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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과의 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이 공개됐다.

    2007년 10월 3일 북한에서 246분간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정리한 내용이다.
    회의록 내용은 한 나라의 대통령이 해서는 안되는 발언이 상당수여서 큰 충격을 준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
    5,000만명을 대표하는 지도자가 어떻게 저런 표현을 썼는지
    안타까움을 넘어 실소가 나오는 대목도 많이 눈에 띈다.

    상대가 누구인가?
    김정일이 아닌가?

    대를 이어 2,000만 동포를 노예상태에서 억압하는 포악한 세습독재자가 아닌가?
    김정일은 수백만명의 북한 주민을 굶어 죽인 살인 정권의 우두머리요,
    수많은 테러를 저지른 범죄자요, 국제적인 시대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조직범죄 두목이다.

    이런 김정일에게 한 그 많은 발언은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형식에서도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의록이 공개된 이후 나오는 반대의견은 더욱 가관이다.

    왜 공개했느냐고 질타한다.
    공개한 절차가 적절했는지 따진다.
    외교적인 사례가 있는지 묻는 내용도 들린다.

    이 같은 반대 논리는 적반하장에 궤변이요,
    인간이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염치도 없는 짐승들의 울부짓음 같이 들린다.


  • 1. 진실을 밝히는 것이 진정으로 국익을 위한 것이다.

    진실의 빛이 나오면 거짓과 사기와 두려움과 불확실의 어둠은 사라진다.
    정상회담 회의록에서 두 사람이 한 발언을 왜 감춰야 하는가?

    김정일은 아무런 정당성을 갖지 못한 채 북한 주민을 도탄에 빠뜨리면서
    오로지 정권 유지에만 혈안이 된 사악한 두목일 뿐이었다.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정당성을 갖지 못한 조폭두목에 아부하는 발언을 했다면,
    이보다 더 심각하게 국익을 손상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썩은 냄새 나는 어두운 구석을 드러내서 여론의 질타로 단죄하고
    진실의 햇볕으로 거짓을 고사시키는 것이야 말로
    대한민국 국익에 더 큰 이익을 줄 만한 내용이 있을까?

    단연코 없다.
    회의록을 공개하는 것이 무슨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 라는 주장은 절대 옳지 않다.


    2. 공개한 절차가 적절했는지 따진다고?


    그럴 듯 한 말처럼 들린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이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으려고 하는데,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물어볼 게 있는데요" 하면서
    상대 의사를 물어보는 절차를 따지고, 부드럽게 말리는 바보 같은 사람이 있을까?

    최근에 국정원을 놓고 벌어지는 일들은
    벼룩 한 마리 잡으려고 초가산간을 태우려는 행동이요,
    구더기 생겼다고 장독을 깨려는 어리석기 이를 데 없이 파괴적이며 자기 파괴적인 행동이었다.

    구더기를 잡겠다고 몽둥이를 들어 내리치려는 사람에게
    “그러지 말라”고 신사답게 충고하는게 효과가 있을까?
    그런 절차를 밟는 순간 장독은 깨지고 말 것이며
    오랫동안 정성스럽게 가꾼 먹거리는 순식간에 흙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이번 회의록 공개는 절차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절차를 따지는 순간 더 큰 대의명분이 훼손된다.
    그 대의명분은 잘 못 된 대화내용을 드러내서 거짓과 음모와 굴욕을 벗어던짐으로써
    국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 3. 외국에 이런 사례가 있었느냐고?


    외국에 이런 사례가 있었는지 없었는지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
    사례는 단순히 참고만 할 뿐이다.
    전례없는 일들은 항상 벌어진다.
    전례없는 일들이 생기지 않는 조직은 죽은 조직이요
    아무런 활력을 기대할 수 없는 조직이다.

    두 나라가 전쟁을 하는데,
    만약 상대 적군이 신무기를 들고 나왔다고 치자.
    전례없이 살상효과가 높은 무기를 들고 나왔다고 시비를 걸 것인가?


    4. 회의록 공개는 대한민국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2007년 남북정상 회의록은 우리의 수치스런 현대사의 한 페이지이다.
    이 보다 더 수치스러운 대화가 있을까?

    대화록에 등장한 인물이나
    그 대화록이 있도록 주변에서 방조한 사람이나
    대화록 공개후 짐승처럼 날뛰는 사람은 물론이고,
    대화록을 읽는 모든 사람들은 수치심과 분노와 허탈을 느낀다.

    그래서 일단 이 냄새나는 글자들을 감추고 싶은게 평범한 사람들의 본성이다.
    그러나 그 수치심을 이기고 들춰내는 용기와 결단은 그 자체로 엄청난 에너지이다.

    이 에너지는 다시 도약할 힘을 준다.

