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데려올 수 있는 비용 아낌없이 넣으시다니!6.25 추념공원 건립운동, 계획대로 잘 추진시켜야

  • [6.25 추념공원 건립운동]을 위한 통장에
    두 번에 걸쳐 110만원과 140만원이 입금됐습니다. 

    입금명은 이OO. 



  •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아는 성함은
    국군포로 어르신 외에는 떠오르지가 않았습니다.

    "아무렴
    그 어르신이 넣었을 리 없는데…." 
    어느 분이 보냈는지 궁금해하다 며칠이 흘렀습니다.

    그러다
    제가 아는 그 국군포로 어르신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저를 꼭 만나고 싶다고.
    능력도 안 되는 저는,
    학교 강의하랴, 
    각종 회의 쫓아다니랴, 
    연구 논문쓰랴,
    몸은 피곤하고 잠까지 늘 부족해 
    누구를 만난다는 것도
    솔직히 부담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그래도 국군포로 어르신이신데 
    아침에 짬을 내
    제 연구실에서 뵈었습니다. 
    연구실까지 오시라고 하기가 죄송했지만,
    제 일정상 그 방법 외에는 없었어요.
     
    앉자마자 어르신 하시는 말씀이 
    "바쁘신데 시간 내줘서 고맙습니다"였습니다. 
    에고고
    내가 무슨 대통령도 아니고
    바쁘기보단 무척 죄송했지요.
    어르신은 연이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은 제가
    6.25 통장으로
    110만원, 140만원 두 번에 걸쳐 250만원을 넣었는데
    앞으로 1천만원이 될 때까지 채워 넣겠습니다.
    혹시 제가 돈 보냈다고 공개하실까봐
    그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


  • 깜짝 놀라 물었지요. 
    "아니, 어르신,
    어르신이 넣으신 거예요?

    어른신한테 무슨 돈이 있으시다구
    그 많은 돈을 넣으셨어요?" 


    너무 놀라 말까지 더듬었습니다. 

    사실 250만원이 제게도 무척 큰 돈인데,
    탈북해 오신 국군포로 어르신께는
    더 할 나위 없이 큰 돈일테니까요.
    오늘도 어르신은
    사모님과 함께 오셨는데,
    그 사모님,
    겉 옷도 없이 그냥 맨 티셔츠 차림이었습니다. 
    그것도 낡긋낡긋하고 빛까지 바랜,
    빨간 티셔츠 였습니다. 
    어쩔 줄 모르는 제게
    어르신은 차분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탈북해서
    인천 공항에 탁, 내렸는데 깜짝 놀랬어요.
    내가 전쟁에 나가던 1950년 하고는
    달라도 너무 달랐어요.
    길이 어찌나 넓고 쭉 뻗었는지
    내가 한국에 온 게 맞나,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내가 전쟁 나갈 때
    우리 집에는 전기도 없이 호롱불 키고 살았고,
    내가 탈북해 오기 전까지
    북한에서도 전기 없이 시커먼 디젤불 키고 살았거든.
    아침에 일어나면
    코밑이 새까말 정도로
    휘발유도 아닌 디젤불 밑에서 살았는데,
    아, 여기 오니까
    대낮에도 전기불을 환하게 켜 놓고 있는 거예요"
    불이 켜 있는
    제 연구실 천정을 올려다 보셨습니다.
    순간 찔끔 했지요. 
    "그 후에
    국정원 직원이
    나를 데리고 내 고향엘 갔는데,
    세상에나,
    천지개벽을 해도 너무 심하게 한 거야.
    하나도 같은 게 없었어.
    높은 빌딩에
    아파트에
    도통 내가 살던 집이 어디쯤이었는지
    찾을 수가 없었어요.
    좀 있다가
    내가 감기가 좀 드니까
    국정원에서 날 국군병원에 입원을 시켰는데,
    그런 병원 난 생전 처음이었어.
    그런 설비,
    그런 기계,
    난 처음이었지.
    북한에서는 천덕구러기던 내가 여기 와서
    이런 병원에 입원을 다 해 보다니,
    정말 꿈만 같았어요.
    그래 내가 생각했지.
    대한민국이 이렇게 발전하도록
    난 뭘 했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 조국이 이렇게 발전하는데
    난 아무 것도 기여한 게 없었어요.
    그런데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의원님이
    내가 나가서 포로가 됐던 그 6.25 공원을 만든다고 하기에
    내가 여기에라도 돈을 좀 보태야겠다, 싶어서
    내 힘 닿는 데까지 돈을 내려고 해요.
    내가 내년까지는 꼭 1천만원을 채울 거니까
    작은 돈이라 생각하지 말고 받아줘요.
    내가 냈다고는 절대 말하지 말고
    돈 내년까지 내도 되지요?
    내가 그동안 모았던 통장의 돈을 깨서 두 번 보내줬는데,
    앞으로 언제까지 1천만원을 채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꼭 1천만원을 보탤 테니까
    6.25 공원, 잘 좀 만들어줘요."


    제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냥 어르신 손을 꼭 붙잡고
    부끄러움에 어르신을 쳐다보지도 못 하고
    눈을 감으니,
    주책 맞게 눈물이 뚝 떨어졌습니다. 

    법인등록금 5천만원도 마련하지 못해
    법인등록도 못하고 있는데….

    “조국이 구해주리라”고
    기다리고 기다리다
    도저히 더는 기다릴 수 없어
    스스로 탈북해 오신
    올해 81세의 국군포로 어르신. 

    그분께는
    슬하의 자녀들이
    손주들까지 모두 북한에 그대로 계십니다. 

    보통은
    그 자녀들한테 생활비를 보내주느라
    생환해 오신 국군포로 어르신들 등허리가 휩니다. 

    어쩌다 돈이 조금 모이면
    자녀들을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브로커 비용 마련하느라
    홍시 하나 못 사 드시면서
    돈을 모으죠. 

    그런 분한테
    250만원이라면
    아니 1천만원이라면
    당신 아들 딸 중의 한 명을 데려올 수 있는 브로커 비용인데
    그 돈을
    아낌없이
    이름도 없이
    6.25 통장에 넣으시다니!

    점심 회의가 또 잡혀 있어서
    국수 한 그릇도 대접해 드리지 못하고
    학교 앞에서 헤어지면서
    제 발걸음이 왜 그리도 무겁던지….

    그래도 그분의 정성을 하늘이 외면하진 않겠지요?
    그래서 6.25 추념공원이 번듯하게, 계획대로  잘 추진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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