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사상 신봉 통혁당 핵심인물 신영복..여전히 反 자본주의자!
  • 문재인, 통혁당 사건 연루자 신영복 '글씨체' 사용 
      
    통혁당 지도이념은 주체사상... 申씨, 한명숙 민통당 前대표 남편 박성준 포섭했던 인물

    金泌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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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통당 대선 후보인 문재인 씨가 최근 공개한 대선 슬로건 ‘사람이 먼저다’의 글씨체가 통혁당(통일혁명당) 사건 연루자인 신영복(申榮福)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것으로 확인됐다.

    文 씨의 이번 슬로건은 광고회사 ‘더일레븐스’의 최창희 대표가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崔 대표는 2002년 韓日월드컵 당시 'Be the Reds'(미국의 Answer.com에서는 ‘Reds’를 ‘공산주의자들’로 해석한다) 등을 만든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인터넷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崔 대표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대선 슬로건에 대해 “이념보다, 성공보다, 권력보다, 개발보다, 성장보다, 집안보다, 학력보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겠다는 철학과 의지를 담았다”고 한다. 그러나 문재인 캠프의 이 같은 주장과 달리 문제의 슬로건에 사용된 글씨체를 만든 신영복 씨는 누구보다도 이념적인 인물이다.

    申 씨는 북한의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삼았던 통혁당 사건 연루자로 무기징역을 선고(1988년 석방)받았던 인물이다. 통혁당 사건(1968년 8월24일 검거)은 해방 이후 북한의 전형적인 對南 공작사업에 의해 결성된 남한 내 지하당이다. 사건 주범 김종태(金鍾泰)는 북한의 對南사업총국장 허봉학으로부터 직접 지령과 공작금을 받고 남파된 거물간첩이었다.

    통혁당은 김종태(북한 노동당 입당)를 서울시당 위원장으로 하여 김질락(1967년 4월 월북, 북한 노동당 입당)·신영복 주도의 ‘민족해방전선’과 이문규(1967년 5월4일~5월28일 월북, 북한 노동당 입당)·이재학 주도의 ‘조국해방전선’ 아래 다양한 서클·조직·학사주점 등을 조직, 공산혁명을 획책했었다. 신영복 교수의 경우 당시 육군 중위로 박성준(한명숙 민통당 前 대표 남편, 現 성공회대 교수)씨를 포섭했던 ‘민족해방전선 조직비서’ 출신이다.

  • 도서출판 ‘세계’가 발행한《공안사건기록》에 나타난 ‘통혁당 사건 인적사항 및 피의내용’ 

    ■ 통혁당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 소위 '진보 지식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박성준-신영복 등의 행적이 아래와 같이 담겨 있다. (<월간조선> 2006년 5월호 보도인용)

    1968년 검거 당시 박성준은 서울대 경제학과 4학년이었다. 그는 1968년 1심에서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고 이듬해 대법원에서 형(刑)이 확정됐다. 박성준은 대학 선배였던 신영복으로부터 포섭돼 사상교육과 학습을 받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박성준은 신영복으로, 신영복은 김질락으로, 김질락은 핵심 주범인 김종태로 이어지는 인맥 조직도를 그리고 있다.

    1966년 11월 김질락은 자신의 집에서 북괴의 이익이 되는 점을 알면서 신영복과 만나 북괴를 이롭게 하는 행위를 할 목적으로 신영복으로부터 철학 노트 1권을 받고, 육사생도 9명에 대한 교양상황과 ‘박성준을 포섭하였다’는 보고를 받았다.

    1967년 오후 3시 김질락은 잔디다방에서 신영복으로부터 ‘경제복지회 내에 있는 성원인 박성준을 조정하여 시내 각 대학생 100여 명을 규합, 7월2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명동에 집결시켜 6·8 부정선거 규탄구호를 외치면서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앞 노상까지 데모 행진을 감행했다’는 보고를 받고 신영복을 격려했다.

    통혁당 사건 당시 신영복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육사 교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이 사건의 주범들과 직접적으로 연루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간 복역했다. 신영복은 김질락 등 사건의 핵심 인물들과 자주 만나 지시를 받고, 사업 진행상황을 보고했다.

    서울大 출신으로 북한과 직접적으로 연결됐던 김질락은 신영복 등 젊은 청년을 포섭하는 일을 했다. 다음은 판결문의 일부이다.

    1966년 중순경 김질락은 서울 중구 무교동 소재의 한 다방에서 북괴의 이익이 되는 점을 알면서 김종태를 만나 그에게 ‘신영복을 포섭하였다’고 보고했고, 김종태로부터 ‘신영복에게 교양을 주어 하부조직을 하도록 하라’는 지시를 받아 反국가단체인 북괴를 이롭게 했다. 1966년 8월 서울 서대문구 갈현동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서 신영복에게 ‘육사교관과 생도를 포섭할 것’, ‘월 2~3회씩 집에서 회합할 것’, ‘각자의 활동상황을 정기 회합 時 보고할 것’ 등을 지시하고,《청춘의 노래》라는 불온서적을 제공하여 反국가단체를 이롭게 했다.