    수치심은 감추면 어둠속에서 곪아터져 돌이킬 수 없는 죽음에 이르게 한다.
    아픔을 이기고 상처를 드러내면,
    곰팡이균 같은 수치심은 말라 죽어 새 생명의 원천이 된다.

    그러니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공개된 것은 대한민국을 위해 정말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춤추고 기뻐하면서 박수치며 환호할 일이다.


    5. 때를 놓치면 치뤄야 할 대가는 비극적으로 커진다.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통치자 중 동서양에서 두루 존경받는 인물 중에서
    다윗 왕 만한 위치에 올라간 인물도 없을 것이다.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돌멩이 한 개로 처치한 사건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이 용감한 무용담이 실려있는 위대한 서적 바이블에는
    눈뜨고 봐주기 어려운 다윗의 치욕스런 범죄도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추잡한 범죄에서 늦게 돌이킴으로
    다윗이 얼마나 인생의 쓰디쓴 맛을 봤는지 바이블에 적혀 있다.

    다윗이 자기 부하를 더러운 음모를 꾸며 죽이고 그 부인을 빼앗은 이야기이다.

    다윗은 어느 날 저녁에 왕궁 옥상에 올라갔다가,
    남의 집에서 목욕하는 아리따운 유부녀를 보고 궁궐로 불러 하루밤을 즐겼다.
    그런데 이 원 나잇 스탠드로 유부녀는 임신을 하고 말았다.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다윗이
    유부녀의 남편을 알아보니
    자기가 전쟁터로 보낸 용감한 부하장수였다.

    여기가 첫번째로 뉘우칠 기회였다.

    다윗은 이쯤에서 멈췄으면 좋았을 것을,
    눈이 뒤집힌 다윗은 더 큰 죄악을 꾸민다.

    알리바이를 만들려고 부하장수(이름이 우리야 장군이다)를 궁궐로 불러
    수고한다면서 술을 잔뜩 먹였다.
    집으로 보내서 아내와 하루밤을 보내면,
    [임신알리바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꼼수였다.

    그러나 우리야는 부하들이 사지(死地)에 있는데
    자신만 술 퍼 마시고 아내와 함께 잘 수 없다면서 궁궐 안에서 머물렀다.

    다윗이 한 번 더 불러 술을 먹였으나 마찬가지였다.

    두번째 기회였다.
    다윗은 이쯤해서 멈췄어야 했다.


    자신의 더러운 음모와 색욕이 부끄럽지도 않았을까?

    그 반대였다.
    완전히 이성을 잃은 다윗은
    비밀 편지를 써서 우리야의 손에 들려 우리야의 상급자에게 보낸다.
    우리야를 전투중 적진속에 빠지게 해서 전사하도록 하라는 살인교사 편지이다.
    우리야는 자기를 죽이라는 내용이 들어있는 줄도 모르고 그 편지를 가지고 간다.
    그리고 마침내 전사를 가장한 다윗의 잔꾀에 빠져 죽었다.

    여기가 세번째 기회가 아니었을까?

    다윗은 이쯤에서 그만뒀어야 했다.
    자기 부하 부인과 간통을 해서 임신시키고
    그것도 부족해 부하를 살인교사 음모를 꾸며 죽였으면
    그것으로 족하지 아니하겠는가?

    다윗은 남편 죽었다고 미망인이 된 밧세바를 자기 부인으로 삼았다.



  • 한때는 우리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어느 사람이
    아직도 전쟁상태에 있는 적군의 대장에게 가서
    누가봐도 굽신거리고 애걸하는 말투와 행동으로 비굴한 대화를 나눴다.

    한때는 대통령이라는 직함을 가졌던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 자리에 올라가게 했던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다.

    아직도 그들은 국회에서 국민들이 자신에게 위임한 권한을 가지고 수많은 말들을 한다.

    한때는 대통령이었던 그 사람이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갖도록 주변에서 도와준 참모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회담장소에 함께 앉아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이 포악한 세습독재자와 굴욕적인 발언을 한 내용을 들었을 때,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어때야 했을까?

    이쯤해서 자리를 박차고 나왔어야 했다.
    사표를 던지든지, 언론에 공개해서 돌이키든지 뭔가 했어야 했다.

    그 반역과 모반과 헌법훼손과 매국적인 발언을,
    바로 옆에서 전해들은 어느 누구도
    돌이키거나 참회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그러고도 그들이 아직도 국가를 위해 봉사한 공무원으로 남아있는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그 사람을 그 자리에 올라서도록 도와줬던 정치인들은 당연히 뉘우쳐야 했다.
    자신의 경력에 오점을 남긴 것으로 생각하고 반성했어야 했다.
    자기들에게 그런 권한을 위임한 국민들에 대해서는 당연히 사죄했어야 했다.

    2007년부터 지금 2013년까지
    그때 그 인간과 연결되었던 어느 인물들도
    진심으로 역사와 국민앞에 사죄하는 소리는
    단 한마디도 들리지 않는다.
    도대체 어느 때가 되어야 이들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양심이나 상식을 보여줄 것인가?

