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해구 교수의 기용은

    민주통합당의 ‘탈종북(脫從北)’ 포기 선언

    李東馥

       
     

  • ▲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대표.
    ▲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대표.

    문희상(文熙相) 의원이 이끄는 민주통합당 비대위원회가 당의 정치혁신위원장으로 성공회대학의 정해구 교수를 임명했다는 사실은 18대 대선에서 참패한 뒤 “당의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운운하는 민주통합당의 당 쇄신 담론(談論)이 얼마나 국민을 기만하는 사기극(詐欺劇)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 같다.
    이번 대선 후 민주통합당의 당 쇄신 담론의 핵심은 민주통합당이 과연 ‘친노(親盧)’ 계파의 ‘종북주의(從北主義)’ 노선를 청산할 수 있을 것인가의 여부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러나, 문희상 비대위 체제가 당의 노선 쇄신을 담당할 사령탑인 정치혁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한
    정해구 교수는
    학문적 차원에서 1945년 해방 이후 한반도 역사의 ‘현대사’ 부분을 엉뚱하게도
    북한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전형적인 ‘종북주의’ 사관(史觀)에 입각하여 이해하는 골수(骨髓) ‘종북주의자’다.

    그의 이 같은 ‘종북적(從北的)’ ‘좌편향(左便向)’ 이념 성향은
    ‘한길사’가 1989년 “오늘의 사상신서(思想新書)” 시리즈로 한국 현대사를
    좌익적(左翼的) 시각에서 해석한 대표적 역사서적인 《해방 전후사의 인식 4》라는 표제의 서적에
    수록되어 있는 논문 《해방 8년사(年史)의 총체적 인식》을 읽어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이 논문은 표면상 그와 고려대의 최장집 교수가 ‘공조(共著)’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 최 교수의 이름은 그의 ‘유명도(有名度)’를 이용할 목적으로 ‘차용(借用)’된 것일 뿐
    실제로는 전적으로 정 교수가 혼자서 작성한 것이었음이 뒷날 최 교수의 해명을 통하여 밝혀진 바 있다.

  • ▲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
    ▲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

    이 논문은 정해구 교수가 1945년 해방 이후 한반도의 남과 북에서 전개된 상황을
    김일성(金日成)의 북한판 공산주의를 분식(扮飾)한 사이비(似而非) 혁명이론인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론의 시각(時角)에서 인식하고 이해함으로써
    한반도 현대사의 정통성을 엉뚱하게 북한의 공산주의 세력에 부여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전형적인 ‘종북주의’ 사관의 소유자임을 밝혀주고 있다.

    다음의 두 대목은 바로 문제의 ‘한길사’가 발간한 《해방 전후사의 인식 4》라는 표제의 서적에 수록되어 있는 정해구 교수의 논문 《해방 8년사(年史)의 총체적 인식》에서 인용한 것이다.

    “일제 지배 하에서 잠재적으로 야기된 계급적․민족적 분열, 인구의 이동, 강력한 관료기구의 유산,
    민족해방투쟁세력의 분산과 고립, 지방에서의 수많은 운동가들의 활동 등,
    이 모든 요소들이 해방 후의 혁명과 반혁명의 정치적 갈등에 영향을 미쳤다.
    혁명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측면에서 본다면,
    일제 하의 모순의 심화로 인하여 노동자․농민을 중심으로 한 민중들이
    반제반봉건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하여 광범하게 동원되었다는 점을 우선 들 수 있다.
    자본주의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친일파․민족반역자의 처벌을 비롯한
    식민 잔재의 척결을 요구하는 애국적 역량과 토지개혁을 비롯한 봉건 잔재의 척결을 요구하는
    계급적 역량이 동원됨으로써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이라는
    인민민주주의혁명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4” 15~16쪽에서 인용]


    “첫째, 그 것은 반제반봉건의 내용을 지닌다.
    우선 식민 잔재의 척결이 요구되었다. 식민잔재의 척결에는 친일파․민족반역자의 처벌과
    일제 및 친일매판자본가 기업의 국유화 등이 요구되었다.
    즉 식민 잔재세력의 물적 기반을 박탈하고 그들의 정치적 지위를 약화시키는 것이 요구되었다.
    다음으로 봉건 잔재의 척결이 요구되었다. 봉건 잔재의 척결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토지개혁이었다.

