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없었다"지만…문재인-홍준표 회동, 겉은 결렬 속은 윈윈
  •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18일 무상급식 담판을 마치고 경남도청 현관 앞에서 헤어지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18일 무상급식 담판을 마치고 경남도청 현관 앞에서 헤어지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벽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나도 마찬가지다."(홍준표 경남도지사)

    18일 경남도청 도지사 집무실에서 열렸던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와 홍준표 경남도지사 간의 '무상급식' 담판이 외견상 결렬됐다.

    문재인 대표와 홍준표 지사는 이날 구름처럼 모인 취재진 앞에서 30분간 공개 설전을 벌였다. 문재인 대표는 "아이들은 어디에 살든 급식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며 "어른들 정치 때문에 경남의 아이들만 급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공박했고, 홍준표 지사는 "무상급식이 중단된 게 아니라, 보편적 무상급식에서 선별적 무상급식으로 전환된 것"이라며 "차상위 계층에 대해서는 국비로 무상급식이 이뤄지고 있다"고 반박했다.

    두 사람은 이날로 예고된 담판을 위해 논리적으로도 철저히 준비한 모습을 보였다. 문재인 대표가 스웨덴·핀란드의 예를 들며 "1930~40년대 그 나라들의 국민소득이 1000달러 이럴 때, 지금 우리보다 훨씬 가난할 때 무상급식을 다 했다"며 "우리 재정 형편이 아이들 밥 못 먹일 정도는 아니다"라고 공격하자, 홍준표 지사는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거론하며 "미국은 무상급식~할인급식~유상급식 3단계 급식 체계로 돼 있고, 일본은 98.3%가 유상급식이며 1.7%만 무상급식"이라며 "담세율 20%에 직접소득세 내는 국민이 65%밖에 안 되는 우리 현실에서는 맞지 않다"고 반격했다.

    신경전도 치열했다. 홍준표 지사가 1930~40년대 스웨덴·핀란드가 보편적 무상급식을 한 것은 소련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공산화를 막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점을 설명하며 "북유럽은 사회주의적 사회보장체제"라고 운을 떼자, 문재인 대표는 손을 내저으며 "또 좌파 이야기 하시려고…"라고 말을 끊으려 했다.

    반대로 문재인 대표가 "의무교육에는 당연히 급식이 따라야 한다"며 무상급식을 의무급식이라 표현하려 하자 이번에는 홍준표 지사가 "그런데 아니, 대표님…"이라고 끼어들려고 했고, 문 대표는 "그런데!"라며 말을 끊는 것을 차단하고 단호하게 발언을 이어가기도 했다.

  •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18일 무상급식 담판을 마친 뒤 취재진들이 둘러싼 가운데 경남도청 현관 앞에서 마지막까지 설전을 이어가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18일 무상급식 담판을 마친 뒤 취재진들이 둘러싼 가운데 경남도청 현관 앞에서 마지막까지 설전을 이어가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문재인 대표가 "해법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실 것이면 나는 일어서서 가겠다"고 자리에서 일어선 뒤에도 홍준표 지사는 도청 현관까지 문 대표를 배웅하며 미처 못다한 논쟁을 이어갔다.

    "지금 가서는 안 되는,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것"이라는 문재인 대표의 경고에, 홍준표 지사는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인지 아닌지는 나중에 가서 판단해보자"고 받아넘겼다. 그러면서 취재진의 질문에는 서로 다투어 "소득이 없었다"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고 상대를 비난했다.

    그렇다면 당사자들의 말대로, 이날 담판은 정말 문재인 대표와 홍준표 지사에게 전혀 소득이 없었을까.

    이날 경남도청에서 이뤄진 담판에는 이례적으로 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발 디딜 틈조차 없이 취재진이 몰려 사방에서 아우성이 들리자 홍준표 지사는 웃으며 "(문재인) 대표가 오시니까…"라고 말문을 열었다.

    문재인 대표도 도청 방문에 앞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무상급식 중단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현장최고위원회의를 경남에서 열었다"며 "(현장최고위 개최가) 결정되자 중앙 언론에서도 경남도의 무상급식 중단을 주요 쟁점으로 보도해 다행"이라고 언급했다.

    도청 앞에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몰려들어 스테인리스 식판을 숟가락으로 깡깡 두드리며 "아이들 밥그릇을 내놓으라"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여론의 주목을 먹고 사는 정치인들에게 거대한 극장(劇場)이 만들어진 셈이다.

  •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18일 경남도청 도지사 집무실에서 무상급식 담판을 하고 있는 가운데, 구름처럼 몰려든 취재진이 이들을 주시하고 있다. ⓒ뉴데일리/사진공동취재단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18일 경남도청 도지사 집무실에서 무상급식 담판을 하고 있는 가운데, 구름처럼 몰려든 취재진이 이들을 주시하고 있다. ⓒ뉴데일리/사진공동취재단

    이날 무상급식 담판이 형식적인 공개모두발언 이후 비공개 회동으로 전환되는 관례를 따르지 않고 30분간 언론 앞에서 공개 설전이 벌어진 것도 '극장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두 사람은 이러한 극장 효과를 한껏 누렸다. 문재인 대표는 "무상급식 이야기는 민감하니까 조금 있다가 하자"며 "내 고향이 거제인데, 거기에 조선해양플랜트 국가산단이 유치된 것이 맞느냐"고 운을 띄웠다.

    홍준표 지사는 "거제 해양플랜트산업으로 (경상남도는) 50년 미래 신성장동력산업을 확보했다"며 "도와줘서 정말 고맙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거제까지 가는 KTX가 경남의 마지막 숙제"라며 "거제가 고향이시니까 (KTX 사업을 곁에 있는) 김경수 (새정치연합 경남도당)위원장이 총대 메주셨으면 좋겠다"고 주거니 받거니 식으로 몰려든 언론 앞에서 덕담을 이어갔다.

    정작 주 의제였던 무상급식 문제는 애초부터 이날 담판을 통해 뚜렷한 해결책이 나올 수 없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당사자들도 이런 점을 모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표는 "무상급식 문제로 가타부타 논쟁하러 온 것은 아니고, 아직도 해법이 남아 있는지 내가 중재라도 할 여지가 있는지 알아보려 왔다"는 태도를 보였고, 홍준표 지사는 "지난해 12월 5일 이미 예산이 확정나서 끝나버렸다"며 "(문재인) 대표가 경남 사람들에게 대안을 가지고 오실 줄 알았다"고 선을 그었다.

    두 사람은 "벽에다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고 상대를 힐난하며 헤어졌지만, 기실 이번 담판을 통해 정치인으로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다 얻었다는 평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대권을 노리는 홍준표 지사는 무상급식 논쟁에 문재인 대표가 손뼉을 마주쳐 주면서 중앙 언론의 조명을 받는 효과를 얻었고, 문재인 대표는 무상급식 문제 해결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는 인상을 줬다"며 "서로 비난하며 헤어졌지만, 헤어진 뒤에는 둘 다 미소지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