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법원에 선처 호소 탄원서 제출 "당시에도 부담, 내내 적절했는지 생각"
  • "인정에 치우칠 것이 아니라 좀 더 깊이 생각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30일 지난 2003년 구속된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명에 나선 것에 대해 사과했다. 30일 낸 보도자료를 통해서다.

  • ▲ 지난 23일 밤 SBS TV '힐링캠프'에 출연하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자료사진) ⓒ 연합뉴스
    ▲ 지난 23일 밤 SBS TV '힐링캠프'에 출연하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자료사진) ⓒ 연합뉴스

    이날 안철수 원자은 과거 분식회계로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된 최태원 SK 회장을 위해 ‘구명운동’을 벌인 것이 알려져 충격을 줬다.

    "최태원 회장이 국가의 근간산업인 정보통신, 에너지 산업을 부흥시켜 왔다. 모든 책임을 지더라도 기업을 살려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는 그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
    -2003년 4월, 탄원서 내용 中-

    당시 최태원 회장은 1조5000억 원대 분식 회계를 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2008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 확정된 후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아 재벌 봐주기라는 비난이 일었다.

    안철수 원장은 "10년 전의 그 탄원서 서명에 대해 당시에도 부담을 느꼈고 내내 그 일이 적절한 것이었는지 생각해 왔다. … 이 일에 대한 비판과 지적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다."며 반성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내내 생각해왔다"면서도 이날 언론을 통해 공개되기 전까지 아무런 사과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는 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제범죄에 대해 사법적 단죄가 엄정하지 못하다. 머니게임과 화이트칼라 범죄 등에 대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가벼운 형을 선고하고 쉽게 사면해주는 관행도 바뀌어야 정의가 선다.”
    - 안철수의 생각 中

    '재벌개혁'을 거론하며 젊은 세대의 지지를 얻은 그가 재벌들과 끈끈한 관계를 형성했고 재벌총수의 구명을 위해 앞장선 셈이다.

    "대한민국의 대기업들은 한국 경제에서 역할을 해 온 것은 사실이나, 그 역할과 비중에 걸맞는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지금 누구든 법을 어기면 공정하게 처벌받고,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는다."
    -7월 30일, 사과 보도자료 中-

    이에 대해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 경선캠프의 김종인 공동선대위원장은 이날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에서 "문제가 생기니 변명을 하는데 국민은 실망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

    "안철수 원장 정도의 지적 수준이면 10년 전 무엇을 했는 지 기억할텐데 모든 게 완벽한 사람처럼 처신해왔다. … 성인인 척 하는 게 곧 판명이 날 것이다."

    새누리당 최수영 수석부대변인은 "안철수 교수는 책 따로, 행동 따로 원칙으로 국민을 속일셈인가"라고 반문했다.

    "한사람의 생각과 입에서 이렇게 다른 말과 행동이 나온다는 것은 그 사람이 인식과 논리가 이중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의 이중적 잣대에 상당한 의구심을 보낸다."

    √ 재벌 친목클럽 ‘V-소사이어티’는 어떤 모임?

    서울 논현동 관세청 사거리에서 강남구청 방면으로 가다 보면 왼쪽에 낮은 건물이 하나 있다. 1층에 외국계 은행이 자리 잡은 이 건물 4층에는 특별한 ‘단체’가 자리 잡고 있다. ‘브이소사이어티’라는 ‘재벌 친목클럽’이다.

    ‘브이소사이어티’는 2000년 9월에 생긴 회사다. 벤처 거품이 내리막길을 걷기 직전 내로라하는 재벌 2․3세들과 벤처 재벌 20여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중․고교, 대학 동문 등의 인맥을 통해 서로 아는 사이였다.

    이 자리에서 재벌 2․3세와 신흥 벤처 재벌들은 ‘일종의 엔젤투자클럽 같은 걸 한 번 만들어보자’고 의견을 모았고 그 자리에서 2억 원 씩을 출자해 회사를 만들었다.

    이때 돈을 낸 사람으로는 SK그룹 최태원 회장,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 코오롱 그룹 이웅열 회장, 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 경방그룹 김 준 사장 등 재벌 오너들과 당시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휴맥스의 변대규 사장, 다음커뮤니케이션 설립자 이재웅 씨 등이었다. 안철수도 여기에 참여했지만, 그동안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

    재벌 2․3세와 함께 어울리던 이재웅, 안철수 등 벤처 재벌들도 2억 원 씩을 내놨다. 이들이 모은 42억 원은 ‘브이소사이어티’의 자본금이 됐다.

