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A-靑 ‘카톡'… VOA “국무부 매체 아니다" 설명하자, 靑 "밥 한번 먹자" 엉뚱한 소리
  • ▲ 지난 14일 TV조선은
    ▲ 지난 14일 TV조선은 "청와대가 VOA를 외신기자단에서 퇴출했다"고 보도했다. ⓒTV조선 관련보도 화면캡쳐.
    “청와대가 ‘미국의 소리(VOA)’ 방송을 외신 기자단에서 갑자기 퇴출시켰다”는 보도가 나온 것은 지난 14일이다. TV조선은 이날 이같은 소식을 전하면서 “VOA가 최근 북한산 석탄의 국내반입 뉴스를 특종 보도한 것과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청와대는 이튿날 “사실관계에 기초하지 않은 억측 보도에 매우 유감”이라며 서운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지연 청와대 해외언론비서관은 15일 기자들에게 “문제를 제기한 VOA 기자를 포함해 VOA 소속 기자 2명은 현재 외신 기자단의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이하 단톡방)’에 그대로 포함돼 있다”며 “청와대가 VOA 측에게 단톡방에서 나가달라고 한 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신지연 비서관은 문자 메시지에서 “심지어 (문제를 제기한 언론 보도가 나왔던 14일에) 신임 VOA 서울지국장을 단톡방에 새로 초대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또  VOA 측에 요구한 내용은 “개별 기자들의 휴대전화 카카오 계정이 아니라 회사에서 여러 명이 사용하는 공용 휴대전화로 단톡방에 가입한 사실을 알게 돼, 해당 기자에게 통보한 것”이라며 “원칙적으로 공용 휴대전화는 단톡방 가입이 불가하다는 게 저희 입장”이라고 해명했다.

    이같은 청와대 측 해명은 이미 수많은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결론부터 밝히자면, 이같은 청와대의 해명은 거짓이다.

    ‘판문점 선언문 영문판’ 질문에서 시작된 논란

    사건은 VOA 기자가 단톡방에서 청와대 측에 ‘판문점 선언문 영문판’에 대한 질의를 하면서 시작됐다. 이 단톡방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외신기자 100명 이상이 가입돼 있다. 

    VOA 기자는 단톡방에서 이렇게 물었다. “청와대는 판문점 선언 한글본과 영문본이 다른 것에 대해 ‘영문본은 비공식’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비공식이라고 답한 그 영문본이 지난 6월 해외문화홍보원 등에서 출간한 영문본이랑 똑같았다.”

    VOA 기자는 이와 관련해 청와대 측에 사실 관계 확인을 요구했다. 그런데 청와대는 단톡방에서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해외언론비서관실의 선임행정관이 질문을 한 기자에게 개인적으로 카카오톡을 보냈다.

    청와대 N행정관은 VOA 기자에게 카톡을 보내 "외신기자들이 모인 단톡방에서 VOA가 질문을 한 데 대해 일부 언론들이 문제를 제기한다"며 "함 기자님(VOA 기자의 선배)하고 통화해서 오해는 풀었다"고 말을 걸었다. VOA 기자는 "누가 그런 문제 제기를 하느냐"고 반문했다. 외신기자 단톡방에서 질의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2017년 청와대 춘추관에서 확인해 준 것이고, 다른 외신들도 질의를 하는데 왜 VOA만 안된다는 거냐고 물었다.

    청와대 N행정관은 그러나 VOA 기자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전체방에 문의가 해결되었다는 취지로 글 하나 남겨달라. 이 문제는 끝내겠다. 미리 감사드린다"는 말을 남기고 답변을 하지 않았다.
  • ▲ 문재인 대통령은 언론과의 소통에 매우 적극적으로 유화적인 모습을 보인다. 사진은 2017년 6월 美CBS 방송과 인터뷰를 하는 모습(기사 본문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문재인 대통령은 언론과의 소통에 매우 적극적으로 유화적인 모습을 보인다. 사진은 2017년 6월 美CBS 방송과 인터뷰를 하는 모습(기사 본문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청와대 “VOA, 회사 공용폰 쓰니 단톡방서 나가라”

    VOA와 청와대 관계자가 주고 받은 카톡 내용을 보면, 청와대 N국장은 VOA 측의 질의에 대답은 하지 않고, 거꾸로 기자에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청와대 측은 지난 15일 “신임 VOA 서울지국장을 단톡방에 새로 초대하기도 했다"고 해명했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달랐다. 

