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 아랑곳없이 당무 전횡 의지 피력… 비주류 탓도 여전
  • ▲ 16일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의 모습. 지명직인 추미애 최고위원이 문재인 대표의 왼편 두 번째 자리까지 다가왔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16일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의 모습. 지명직인 추미애 최고위원이 문재인 대표의 왼편 두 번째 자리까지 다가왔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안철수 의원의 탈당에 따른 충격으로 14일 최고위원회의가 열리지 못하는 등 당무정지 상태에 놓여 있었던 새정치민주연합은 16일 1박2일 간의 '양산 구상'을 마치고 상경한 문재인 대표가 최고위를 주재함에 따라 표면상으로는 정상을 되찾았다.

    안철수 의원 탈당에 따른 분당(分黨) 사태 촉발 이후 처음으로 문재인 대표가 공개 석상에서 모두발언을 하는 자리라 수많은 방송·통신·신문·인터넷매체 기자들이 몰려 국회 당대표회의실은 앉을 자리조차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최고위 석상은 정작 허전하고 무게감이 현저히 떨어져 보였다. 문재인 대표의 양옆에는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에 의해 선출된 원내대표도, 지난 2·8 전당대회 최고위원 경선에서 최다득표로 선출된 수석최고위원도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았다.

    이종걸 원내대표의 계속되는 최고위 출석 거부와 주승용 수석최고위원·오영식 최고위원의 사퇴에 따라, 남은 최고위원들은 '자리 땡겨앉기'를 거듭했다. 지명직인 추미애 최고위원의 상대적 지위는 점점 격상돼 마침내 문재인 대표로부터 두 자리 떨어진 곳까지 올라왔다.

    취재진 중 한 명은 이 모습을 보며 "최고위원들의 의자가 하나둘씩 없어지는 것을 보니 영화 '배틀 로얄'이 떠오른다"며 "다음에는 누가 자리를 뺄까"라고 혀를 찼다.

    당이 허물어지고 있는데도 문재인 대표는 좋게 표현해 '의연'했다.

    문재인 대표는 이날 모두발언을 통해 박근혜정부를 향한 격렬한 비난을 내뱉었다. "박근혜정권을 신독재로 규정한다"며 포문을 연 문재인 대표는 "그냥 보수정권이 아니라 수구극우정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1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근혜정권을 격렬하게 비난하면서 당내 비주류를 향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1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근혜정권을 격렬하게 비난하면서 당내 비주류를 향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누가 봐도 분당 국면에서 시선을 '외부의 적'에게로 돌리기 위한 얕은 책략이라는 게 뻔히 들여다보여 오히려 안쓰러웠다. 당대표가 무엇이기에, 대권욕이 무엇이기에 사람이 저렇게까지 망가지나 싶어 애처로웠다.

    박근혜정부를 '신독재'로 규정한 문재인 대표는 정작 자기 자신은 당무에 있어서 '신독재'를 이어가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내비쳤다. 안철수 의원의 탈당에 따라 1박2일 간 경남 양산에 머물며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졌으리라 생각했던 것이 한심스러웠다.

    문재인 대표는 "혁신을 공천권 다툼이나 당내 권력투쟁으로 전락시키려는 시도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며, 공천권은 자기 자신에게 있고 당내 권력 또한 온전히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결코 '다툼'이나 '투쟁'의 대상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어 "진행 중인 평가위를 비롯한 중단 없는 혁신을 해나가겠다"며 "어떠한 기득권적 구조에도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겠다"고 고집해, 안철수 의원의 탈당에도 불구하고 당내 비주류 의원들을 이번 공천 과정에서 일소하겠다는 뜻을 꺾지 않았다.

    모순도 엿보였다. 문재인 대표는 "혁신을 통해 공천권을 국민들에게 돌려드리겠다"며 "모든 공천에서 아래로부터 상향식 공천 혁명을 이룰 것이기 때문에, 당대표의 기득권이나 계파패권적 공천은 발붙일 곳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선출직공직자평가위를 통해 현역 국회의원 중 20%를 일괄 탈락시키는 것 자체가 '인위적 물갈이'이고 '아래로부터 공천'과는 거리가 먼데, 방금 전에 "평가위를 중단 없이 해나가겠다"고 하고 바로 이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며, 자신이 읽고 있는 원고에 적혀 있는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스러워졌다.

  • ▲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최고위원이 16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손을 이마에 짚고 깊이 근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최고위원이 16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손을 이마에 짚고 깊이 근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이렇듯 '신독재' 의지를 천명한 문재인 대표는 그러면서도 "더 이상 당 내부의 갈등으로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며 "우리 당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단합을 호소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더 이상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말자"며 "12척의 배가 남아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국민과 함께 승리하겠다"고 다짐했다.

    누가 당 내부의 갈등을 야기한 것인지, 누가 단합을 해쳤는지,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누구인지 묻고 싶었다. 12척의 배 밖에 남지 않았다면, 수많은 배들을 다 부수고 불태우고 가라앉히고 12척만 남겨놓는 '원균 리더십'을 보여준 사람은 누구인지 묻고 싶었다.

    문재인 대표의 모두발언이 끝난 뒤, 전병헌 최고위원과 유승희 최고위원이 발언을 이어갔다.

    전병헌 최고위원은 "똘똘 뭉쳐도 시원찮을 판에 남탓만 하는 정치는 잠시라도 중단해야 할 것"이라며 "이것은 사실상 '엑스맨'의 역할과도 다를 것이 없다"고 꾸짖었다.

    유승희 최고위원은 "연이어 떠나는데 대한 자성도 없이 대통합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총선에 임하는 것은 당원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일이고 패배의 길"이라며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어떠한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고, 살신성인의 자세로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 새정치민주연합 유승희 최고위원이 16일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자성 없는 모습은 안 된다며, 혁신도 투명하게 민주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유승희 최고위원이 16일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자성 없는 모습은 안 된다며, 혁신도 투명하게 민주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아울러 "통합을 촉진하는 혁신은 투명하고 민주적인 혁신이어야 한다"며 "아무리 좋은 혁신이라도 투명성과 민주성을 결여하면 분열의 촉진제로 작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재인 대표는 앞서 "박근혜정권에 맞서싸워야 할 엄중한 상황에서 할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어 부끄럽고 송구스럽다"면서도 "혁신을 무력화하고 당을 흔들어서 결과적으로 정권교체를 방해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이 모든 사태를 당내 비판 세력인 비주류의 탓으로 돌렸다.

    문재인 대표의 바로 오른편에 앉아 모두발언을 했던 전병헌 최고위원에 따르면 '남탓만 하는 정치'는 누가 하고 있는 것인가. 과연 '엑스맨'은 누구를 가리킨 것인가.

    선출직공직자평가위가 밀실에서 평가해 밀봉된 자료를 통해 20%의 현역 국회의원을 학살하고, 원자료는 파기해 검증이나 재심조차 불가능하게 되는, 불투명과 비민주의 극치인 평가 작업을 중단 없이 진행하겠다는 문재인 대표.

    전병헌 최고위원의 그 다시 오른편에 앉아 '혁신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강조하며 자성을 촉구한 유승희 최고위원의 말은 문재인 대표에게 들렸을까.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혹시 문재인 대표가 오른쪽 귀에 귀마개를 하고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