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과 한중협력 사이의 균형… 스스로는 마음 속으로 지키고 있나
  •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12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에서 열린 현장최고위원회의에서 전승절 참석 여부와 관련된 정부의 대응을 질타하고, 한미동맹과 한중협력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라고 훈수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12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에서 열린 현장최고위원회의에서 전승절 참석 여부와 관련된 정부의 대응을 질타하고, 한미동맹과 한중협력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라고 훈수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중화인민공화국이 내달 3일 베이징의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항일전쟁 승리 및 세계 반파시즘 전쟁(제2차 세계대전)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을 여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의 참석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로서는 참석의 실익이 없다고 보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서방 세계 지도자들이 대거 불참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참석 의사를 밝힌 나라는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 등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원국들 정도다.

    일각에서는 때마침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재개관식이 열리는 것을 핑계 삼아 참석하라고 하지만, 이 역시 명분이 될 수 없는 것은 매한가지라는 지적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닌, 중화민국과 긴밀한 제휴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중화민국도 비록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Reconnaissance Diplomatique)하지 않은 것은 세계 열강들과 동일하나, 2차대전 기간 내내 전시수도인 충칭(重慶)에 임정을 불러들여 다방면에서 적극 지원했다. 만일 임시정부가 중화민국이 아닌, 후일 중화인민공화국을 창건하게 되는 중국공산당과 더 긴밀한 관계였다면 근거지를 충칭이 아닌 옌안(延安)으로 옮기지 않았겠는가.

    임시정부의 지도자와 중국의 정치 지도자와 만난 사례도 1933년 중화민국의 장제스(蔣介石) 총통과 임시정부의 김구가 만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같은 기간 중국공산당을 이끈 취추바이(瞿秋白)나 리리싼(李立三), 마오쩌둥(毛澤東)과 임시정부 사이에는 만남은 고사하고, 교류조차 전혀 없었다.

    이른바 전승절 행사와 열병식 자체가 전혀 국제적으로, 역사적으로 명분이 없다는 것도 큰 문제다.

    무엇보다 중화인민공화국은 2차대전의 승전국이 아니다. 독일·일본 등 이른바 추축국과 개전해 맞서 싸운 것은 중화민국이다. 전후 처리를 논의하기 위해 1943년 카이로에서 연합국 정상 회담이 열렸을 때도 중화민국 장제스 총통이 참석해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과 대일 강화 문제를 놓고 머리를 맞댔다.

    대일전(對日戰)을 국제법적으로 마무리지은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은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둘 다 체약 당사자가 아닌데, 이는 전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대륙을 석권하면서 홍콩의 안보 문제가 발생하자 영국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영국과 미국 사이에 균열이 생겨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는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모두 초청받지 못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듬해인 1952년 대륙을 석권한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닌, 대만으로 정부를 옮긴(國府遷臺) 중화민국과 일화평화조약(日華平和條約)을 체결했다. 패전국인 일본 입장에서도 자기를 이긴 승전국이 누구라고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내달 열릴 중화인민공화국의 전승절 행사 및 열병식에 참석하는 것은 누가 봐도 기이한 행사에 들러리를 서게 되는 셈이다.

    누가 봐도 가지 말아야 할 행사 참석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보니, 일본 교도통신에서 미국이 외교적 경로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전승절 불참을 권유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우리나라와 미국이 모두 이를 부인하는 등 국제적인 '진실 공방'으로 번지기에 이르렀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새정치민주연합은 박근혜 대통령의 전승전 및 열병식 참석 여부에 침묵을 지키고 있어 의아함을 느끼게 한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12일 파주 임진각에서 열린 현장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 여부를 두고 정부가 갈팡질팡하고 있다"며 "외교 전략의 부재"라고 질타했다.

    이어 "우리의 중심이 확고해야 모두를 설득할 수 있다"며 "한미동맹과 한중협력을 균형적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훈수했다.

    '그런 악수(惡手)를 둬서는 안 된다. 좀 잘 둬라. 실리와 세력을 모두 챙겨라'라고 훈수하는 것은, 말은 쉽지만 누구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되레 대국자들과 이를 둘러싼 훈수꾼들 사이의 감정을 악화시켜 잘 돌아가던 바둑판을 엎기에 적절할 뿐이다.

    한미동맹과 한중협력을 균형적으로 사고해서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문재인 대표는 이날 발언에서 방향까지 제시하지는 않았다. '유능한 안보 정당'을 이끄는 제1야당의 대표로서 말을 하다가 그친 느낌이다.

    고차 방정식이라고 해서 아예 풀려고 하지 않아서는 당장 그 문제를 틀리는 것은 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대학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어려운 외교 과제라고 해서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질타와 뻔한 훈수로 일관하는 것은 후년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집권을 노리는 수권 정당의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새정치연합은 과거 우리나라가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 가맹할 때 중화인민공화국에 다소 경도된 듯한 모습을 보여 국민들의 우려를 산 바 있다. 한미동맹과 한중협력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기실 '행동 뿐만 아니라 생각에서도 균형'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