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천과 단군 왕조, 그리고 헐버트

    이현표 /뉴데일리 논설위원, 전 워싱턴 문화원장

    1901년 영문월간지가 주목한 춘천

    지난해 7월 문화재청은 춘천 중도에서 고인돌 101기와 집터 917기, 마을 주변의 큰 도랑 흔적,
    비파형 동검과 청동 도끼 등 유적·유물이 발굴됐다고 발표했다.
    춘천지역이 역사적으로 어떤 곳이기에 이런 선사 유물이 무더기로 발견되는 것일까?
    궁금하지만, 국사교과서 등 현재 시중의 우리 역사책들에서는 춘천과 이런 유적·유물과의
    연결고리에 관한 정보를 찾기 힘들다. 
  • ▲ 춘천 중도에서 발굴된 유물 (문화재청 제공)
    ▲ 춘천 중도에서 발굴된 유물 (문화재청 제공)
    그런데 114년 전인 1901년 발간된 영문월간지 <Korea Review>(이하 ‘한국평론’으로 표기)에
     “춘천이 단군왕조시대에 중요한 곳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춘천이 고조선의 중요한 유적지일 것이라는 귀가 솔깃한 기록인데,
    우리는 이런 정보를 제대로 검증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평론>은 헐버트(Homer Hulbert, 1863∼1949)라는 미국인이 1901년 1월 창간하여
     1906년 12월호까지 발간한 영문월간지로 우리 근대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헐버트는 1886년부터 20여년간 우리나라에 교사·선교사로 활약했으며,
    1907년에는 고종의 밀사로 헤이그에서 활약하는 등 대한의 자주와 국권회복을 위해서도
    기여했던 인물이다. 
  • ▲ 호머 헐버트 (필자 소장)
    ▲ 호머 헐버트 (필자 소장)
    특히 그는 <한국평론> 창간호부터 1904년 12월호까지 무려 4년간 우리 역사에 관해서 연재했다. ‘The History of Korea’(한국사)라는 제목으로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집필한 이 연재물은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미흡한 부분도 있지만, 당시는 물론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느 외국인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역작이다. 
    헐버트가 ‘한국사’를 쓸 수 있었던 것은 대한제국 황실을 위시해서 당대 조선의 최고 엘리트들과 두터운 친분을 쌓았고, 능통한 우리말과 한문 실력을 활용하여 많은 자료를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제강점기에 우리 역사가 심하게 왜곡되었던 사실을 감안하면,
    국권을 빼앗기기 전에 영어로 기술된 헐버트의 ‘한국사’는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헐버트는 <한국평론>의 ‘The History of Korea’ 연재를 끝낸 이듬해(1905)에는 같은 제목과 내용으로 2권(제1권: 409쪽, 제2권 374쪽)짜리 단행본(300질 한정판)을 발간했다. 
    춘천과 단군에 관한 헐버트의 기록
    헐버트는 <東史綱要>(동사강요: ‘한국사의 요체’)와 <동국통감>을 참고하여
     ‘한국사’의 고대사 부분을 서술했다고 밝혔다.
    <동국통감>, <동사찬요>, <동사보유>, <동사회강>을 비교분석해서 편찬된 책이라는 <동사강요>는 오늘날 우리 사서(史書) 목록에서 찾기 힘들다.
    또한 그는 저명한 조선의 지식인이 소장한 방대한 우리 문헌, 그리고 중국과 일본 문헌 등도
    참조했다고 한다.
    ‘한국사’의 도입부는 신화로 시작된다.
    하느님의 손자이며, 곰의 아들로 태어나 BC 2333년 조선을 개국하고, 1,908년 동안 다스리다가 산신이 되었다는 믿기지 않는 얘기 말이다.
    그러나 헐버트는 그런 전설보다는 유물·유적을 통해서 한반도에서 반만년 전에 살았던 한국인의 흔적을 확인하고 싶어했다. 
    따라서 그가 “단군왕조의 유적이 숫자는 적지만, 흥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마치 4장의 사진처럼 소개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The History of Korea’, <Korea Review>, 1901년 1월호, 35∼36쪽)
    “1) 강화도 마리산(Mari San) 정상에는 ‘단군의 제단’으로 알려진 돌로 만든 기단 혹은 제단이 있다. 사람들은 4,000년 전에 단군이 이곳을 사용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이곳은 참성단이라고도 불린다. 전등산에는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삼랑성이 있다. 
  • ▲ 강화도의 참성단 (문화재청 제공)
    ▲ 강화도의 참성단 (문화재청 제공)
     2) 서울에서 동쪽으로 50마일(80km) 거리의 춘천이라는 도시는 단군왕조시대에 중요한 곳으로 보인다. 춘천은 우수주(牛首州) 혹은 ‘소머리 고을’이라고 불렸다. 
    희한하게도 그 주변에는 오늘날에도 ‘우두벌(牛頭伐)’ 혹은 ‘소머리 벌판’이라는 곳이 있으며,
    거기에 팽오라는 인물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있다는 사실이 이러한 전통을 확인해주고 있다. 

     3) 황해도 문화현 구월산에 환인, 환웅, 단군을 제사지내는 삼성사가 있다. 

     4) 평안도 강동현에 둘레가 410피트(125m)나 되는 단군 무덤이 있다.” 

    춘천의 단군 유적·유물의 중요성

    헐버트가 기술한 단군왕조 유적들 가운데, 1)과 3)의 강화도와 황해도 구월산에 관한 유적은 이미 우리에게 친숙하다. 또한 4)의 강동현 단군 무덤에 관해서 북한은 1993년 평양시 강동군 대박산 기슭에서 발굴한 두 사람분의 인골이 단군과 그 부인의 것이며, 5,011년 전의 것으로 입증됐다고 나름대로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3)의 춘천이 과연 단군왕조의 중요한 유적지인가는 최근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때문에 2014년 7월 춘천시 중도에서 고인돌을 비롯한 집터, 신석기·청동기 유물 등을 발굴했다는 문화재청의 발표는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 ▲ 춘천 중도에서 발굴된 청동도끼날과 비파형동검 (문화재청 제공)
    ▲ 춘천 중도에서 발굴된 청동도끼날과 비파형동검 (문화재청 제공)
    일제는 우리 선사시대 역사를 왜곡하고 헐뜯기 위해서 수많은 유적을 발굴·약탈·조작하고, 
    서적 등을 폐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서갱유에 버금가는 만행이었다.

    헐버트가 춘천과 단군의 관계를 기술하는데 참조한 <동사강요>도 그중의 하나일까?
    <동사강요>는 안정복의 <동사강목>은 물론이고, 이종휘의 <동사>하고도 다른 책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 일제가 말살하려했던 우리 고대사에 관한 연구가 본격화되고,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또한 사실과 거리가 먼 판타지·드라마들도 등장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춘천의 경우처럼 유적·유물의 연구를 통해서 역사적 진실 여부를 철저히 규명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자기를 낳아준 미국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으며,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도 한국에 묻히고 싶다”던 헐버트는 현재 서울 마포의 양화진외국인묘지에 잠들어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