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랭도 왕진진 사기행각에 동조? "장자연 미공개편지 폭로" 예고한 사연

낸시랭은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낸시랭, 피해자에게 '왕진진 실체' 듣고도 혼인 강행..대체 왜?왕진진, 장자연 친필편지 조작에 이어 가짜도자기로 억대 사기

조광형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7.12.30 14:15:56



현대판 '봉이 김선달'로 치부하기엔 (상대적으로)피해 액수가 크지 않고, 의로운 요소가 전무하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인구가 이 사람의 세치 혓바닥에 놀아난 적이 있다는 점에선 가히 '김선달급 사기꾼'이라 불릴만 하다. '왕진진' 혹은 '왕첸첸'이라는 예명으로 불리고 있는 기인 전준주(37)에 대한 얘기다.

'전준주'라는 이름이 세간에 널리 알려진 건, 2011년 3월부터다. 당시 SBS는 8시뉴스를 통해 "배우 장자연이 자살 직전에 자신의 심경을 적은 편지 50여통을 단독으로 입수했다"며 "이 편지에서 장자연은 31명을 100번 넘게 접대했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SBS는 "이 편지를 장자연이 직접 쓴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공인 감정기관에 의뢰, 장자연의 필적이 맞다는 결과를 얻었다"며 국제법과학감정연구소 관계자의 인터뷰 영상까지 내보냈다.

당시 SBS 측에 '왕첸첸'이라는 예명으로 장자연의 친필편지를 제보한 사람은 전준주였다. 그는 1995년 장자연을 처음 만났고, 자신이 투옥되자 장자연이 12차례나 면회를 왔었다는 주장까지 늘어놨다. 그러나 경찰 조사 결과 장자연이 전준주를 면회했다는 기록은 없었다.

전준주와 장자연의 연결고리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1980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전준주는 광주시로 이사해 고등학교를 잠시 다니다 자퇴를 하고 부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다 특수강도강간 혐의로 체포됐다. 당시 4년형을 선고 받고 2003년 출소한 그는 다시 특수강도강간 혐의로 붙잡혀 징역 8년을 선고 받았다. 이후 교도관을 폭행해 1년의 형이 추가된 전준주는 2013년에야 감옥 밖으로 나올수 있었다. 자라온 환경 자체가 장자연과 너무 달랐다. 상식적으로 친분을 맺을 수 있는 처지가 못됐다.

수감 중 3차례 이상 정신과 치료를 받은 사실도 전준주의 신뢰도를 하락시키는 요인이 됐다. 당시 진단서를 보면 환청이나 피해망상 증상이 보인다는 소견이 적혀 있었다. 흥분조절을 제대로 못하고 우울증과 적응장애 증상 때문에 약물 치료를 병행했다는 기록도 있었다. 수감자들의 증언도 한결 같았다. '과대망상환자'. 그는 동료들에게 자신이 국내 최대 카지노 재벌회장의 혼외 아들이고 마카오에서 태어났다는 얘기를 곧잘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경찰 조사에 따르면 전준주는 토종 한국인이었다. 게다가 비행기를 타 본 것도 2014년 제주도를 다녀왔을 때가 전부였다. 모 카지노 재벌회장과 성은 똑같았지만 아무런 인척 관계도 아니었다.

방송사에 제보한 편지는 그가 언론보도를 보고 상상력을 발휘해 쓴 위조 편지였다. 상대적으로 감옥 안에서 시간적 여유가 많았던 그는 신문지면에 공개된 장자연 문건을 보고 필적을 흉내냈다. 원래부터 연예계 사건사고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장자연과 관련된 모든 신문을 모아 정독을 하고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장자연이 '설화'라는 이름으로 자신에게 편지를 썼다는 설정 하에 230여 페이지에 달하는 편지를 썼다.

놀랍게도 전준주가 쓴 편지의 '완성도'는 대단히 뛰어났다. 공인 감정기관 관계자조차 '진짜'라고 믿을 정도로 고인의 필적과 흡사했다. 장자연과 일면식도 없었고 심지어 통화조차 해 본 적이 없는 그였지만, 정말 장자연과 오래 전부터 만났던 사이처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편지 내용도 사람들을 미혹시키기에 충분했다.




만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나서지 않았다면 모두가 속을 수도 있었다. 다행히 경찰의 의뢰를 받고 감정에 들어간 국과수는 대번에 문건 속 필체가 고인의 친필과 다르다는 점을 발견해냈다. 국과수는 "고인은 '많이'를 정확히 기재해왔지만 이 편지에선 '마니'라는 부사가 계속 등장하고, 'ㅇ'이나 'ㅃ'을 쓰는 방식도 고인의 스타일과 편지 속 글자가 많이 다르다는 점이 확인된다"며 "이 편지는 고인의 필체를 흉내낸 가짜"라고 단정지었다.

