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욱과 피해여성, 성관계 전 '사전 합의' 있었나?
  • "우리 아이는 괜찮을까요? 요즘은 TV보기가 겁나요. 채널만 돌리면 험악한 얘기들이 나와서…. 아무래도 이쪽 길은 아닌 것 같아요."

    연예인지망생을 자녀로 둔 한 학부형은 "최근 연예가 성범죄 뉴스를 접할 때마다 마치 자신의 자녀가 당한 것처럼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라며 "자식을 연예계 문턱에 올려놓은 게 너무나도 후회스럽다"는 말을 꺼냈다.

    실제로 지난 몇 달 간 연예기획사 대표와 관계자들이 연예인 지망생이나 연습생을 상대로 '위계에 의한 간음(姦淫)'을 저지르는 사건이 잇달아 발생해 사회 전반에 큰 충격을 안겼다. 오디션을 빙자, 녹음실로 불러내 성추행을 하는가하면 자사 아이돌가수까지 동원해 성범죄를 저지르는 파렴치한 행각까지…, 수법과 죄질면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충격적인 사건들이 줄을 이었다.

    이처럼 각종 강력사건으로 흉흉해진 연예계에 이번엔 유명 가수가 연루된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까지 발생했다. 그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악재가 터지고 만 것. 게다가 이 연예인은 "연예인 할 생각 없느냐? 아는 기획사에 다리를 놓아 주겠다"고 피해자를 유인, 성폭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나 더욱 충격을 안겼다.

    사건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혼성4인조 룰라 출신 고영욱이다.

  • ▲ 서울 용산경찰서 전경.   ⓒ 윤희성 기자
    ▲ 서울 용산경찰서 전경. ⓒ 윤희성 기자

    ◆ 유명 가수가 미성년자를 강간? 충격!

    지난 8일 오전, 연예인 지망생을 상대로 보증금을 편취한 연예기획사 대표 P모씨의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조폭팀을 찾은 취재진은 용산경찰서에서 유명 가수가 연루된 성폭행 사건을 내사 중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곧장 현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침 용산경찰서 강력팀에는 타 언론사 기자들이 운집해 있었는데 저마다 피의자가 누구인지, 피해사실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었다. 광역수사대에서 진행한 연예기획사 대표 P씨 사건도 컸지만, 유명 가수가 미성년자를 강간했다는 뉴스는 다른 어떤 소식보다도 파괴력이 컸다.

    결국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던 경찰 측에서 내사 중인 사건 내용을 일부 전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피의자로 지목된 인물은 가수 출신 고영욱이었으며 피해 여성은 아직 미성년자였다(고교 중퇴). 게다가 고영욱이 '연예인을 시켜주겠다'며 피해자에게 접근, 자신의 오피스텔로 유인했다는 범행 자체도 쇼킹했다.  

    피의자의 이름과 대략적인 사건 개요를 입수한 각 언론 기자들은 고영욱과 소속사, 그리고 그가 출연 중인 각 방송 프로그램 제작진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 '인지' 여부를 캐물었고, 자연스레 고영욱의 하차 문제까지 거론하기 시작했다.

    또한 고영욱에게 피해 여성의 번호를 알려준 것으로 전해진 방송 외주제작사에는 각 취재진의 전화가 빗발쳤다는 후문. 사태가 확산되자 한 제작관계자는 회사에 사표를 제출하고 행방을 감췄다.

