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인 대표 주장만 경청, 사실과 다른 내용 검증 없이 보도
  • ▲ JTBC 손석희 앵커(왼쪽)와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오른쪽).ⓒ 뉴데일리 DB
    ▲ JTBC 손석희 앵커(왼쪽)와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오른쪽).ⓒ 뉴데일리 DB

    국민적 공황상태를 초래한 세월호 참사는 그 충격만큼이나 많은 오보를 만들어냈다.

    확인되지 않은 추측 혹은 소설 수준의 오보는 물론이고, 사실을 과장하거나 축소한 뉴스도 적지 않았다.

    일부 매체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선정적인 기사와 표현으로 희생자 가족들을 두 번 울리는 심각한 민폐를 끼치기도 했다.

    구조작업이 장기화되면서 이번 사고와 관련된 논점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는 일도 나타나고 있다.

    구조여건이 열악할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희생자가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모든 국민들이 염원하는 기적같은 생환자 구출이고, 다른 하나는 바다 어딘가에 잠자고 있는 가족을 되찾는 일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참사 소식을 다루는 언론 역시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며칠 사이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평소 같으면 듣도 보도 못했을 낯선 [다이빙벨]이란 장비가 진도 현장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실종자들을 찾기 위한 대안의 하나 정도로 소개된 이 장비는 어느틈엔가 실종자 가족을 찾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거나 심지어 [유일한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다이빙벨은 [마지막 구세주]가 아니다.

    다이빙벨 관련 꼭지를 집중적으로 내보내면서 국민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데 성공한 ‘JTBC 뉴스9’의 보도와는 달리, 이 장비는 결코 만능이 아니다.

    방송에서 나온 것과는 달리, 현장의 빠른 유속과 거친 파도에 투입에만 며칠이나 걸리는, 분명히 약점을 갖고 있는 잠수장비다.

    특히 물속에서 20시간동안 구조활동을 벌일 수 있는 [전지전능]한 장비는 더더욱 아니다.
    이미 다이빙벨은 거친 파도에 가로막혀 며칠 째 투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경이 협조만 해 주면 당장이라도 사고현장에 투입해 엄청난 구조성과를 낼 수 있을 것처럼 알려진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더구나 일각의 소문처럼 최첨단 기술도 아니다.
    이 장비를 처음 언론에 공개한 이종인 대표만이 가진 독보적인 장비도 물론 아니다.

    다이빙벨 투입을 위해 필요한 바지선 접안의 어려움, 장비 설치 자체가 다른 잠수사들의 구조활동을 방해하거나 심지어 잠수사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 다이빙벨 투입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 등, 크고 작은 문제점도 많다.

    이종인 대표 역시 최근 자신이 ‘JTBC 뉴스9’에 출연해 손석희 앵커와 나눈 대화내용을 슬그머니 번복했다.

    그 스스로 [신격화된] 다이빙벨의 성능에 대해 말을 바꿨다.

    20시간 이상 물 안에서 작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이빙벨을 사용한다고 해도 잠수사들의 감압을 위해 물 밖으로 올라올 수밖에 없다.

       - 이종인 대표, 26일 높은 파도로 다이빙벨 투입에 실패한 뒤 기자들과 만나.


    눈물마저 마른 유족들의 가슴을 조이게 만든 [20시간 이상 구조활동 가능]이란 발언은 결론적으로 사실이 아니었음이 분명해졌다.

    다이빙벨을 사용하지 못한 이유를 정부와 해경의 비협조탓으로 돌린 그의 발언도 사실과 달랐다.

    이종인 대표는 다이빙벨 사용이 늦어지는 근본적인 이유가 사고현장의 기상 때문이란 사실을 인정했다.

    파도가 높으면 배가 일단 뜨지 못하고, 간다고 해도 파도가 높으면 크레인(다이빙벨을 내리는)이 흔들려서 다이빙벨을 내릴 수 없다.

       - 26일, 이종인 대표.


    이종인 대표의 이런 설명은 그가 JTBC에 출연해 손석희 앵커와 나눈 대화내용과 크게 다르다.

    다이빙벨을 둘러싼 [환상]은, 이렇게 허무하게 깨져버렸다.

    이종인 대표를 스타덤에 올려놓는데 결정적 공헌을 한 손석희 앵커와 JTBC의 보도 역시 사실상 오보(誤報)나 다름이 없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종인 대표와 다이빙벨이 전국구 스타로 떠오른 결정적 계기는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 메인뉴스 ‘뉴스9’의 인터뷰였다.

    지난 18일 손석희 앵커는 뉴스를 진행하면서 이종인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다이빙벨의 존재를 집중 부각했다.


    손석희 앵커 :

    다이빙벨을 제가 들은 바로만 말씀드리자면 '유속에 상관없이 20시간 정도 연속 작업할 수 있는 기술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종인 대표 :

    네, 맞습니다.

