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건국'이 말살되어간 과정에 대한 연구

    정경희(전 탐라대 교수)     
      
    이하는 정경희 전 탐라대 교수가 쓴,  <한국사 교과서 얼마나 편향되었나>(비봉출판사 출간 예정)의 내용 중 일부이다. 작년의 교과서 파동 직전까지 대한민국의 건국 및 정통성이 왜곡되어 온 과정을 다루었다. '대한민국 건국'이란 표현이 말살되어간 과정의 추적이 흥미롭다. 

      1948년 5월 10일 남한에서는 드디어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남북협상파(南北協商派)가 불참하였고, 북한에 배정된 100석을 제외한 것이었으나, 198명이 국민의 대표로 선출되었다. 이에 5월 31일에는 국회가 열리었는데, 이 제헌국회(制憲國會)는 즉시 헌법의 제정에 착수하여 7월 12일에는 국회를 통과시켰고, 7월 17일에는 드디어 이를 공포하였다. 이 헌법의 절차에 따라 7월 20일에는 대통령선거가 실시되었는데(당시는 국회의 간접선거), 그 결과 이승만이 당선되었다. 이어 행정부가 조직되고 8월 15일에는 대한민국정부(大韓民國政府)의 수립이 국내외에 선포되었다. 그 해 12월에 대한민국은 유엔총회의 승인을 얻어 한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적 정부가 되었다. 뒤이어 미국을 위시한 50여국의 개별적인 승인도 받게 되었다. (󰡔한국사신론󰡕, p.398.)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은 유엔의 결의를 따른 것이었고, 그 과정은 자유총선거, 국회 구성, 헌법 제정, 그리고 정부 수립의 4단계에 따라 진행되었다. 따라서 1948년 8월 15일에 정부 수립이 선포되었다는 것은 그 4단계의 마지막 작업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건국이 완료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수립은 곧 건국이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건국은 1910년 망국 이래 꿈이었던 자주독립과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공화국 건립의 꿈이 달성된 혁명적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국을 부정하고, ‘정부 수립’에 지나지 않는다고 격하하는 역사학계 일각의 주장이 최근의 국사교과서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이처럼 대한민국 건국과정을 둘러싼 분단정권 수립 시비는 결국은 대한민국의 정통성 시비로 이어져, 오늘날 한국 근현대사를 둘러싼 역사 분쟁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건국을 둘러싼 정통성 문제는 교과서에서 어떻게 다루어져왔는가? 왜곡된 서술은 언제부터, 그리고 어떻게 나타났는가? 이와 관련된 최근 교과서 서술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이를 살펴보기 위해 교과서의 관련 기술부분을 모아 다음과 같은 표를 만들었다.

     
    [표29] 대한민국의 건국 및 정통성


    교과서
     항(項) 제목
     본문 기술
     (유엔 승인 후) 정통성
     
    1차
     ①
     일본의 패전과 대한 민국의 수립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대한 민국의 국제적 승인을 얻음
     

     대한민국의 성립과 우리의 사명
     대한민국(大韓民國)이 건립
     국제연합(國際聯合, UN)에서 승인을 받고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
     

     대한 민국의 수립
     대한민국의 독립
     대한민국을 정당한 정부로 승인
     

     대한 민국의 수립
     대한민국
    정부수립
     유엔총회에서 승인을 얻었으며, 또 미국을 비롯하여 50여 국가의 개별적 승인을 받아 당당한 독립국가로서 국제무대에 나서게 됨
     

     독립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수립
     유엔의 승인을 받게 되고 또 미국을 비롯한 50여국의 개별적인 승인을 받어 태극기를 들고 국제무대에 등장
     
    2차
     ①
     대한 민국의 성립
     대한 민국(大韓民國)이 성립
     한반도를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적 정부
     

     대한 민국의 수립
     대한 민국 정부(大韓民國政府)의 수립
     한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 정부
     

     독립
     대한 민국의 성립
     유엔의 승인을 받게 되었고, 또 미국을 비롯한 50여 국가의 개별적인 승인을 받아 당당한 독립 국가로서 국제 무대에 진출
     

     대한 민국의 수립
     대한 민국의 수립
     한반도에서의 유일한 합법적 정부
     

     독립
     대한 민국을 수립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
     

     대한 민국의 수립
     대한 민국이 건국
     한국에서의 유일한 합법 정부
     
    3차
     (74)
     대한 민국의 수립
     대한 민국의 수립
     한국에 있어서의 유일한 합법 정부
     
    (79)
     대한 민국의 수립
     대한 민국의 수립
     한국에 있어서의 유일한 합법 정부
     
    4차
     국정
     대한 민국 정부의 수립
     대한 민국의 성립
     한반도에 있어서의 유일한 합법 정부
     
    5차
     국정
     대한 민국 정부의 수립
     대한 민국의 성립
     한반도에 있어서의 유일한 합법 정부
     
    6차
     국정
     대한 민국 정부 수립
     대한 민국의 수립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로서의 정통성
     
