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국민들 노래 중 최고를 채택‘종북진영’은 안익태 선생이 작곡한 ‘친일파 잔재’로 폄훼
  • ‘애국가’는 국가가 맞다. 1940년 상해 임시정부가 채택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채택했으며, 제헌국회의 승인을 거쳐 정부수립식에서 불렀던 ‘공식 국가’다.

    우리나라 ‘애국가’는 다른 나라의 국가와는 전혀 다르게 만들어졌다. 당초 애국가는 여러 종류가 있었다. 갑오경장 이후 각종 애국가가 나타나기 시작해 1896년에는 애국가 종류만 10여 가지에 달했다.

    당시 애국가 중 국민들 사이에 알려진 것으로는 1896년 나필균이 만든 ‘애국가’, 제물포 전경택의 ‘애국가’, 한명원의 ‘애국가’, 유태성의 ‘애국가’, 달성 예수교인들의 ‘애국가’, 새문안교회의 ‘애국가’, 최병희의 ‘애국가’, 평양 김종섭의 ‘애국가’, 배재학당 문경호의 ‘애국가’, 이용우의 ‘애국가’, 배재학당의 ‘애국가’ 등이 있다.

    지금의 ‘애국가’ 가사는 항일운동을 하던 사람들 사이에 구전된 것을 바탕으로 1907년 4절까지 완전한 모습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곡은 일제의 핍박으로 1930년대 후반부터 유럽을 떠돌았던 故안익태 선생이 작곡했다.

  • ▲ 일제 치하 우리 국민들이 부르던 애국가. '국민가'라고 부르기도 했다. 상해 임시정부 시절부터 지금의 애국가를 국가로 불렀다.
    ▲ 일제 치하 우리 국민들이 부르던 애국가. '국민가'라고 부르기도 했다. 상해 임시정부 시절부터 지금의 애국가를 국가로 불렀다.

    ‘애국가’가 국가로 된 것도 독특하다. 일반적인 국가들과는 달리 항일투쟁을 하던 임시정부가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부르던 ‘애국가’ 중 하나를 채택했다. ‘혁명정부’들이 ‘탑다운(Top Down)’ 방식으로 정하는 것과는 달리 ‘보톰업(Bottom Up)’ 방식으로 정해진 것이다.

    ‘애국가’가 처음 불리어 졌을 때는 스코틀랜드 민요인 ‘올드 랭 사인’의 곡조에 가사를 붙였다. 이를 지금의 곡조로 바꾼 게 1935년 안익태 선생이다. 안익태 선생이 만든 곡조는 미주 항일운동가들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했고 1940년 상해 임시정부도 이 곡으로 애국가를 불렀다. 1941년에는 광복군 성립식에서 공식 연주되면서 ‘국가’로 준용했다.

    우리나라가 해방된 뒤에도 국민들은 여전히 '올드 랭 사인' 곡조로 애국가를 부르고 있었다.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식에서 안익태 선생의 곡을 붙힌 지금의 ‘애국가’를 공식 연주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애국가는 최근까지도 모든 국민이 ‘당연히’ 국가로 인식되었기에 별 다른 지정 규정이 없었다고 한다. 2010년 ‘국민의례규정(대통령 훈령)’을 바꾸면서, 국민의례를 할 때는 애국가를 부르도록 지정해 ‘국가’로서의 근거를 명시했다.

    이석기 통진당 의원이 “미국에는 국가가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국가가 없다”고 말한 것은 이런 사실을 몰라서였을까. 아닌 것으로 보인다. ‘종북세력’들은 ‘애국가’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종북세력’들 사이에서 ‘안익태 친일파 설’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종북세력’들은 안익태 선생이 1942년 만주국의 한 행사에서 자신이 작곡한 곡을 지휘했을 때 그 일부분이 애국가와 비슷하다는 이유를 들어 지금도 그를 ‘친일파’로 몰아붙이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독립운동을 연구한 사람들 대부분은 ‘안익태 친일파설’을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한다. 1938년 우리나라에서 유럽으로 떠나기 전까지 안익태 선생은 일제에 저항하는 활동을 활발히 펼쳤다. 이후 ‘한국환상곡’을 작곡한 뒤 연주를 할 때마다 일제는 이를 방해했다. 유럽에서의 활동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종북세력’은 ‘사실’을 여전히 부정하며 북한과 비교한다. 김일성은 우상화를 시작하면서 자신 이외의 독립운동가는 철저히 부정했다. 항일운동의 근거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진짜 항일운동’의 증거인 ‘진짜 애국가’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종북세력들은 또 적화통일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이승만 대한민국 건국대통령을 인정하길 무척이나 싫어한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국가로서 연주된 '애국가'를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흠집을 내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국내 ‘종북세력’들은 국민의례 대신 민중의례를, 애국가 대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이다.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또한 ‘이른바 열사들에 대한 묵념’으로 대체한다.

    한편 북한은 2009년 수정헌법에서 ‘국가는 애국가’라고 명시했다. 북한의 ‘애국가’는 1946년 조선노동당이 창설된 뒤인 1947년 박세영과 김원균이 만든 곡으로 우리가 아는 노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