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달러, 대북활동용"... 김주성, 檢 질문에 "글쎄요. 아닌가 보다"
  • ▲ 항소심 끝난 뒤 머플러로 입을 가린 채 떠나는 이명박 전 대통령ⓒ신세인 기자
    ▲ 항소심 끝난 뒤 머플러로 입을 가린 채 떠나는 이명박 전 대통령ⓒ신세인 기자

    원세훈(67) 전 국가정보원장이 이명박 (78) 전 대통령 항소심 재판에서 "대통령이 국정원 자금을 요구한 적은 없다"고 증언했다.

    원 전 원장은 15일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속행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국정원 특활비 2억원을 청와대에 지원한 것에 대해 "청와대 기념품 제작비 명목으로 지원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국정원 자금 요구한 적 없어"

    "대통령 지시로 한 것이냐"는 변호인단의 질문에 "그런 거로 대통령이 이야기 하겠느냐"며 "기념품 이야기를 (국정원) 실장에게 들었던 것 같다"고 증언했다. 대통령 지시사항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한 셈이다.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검찰에 '(원 전 원장이) 국정원장직 유지를 위해 (대통령에게) 2억원을 제공했다'는 증언이 사실인가"라는 변호인단의 질문에 원 전 원장은 "사전에 (대통령에게 국정원장직) 사의를 표명했는데 무슨 뇌물을 주겠냐"고 되물었다.

    원 전 원장은 또 "(저는) 일반 행정직에 있던 사람이라 밑에서 뭘하면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지 어떤 건 해야 하고, 안 해야 하고 생각은 안 했다"며 "2억원 역시 김 전 기획관과 실무진 사이의 논의"라고 했다. 이어 "김 전 기획관에게 자금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다"며 "평소 김 전 기획관을 좋게 보지 않아 개인적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다"고 덧붙였다.

    원 전 원장이 이날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것은 이 전 대통령의 '국정원 특활비' 수수 혐의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은 2010년 7~8월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으로부터 청와대 특활비가 부족하다는 보고를 받고 원 전 원장에게 자금 지원을 요구해 2억원을 받은 혐의와 2011년 9~10월 국정원장직에 대한 보답 등 명목으로 현금 10만 달러를 수수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2억원에 대해 국고손실죄를, 10만 달러에 대해선 뇌물죄를 인정했다.

    원 전 원장은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일 때 행정1부시장으로, 대통령 재임 시절에는 행정안전부 장관과 국정원장으로 근무했다.

    '10만 달러 지원' 뇌물 아냐… "대북 활동 위한 것"

    원 전 원장은 해외 순방비 명목으로 국정원 자금 10만 달러를 청와대에 지원한 사실에 대해선 "대북 접촉 활동을 위해 지원한 것"이라며 "대통령과 논의한 것이 아니며, 저를 포함해 장관과 청와대 소속 인물 3명이 논의한 부분"이라고 했다.

    재판부와 검찰 측이 '3명이 누구냐'고 신문했지만 원 전 원장은 "나머지 2명에 대해서는 공개적 자리에서 밝힐 수 없다"고 답했다.

    원 전 원장의 증인신문 전 변호인 측은 '특활비 10만 달러' 관련 신문은 국가 안보와 관련된 사항이 있을 수 있다며 비공개 기일을 따로 잡아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 ▲ 법정 앞 '이명박'연호하는 지지자 바라보는 이명박 전 대통령ⓒ신세인 기자
    ▲ 법정 앞 '이명박'연호하는 지지자 바라보는 이명박 전 대통령ⓒ신세인 기자

    이날 재판에선 김주성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의 증인신문도 있었다. 김 전 실장은 2008년 3월~2010년 9월까지 김성호·원세훈 전 국정원장 시절 국정원 예산을 관리하는 기조실장으로 근무했다.

    '대통령 독대' 김주성 "청와대 출입방법·날짜 기억 안 나"

    김 전 실장은 "국정원에 공식·비공식적으로 자금을 요청하는 것이 곤란하다고 대통령에게 전했다"며 "대통령이 별말씀이 없어서 제 생각에 공감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성호 전 국정원장의 1심에서 독대를 인정하지만 청와대 자금지원 자체가 아닌 (요청) 창구를 통일해달라는 취지로 말했다는데 사실인가"라는 검찰의 질문엔 "글쎄요. 비자금이 조심스러운 부분이라 구체적 표현을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김 전 실장은 또 청와대 출입기록과 관련, 대통령과 독대한 날짜를 특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며 "(청와대 출입방법은) 관행을 따랐을 것"이라고 명확하게 답을 하지 못했다.

    그동안 김 전 실장은 대통령 독대 전, 류우익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안내를 받았다고 밝혀왔다. 사건 조사 결과를 토대로 김 전 실장은 대통령 독대 예상일을 2008년 6월 7일로 추정했으나, 당시 류 전 비서실장은 하루 전인 6월 6일 ‘광우병 파동’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이에 김 전 실장은 "그때가 아닌가보다"라고 했다.

    이날 오후 2시 5분 시작된 공판은 원 전 원장의 증인 신문이 길어지면서 3시간 40분 동안 진행됐다. 이 전 대통령도 참석했다. 원 전 원장은 증인 신문을 위해 법정에 들어선 뒤 이 전 대통령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이 전 대통령 역시 가벼운 고갯짓으로 응답했다.

    MB, 재판 후 지지자들 바라보며 가볍게 인사

    지지자들은 재판 시작 전후에 법원 입구에서 “이명박”을 연호했다. 재판을 마친 이 전 대통령은 쌀쌀한 날씨 탓인지 검정 머프러로 코와 입을 가린 채 차량으로 이동했다. “힘내십시오”라며 지지자들의 연호가 계속되지, 잠시 지지자들을 향해 가볍게 인사를 하기도 했다.

    한편 이명박 전 대통령 측 강훈 변호사는 "14일 이 전 대통령 보석과 관련해 검찰과 변호인, 경찰이 참여한 회의가 열렸다"며 "김장환 목사 등 접견을 허가해 달라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했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다음 항소심 공판은 오는 20일에 열린다.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은 20일 이병모 청계재단 사무국장,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22일), 이학수 전 삼성전자 부회장(27일), 김성우 전 다스 사장과 권승호 전 다스 전무(29일) 등의 증인 신문이 계획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