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end Special]文정부의 김정은 챙기기, 트럼프 입장에서 보면 ‘울화통’
  • ▲ 주한 美대사로 내정된 이후 낙마했다는 보도가 나온 빅터 차 美조지타운大 교수.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한 美대사로 내정된 이후 낙마했다는 보도가 나온 빅터 차 美조지타운大 교수.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 1월 30일(현지시간) 美‘워싱턴 포스트’는 “차기 주한 美대사로 내정돼 있던 ‘빅터 차’ 조지타운大 교수가 낙마했다”고 보도했다. 이튿날 빅터 차 교수는 자신의 의견을 담은 기고문을 ‘워싱턴 포스트’에 실었다.

    이후 지금까지도 한국과 미국에서는 ‘빅터 차’ 교수의 낙마를 두고 여러 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다. ‘빅터 차’ 교수의 낙마 소식이 알려진 직후에는 美‘워싱턴 포스트’의 보도를 근거로 “트럼프 정부의 ‘코피 전략’에 반대 의견을 펴고, 한국에 대한 통상압박에도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지난 1일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이 “미국에 있는 소식통 이야기를 들으니 트럼프 정부의 군사전략은 ‘빅터 차’의 낙마 이유가 아니라고 하더라”고 밝히고, 美국무부가 “그는 애초 차기 주한 美대사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상황은 갈수록 미궁에 빠져들고 있다.

    진실게임: 美WP → 韓외교부 → 美국무부 → 美백악관 → 韓정치권

    ‘빅터 차’ 교수는 당사자이기는 하나 자신이 왜 주한 美대사 후보에서 탈락했는지 알 수 없는 입장이다. 대사 임명은 전적으로 美백악관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美‘워싱턴 포스트’의 보도 이후 한국 외교부는 지난 1일 정례 브리핑에서 많은 질문을 받았다. ‘빅터 차’ 교수의 낙마에 대해 미국 측으로부터 통보를 받기는 했느냐는 것이었다. 외교부는 “워싱턴 정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보고가 있었다”면서 “아무튼 주한 美대사 내정과 관련해 미국 측과 비공식적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많이 오고 갔다”고만 밝혔다.

    외교부는 ‘빅터 차’ 교수 낙마를 전후로 조윤제 주미 대사가 어떤 활동을 했고, 본국에 어떤 보고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밝히지 않고 그저 “충분히 맡은 역할을 했다”고만 답했다.

  • ▲ 지난 1일 헤더 노어트 美국무부 대변인이
    ▲ 지난 1일 헤더 노어트 美국무부 대변인이 "빅터 차 교수는 주한 美대사에 내정된 적이 없으며, 미국의 대북전략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하는 모습. ⓒ美국무부 정례브리핑 영상캡쳐.
    한편 美워싱턴 D.C.에서는 美정부가 ‘빅터 차’ 교수의 낙마로 혼란스러워진 서울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 美국무부는 지난 1일 정례 브리핑에서 ‘빅터 차’ 교수의 낙마에 대한 질문에 “그는 애초부터 차기 주한 美대사 후보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美국무부는 “그가 차기 주한 美대사로 내정됐다고 기정사실화한 것은 언론들이 믿고 싶은 것을 사실인양 너무 앞서나가서 보도한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2017년 하반기부터 美주요 언론을 시작으로 한국 언론들이 기정사실로 여겼고, 2017년 12월에는 청와대가 ‘빅터 차’의 주한 美대사 내정에 대해 ‘아그레망’을 했다는 사실이 한국에서 알려졌음에도 사실을 부인한 것이다.

    같은 날 美백악관은 ‘빅터 차’ 교수의 낙마 문제보다는 언론들이 지적한 ‘코피 전략’을 문제 삼았다. 英‘텔레그라프’가 2017년 12월 보도한 이래 한국과 미국 언론에서 계속 언급됐던 ‘코피 전략’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으며, 미국은 아직 북한에 대한 군사적 조치를 할 단계로 보고 있지 않다는 설명이었다.