    지난해 대통령 선거가 한창일 때
    사실상 회의록의 중요한 내용들은 거의 다 나왔다.
    그러면 이쯤에서 진정으로 국가의 앞날을 위한다면,
    고백을 했어야 했다.
    잘 못 된 회의였다고,

    아무도 참회하지도 반성하지도 사죄하지도 않았고,
    최소한의 사과도 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3년 6월,
    그것도 수백만명이 피눈물을 흘린 6.25전쟁 기념일을 즈음해서
    마침내 그 더럽고 추잡하고 야비하고 모멸적인 회의록이 우리 눈앞에 펼쳐졌다.

    이쯤해서 회개해야 하는거 아닌가?

    그 사람 옆에 붙어서 한때는 국가를 경영했던 주변 인물들
    친(親) 아무개라는 이름으로 줄을 섰던 수많은 정치인들,
    친(親) 아무개라는 이름 때문에 국회의원이라는 배지를 달고
    지금도 여의도에서 큰 소리 치는 의원들,
    이쯤해서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 아닌가?


  • 다윗은 돌이키기는 했다.
    그러나 끝내 자기 힘으로 돌이키지 못했다.

    어느 현인(賢人)이 비유를 들어 그 심장에 날카로운 비수를 꽂기 전에는.

    다윗이 유부녀를 데려다가 아내로 삼고 잘 지내던 어느 날,
    현인이 다윗을 찾아왔다.
    그리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처럼 말을 꺼냈다.

    “어느 마을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자이고 한 사람은 가난했다.

    부자는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가난한 사람은 사서 기르는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었다.
    암양 새끼는 식구들과 함께 자라며 같이 먹고 같이 자니 마치 딸 같이 되었다.
    그런데 그 부잣집에 손님이 한 명 왔다.
    부자는 자기 양과 소는 아까워 잡지 않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손님대접을 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자 다윗은 화가 나서 끼어들었다.

    “살아계신 하늘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 부자는 죽어 마땅하다.”


    이때 현인이 정확하게 찍어 비판했다.

    “당신이 바로 그 부자 같은 사람이다.
    목동이었던 당신이 왕이 되고

    수없는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살아남았고,
    아내도 여럿인데
    어째서 당신의 부하를 죽이고
    그 아내를 빼앗아 자기 아내로 삼았는가?”


    이때서야 다윗은 진짜 회개를 시작했다.
    밤마다 울면서 베개를 적시고 한탄하며
    자기의 더럽기 짝이 없는 죄악을 발견하고 밤새 울기를 며칠이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대가를 치뤘다.
    그 대가는 너무나 혹독했다.

        1. 배다른 아들과 딸 사이에 강간사건이 일어났다.
        2. 강간당한 딸의 오빠가 강간한 배다른 형제를 죽였다.
        3. 그 아들이 반역을 일으키고는, 아버지 다윗을 죽이러 전쟁을 일으켰다.
        4. 그 아들은 아버지 다윗의 첩들을 데려다가
            여러 사람들이 보는 곳에 텐트를 쳐 놓고
            텐트속에서 아버지 다윗의 첩들과 강제로 성관계를 가짐으로써
            소문을 퍼트렸다.
        5. 아들 사이에 후계자 싸움이 벌어졌다.
        6. 다윗 왕국이 남북으로 분단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다윗은
    마음속 깊이 뉘우치고 눈물로 회개하고 땅을 치며
    한때의 잘못을 모든 백성들이 알도록 고백하고 또 고백하고 또 고백했다.
    뉘우치고 회개했어도
    그는 지옥 같은 인생의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인류 모두가 위대한 인문학 유산으로 인정하는 바이블에는
    다윗이 저지른 그 지저분하고 추잡하고 뻔뻔한 죄악상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다윗의 자녀들 사이에 벌어졌던
    그 끔찍한 근친상간과 살인과 반역과 살부(殺父)의 행적도 너무나 낱낱히 기록되어 있다.

    바로 이같이 무섭고도 소름끼치도록
    정직하게 위대한 인물의 치부를 낱낱이 드러냈기 때문에
    오늘날 바이블은 바이블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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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니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낱낱이 까발려진 것은
    또 다른 위대함이 드러나는 좋은 징조이다.
    회의록을 공개했다고 공격하는 자들이야 말로 어리석기 이를데 없다.

    다윗은 회개하고 뉘우쳤는데도
    처절하고 비극적인 가족사에 시달리는 징벌을 피할 수 없었다.

    다윗이 저 정도였는데,
    아직도 아무 잘못이 없다는 듯,
    절차가지고 물고늘어지면서
    하루가 멀다하고 온 세상을 시끄럽게 하면서
    뉘우치거나 부끄러운 줄 모르는 그들은

    과연 어떤 결말을 기대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