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오바마 정권 때까지 ‘중국의 종속 변수’…트럼프 ‘대만 여행법’부터 반중 전초 될 수도
  • ▲ 1943년 11월 이집트 카이로 회담 당시 연합국 승전국 수뇌부들. 왼쪽부터 장개석(중국), 프랭클린 루스벨트(미국), 윈스턴 처칠(영국).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943년 11월 이집트 카이로 회담 당시 연합국 승전국 수뇌부들. 왼쪽부터 장개석(중국), 프랭클린 루스벨트(미국), 윈스턴 처칠(영국).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북한의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위협, 2018년 1월부터 시작된 김정은의 대외적 유화 공세 등으로 전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에 쏠려 있는 듯하다. 한국 언론만 보면 이제 세상의 중심은 한반도가 된 것 같다. 과연 그럴까. 한반도 문제는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전략 가운데 일부분이다. 그런데 이 전략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중요한 변화가 보인다. 바로 대만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다.

    2차 대전 승전국서 ‘국가 아닌 국가’로 전락한 대만(자유중국)

    2차 세계대전 승전국으로써 유엔 창설 이후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었던 자유중국(이하 대만)은 1971년 10월 25일 제1967차 유엔 총회 표결에 따라 그 지위를 잃는다. 대신 중화인민공화국(중공, 이하 중국)이 상임이사국을 차지한다.

    이날 유엔 총회 표결은 단순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공산권 국가였던 알바니아가 제안한 결의안 제2758호는 “유엔에서 중국이 가지는 합법적 권리 회복으로, 유엔에서 합법적인 중국 대표는 오직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대표임을 인정하며, 유엔 및 관련 기구에서 불법적으로 자리를 차지하던 대만 대표를 추방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이날 표결에 참석한 유엔 128개 회원국 가운데 76개국이 찬성, 35개국이 반대, 17개국이 기권표를 던져 중공은 중국이 됐다. 대만 외교부 장관은 이 표결 직전 유엔 총회 의장의 양해를 얻어 유엔 탈퇴를 선언하고 퇴장했다고 한다.

    이후 중국은 대만을 국제사회에서 철저히 고립시키는 공작을 실시한다. 명분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받아들여야만 공식 수교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대만은 유엔과 산하기구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국제기구에서 쫓겨났다.

    대만이 국제사회에서 중국에게 밀려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닉슨 행정부의 ‘핑퐁 외교’였다. 닉슨 대통령은 1969년 1월 취임식에서 중국과의 수교 가능성을 언급했고, 같은 해 7월 미국인의 중국 관광을 허용했다. 12월에는 중국과의 무역 규제를 완화했다. 1971년 4월에는 그 유명한 ‘핑퐁 외교’가 시작된다. 日나고야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미국 대표단이 일주일 동안 중국을 찾아 여러 도시를 돌면서 교류를 가진 것이다.

    미국은 곧 헨리 키신저 美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중국에 보냈고, 이어 닉슨 美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으며, 이후 제럴드 포드 美대통령 또한 중국을 찾았다. 이렇게 쌓인 美-中 교류는 1978년 12월 16일 지미 카터 美대통령이 중국과의 공식 수교를 공표하면서 결실을 맺었다. 문제는 이를 위해 미국도 ‘하나의 중국’ 정책을 받아들인 것이다.
  • ▲ 1972년 촬영한 대만주둔 美육군 특전단 '그린베레' 대원들 모습. ⓒ駐대만 미군사령부 블로그 캡쳐.
    ▲ 1972년 촬영한 대만주둔 美육군 특전단 '그린베레' 대원들 모습. ⓒ駐대만 미군사령부 블로그 캡쳐.
    美-대만 상호방위조약 폐기된 뒤의 대만

    이후 대만은 미국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것도 아닌 것도 아닌 어정쩡한 국가가 됐다. 사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49년 中공산당이 본토를 점령하고, 1950년 한반도에서 6.25전쟁이 일어난 뒤 대만도 미국의 보호 아래에 있었다. 미국은 1954년 대만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뒤 타이페이에 ‘미군협방대만사령부’와 해군·공군 부대를 배치했다. 주둔 인원은 1만여 명으로 적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은 1979년 1월 중국과 공식 수교를 하면서 ‘美-대만 상호방위조약’을 폐기하고 미군을 철수시켰다.

    미국은 병력을 철수하는 대신 ‘대만 관계법’을 만들어 “대만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의 무기를 살 수 있다”는 수준으로 보호해주기로 한다. 동시에 中공산당이 무력으로 대만을 침공하지 못할 정도의 지원만 해줬다. 즉 中공산당이 대만을 위협하거나 대만 해협에서 실탄 훈련을 할 경우 美태평양 함대 소속 항모 강습단을 보내 무력시위를 하거나 대만과 가까운 괌 지역에 전략 폭격기 등을 배치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런 관계는 역으로 대만이 中공산당에 홀로 맞설 능력도 갖추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물이 됐다. 미국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 첨단무기를 수입하기도 거의 불가능했고 자체 개발하는 것 또한 필요한 자재와 부품을 구하지 못해 불가능했다. 대만을 옥죔으로써 中공산당의 침략 야욕을 억제한다는, 이상한 외교적 주장들 때문이었다.