    청와대 N행정관은 VOA 기자의 질문은 답하지 않고 "서울지국장이 새로 왔느냐"고 물었다. VOA 기자는 "VOA 한국어 서비스국은 서울에 지국이 없다"며 "아마 다른 외신분께 잘못된 정보를 들으신 것 같다"고 답했다. 청와대 N행정관은 "그럼 스티브 밀러 기자가 지국장이냐"고 재차 물었고 VOA 기자는 아니라고 답했다. 현재 서울에 파견나와 있는 브라이언 패든 특파원도 14일 귀국한다고 설명했다.

    청와대가 VOA 기자에게 “단톡방에서 나가라”고 말한 내용은 이어지는 대목에서 확인된다.

    청와대 N행정관은 또한 "외신단톡방에 신원확인이 안 되는 기자가 있다"면서 "VOA 공용폰은 외신단톡방에서 나가라"고 통보했다. VOA 기자는 “외국인 신분으로 휴대전화 개통이 쉬운 편이 아니고, 3개월마다 서울에 있는 기자가 교체되는 현실에서 취재원과의 고정적인 접촉면 유지, 활동 역량 유지를 위해서도 과거 다른 기자가 개통한 휴대전화를 후임이 물려받아 쓰는 것이지, 회사 내부의 모든 사람이 다 마음대로 쓰는 ‘공용 휴대전화’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청와대 측은 이같은 해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청와대 N행정관은 해명에는 아랑곳 않고 단톡방에 신원확인이 안 되는 외신기자가 있다는 말과 함께 "모 언론사에서 제게 문의하셔서 그러는데 청와대 규정상 VOA 코리아는 외신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을 보탰다. VOA 기자는 "VOA는 한국에 별도 법인이나 지사가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매체"라고 반박했다. 그리고 "(청와대는) 외신과 내신을 법률적·행정적으로 어떻게 구분하느냐"고 물었다.

    청와대 N행정관은 "VOA의 매체 성격은 해외문화홍보원이나 문화체육관광부에 추후 의견을 문의해봐야 할 것 같다"며 즉답을 피했다.

  • ▲ VOA가 지난 8월 보도한, 北남포항의 석탄 적재장과 화물선. 북한 석탄 보도는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놨다. ⓒVOA 관련보도 화면캡쳐.
    ▲ VOA가 지난 8월 보도한, 北남포항의 석탄 적재장과 화물선. 북한 석탄 보도는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놨다. ⓒVOA 관련보도 화면캡쳐.

    VOA “청와대 태도에 실망… 외교 조치로 이어질 수도”

    "단톡방에서 나가라"는 논란에 대해 VOA 측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VOA 측은 이번 사안에 대해 청와대에 공식 항의를 할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청와대가 우리 기자들에게 보인 부당한 태도 등은 외교적 조치까지 고려할 만한 사안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VOA 측이 말한 '부당한 태도'란 청와대 관계자와의 통화 내용을 말한다.

    청와대 N행정관은 VOA 기자와의 통화에서 “VOA 코리아, 아, 그 국무부 기관”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VOA 기자는 “저희는 공식적으로 美국무부 직원이 아니고 BBG라는, 독립된 연방정부 기관 소속”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N행정관은 “그러면 만난 적이 없으니 밥 한 번 먹자”고 말을 돌렸다.

    VOA와 ‘자유아시아방송(RFA)’은 1994년 4월 30일 개정된 ‘국제방송법’에 따라 ‘방송감독이사회(BBG, Broadcasting Board of Governors)’라는 별도의 연방정부 기구가 감독하고 있다. BBG는 美정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기는 하나, 방송 편집과 경영에 대해서는 독립적 권한을 부여받고 있다. 실제 VOA는 트럼프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보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청와대 N국장은 VOA 기자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런데 VOA코리아는 사실 저희(해외언론비서관실)가 다루지 않는다. 청와대 대변인실 국내언론 파트에서 다룬다”고 말했다. VOA의 영어 서비스는 청와대 해외언론비서관실이 맡지만, VOA가 한국어로 서비스를 하면 국내 언론으로  취급한다는 의미였다. N국장은 “청와대 춘추관(기자실)은 저희보다 잘 모른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N국장의 논리대로라면 한때 한국어로 서비스를 했던 월스트리트 저널, 지(時事) 통신 등도 '한국 언론'에 속해야 한다.

    “청와대가 VOA를 외신기자단에서 퇴출시켰다”는 보도가 나오자, SNS에서는 청와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가 VOA 기자에게 ‘미국의 프로파간다 머신에게 할 이야기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는 상황이다. 청와대가 ‘판문점 선언 영어본’에 대한 질문을 비롯해 논란이 된 부분을 해명하지 못하면, 청와대의 오명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