’이 김재정 씨에게 건네진 비자금만 적혀있다면 나머지 비자금에 대한 보고는 서류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한 질문에 권 전 전무는 “김 전 사장이 구두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김 전 사장은 “비자금 조성 방식의 기술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는 상반된 진술을 했다.

    비자금이 MB에게 전달되었나?

    이날 두 사람은 1990년대 초 이 전 대통령의 ‘이익률 조정 지시’가 있은 얼마 뒤 김재정 씨와 이영배 씨를 만나 비자금 전달 방식을 논의했다고 진술했다. 김 전 사장 측에서는 권 전 전무가, 김재정 씨 측에서는 이영배 씨가 비자금 조성 및 전달업무를 담당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후 매년 2~3차례 권 전 전무가 이영배 씨에게 비자금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횡령이 이루어졌다고 했다.

    변호인이 “이영배 씨에게 비자금을 전달할 때마다 이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느냐”고 묻자 김 전 사장은 “보고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이영배 씨에게 비자금을 전달할 때마다 장부에 기재했느냐는 변호인의 질문에 김 전 사장은 “권 전 전무가 장부를 관리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장부를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김 전 사장은 “못 봤다”고 대답했다.

    권 전 전무는 수첩에 전달 내역을 정리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영배 씨에게 돈을 건넨 후 김재정 씨에게는 전달 사실을 통보했느냐는 변호인의 질문에는 “하지 않았다” 대답했다. 권 전 전무나 이영배 씨가 중간에서 돈을 가로챘을 경우 어떻게 확인하냐는 변호인의 질문에 김 전 사장은 "권 전 전무가 그럴 사람은 아니다"라며 그런 경우 확인 방법이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변호인 측은 그동안 다스 비자금 횡령 혐의에 대해, 다스에서 비자금이 조성돼 김재정 씨에게 전달된 객관적 물증은 많지만, 이 돈이 이 전 대통령에게 전달된 증거는 없다고 주장해왔다. 검찰은 김 전 사장과 권 전 전무의 진술 및 “김재정 씨가 이 전 대통령의 재산관리인이므로 김재정 씨에게 전달된 돈은 이 전 대통령의 돈”이라는 논리로 변호인의 주장에 반박했다.

    그러나 김재정 씨의 부인 권영미 씨는 앞서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김재정 씨가 이 전 대통령의 재산을 관리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것은 이 전 대통령 건물 3채를 관리했다는 의미”라며 검찰의 주장이 사실과 다름을 증언했다.

    여기에 김 전 사장과 권 전 전무의 검찰 진술 및 법정증언을 살펴봐도, 이 전 대통령으로부터는 장부상 이익을 줄이라는 지시를 받았을 뿐이며, 매년 결산보고 때 조정금액이란 항목으로 비자금 액수를 보고했다고는 하, 조정금액이 비자금 액수라는 사실을 설명한 적은 없다고 했다.

    한편 이날 공판에는 삼성그룹 자금지원 혐의와 관련해 남궁범 삼성전자 부사장도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러나 변호인과 검찰 측의 거의 대부분의 질문에 ‘모른다’고 답변해 증인신문이 30분도 이어지지 않았다. 17일로 예정된 다음 공판에는 이 전 대통령의 사위인 이상주 변호사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어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