    둘째, 그 것은 일종의 인민민주주의 혁명이었다.
    민주주의혁명이 국가의 강력한 파쇼적 성격에 대응하는 민중의 혁명이라면,
    당시의 혁명은 식민성과 봉건성으로 야기된 일제 식민지권력의 파쇼적 성격에 반대하며
    노동자․농민 등 민중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인민정권을 수립하고자 하는 인민민주주의혁명이었다.
    따라서 당시의 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당시의 객관적 조건 속에서 혁명의 주체세력이
    인민정권을 수립하고 이 국가권력에 바탕하여 반제반봉건의 민주개혁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위 책 19쪽에서 인용]

    이상에서 인용된 대목들에 등장하는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관이 갖는 문제점을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것이 북한이 해방이후 일관되게 추구해 온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과 어떻게 다른 것인가를 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북한은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의 의미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다음은 북한의 《정치사전》(평양 조선노동당 사회과학출판사, 1972)이 ‘정의’하는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의 의미이다.


    “식민지 및 반식민지 나라들에서 로동계급의 령도 밑에 외래제국주의 침략세력과 그 앞잡이인 국내반동세력의 통치제도를 때려부시고 민족의 독립을 달성하며 봉건적 착취관계를 청산하고 나라의 민주주의적이고 자주적인 발전을 실현하는 혁명.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의 대상은 외래제국주의 침략세력과 그와 결탁한 지주, 매판자본가, 반동관료배들이다. 이 혁명을 수행하는 동력은 로동계급과 그의 가장 믿음직한 동맹자인 농민을 비롯하여 제국주의와 그 앞잡이들을 반대하는 진보적 청년학생, 지식인, 애국적 군인, 일부 애국적 민족자본가들과 소자산 계급이다.” [“정치사전” 448쪽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 항목에서 인용]


    다음은 역시 ‘사회과학출판사’가 1975년에 간행한 ‘혁명리론 서적’인
    《주체사상에 기초한 세계혁명리론》의 제1절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에서 인용한 것이다.


    “혁명의 성격과 임무로 볼 때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은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민족해방혁명’인 동시에
    민주주의혁명의 테두리 안에서 전체 근로대중의 계급적 리익을 최대한으로 옹호하는 혁명, 즉 ‘인민민주주의혁명’으로 된다.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의 다른 하나의 특징은 로동계급의 령도 밑에 광범한 애국적 민주력량이 이 혁명에 참가한다는데 있다. 식민예속국가들에서는 지주, 예속자본가를 제외하고 모든 계급과 계층들이 다같이 제국주의와 봉건주의의 착취와 억압 밑에서 고통을 받는다. 따라서 로동자, 농민을 비롯하여 청년학생, 지식인, 소자산 계급 및 민족자본가, 량심적인 종교인 등 모든 애국적 민주력량이 제국주의와 봉건주의를 반대하는데 리해관계를 가지며 반제투쟁과 반봉건투쟁에 참가하게 된다.” [《주체사상에 기초한 세계혁명이론》 132쪽에서 인용]


    물론 양쪽의 문장들이 일자일획(一字一劃) 동일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문리(文理)가 트인 사람이라면 위에서 인용한
    《해방전후사의 인식 4》중 정해구 교수의 작품인 《해방 8년사의 총체적 인식》의 문제 대목과
    북한의 《정치사전》 및 《주체사상에 기초한 세계혁명리론》의 문제 대목을 비교해 볼 때
    양쪽에서 말하는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은 결국 일란성(一卵性) 쌍둥이이고
    또한 그것은 북한이 추구하는 한반도판 공산주의인 ‘민족해방인민민주의혁명’과 같은 것임을 감추기 위한
    전형적 ‘용어혼란(用語混亂)’ 전술의 작품이라는데 이론을 제기할 여지가 없다.

    더 나아가, 정해구 교수가 쓴《해방 8년사의 총체적 인식》을 보면
    “해방 정국의 구조 속에서의 ‘혁명세력’과 ‘반혁명세력’의 ‘성격’”이 다음과 같이 비교․설명되고 있다.