    자본금 42억 짜리 ‘투자 클럽’은 생기자마자 ‘테헤란 밸리’에서 금새 소문이 났다. 자본금보다는 여기에 참여한 회원들의 면면 때문이었다. 게다가 브이소사이어티 측이 ‘유망 벤처기업이 사업계획서 등을 제출하면 심사를 통해 회원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투자도 주선하겠다’고 밝히면서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브이소사이어티’에서 일했던 이들과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던 업체들에게 물어본 결과 투자는 드물었다고 한다. 어떤 이는 ‘대기업 총수에게 사업 아이템들에 대한 정보만 보고한 꼴’이라고 푸념하기도 했다.

    2001년 8월 말 회원은 37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1년 동안 벤처업체를 회원들에게 소개한 자리는 20번이 넘었다. 하지만 실제 ‘브이소사이어티’를 통해 이뤄진 사업은 B2B 전자상거래 업체인 ‘코리아e플랫폼’에 SK그룹과 현대산업개발, 코오롱 그룹이 투자한 것 정도였다.

    나머지는 재벌기업인 SK 케미컬과 삼양사가 섬유 사업부문을 통합해 ‘휴비스’를 설립한 것이나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코오롱 그룹 이웅열 회장, 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15.53%씩 지분을 출자해 80억 원 규모의 자동차 유통 사업체 ‘오토큐브’를 설립하는 등 ‘끼리끼리’ 사업들뿐이었다.

  • ▲ 브이소사이어티 홈페이지의 설명. ⓒ 캡쳐화면
    ▲ 브이소사이어티 홈페이지의 설명. ⓒ 캡쳐화면

    이때 회원 명단을 보면 희성그룹 구본능 회장, 권도균 前이니시스 사장, 동원증권 김남구 부사장, 경방 그룹 김 준 사장, 풍산그룹 류 진 회장,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 대유 이종훈 사장, 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 신세계 그룹 정용진 부회장, 삼양사 김 원 사장, 주성 엔지니어링 황철주 사장 등 기존 재벌 오너들과 박규헌 이네트 사장, 이찬진 드림위즈 사장, 이홍순 삼보컴퓨터 부회장, 박창기 팍스넷 사장,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주, 안철수 안철수 연구소 사장 등 ‘신흥 벤처재벌’들 뿐이었다.

    2억 원의 ‘회비’를 내지 않았다는 일반 회원 또한 강성욱 컴팩 코리아 사장, 김광태 퓨처시스템 사장, 이홍선 소프트뱅크코리아 사장 등 당시 IT업계에서 쟁쟁한 인물들뿐이었다.

    이 같은 ‘구 재벌’과 ‘신흥재벌’들의 ‘끼리끼리’는 2003년 3월 최태원 회장이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을 때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브이소사이어티’ 회원들이 구명운동을 펼쳤던 것이다. 여기에는 안철수 교수도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11년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저축은행까지 끼고 해외선물에 투자를 하며 비자금을 조성하려다 1,000억 원이 넘는 돈을 날린 사건 때 갑자기 ‘브이소사이어티’가 화제가 됐다.

    당시 최태원 회장의 돈을 ‘관리’했던 ‘펀드 매니저’는 재미교포 은 모 씨로 알려졌다. 2000년 당시 IT 업체 대표로 일하던 은 씨는 ‘브이소사이어티’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최태원 회장을 만났다고 한다.

    이후 은 씨는 2009년 외국계 캐피탈 회사로 자리를 옮겼고 이 회사의 설립자는 ‘글로벌 오퍼튜니티즈 브레이크어웨이’라는 사모펀드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해 SK텔레콤의 상반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오퍼튜니티즈 브레이크어웨이 펀드(GOBF)’에 1,251억 원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SK텔레콤은 2009년 613억 원, 2010년 578억 원을 추가로 투자해 2억 달러 투자를 모두 집행한다. 사실상 SK텔레콤이 주축이 된 사모펀드가 생긴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투자는 실패했고 최태원 회장은 궁지에 몰렸다.

    이처럼 ‘브이소사이어티’는 재벌 오너들이 ‘사업기회’를 모색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여기에 모인 회원들이 과연 ‘노블리스 오블리주’란 걸 제대로 고민했다는 흔적은 찾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