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전화번호 빼내 불법선거 했다고 보도… '오보' 밝혀졌는데도 정정 안해"
  • ▲ 자유한국당 소속 이성헌 전 의원.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자유한국당 소속 이성헌 전 의원.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한겨레는 지난 8월 20일자 신문 1면 상단에 <유권자 72% 전화번호 빼내 불법선거… "구청서 통째로 받아">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한겨레는 이 기사에서 2012년 총선 당시 새누리당 소속(現 자유한국당) 이성헌 전 의원 측이 서대문 구청에서 유권자 개인 정보를 몰래 빼내 불법 선거 운동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겨레는 이 전 의원 측이 사용했다는 유권자 정보 자료(서대문구갑 유권자명부)라며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이에 서대문 구청은 유권자 정보 유출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서대문 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수사에 들어간 서대문 경찰서는 한겨레가 입수한 유권자 명부를 구청에서 유출된 자료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고 지난 11월 5일 자로 내사 종결했다. 

    서대문 구청으로부터 이같은 경찰 조사 결과를 들은 이 전 의원은 지난달 19일 서울 서부지방법원에 한겨레 양상우 사장과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 2명을 상대로 정정보도 신청 및 손해배상금 1억원을 청구하는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이성헌 전 의원은 "한겨레 기사로 인해 '불법 선거를 벌인 정치인'으로 낙인 찍혔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해당 사안에 대해 내사종결 처분을 받고, 한겨레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그를 4일 만났다. 

    "확인 안된 거짓 기사로 엄청난 피해"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 소속으로 서울 서대문구갑에서 16대,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성헌 전 의원은 “한 매체의 팩트 체크(사실 확인) 없는 새빨간 거짓말 기사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했다. 

    사건은 이렇다. '한겨레' 신문은 올해 8월 20일 신문 1면 상단에 <유권자 72% 전화번호 빼내 불법선거… “구청서 통째로 받아”> 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한겨레는 1면과 4면의 상단 부분 전체를 할애해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한겨레는 기사에서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12년 19대 총선을 재조명했다. 이 매체는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당시 새누리당 후보 측이 서대문 구청 등에서 몰래 빼낸 주민명부를 선거에 활용했다는 취지의 기사를 실었다. 한겨레는 "이 명부에 서대문구 유권자 72%에 가까운 번호가 담겨있다"면서 "해당 주민 명부 자체는 구청 전산망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자료"라는 서대문 구청 관계자 말을 인용 보도했다. 

    이 신문은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에서 근무했던 A 씨(한겨레 기사에는 'ㄱ씨')로부터 관련 기사 내용을 제보 받았다고 밝혔다. 기사에는 이성헌 전 의원의 허모 보좌관이 새누리당 A 씨에게 서대문 주민의 개인 정보가 담긴 문서를 주면서 유권자 명부 작성을 요청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성헌 전 의원은 이 기사에 대해 "팩트가 완전히 틀린 가짜뉴스"라고 주장했다. 

    -이 기사의 내용이 허위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한겨레가 입수했다고 한 아른바 '서대문구갑 지역 유권자 명부'를 나는 한번도 본적이 없다. 이 명부와 관련해 얼마전 나의 무죄를 증명할 수 있는 경찰 수사 결과가 나왔다. 보도가 나간 후 서대문 구청이 경찰에 의뢰해 한겨레가 입수했다는 ‘유권자 명부’의 진위를 조사했다. 그 결과를 토대로 경찰은 '이 사건을 내사한 결과, 범죄혐의점을 입증할 증거와 피혐의자를 특정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할 수 없어 11월 5일자로 내사종결한다'고 밝혔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서대문 구청은 마치 구청이 주민들의 개인정보를 넘긴 것으로 오해를 받았기 때문에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경찰 수사 의뢰와 함께 구청은 자체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구청에서 유권자 개인정보를 빼돌리지 않았다는 게 확인됐다. 한겨레가 공개한 유권자 명부에 적힌 대부분의 전화번호가 서대문에 등록된 주민 유권자 정보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구청 주민등록시스템 상에서 전화번호 일괄추출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구청의 '주민등록시군구정보시스템'으로 유권자 전화번호를 추출하기 위해서 유권자 명부를 토대로 1명씩 개별 조회를 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성헌 전 의원은 "서대문 구청은 한겨레 보도처럼 유권자 7만여 명의 개인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표로 정리하려면 적어도 7명(7개동)의 주민등록 담당자가 공모하거나 2011년 당시 주민등록 총괄담당자가 수 만여건의 전화번호를 1건씩 개별 열람 후 수기로 정리해야 그런 명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현실적인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결론내렸다"고 말했다. 

    -구청직원이 몰래 명부를 빼냈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구청의 자체조사 결과 특정 직원이 수백 건 이상의 개인정보를 동일 시점에 개별 열람한 비정상적인 접속기록은 확인되지 않았다. 구청은 또한 한겨레가 보도한 유권자 명부의 정확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경찰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아 이 가운데 500건을 무작위로 뽑아 구청 주민등록상의 전화번호와 일치하는 지 대조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유선전화(집전화)와 무선전화(휴대폰) 중 일부 번호 일치'는 15건, '번호 전부 일치'는 0건, '번호 불일치'가 131건이었다. '제공 명부 상의 주소지 미거주로 인한 확인불과'는 346건이었다."

