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협상과 협상학(22) 협상에서 성급한 움직임은 ‘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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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북 하노이협상이 결렬된 이후 ‘트럼프의 승리, 김정은 당혹’ ‘한국정부의 중재 역할이 커졌다’거나 ‘1986년 미-소 레이캬비크회담처럼 반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등 희망의 불씨를 강조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결론부터 말하면 너무 성급한 주장들이다. 사실과 다른 내용도 적지 않아 정부의 판단에 좋지 못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먼저 이번 협상은 누구의 승리도 아니다. 본 칼럼에서도 수차례 언급했듯 대부분의 협상전문가들은 이번 협상을 최소 2년 이상으로 전망한다. 이제 반환점을 지난 것에 불과하다. 여야의 일희일비하는 듯한 발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협상을 안 하거나 테이블을 박차고 나오는 것도 대표적인 협상방법 중 하나다. 오히려 협상 중간과정에서 누구의 패배 평가는 자칫 최종협상 때 손해를 만회하는 어드벤티지를 줄 수 있다. 협상의 기본 속성은 주고받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둘째, 한국의 중재 역할이 커졌다는 주장은 중재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표현이다. ‘중재’는 결과에 대한 이행강제성을 갖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표현이다. 즉 A와 B의 중재인 C가 조율안을 내놓았을 때 A와 B는 설령 불만이 있더라도 반드시 따라야 하는 법적인 용어이기도 하다. 둘 다 참고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은 ‘조정’이라는 표현이 옳다. 양측이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객관적인 안은 조정의 한계를 인식하는 현실감각에서부터 나올 수 있다. 

    셋째, 레이캬비크회담처럼 오히려 극적인 타결을 예측하는 것 또한 금물이다. 조건과 상황이 너무나 다른데 결렬이라는 결과만 놓고 비교한 일종의 희망고문이다. 당시 미·소는 서로 비슷한 양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한 가운데 소련이 미국의 그 유명한 레이저 방어 ‘스타워즈’ 비대칭 시스템을 폐기해달라는 주장으로 결렬됐다. 이후 소련이 어쩔 수 없이 스타워즈 폐기 요구는 포기한 채 대륙간탄도미사일만 폐기한 회담을 이번 회담과 비교하는 것은 자칫 미북 양쪽 모두에 오해를 줄 수 있다. 카드로만 본다면 북한의 것은 거의 드러났고, 미국의 해제 카드만 남은 상태다. 비교한다면 미북 간 1953년 휴전협상이 더 정확하다. 북한은 배고프고 지쳤고, 절대 후원국인 중국도 함부로 더 움직일 수 없었다. 휴전 타결 전 치열한 고지전처럼 지금은 우리의 ‘이해’ 확보에 주력해야 할 시점이다.

    끝으로, 트럼프가 요구한 ‘cleaning up this mess up’은 혼란의 뒤처리다. 좋게 표현해 조정 역할인데, 더욱 뚜렷해진 민주당 하원 권력의 힘을 유의해야 한다. 트럼프 리더십에 의존하는 방식은 자칫 미국의 정권이 바뀌었을 때 우리 정부에 감당할 수 없는 불신이 돌아올 수 있다. 미국 내 북한에 대한 불신과 북한 인권문제 등에 대해서도 언급이 있어야 하며, 이 점은 한국당 등 야당에 협력을 요청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북한으로부터도 조정자 역할을 요청받아야 한다. 

    이번에 드러난 북의 절실한 민생 이해에 대한 우리의 역할은 크고 중요하다. 그 점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이미지는 더 이상 북한에도 유리하지 않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북한의 중·장거리미사일 위협과 한미훈련이 사라진 미북협상은 정확히 표현하자면, 한민족의 운명을 건 협상이 아니라 남한국민의 목숨만이 담보로 남은 협상이다. 조정자 역할이 어려운 것도 틀림없지만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 그리고 여야가 선과 악의 역할을 충실하게 나누며 힘을 모아야 할 북핵협상 중반전이다.

    / 권신일 전 허드슨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