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언어의 징검다리' 일본 전문가 조양욱 '상징어와 떠나는 일본 역사문화 기행' 출간
  • 한일 사이에 놓여 있는 언어의 징검다리―. 

    어딘가에 그런 징검다리가 있긴 할 게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인 친연(親緣)은 몇몇이 감추고 숨긴다고 사라질 리 없으니까. 그 깊은 인연을 두 나라 말과 언어의 유사성으로 풀어낸 시도도 즐비했다. 사정이 그러하니 ‘징검다리’들도 찾아보면 숱할 것이다. 그런데 소설가 한수산은 ‘한일 사이에 놓여 있는 언어의 징검다리’란, 멋들어진 표현으로 어느 한 사람을 콕 집고 말았다. 

    취재로, 집필로, 번역으로, 연구로 수십 년 간 일본에 천착한 조양욱 씨다. 그의 프로필을 뒤로 하고, 일본에 대해 그간 써온 책들의 면면만 훑어봐도 왜 개인 조양욱이 한일을 잇는 가교가 되는지 수긍이 간다. 『괴짜들, 역사를 쓰다』 『일본상식문답』 『열 명의 일본인 한국에 빠지다』 『일본지식채널』…. 

    다들 일본에 관한 책들이되,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은 제각각이다. 드넓은 스펙트럼이 어렵지 않게 한 곳으로 수렴하는 것은, 물론 일본에 관한 조양욱의 세월과 내공 때문이다.     

    그 위로 한수산이 말하는 ‘언어의 징검다리’가 하나 더 보태진다. 신간 『상징어와 떠나는 일본 역사문화 기행』이다. 

    구로후네, 후지산, 주신구라, 사무라이, 혼네…

    99개의 키워드가 등장한다. 구로후네(黑線), 후지산, 주신구라, 사무라이, 고지키(古事記), 가미카제, 기모노, 라멘, 혼네 등 그리 낯설지도 않은 키워드가 ‘상징어’가 되는 것은 다시 한 번, 조양욱의 세월과 내공 덕이다. 별나지 않은 키워드 99개는, 조양욱이란 징검다리를 거치면서 일본의 역사와 문화와 사회와 정치, 경제를 저인망으로 훑어낸다. 

    누구에게나 흔하고 맛깔스럽기도 한 상징어 ‘라멘’ 항목만 봐도 그렇다. 저자는 라멘 하나를 두고도, NHK의 일일 드라마, 뉴욕타임스의 사설, 1970년대 무장 좌익 게릴라 얘기, 신주쿠 거리의 ‘일본에서 제일 가느다란 라멘’까지 종횡무진으로 엮어간다. 급기야 아무나 떠올릴 수 없는, 촌철살인의 일본 문화론으로 도약한다.  

    “생화로 멋을 낸 뒤 시들면 버리는 꽃꽂이 이케바나가 그렇고, 한번 쓴 뒤 쓰레기가 되는 나무젓가락 와리바시, 한꺼번에 피었다가 단숨에 져버리는 벚꽃에 환호작약하는 모습에서도 단발성 문화의 그림자가 한 자락 깔려 있는 것이다.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는 미학(美學)으로서….” (본문 226p)

    언젠가 후지산을 오르다 만난 ‘간바로(힘내자, 잘하자)’란 말 하나를 보고도 저자의 기억과 상상은 시사와 서정을 오간다. 

    시사와 서정을 오가는 ‘상큼한’ 일본 해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 이상화는 은메달을 받고 펑펑 운다. 금메달이 확정된 일본의 고다이라는 이상화에게 “잘했어!”라고 한국어로 말했다. 일본말이었으면 아마도 ‘간밧타!’였을 거라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면서도, 저자는 이내 ‘간바로’의 은밀한 세계로 독자들을 끌고 들어간다. ‘간바로’는 그저 건조한 ‘힘내자’가 아니라, 지친 일상에 힘을 불어넣어 주는 ‘절대자의 은밀한 속삭임’이란 해설…. ‘간바로’가 일본인들의 심리를 뒤흔드는 ‘상징어’로 격상되는 순간이다. 

    이 정도면 소설가 한수산이 왜 조양욱을 두고 ‘한일 사이에 놓여 있는 언어의 징검다리’라고 단언했는지 알 만하다. 조양욱의 짧은 글을 보듬은 서사와 서정의 절묘한 결합은, 우리 앞에 일본의 실재를 그림처럼 펼쳐 보여준다. 

    다시, 한수산은 그의 미묘한 글들을 두고 ‘오늘의 일본’을 감지할 수 있는 ‘기상도’라고 평한다. 세월로 농축한 탐구와 지속적 응시가 남들이 모르는 일본을 우리 앞에 민감하고 예민한 풍경으로 펼쳐 보여준단 얘기다.  

    한수산은 조양욱의 신간 『상징어와 떠나는 일본 역사문화 기행』을 ‘상큼한 문명 비평서’로 요약한다. 딴지 걸기 어려운 한줄 평이다. 엔북 펴냄,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