    이성헌 전 의원은 "이런 결과를 토대로 서대문 구청은 한겨레가 입수한 선거인 명부 자료의 신빙성 여부를 확인한 결과 구청에서 유출된 전화번호라고 단정 짓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 ▲ 자유한국당 소속 이성헌 전 의원이 4일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지역사무실에서 최근 한 매체의 의혹 기사로 억울하게 불법 선거 누명을 썼다고 설명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자유한국당 소속 이성헌 전 의원이 4일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지역사무실에서 최근 한 매체의 의혹 기사로 억울하게 불법 선거 누명을 썼다고 설명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한겨레가 입수했다는 유권자 명부가 가짜라는 말인가? 

    “경찰이 표본으로 추출한 500개의 명단 중에 유선전화와 무선전화 번호가 일치하는 게 불과 15건이었다. 구청의 자체 조사 보고서에도 '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제보자가 명단 불법유출의 직접 관여자가 아니라, 구청에서 빼왔다는 국회의원 보좌관의 이야기를 제보자가 전해들었다는 내용을 근거로 삼고 있을 뿐이고, 따라서 유출 경로, 유출방법 등에 대한 구체성이 전혀 없는 카더라식 내용을 인용하는 형태로 기사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기사에는 명부를 정리해달라고 제보자에게 요청한 사람이 이성헌 의원 보좌관이라고 돼 있다. 

    “한겨레는 2012년 당시 새누리당 관계자 A 씨에게 ‘유권자 명부’를 정리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사람이 나와 일했던 허 아무개 보좌관이라고 했지만, 당시 허씨는 보좌관이 아니라 비서였다. 또 제보자에게 선거인 명부를 요청했다는 허모 비서는 불행하게도 2012년 12월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사람이 제보자라는 사람에게 실제로 무슨 말을 했는지 확인할 수가 없다."

    지난 2012년 총선에서 이성헌 전 의원과 서대문갑에서 맞붙어 승리한 우상호 의원은 이 전 의원과는 오랜 ‘라이벌’이다. 둘은 16대부터 20대 선거 까지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표 싸움을 벌였다. 16대와 18대는 이 전 의원이, 17대와 19대, 20대 선거에서는 우상호 의원이 당선됐다. 한겨레는 이른바 서대문갑 유권자 명부 사건을 보도하면서 우상호 의원의 인터뷰를 실었다. 

    인터뷰에서 우상호 의원은 “당시에도 지금도 전체 유권자의 10% 정도의 휴대폰 번호만 확보해도 어마어마한 것으로 봤다. 충격적이다”라고 했다. 우 의원은 기사에서 “당시 지역을 돌 때, 이성헌은 메시지를 보내는데 우상호는 왜 안 보내느냐, 지역구 관리를 소홀히 하는 것이냐는 얘기를 듣곤 했다”며 “‘이성헌 쪽이 연락처를 엄청 갖고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전체 유권자 명부가 있는지는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성헌 전 의원은 “당시 서대문 구청장이 민주당 소속 문석진 청장이었다. 이런 사람이 불법을 저질러 가면서 유권자 자료를 상대 당 사람에게 넘겨주는 것이 상식적으로 맞겠느냐”고 말했다. 
  • ▲ 자유한국당 소속 이성헌 전 의원.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자유한국당 소속 이성헌 전 의원.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최근 경찰 수사결과를 계기로, 한겨레와 우상호 의원 측에 항의를 했나. 

    “기사가 나왔을 당시인 지난 8월에 언론중재위 신청도 했고, 한겨레에 정정보도를 요구했지만 어떤 조치도 없었다. 그래서 지난달 19일 손해배상 청구를 신청해 놓은 상태다. 우상호 의원도 언론과 인터뷰하기 전에 나한테 한 번이라도 진실을 확인하거나, 구청에 문의해 정확하게 사실관계를 파악해야 했다. 언론 보도로 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내가 마치 불법선거를 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아니면 말고식의 보도나 폭로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이성헌 전 의원은 한나라당 소속으로 서울 서대문구갑에서 16대, 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81학번으로 연세대학교 총학생장을 지냈던 이 전 의원은 '전두환 대통령 독재 타도' '대통령 직선제'를 외치며 학생 운동에 뛰어 들었다. 그는 자신의 학생운동 전력에 대해 "주사파, NL(민족해방)·PD(민중민주) 계열이 학생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한 1985년 이전에 학생 운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좌파 사상에 물든적은 없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 전 의원은 1985년 3월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의 권유를 받아 김 전 대통령의 비서로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다. 

    한겨레 측은 이성헌 전 의원의 주장에 대해 "충분한 취재를 바탕으로 기사가 작성됐다"고 반박했다. 해당 기사를 쓴 한겨레 기자는 "우리가 입수한 자료를 보면 메일에 허 보좌관(이성헌 전 의원 측 선거 실무자)과 기사를 제보한 당사자가 서로 (유권자) DB를 주고받은 사실이 나와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기자는 "서대문 구청에서는 (자료가) 유출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당시 개인정보 접근 로그인 기록 관리가 사실상 되지 않는 곳이 있었고 어떤 부서는 로그 기록 자체가 삭제되기도 했다"며 "그러니 (유권자 정보) 기록이 어디서 나갔는지 특정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