    2일 한국에서는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이 “미국 소식통에게 들으니 ‘빅터 차’ 교수가 차기 주한 美대사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 때부터 ‘아마 어려울 것’이라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며 “한국과 미국 언론들이 지적한 ‘코피 전략’ 반대가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에 낙마했을 것”이라고 말해 주목을 끌었다.

    박 의원의 발언 이후 한국 언론들 또한 차 교수의 지인 등 미국 현지 소식통들을 인용해 “빅터 차 교수의 낙마는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전략에 반대했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한다”고 보도하기 시작했다.

    ‘빅터 차’ 교수가 주한 美대사로 내정되었다가 낙마했는지, 아니면 아예 내정조차 안 됐는지, 트럼프 정부 내에서 강경파와 온건파 간의 갈등 때문에 내정이 틀어진 것인지 아직은 확실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해진 것은 트럼프 정부가 대북전략을 선택함에 있어 ‘군사적 수단’을 실제 사용할 가능성이 예전 정부에 비해 훨씬 높다는 점이다.

  • ▲ 지난 1월 30일(현지시간) 美의회에서 연두교서를 하는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1월 30일(현지시간) 美의회에서 연두교서를 하는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남북미 관계’

    한국 사회에서는 ‘빅터 차’ 교수의 낙마 소식 이후 트럼프 정부가 ‘코피 전략’을 실제 실행할 것인가에 관심이 쏠려 있다. 한국 언론 대부분이 “트럼프 정부가 ‘코피 전략’을 실행할 경우 남북한 간의 전면전이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빅터 차’ 교수의 주한 美대사 내정설과 낙마설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한국과 미국, 북한 간의 미묘한 관계 변화다.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정부 간의 갈등 요소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때는 김정은의 신년사와 이후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부터다. 그 이전까지는 한미 양국 간의 대북 전략에서 ‘갈등’이라고 부를 만한 요소가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2018년 들어 남북 간 대화가 이어지고, 한국 정부가 미국에게 여러 가지를 요구하면서 갈등은 서서히 표면으로 나타나고 있다. 처음은 연례 한미연합훈련의 연기였고, 그 다음은 마식령 스키장으로 가는 전세기에 대한 美정부 대북제재 예외조항 인정, 남북협력기금을 사용한 북한 선수단 지원 등이다.

    트럼프 정부는 한국 정부의 요청은 모두 들어주고 있지만,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북한에 대한 압박은 그 강도를 더해가는 모양새다. 지난 30일(현지시간) 연두교서에 故오토 웜비어 씨 가족들과 탈북자 지성호 씨를 초청해 이들의 사연을 소개한 것, 2일(현지시간)에는 탈북자 여러 명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대북전략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기로 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더욱 강한 조치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한국산 태양광 장비와 세탁기에 고율의 반덤핑 관세를 매기기로 한 데 이어 지난 1월 31일에는 한국산 기계 부품에도 최대 45%의 관세를 적용하기로 했다. 이 같은 조치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트럼프 정부의 이런 조치가 지나치고 야속하게 보이지만, 반대로 미국 입장에서 보면 “한국은 이제 동맹국이기를 꺼리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美본토를 향해 핵공격을 하겠다고 줄기차게 협박하는 북한을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시키기 위해 美전략자산의 한반도 배치와 경유에 반발하는가 하면 미국의 독자 제재에서 ‘예외’를 요구하는 모습을 보면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한국 속담이 생각나지 않을까.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점도 있다. 美일부 언론은 ‘빅터 차’ 교수가 낙마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차 교수가 한국에 아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한국인 특유의 혈연·지연 관계 때문에 그 또한 미국의 국익을 충실히 대변하지 못할 수 있다는 주장이 美백악관 내부에서 나왔다”고 보도했다.

    혹시 그런 주장을 한 사람들은 문재인 정부가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세워 김정은 정권에게 ‘아낌 없이 주려는 모습’을 그 근거로 내세우지는 않았을까.

    문재인 정부가 ‘빅터 차’ 교수 낙마 논란을 세심하게 분석한 뒤 현재의 대북정책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차기 주한 美대사는 한국 사회의 예상을 넘어서는 대북 강경론자가 올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