    대만은 유엔 회원국도 아니고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아닌 중국’으로 취급받게 되면서 전략무기를 다른 나라로부터 구매했다가 덤터기를 쓰고 사기를 당해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여기다 中공산당의 방해 공작도 대만의 군사력 증강을 가로막는 데 한 몫을 했다.  

    F-16 전투기를 도입하지 못해 자체 개발한 ‘경국’급 경전투기나 ‘울산’급 호위함을 구매하지 못해 결국 비싼 값에 프랑스 ‘라파예트’ 급(캉딩 급) 호위함을 구매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런 관행은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들, 한국이나 일본은 F-16은 물론 F-15에다 F-35 스텔스 전투기까지 도입하고 있는데 대만은 구매를 하지 못하는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
  • ▲ 2015년 9월 美워싱턴 D.C.에서 반중 시위를 벌인 대만(포모사) 협회 회원들. ⓒ타이페이 타임스 관련보도-포모사 협회 홈페이지 캡쳐.
    ▲ 2015년 9월 美워싱턴 D.C.에서 반중 시위를 벌인 대만(포모사) 협회 회원들. ⓒ타이페이 타임스 관련보도-포모사 협회 홈페이지 캡쳐.
    오바마 정부까지 이어진 대만 홀대, 대만 국민들 "우린 안 될 꺼야"

    대만을 옥죔으로써 中공산당이 침략할 수 없게 만든다는 미국의 전략은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계속 됐다. 특히 미국에 친중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면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해졌다. 여기다 中공산당의 공작으로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는 대만 국민이 늘어나면서 대만 사회는 갈수록 패기를 잃어갔다.

    외교부가 2016년 12월에 정리해 공개한 ‘2017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에 대한 오바마 美대통령의 서명 관련 대만 국방부 입장 및 주요 언론보도 내용’이라는 자료에 따르면, 오바마 정부 시절까지도 미국은 대만을 중국의 종속 변수처럼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6년 12월 24일 대만 국방부는 美국방수권법안에 대해 “이 법안은 미국의 대만 국방안보 및 양자 군사교류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충분히 드러내고 있는바 국방부는 이에 사의를 표한다”며 “양자는 기존의 기초 아래 지속적으로 협력하고 실질적 교류를 심화하기를 바라며,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촉진하도록 함께 노력할 것”이라는, 지극히 평면적인 논평만 내놨다.

    이에 대만 언론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한 ‘2017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에는 미국과 대만 간의 고위급 군사 교류를 위한 조항에 포함돼 있다”고 좋아하면서 “美의회도 대만과 미국의 안보 관계를 강력히 지지하고 있으며 ‘대만 관계법’에 따라 대만에 무기를 정기적으로 판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환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대만 군사전문가들은 오바마 美대통령이 서명한 ‘2017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에 대해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면서 “핵심기술 이전과 같은 부분에서 실질적인 발전이 있느냐”고 반문하며 미국이 실질적으로 대만의 안보 역량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 ▲ 2018년 3월 1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어느 대통령도 손 대지 않았던 '대만 여행법'에 서명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8년 3월 1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어느 대통령도 손 대지 않았던 '대만 여행법'에 서명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만 여행법’에 서명한 트럼프 ‘하나의 중국’ 뒤흔드나

    당시 대만 언론들은 “이번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이 그나마 이 정도 되는 법안에 서명이라도 해줄지 모르겠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우였다. 트럼프 美대통령은 집권 1년 만에 ‘화끈한 조치’를 내놨다. 2018년 3월 ‘대만 여행법’에 서명, 美정부와 미군 고위 관계자가 공식적으로 대만을 방문할 수 있게 하고, 대만 정부 관계자 또한 별다른 제약 없이 美정부의 초청을 받아 방미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는 헨리 키신저가 1972년 중국에 가서 ‘하나의 중국’ 정책을 유지하기로 합의한 ‘상하이 코뮤니케’에 어긋나는 것이어서 中공산당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항의에 움찔할 트럼프 정부는 아니었다. 오히려 “중국은 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 않느냐”고 비판하면서 중국산 수입품 가운데 1,300여 가지 품목에 25%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中공산당 또한 10여 가지, 100여 가지 품목의 미국산 제품에 같은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지만 트럼프 정부는 지지 않는 모습이다. 이런 논란 와중에 ‘대만 여행법’ 갈등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사실 中공산당에게는 ‘대만 여행법’ 자체가 무서운 것은 아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미국이 다시 대만에 주둔하고, 대만군을 對중국 첨병으로 육성하는 것이 두려운 일이다. 中공산당이 우려하는 징후는 2017년 초 트럼프 정부가 들어설 때부터 조금씩 보이고 있다.