    “미․소의 (한반도) 분할점령은 ‘이러한 혁명’의 성공 여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소련군이 진주한 북한에서의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은 소련군의 후원에 힘입어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미군이 점령한 남한에서는 ‘이러한 혁명’이 미군정의 반혁명(反革命) 정책에 의해서 결국 좌절되었던 것이다. 결국 북한에서의 혁명의 성공과 남한에서의 반혁명의 성공은 남북한에 적대적인 두 정권이 수립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4》 19쪽]

    “남한에서는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이 성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반혁명으로 귀결되었음에 반하여, 북한에서의 혁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같은 책 30쪽]

    “남한에서의 국가권력 장악에 있어서는 미군정의 후원을 받은 극우세력이 반혁명의 분단정권 창출에 성공하였고,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을 위해 인민정권을 세우고자 했던 혁명세력으로서의 좌익세력은 일단 국가권력 장악에 실패하게 되었다 [같은 책 24쪽].........(이에 반하여 북한에서의 혁명은)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민중들의 혁명열기가 소련군의 후원이라는 유리한 조건 속에서 혁명의 성공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같은 책 30쪽].‘

    이 글에서 보여주고 있는 정해구 교수의 논리는 해방이후 남북분단의 과정을 서술함에 있어서 이미 가치부여적 입장에서 남의 대한민국의 경우는 “‘반혁명’의 차원에서는 ‘성공작’, ‘혁명’의 입장에서는 ‘실패작’”이라고 단정하면서 북한의 경우에 대해서는 “‘혁명’의 ‘성공작’”으로 보고 있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더구나 그는 그가 이 글에서 말하는 ‘혁명’이란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임을 이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분명히 하고 있다.

    결국 정해구 교수는 1948년 남북한에 등장한 두 개의 분단국가, 즉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성격’에 관하여 ‘태생(胎生)’의 차원에서 ‘불의(不義)’와 ‘정의(正義)’의 대립으로 상징화하는 비교논리의 기교 구사를 통해 가치부여적 차별화를 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적어도 그가 필연성을 주장하는 ‘혁명’관에 입각한다면 대한민국과 북한간의 ‘정통성’ 다툼에서 ‘정통성’은 대한민국보다는 북한쪽에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음이 명백한 것이다.

    정 교수의 대한민국에 대한 이 같은 ‘자기 비하(卑下)’는 비단 남․북간 ‘정통성’ 다툼의 차원에서 북한과의 비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남한 내에서 전개된 좌․우 대립의 해방 후 정국구도에 대해서도 그는 마찬가지로 “혁명 대 반혁명”의 ‘이분법(二分法)’에 의한 설명을 고집하고 있다.
    다음은 역시 ‘원문(原文)’의 인용이다.

    “혁명세력은 노동자․농민의 기층 민중들을 기반으로 하여 애국적인 모든 요소들과 연대하려 했으며,
    조선공산당․조선인민당․남조선신민당 등을 통하여 정치세력화되었다.
    반혁명세력은 미군정을 중심으로 지주계급․매판적 자본가․친일친미파 등이 결집되어 있었으며,
    이들은 한민당․이승만세력 등을 통하여 정치세력화되었다.
    한편 혁명세력과 반혁명세력 사이에서 이중적인 지위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민족적 우익세력을 하나의 세력 범주로서 상정할 수도 있다. 예컨대 김구의 중경 임시정부가 이러한 세력을 대표하는 바, 이들은 계급적으로는 볼 때에는 우익세력에 속하면서도 민족적으로 볼 때에는 애국세력이 되는 이중적 성격으로 지닌다.
    김구세력의 반탁운동과 분단저지투쟁은 바로 이러한 이중성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 4》 20쪽에서 인용]

    “남한에서의 국가권력 장악에 있어서는 미군정의 후원을 받은 극우세력이 반혁명의 분단정권 창출에 성공하였고,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을 위해 인민정권을 세우고자 했던 혁명세력으로서의 좌익세력은 일단 국가권력 장악에 실패하게 되었다. 따라서 분단정권 수립 이후에는 이승만 정권에 저항하는 남한에서의 무장투쟁과 통일을 위한 남북 사이의 정권적 차원의 대결이 전개되게 된다.” [같은 책 24쪽에서 인용]


    뿐만이 아니다.
    정해구 교수는 ‘6.25 남침론’을 수용할 것을 거부하고,
    재독(在獨) 북한 간첩임이 분명한 송두율(宋斗律) 교수를 옹호하며
    북핵 문제에 관하여 북한의 입장을 비호하는 인물이다.

    이 같은 사람에게 ‘정치혁신’의 중책(重責)을 맡겼다면
    그가 이끄는 민주통합당의 ‘정치혁신’이 과연 민주통합당의 ‘종북’ 색깔을 벗겨 낼 수 있을 것인지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사자성어(四字成語)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대목이다.
    신문은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최근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 팔지 않고 국회의원 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일갈(一喝)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의 ‘탈종북(脫從北)’은 결국 구두선(口頭禪)이 되고 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