세월이 흘러흘러 전준주라는 이름이 다시 등장했다. 이번엔 낸시랭의 남편이이었다. 지난 27일 낸시랭은 자신이 왕진진이라는 남성과 혼인신고를 한 사실을 밝히며 자신들을 축복해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해당 인스타그램에 소개된 왕진진의 본명은 전준주, 직함은 위한콜렉션 회장이었다. 의문점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됐다. 왕진진을 중국식으로 발음하면 왕첸첸. 6년 전 장자연 친필편지 사건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 게다가 본명마저 똑같았다. 대부분의 기사에선 본명이 기재되지 않았지만 당시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들은 왕첸첸의 본명이 전준주라는 것쯤은 다들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게 우연의 일치일까? 왕진진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뒤져보니 71년생 마카오 출생으로 적혀 있었다. 나이는 달랐지만 마카오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오래 전 전국민을 기망했던 전준주도 자신을 마카오 태생이자 재벌가 자제라고 떠벌리고 다녔다.

2013년 무렵 왕첸첸이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왕진진'이라는 이름의 트위터 계정과, 왕진진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양심은 천만인의 증인"이라는 동일한 문구가 적혀 있는 점도 이채로웠다. 해당 계정에서 아이디 왕진진은 "자연이는 아직도 제 마음 속에 살아 있다. 자연이와의 약속은 꼭 지킬 것이다"라는 다짐과 더불어 광주지법 정한근 판사에게 보내는 최후 변론문을 올리며 자신이 바로 고인의 편지를 위조했던 '전준주'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같은 '정황 증거'는 피해자들의 증언으로 인해 모두 사실로 확인됐다. 왕진진과 친하게 지냈거나 사기 피해를 입은 이들은 한결같이 그가 500억원을 지닌 자산가요, P모 그룹 회장의 여섯 번째 아내의 아들로 자신을 소개해왔다고 주장했다. 그가 회장을 맡고 있는 위한컬렉션도 실체가 없었다. 이웃집 주민들의 전언으로 그에게 사실혼 관계의 부인이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랬던 그가 낸시랭과 혼인신고를 했다. 법적으로 낸시랭의 남편이 된 그는 자신에게 사실혼 관계의 여성이 있다는 주장은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만일 있다면 자신 앞에 당당히 나와보라는 말까지 했다. 놀라운 사실은 이같은 속사정을 낸시랭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낸시랭은 피해자 측으로부터 왕진진의 실체를 전해들었지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그를 신뢰하고 있다는 방증일까? 그녀는 모두가 볼 수 있는 공개된 SNS에 떡하니 혼인인증서를 올렸다. 스스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만 것이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이처럼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만든 걸까?

지금까지 전준주의 사기 행각을 살펴보면, 그는 항상 자신이 남들과 달라 보일 수 있는 '뒷배경'을 만드는 데 힘써왔다. 가짜 친필편지를 만들어 자신을 장자연의 절친한 지인으로 둔갑시킨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 점들을 강조하며 자신만의 '어필 포인트'로 삼았다. 성이 동일한 점에 착안, 모 회장의 아들 행세를 해온 것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로부터 값비싼 도자기를 받았는데 이것을 싸게 처분하려 한다며 투자자들을 끌어 모았다. 명품과 거리가 먼 이 도자기들도 특정인을 감언이설로 속여 가져온 것들이었다.

지금까지 총 세 건의 사기 혐의가 적발돼 경찰 조사를 받은 그는 이 중 한 사건이 재판에 회부돼 내년 1월 세 번째 공판을 앞두고 있다. 나머지 혐의들도 대부분 기소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전준주가 낸시랭에게 접근한 이유도 뻔하다. 또 하나의 자신만의 '어필 포인트'를 만들려는 것이다. 하지만 낸시랭은 왕진진의 실체를 알고서도 그와의 혼인을 허락했다. 많은 이들은 낸시랭이 불쌍하다고 말하지만 적어도 어떤 이에겐, 그녀 또한 가해자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낸시랭-전준주 부부가 대대적인 기자회견을 예고하고 나섰다.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장자연의 미공개 편지를 공개할 예정이란다. 실제로 전준주는 2009년 부산구치소에서 써내려간 위조 편지를 수차례 법원이나 정치권에 전달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2011년 SBS가 공개한 '위조 편지'가 전부가 아니라는 얘기다. 당시 전준주의 가짜 편지를 법원은 일축했지만 2년 뒤 SBS 기자가 이 편지를 공개하면서 전대미문의 사기 사건으로 비화됐다. 전준주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아직도 그는 장자연의 친필편지가 사실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자꾸만 의혹을 재생산해 사람들의 시선을 흐트러뜨리겠다는 의도다. 과연 내주 이들이 어떤 근거와 논리를 내세울지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 출처 = 낸시랭 인스타그램 / 뉴시스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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