    저희가 장비가 있고 그런 기술(다이빙벨 기술)이 있고 수심 100m까지 작업을 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어떤 다이빙 군까지 그건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 이종인 대표, 18일 JTBC 뉴스9 인터뷰 중 일부


    이종인 대표의 다이빙벨 예찬에 손석희 앵커는 정부당국의 적극적인 검토를 요구하면서, 이종인 대표의 발언을 지지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당국에서도 (다이빙벨 투입을) 조금 적극적으로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워낙 지금 유속도 빠르고 마스크가 벗겨질 정도로 유속이 빠르니까.
    이게 실제로 검증이 된 것이라면 적극적으로 고려해 봐야 될 문제가 아닌가.

       - 손석희 앵커, 18일 JTBC 뉴스9


    이종인 대표를 제외한 다른 잠수전문가들은 처음부터 세월호 사고 현장에 '다이빙벨'을 투입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다이빙벨은 유속을 견디기 위한 장비가 아니며, 유속이 느려 모선(母船)이 고정돼야 사용할 수 있는 장비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고 해역 유속이 6노트에서 7노트 저도로 매우 빠르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종인 대표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손석희 앵커와 JTBC가 다이빙벨 사용에 회의적인 다른 잠수사들의 견해에 귀를 기울였다면, 다이빙벨과 이종인 대표를 둘러싼 논란은 하고많은 해프닝 정도에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손석희 앵커는 어찌된 일인지 유독 이종인 대표의 말만을 경청하는 태도를 보였다.
    진도 팽목항까지 직접 찾아가 현지 특별방송을 내보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다이빙벨과 관련된 현지 민관군 합동구조팀의 의견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종인 대표 인터뷰에서 손석희 앵커와 JTBC가 가장 크게 잘못한 것은 이른바 [팩트 확인]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손석희 앵커와 방송사측의 과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종인 다이빙벨]에 대한 검증되지 않은 보도로 피해자 가족과 국민들에게 안긴 상처와 혼란을 생각한다면, 누구든 분명하게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한 민간잠수사는 다이빙벨을 둘러싼 논란을 이렇게 정의했다.

    (다이빙벨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취지의 보도는) 희생자 가족들에 대한 [희망고문].
    다른 업체도 다이빙벨을 가지고 있는데 왜 못 넣었는지를 생각해봤어야 한다.

       - 황대식 한국해양구조협회 본부장


    이런 [희망고문]을 한 사람이 한명 더 있다.

    손석희 앵커가 이종인 대표와 다이빙벨을 세상에 알렸다면, 또 한 사람은 다이빙벨을 구세주처럼 다뤘다.

    그가 바로 MBC 보도국 출신인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다.

    비록 그는 뒤늦게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다이빙벨은 구세주가 아니라, 모든 수단을 다하고 싶은 아비의 마음일 뿐”이라고 말했지만, 그가 앞서 한 발언들을 생각하면 이런 그의 서정적 표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오히려 다이빙벨을 전지전능한 장비로, 이종인 대표를 마치 구세주처럼 선전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상호 기자 자신이었다.

    그는 24일 진도 팽목항에서 흥분한 가족들이 이주영 해수부장관과 김석균 해경청장에게 항의를 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20시간 이상 잠수할 수 있는 다이빙벨을 쓰지 않는다”면서 정부를 몰아세웠다.

    현재 상황에서는 다이빙벨 투입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해명이 나왔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이상호 기자의 이날 발언은 희생자가족들을 격분시키기에 충분했다.

    결국 격앙된 희생자가족들에게 둘러싸인 이주영 장관과 김석균 해경청장은 다이빙벨 현장 투입을 결정했다.

    그는 이날 가족들의 항의 도중 끼어들어 아예 마이크를 잡고, 해수부 장관과 해경청장이 봉변을 당하는 상황을 고발뉴스를 통해 생중계했다.

    그러면서 “구조작업 중인 잠수사들이 다쳐도 된다”는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을 했다.

    지금 장관님과 청장님이 투입하는 잠수요원들의 안전을 얘기하는데, 천추의 한(恨)을 남기지 않으려면 작전하다가 다치는 사람 나와도 된다.


    이런 그가 다이빙벨의 성능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트위터를 통해 “다이빙벨은 구세주가 아니라 아비의 마음”이라고 한 것은 난센스다.

    자신만이 진실을 말하고, 자신만이 제대로 된 언론인인양 다른 매체와 동료 기자들을 무시하고 훈계하는 태도 역시 언론계 선배로서 보일 모습은 아니다.

    취재를 위해 진도 땅을 밟은 기자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희생자와 그 가족에 대한 애도의 마음 없이, 먹먹한 아픔 없이 현장을 누빈 기자는 단 한 명도 없다.

    고발뉴스와 이상호 기자만 희생자 가족을 생각한 것이 아니다.

    다이빙벨 투입이 아비의 마음이라면, 이상호 기자는 이종인 대표의 주장에 고개를 가로젓는 다른 잠수사들의 견해도 가감없이 전해야 한다.

    다이빙벨 투입과 관련된 자신의 언행이 정당하다면, 그것이 희생자가족을 두 번 울리는 [희망고문]이 아니라면, 왜 다른 잠수사들은 다이빙벨 투입을 부정적으로 보는지 그 내용을 보도해야 한다.

    후배 기자에 대한 욕설은 그 다음에 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