    검찰은 박성준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음모, 반공법 위반죄를 적용했다.

    당시의 검찰 공소장에는 <박성준이 사회주의·공산주의·유물론 등 사회과학 서적은 물론 北이 발행한 불온서적도 열심히 학습했다>고 적시되어 있다.

    박성준은 이 같은 책을 열심히 읽은 후 주변 인물에게 사상을 전파한 걸로 돼 있다. 그가 공부했던 책은 다음과 같다.

    「마르크스 자본론」
    「사회사상전집」
    「불란서 유물론」
    「레닌의 성과적 유물론」
    「레닌주의란 무엇인가」
    「너는 누구의 아들이냐」
    「청년의 노래」(북괴 발행)
    「중국혁명과 중국공산당」
    「공상에서 과학으로」
    「 새벽길」(북괴 발행)

    그들의 생각 일단을 아래의 글에서 엿볼 수 있다.

    <우리가 現 사회주의를 이상으로 하고 있지만 그것은 사회적으로 허용될 수 없고 후배들도 따라오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선 合法을 가장해서 동지규합단체를 확대, 現 정부에 대항하고 외세에 항거, 現 사회제도를 타파하고 사회주의 사회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방향으로 「민족적, 사회민주적, 사회대중적 사회」라는 구호 밑에 외견상 합법적으로 보일 수 있는 단체를 조직하고 동지를 규합하자. 사회주의 사회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이러한 조직은 민족해방전선(엔,이,엘)이라고 호칭하자.
    現 사회는 정치경제적으로 외세의 지배下에 있고, 경제적으로 불평등하여 대단히 모순이 많은 사회다. 자본주의 체제의 악순환을 제거하기 위하여는 사회주의 경제체제로 개혁하여야 한다.>

    통혁당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종태는 재판 과정에서 검찰의 공소사실을 대부분 시인했다. 그러나 김종태 등과 직·간접적으로 연루됐던 ‘청맥’의 주요 인물들은 자신들이 행위가 북한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1심 판결에 불복한 박성준은 항소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민족해방전선’을 구성한 바 없으며, 4·19 묘지에서 북괴를 이롭게 하는 행위를 한 사실도 없고, 그 밖에 이 사건 책자를 구입하거나 빌려 보거나, 빌려 주고, 필기시키고 한 모든 행위가 북괴를 이롭게 한 것이 아니며, 신영복을 지나치게 믿은 나머지 경솔한 소행을 하기에 이른 것이니 기독교인으로서 깊이 반성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박성준이 ‘現 사회는 사회주의 제도로 개혁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反국가 단체의 활동에 동조했다”고 판단, 원심을 확정했다.》

     

  • ▲통혁당 조직도 

    ■ 신영복 교수는 2002년 1월17일 연세대에서 민노당(現 통진당 前身) 당원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자본축적은 근본적 모순체제”, “자본주의 체제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었다. 

    “자본주의 체제, 종속적 자본주의, 천민적 자본주의가 우리나라에 언제까지 갈 것인가? 나도 몰라.
    그러나 논리적 이론적 사고를 한다면 ‘非인간적 근본적 모순구조’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중략)
    자본 축척은 근본적 모순체제다. 화(和)의 철학을 기초해서 만들어 가야한다. 억압적 구조에서 취약역량을 가지고 희망을 만들어 가야하는 것이다.
    힘들어도 샛길은 없다. 사회를 바꾸어 내자. 정말 황폐화된 인간관계 삶의 일부로서 실천해야한다. 운동의 일부가 아니라 삶의 일부로 행할 때 새로운 패러다임이 탄생할 것이다.”

    申 교수는 2003년 10월 송두율이 입국하자, ‘송두율 교수 석방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1000인 성명(2003. 10. 23)’, ‘송두율 교수의 무죄 석방을 촉구하는 사회 원로·인사 성명(2004. 3. 11)’ 및 ‘송두율석방대책위’ 고문 등으로 참여하며 宋 씨 석방투쟁의 전면에 나섰다.

    申 교수는 2006년 6월2일 정년퇴임 시 교단을 떠나는 소회를 묻자 “진보적 학풍의 성공회대였기 때문에 좌파(左派)색깔이 확실한 나 같은 사람이 안정적으로 학문에 매진할 수 있었다”면서 “학생들과 격의 없이 어울렸던 것들이 가장 큰 추억이며 퇴임 후에도 변함없이 젊은 사람들과 소통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申 교수는 또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전국교수 1000인 성명(2004. 10.27)’, ‘6.15공동선언, 10.4선언 이행 및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각계 인사 공동선언(2008. 6. 14)’ 등에 참여해 국보법 폐지와 6.15 및 10.4선언 이행 촉구에도 앞장서왔다.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 6.15공동선언 기념일에 맞추어 신영복 교수(좌측에서 세번째 인물)가 전교조 출신의 도종환 시인
    (現 민통당 의원)과 함께 북콘서트를 하고 있는 모습/출처: 신영복 교수 홈페이지 동영상 캡쳐. 