    美의회에서 대만에 첨단무기 수출을 허용하라는 내용의 법안이 여전히 발의되고 있고, 트럼프 정부 또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언질을 내놓기도 했다.

    2017년 초에는 트럼프 美대통령과 호흡이 잘 맞는다는 존 볼튼 前유엔 주재 대사가 美‘월스트리트 저널’에다가 “하나의 중국은 시대에 뒤떨어진 정책이므로 폐기하고, 오키나와의 미군 주둔 거부, 필리핀과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대만에 동아시아 지역 미군을 주둔시키자”는 기고문을 내기도 했다. 중국의 압력을 받는 대만에 미군을 주둔시키고 상호방위조약을 부활시키면 “미군 철수”를 외치는 일본, 한국 등의 미군을 여기에 주둔시킬 수 있는 것은 물론 남중국해와 한반도 일대에 뻗힌 중국의 패권전략을 한 번에 뒤흔들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오는 9일(현지시간)부터 美백악관 NSC 보좌관으로 일할 존 볼튼 前유엔 대사가 2017년 초의 주장을 그대로 견지하지는 않겠지만, 트럼프 美대통령과 이런 생각을 공유하고 있을 가능성은 적지 않다.

    일본이나 한국 수준은 아니어도 세계적으로는 상당한 기술력과 생산시설을 가진 대만이 미국으로부터 첨단무기를 수입하고 관련 기술을 전수받는다면 中인민해방군 전력 가운데 최소한 30% 이상이 대만 해협에 묶이게 된다. 中공산당이 난관을 타개한답시고 대만을 향해 핵무기라도 사용할 경우 만약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면 중국 또한 핵공격을 받게 될 것이다.
  • ▲ 2006년 6월 필리핀 근해에서 실시한 합동훈련 '비질런트 쉴드' 당시 3개 항모강습단이 흩어지는 모습. ⓒ위키피디아 공개사진-美해군.
    ▲ 2006년 6월 필리핀 근해에서 실시한 합동훈련 '비질런트 쉴드' 당시 3개 항모강습단이 흩어지는 모습. ⓒ위키피디아 공개사진-美해군.
    일주일 만에 함락될 대만이 中공산당에 대항하게 만드는 힘

    현재 대만 군사력은 동남아시아에서는 대단히 강력한 편이다. 30만 명의 병력에 160만 명이 넘는 예비군, 2,000여 대의 전차, 4,350대의 장갑차 및 병력 수송차, 1,100문의 견인포, 480대의 자주포, 다련장 로켓 발사기(MLRS) 72대, 320대의 전투기, 6대의 조기경보통제기, 20척의 구축함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이 정도면 동남아 지역을 비롯해 전 세계 군사력 순위에서도 하위권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이다.

    세계 최대 병력을 보유한 中인민해방군은 연간 국방예산만 해도 2018년 기준 189조 원에 달한다. 대만을 겨누고 있는 중거리 탄도미사일과 공군 전력, 해군 전력이 한국군 전체 병력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中해군이 창설한 해병대 병력 또한 2만 명을 웃돈다.

    때문에 미군이 철수한 뒤 39년 동안 세계 군사전문가들은 물론 대만 국민들마저도 “중국이 쳐들어오면 일주일 또는 보름 내에 점령 당한다”고 생각했다. 실제 2006년, 대만 국방부가 공개한 워 게임 결과에서도, 中인민해방군이 대만을 침략하면 전쟁 개시 8일 만에 대만 공군과 해군을 모두 제거하고 대만에 상륙하고, 18일 뒤 완전 점령한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中인민해방군의 대만 점령이 보다 힘들 것이라는 주장은 오히려 中공산당 쪽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도 대만 구석구석을 완벽히 점령하고 잔존 세력을 소탕한다는 전제에 따른 것으로 기간은 한 달 남짓이다.

    나름대로 막강한 전력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은 ‘국가가 아닌 국가’인 대만을 도울 동맹국이 없고, 미국도 중국과 핵전쟁을 감수하면서까지 대만을 지키지는 않을 것이라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에서는 이 전제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만약 트럼프 정부가 대만을 중국 제압용 전진 기지로 삼을 경우 中공산당은 영원히 대만 점령을 못하게 될 것이다. 만약 미군이 대만에 주둔할 경우 어떤 전력을 배치하고 어떤 대응전략을 만들지는 모르지만, 유사시 2개 이상의 항모강습단과 스텔스 폭격기, 핵추진 잠수함 등을 배치할 것은 당연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강력한 동맹국의 유무에 따른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