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화 한 통 걸었으면 될 것을, 왜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하는지 모르겠다.

    황상민 교수가 김연아 선수에 대해서 연일 밑도 끝도 없이 쏟아내는 거친 단어와 구구절절한 ‘사과했어요 시리즈 방송’을 들으면서 생기는 의문이다.

    "그래, 내가 좀 심했니?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미안하다."

    이 한 마디가 정확히 전달만 됐으면 해프닝으로 끝났을 텐데. 혹시 스물을 갖 넘긴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이 가득한 처녀가 뾰루퉁 한 채 “나 아직 화 안풀렸어요!!” 라고 쏘아부쳤다 치자. 까짓 거 한 번 더 어른이 져주면 안되나.  

    "선생님이 사과한다고 했는데, 잘 전달이 안됐나 보구나, 진짜 미안해."

  • 시작은 별거 아닌 것처럼 보였다. 황상민 교수가 5월 22일 CBS라디오 방송 ‘김미화의 여러분’에서 대담한 것이 발단이다. 황 교수는 “(김연아 선수가) 교생실습을 성실하게 간 것은 아니고요, 교생 실습을 한 번 갔다고 ‘쇼’를 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한 거겠죠”라는 말을 비롯해서 상당히 오래 동안 ‘김연아 교생실습’이야기를 씹었다.

    황 교수의 의도가 어땠는지를 떠나 제3자가 들어도 ‘연아 기분 나쁘겠다’ 싶게 들렸다. 그러자 진선여고 학생들과 교사들의 반박이 이어졌다. '연아 쌤'은 너무나 성실히 교생실습 했다고.

    김연아 선수 소속사는 ‘진정성있는 사과’를 기다리다 일주일 만에 황상민 교수를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했다. 여기까지는 좋다. 황상민 스타일이고, 김연아 스타일이니까.

    그 다음 처리방안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고소의 이유도, 추가 설명의 이유도 중심에는 황 교수가 사과했는지, 더 중요하게는 그것이 잘 전달됐는지 여부가 자리잡았다.

    김연아 소속사는 황 교수의 사과를 기다렸고, 사과했으면 그대로 넘어갔을 텐데 일주일동안 아무 움직임이 없다는 점을 들었다.

    황 교수는 충분히 사과를 했다고 설명한다. 자신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을 그만 뒀다는 점을 내세웠다. 그리고 다른 프로그램에서 미안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황 교수의 사과’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좁혀보자.

    황 교수의 사과는 형식이나 방법이 크게 잘 못 됐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을 옹호하기 위해 설명을 덧 붙이면서 더 많은 논란을 확대재생산하고, 더 거친 말로 더 많은 사람을 공격했다는데 있다.

    어느 개인을 공격했으면, 그 사람에게 직접 설명하거나 말을 건네야 사과가 될 수 있다. 황교수는 방송을 통해서 ‘김연아 선수 미안해요. 우리 참 김연아 선수 사랑해요’라고 사과했다며 왜 진심을 못 알아주느냐고 답답해 했다.

  • 하지만, 필자 생각에 이는 초점이 빗나갔다. 황 교수가 방송에서 한 모든 발언을 다 모니터하면서 들으라는 말인가? 방송을 샅샅이 찾아가면서 들어 본 다음 아, 저 말은 나에게 사과하는 말이구나! 이렇게 알아들으라는 말인가? 

    미안하게 됐다. 내 원래 취지는 그게 아니다고, 직접 전화 한 통 걸었으면 충분했을 것이다. (혹시, 진짜로 김연아를 디스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랬을지라도, 가식이라도 그렇게 전화 한 통이면 됐을 것이다.)

    황 교수는 자신이 쓴 책에 직접 사인을 해서 보냈다고 하는데, 그 책이 정확하게 전달이 됐는지, 사인 대신 미안하다는 표현을 적었는지 의문이다. 말로 하면 될 일을 왜 책으로 하나? 의아한 생각이 든다. 물론 깊이 생각하면 미안하게 느끼나 보다고 돌려 생각 할 여지는 있지만 말이다.

    언론의 인터뷰가 시리즈로 이어지다 보니 황 교수는 사태를 점점 더 악화시키는 쪽으로 몰고 갔다. 사과의 진정성이 안 느껴진다고 물어보면 ‘그러면 제가 할복자살이라도 할까요?’라고 받아쳤다. 이렇게 이상한 논리의 비약을 누구보고 알아 들으라는 말인가? 아무도 꿈에서 조차 생각 안 한 할복은 무슨 할복? 여러 방송을 돌면서 ‘인격살인’이라니, ‘주변에 있는 분들의 수준이 진짜 한심한 수준일 수도 있겠구나’ ‘(김연아 선수가) 30대 40대에 제대로 된 성인으로 성장하기에 참 어려움이 많겠구나’ 이런 막말을 계속 쏟아냈다.

    황 교수는 느닷없이 ‘학생-교수’ 틀도 들고 나왔다.

    "학생임에도 교수를 고소하는 심리 상태라면 이미 자기 기분에 따라서 조절이 안되고 주위 사람을 우습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 말이야 말로 황 교수가 자신의 심리가 조절이 안 됨을 보여준다. 수많은 사람이 듣는 방송에서, 시청자를 우습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저렇게 가볍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황‘교수’가 수업시간에 김연아 ‘학생’에게 한 말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사제관계가 아니고, 세계적인 선수와 국민들의 심리를 분석한다는 학자 사이에서 대등하게 이뤄진 일이다.

    잠깐 시선을 돌려보자.

    10년 전 오늘 (2002년 6월 13일) 주한미군 2사단 소속 장갑차가 도로를 운행하다 실수로 한국 여중생을 치어 처참하게 죽게 하는 사고가 발생했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엄청난 반미운동이 일어났다. 10년이 지난 뒤 당시 주한 미군 2사단장을 지낸 러셀 아너레이(Honore) 예비역 중장은 최근 <조선일보> 기자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한국 정서에서는 '설명'보다 '사죄'가 앞서야 한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가장 후회가 되는 부분이다."

    황상민 교수가 이 말을 귀담아 들었으면 좋겠다.

    뱉은 말이 너무 독하고 많아서, 이젠 전화 한 통 가지고는 안 될 것 같다. 하지만 수습하는 방안이 없지는 않겠다. 거두절미하고 단칼에 딱 잘라 버리는 일이다.

    연아가 그냥 “교수님 괜찮아요”라고 해 버려라. 변호사에게 고소취하를 요청하고 이것을 발표해 버리렴. 에어컨 바람처럼 아주 시원하게...아사다 마오를 제쳤듯이, 최고 점수로 올림픽 금메달 땄듯이. (아무하고도 상의하지 말고!)

    점점 더 늪에 빠져드는 교수를 학생이 구해주는 것도 보기 좋지 않을까? 이제 대학 졸업반이니 스스로 결정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