    [관련자료] 통혁당, 주체사상(主體思想) 지도이념으로 삼아

    통혁당 사건 연루자들이 인정하건 인정하지 않건 간에 분명한 사실은 통혁당 지도이념이 ‘주체사상’이었다는 점, 그리고 黨의 최고목적이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었다는 점은 엄연한 사실이다.

    ‘주체사상’이 통혁당의 지도이념이었다는 사실은 黨 창당선언문과 함께 黨의 비합법기관지였던 <혁명전선>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1. 도서출판 ‘대동’의 1989년 출간서적 <통혁당>은 68년 김종태의 통혁당에 대해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남조선의 혁명적 당”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책은 통혁당이 67년 발간한 비합법기관지 <혁명전선>을 싣고 있는데 이 중 일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 “1964년 3월15일. 역사적인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약속장소에 와서 보니 이미 김질락, 이문규 동지가 와 있었다. 신영복 동지가 들어오면서 분위기는 전보다도 훨씬 고조되었다. 金鍾泰 동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면 전원 모이셨습니다. 민족의 태양 김일성 장군께서 교시하신 주체의 당 창건 방침을 받들고, 그 사이 동지들께서 필사의 노력으로 분투하신 결과 오늘로써 우리는 통일혁명당 창당준비위원회의 결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임시투쟁 강령과 행동목표에 대한 심의에 들어갔다.

    <<통일혁명당은 민족의 태양, 김일성 동지의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지도적 지침으로 하는 한국근로민중의 전위조직이다>>...

    ▲ 어디까지나 우리 당이 민족의 태양, 김일성 장군의 혁명사상을 구현하기 위한 한국혁명의 전위당인 만큼 당원과 각계의 애국민중을 하나의 혁명전선으로 결속해야 할 것이라는 정치활동의 목표로부터 출발하여 우리 당 기관지를 <혁명전선>이라고 하면 어떤가 하고 생각합니다. 김종태 동지의 제안에 신영복 동지가 우선 찬동하였다.

    <<조국통일과 한국혁명이라는 우리 당의 과제도 함축되어 있고 통일혁명당이라는 우리 당의 이름도 반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좋다고 생각합니다.>>

    전원이 찬성하였다...철필로 긁은 등사판으로 인쇄된 수십 부밖에 안 되는 신문이었지만 한국에서 발간된 최초의 김일성주의 출판물에 접했던 순간 편집위원 전원이 눈의 잠시 뜨겁게 빛났다. 흥분하여 눈물을 머금은 목소리로 김종태 동지가 입을 열었다.

    <<동지들, 기관지 창간으로 우리들도 바야흐로 진리의 불모지인 이 한국 땅에 영생불멸의 김일성주의 사상이론을 정력적으로 보급할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 통혁당의 이름과 함께 역사에 남을 하나의 거대한 사건입니다. 우리들은 이 힘 있는 정치선전수단으로 보다 많은 김일성주의자를 육성하고 각계각층 애국민중을 하나의 혁명전선, 통일혁명의 깃발 아래 강고하게 결집시키도록 합시다!>>”
     
     


    2. 통혁당 창당선언문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한국 사회의 모순과 병폐의 근원은 美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와 후진적인 식민지 반봉건적인 사회제도에 있음.

    ▲진정한 자유와 복리를 향유하는 길은 부패 변질된 현존제도를 전복하고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새 사회제도를 수립하는 것임.

    ▲한국에서 혁명은 필연적이고 불가피하며, 한국혁명은 한국인민의 주동적 역할에 의해 수행돼야 하며, 혁명이란 반혁명세력에 대한 혁명세력의 판갈이 싸움으로 反혁명은 오직 폭력혁명에 의해서만 타도될 수 있음.

    ▲혁명의 승리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혁명역량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혁명역량을 편성, 성장 발전시키는데서 중핵으로 되는 것은 혁명의 조직자이며 향도력인 黨이 가지는 것임.

    ▲통혁당은 그 계급적 기반과 지도이념, 투쟁목적상 일체 기성 정당파 정당들과 질적으로 구별되는 새 형의 마르크스-레닌주의 黨으로 노동계급과 농민을 위시한 근로인민대중의 이익을 대변해 옹호함.

    ▲통혁당의 지도이념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現 시대와 우리 조국 현실에 독창적으로 구현한 김일성의 주체사상임.

    ▲黨의 최고목적은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며, 당면 목적은 한국에서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수행해 부패한 식민지 반봉건적인 사회제도를 전복하고 인민민주주의 제도를 건립하며 나아가 국토통일의 대업을 성취하는 것임.

    <조갑제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