    7차

    근현대사
     금성
     02
     대한 민국 정부의 수립
     대한 민국 정부가 닻을 올렸다.
     유엔 총회에서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남한만의 정부가 세워진 것은 통일 민족 국가의 수립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뜻하였다
     
    06
     대한 민국 정부의 수립
     대한 민국 정부가 수립
     합법 정부
     
    대한
     대한 민국 정부의 수립
     대한 민국의 수립
     선거가 가능하였던 한반도 내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
     
    두산
     대한 민국 정부의 수립
     대한 민국의 수립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
     
    법문사
     대한 민국 정부 수립
     대한 민국 정부의 수립
     한반도 내의 유일한 합법 정부
     
    중앙
     대한 민국 정부의 수립
     대한 민국의 수립
     민주적인 절차에 의하여 수립된 합법 정부
     
    천재
     분단 정부의 수립
     대한 민국 정부 수립
     유엔의 대한 민국 정부 승인안은 대한 민국 정부의 행정관할권이 선거가 이루어졌던 지역, 즉 38도선 이남 지역에 한정되도록 결의되었다
     
    2010검정

    한국사
     미래엔
     헌법을 제정하고, 정부를 수립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거가 가능했던 지역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
     
    법문사
     5·10 총선거와 정부 수립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제3차 유엔 총회 결의문 中) 선거가 가능하였던 한반도 내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
     
    비상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대한민국 수립
     합법 정부
     
    삼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다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
     선거 감시가 가능했던 지역에서 합법적으로 수립된 유일한 정부
     
    지학사
     대한민국의 수립과 국제 사회의 승인
     대한민국의 수립
     선거가 실시된 한반도 지역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
     
    천재
     대한민국 정부 수립
     대한민국의 수립
     선거가 가능하였던 38도선 이남에서 정통성을 가지는 유일 정부
     
    가. 대한민국의 수립인가,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인가

     
    먼저 대한민국의 건국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교과서에서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두 가지를 살펴보았다. 건국을 다루는 항(項)의 제목 및 본문에서의 기술이 그것이다.


    ∙1차부터 3차까지의 교과서는 대한민국의 건국에 대한 일반적인 기술을 살펴보면, 대부분 항 제목으로 ‘대한민국의 수립’ (또는 ‘성립’)을, 본문에서도 ‘대한민국의 수립’(또는 ‘건립’, ‘성립’, ‘건국’)을 사용하고 있다.

     
    ∙4차 교과서부터 항 제목이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으로 바뀌어 2010검정 『한국사』교과서까지 줄곧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국정 교과서인 4차부터 6차까지는 교과서 본문에서는 모두 대한민국의 ‘수립’, ‘성립’, ‘국가 건설’ 등의 용어를 사용하여 대한민국의 건국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7차 『한국 근·현대사』 6종 및 2010검정 『한국사』교과서 6종, 총 12종 가운데 항 제목을 ‘대한민국의 수립’으로 쓰고 있는 교과서는 지학사 『한국사』 하나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대한 민국 정부의 수립’으로 쓰고 있다. 최근의 교과서 12종의 항 제목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7차 천재 교과서의 “분단 정부의 수립”이다. ‘대한민국’ 대신에 ‘분단 정부’를 넣어 대한민국의 건국을 폄하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교과서 가운데 절반 정도는, 항 제목은 아니더라도, 본문에서는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는 내용을 본문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기에 대한민국의 건국을 부정하는 서술로 비추어질 소지가 있다.

      나. 대한민국의 유엔 승인 및 그에 따른 정통성

      1948년 8월 15일에는 대한민국정부(大韓民國政府)의 수립이 국내외에 선포되었다. 같은 해 12월 12일 신생 대한민국은 파리 제 3차 유엔총회에서 58개국 중 48개국의 찬성을 얻어 한반도 내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을 받았다. 뒤이어 대한민국은 미국을 위시한 50여국의 개별적인 승인도 받게 되었다. 대한민국에 대한 유엔의 승인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나타낸다. 이에 대해 국사교과서는 어떻게 서술해 왔는가?

      ∙1차 교과서의 대부분은 유엔을 통해, 또는 유엔 및 50여 국가를 통해 대한민국이 국제적 승인을 받았다고 서술하였다.

      ∙2차 교과서부터, 대한민국은 유엔총회의 승인을 얻어 한국 또는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로서의 정통성을 지닌다는 서술이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서술은 국정인 3차부터 6차 교과서까지 줄곧 견지되었다. 특히 6차에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서술이 늘어났다. 이 교과서는 2장 <대한민국의 수립> ‘개요’에서, “1948년에 우리 국민의 총의에 의한 선거로 수립된 대한 민국은 역사적으로 대한 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였으며, 정치적으로는 자유 민주주의를,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기본으로 삼았다.”고 서술하고 있다(p.194). 이어 본문에서 “남한만의 총선거로 대한 민국을 수립한 것은 당시의 국내외 정세상 불가피한 일이었다.” “대한 민국은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로서의 정통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하여 재차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7차 『한국 근·현대사』교과서부터는 오히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서술이 이루어진다. 7차 『한국 근·현대사』 및 2010검정 『한국사』교과서의 대부분은 대한민국이 ‘선거가 가능했던(또는 실시된) 지역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이 38도선 이남에서만 정통성을 지닌다는 뜻이다. 실제로 천재 『한국사』교과서는 대한민국이 38도선 이남에서 정통성을 지닌다고 서술하고 있다.

      12월에 대한민국은 제3차 유엔 총회에서 정식 정부로 승인되었다. 그것은 선거가 가능하였던 38도선 이남에서 정통성을 가지는 유일 정부임을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천재 『한국사』, p.318.)

      이러한 서술은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하고 있는 헌법과도 배치되는 서술이다. 대한민국의 국사교과서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서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아예 대한민국의 정통성 자체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 교과서가 있다는 사실이다. 7차 금성 『한국 근·현대사』교과서의 해당 부분을 보자.

      대한 민국 정부는 곧바로 유엔 총회에서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남한만의 정부가 세워진 것은 통일 민족 국가의 수립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뜻하였다. (금성 『한국 근·현대사』, 2002, p.264.)

      대표적 국사 개설서인 『한국사신론』의 해당 부분과 견주어보면 금성의 서술이 얼마나 편향된 것인가를 금세 알 수 있다.

      그 해 12월에 대한민국은 유엔총회의 승인을 얻어 한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적 정부가 되었다. (󰡔한국사신론󰡕, p.398.)

      금성교과서는 유엔 총회에서 승인을 얻은 주체를 “대한민국”이 아닌, “대한 민국 정부”로 기술하고 있다. 금성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유엔의 승인을 얻었어도 “한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적 정부”가 된 것이 아니다. “남한만의 정부”를 세웠기에 통일 민족 국가의 수립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금성교과서는 왜 이처럼 대한민국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가? 금성교과서의 바로 이어지는 페이지를 보면 그 까닭을 알 수 있다. <대한 민국 정부의 수립>이라는 항(項)에 이어 이 페이지에는 <북한에 또 다른 정부가 들어서다>라는 항이 있다. 이 페이지의 관련 내용을 보자.

      남한에서 단독 정부 수립의 움직임이 표면화되자, 북한도 정부 수립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남과 북에 별개의 정부가 수립됨으로써 분단은 현실화되었다. 통일 국가의 수립은 좌절된 채, 민족적 과제로 남겨지게 되었다. (금성 『한국 근·현대사』, 2002, p.265)

      금성은 남한이 먼저 “단독 정부 수립의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에 북한도 정부를 수립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남북 분단의 책임을 전적으로 남한에 지우는 이 서술은,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역사적 사실을 완전히 왜곡하는 것이다. 북한은 남한보다 앞서 1948년 2월에 이미 정권 수립을 마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또한 이 교과서는 남에 세워진 대한민국과 북에 세워진 정부를 대등하게 놓고, 별개의 정부가 수립됨으로써 “통일 국가의 수립은 좌절”되었다고 쓰고 있다.

      대한민국은 ‘총선거’, ‘국회구성’, ‘헌법제정’, ‘정부수립’의 과정을 거쳐서 건국되었다. ‘정부수립’은 건국의 마지막 단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교과서의 집필자들은 대한민국 ‘건국’이란 표현을 배제하고 있다. 동시에 남한과 북한을 둘 다 ‘정부’라 칭함으로써 남한과 북한을 동일선상에 놓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러한 서술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 서술에는 대한민국은 한반도에 세워진 두 개의 정부 가운데 하나일 뿐 국가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앞으로 수립될 통일 국가만이 유일한 국가라는 교과서 필진의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다. 대한민국은 분단의 단초를 제공했기에 차라리 세워지지 말았어야 하며, 통일 국가의 수립이 우리 민족의 과제라는 것이다. 글자 그대로 통일지상주의에 매몰된 역사서술의 전형이다. 통일지상주의에 기초하고 있는 이른바 ‘민중사관’에 입각해서 교과서를 서술함으로써 이처럼 대한민국의 건국을 폄하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철저히 부정하기에 이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