    아직 혐의 사실 여부가 밝혀지지 않은 탓에 경찰로부터 아무런 말도 들을 수 없었지만 "고영욱이 이미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아니다. 곧 소환장이 발송될 예정이다", "피해자와 대질심문을 할 예정이다"라는 다양한 기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확인되지 않은 보도와 억측이 난무하자 경찰은 어쩔 수 없이 9일 오전 공식 브리핑 자료를 배포했다. 이 보도자료에는 저간의 사건 정황은 물론, 개인 신상과 프로그램 정보 등이 소상히 기재돼 있어 눈썰미만 있으면 누구나 대상자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 ▲ 서울 용산경찰서 전경.   ⓒ 윤희성 기자

    ◆ "연예인을 시켜주겠다"며..술 먹이고 성폭행

    <미성년자 성폭행한 유명연예인 검거>

    "연예인을 시켜주겠다"고 유인, 술을 먹인 후 성폭행

    ■ 사건 개요 - 피의자(36)는 90년대 중반 유명 4인조 인기댄스그룹 OO 출신 가수이자 최근 MBC 세바퀴, 케이블TV 'OOO의 OO다' 등에 고정 출연 중인 연예인이다. 피의자는 'OOO의 OO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했던 피해자(18·여)의 촬영 분 모니터를 보고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생겨 만나 볼 생각으로 프로그램 관계자를 통해서 피해자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전화를 걸어 "연예인 할 생각 없느냐, 기획사의 다리를 놓아 주겠다"고 유인, 한 지하철 역에서 만난 뒤 자신이 연예인이라 남들이 알아보면 곤란하니 조용한 곳으로 가자며 승용차에 태우고 오피스텔로 이동, 미리 준비해 놓은 와인, 스카치, 칵테일, 매실주 등 술을 마시도록 권유해 술에 취한 피해자의 옷을 벗겨 강간(强姦)했다. 이에 피의자를 검거,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자세한 묘사를 곁들이며 피의자의 인적 사항을 간접 공개함과 동시에, 고영욱(피의자)이 미성년자에게 강간과 간음을 저질렀다는 확신에 찬 말투로 브리핑 자료를 꾸몄다.

    경찰에 따르면 고영욱은 3월 30일 오후 3시경 용산구 소재 자신의 A오피스텔 내에서 술을 마시도록 권유해 술에 취한 피해자의 옷을 벗겨 강간하고, 4월 5일 오후 9시경 피해자와 연인 사이로 지낼 의사가 없음에도 피해자에게 연인지간으로 지내자고 해 이를 믿은 피해자를 만나 종전과 같은 장소로 유인한 후 피해자를 간음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영욱을 상대로 사전구속영장을 검찰에 신청한 경찰은 피의자에게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 등)' 혐의를 적용했다.

    피의자의 신분과 구체적인 범행 묘사가 기록됐고 적용되는 법조항까지 나열된 자료를 접한 취재진은 당연히 이를 대서특필했고 대부분의 언론에서 "고영욱이 미성년자를 강간했다"는 타이틀로 기사를 내보냈다.

    그런데 순탄할 것만 같았던 경찰 수사는 검찰이 구속영장 청구를 거부하면서부터 불길한(?) 조김을 보이기 시작했다.

  • ▲ 서울 용산경찰서 전경.   ⓒ 윤희성 기자

    ◆ 검찰, "증거불충분"..경찰에 보강수사 지시

    10일 오전 서부지검은 "아직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용산경찰서가 신청한 피의자 고영욱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다시 돌려보냈다.

    전날까지 구속영장 발부를 자신했던 경찰은 검찰의 완강한 태도에 난색을 표시했다. 한 소식통은 "피의자가 성관계 사실을 시인했고,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력히 원하고 있어 영장을 신청한 것인데 보강 수사 지시가 내려와 난감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성폭행으로 인한 외상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고, 기타 진단서 등이 증거자료로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애당초 고영욱을 피의자로 몰아세우는 게 무리였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다수의 판례를 검토해 보면 각종 성폭행 사건 중 무혐의로 종결된 사건들이 수두룩하다"면서 "대개 증거불충분인 경우가 많은데 그만큼 강간 사실을 입증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고영욱이 두 차례에 걸쳐 피해자를 유린한 것으로 보고 있다. 3월 30일 벌어진 사건은 술에 취한 피해자의 옷을 벗겨 강간한 것이므로 행위 자체에 강제성을 띠고 있으며 4월 5일 두 번째 벌어진 사건은 피해자의 저항은 없었으나 연예인이라는 신분을 이용, 연예인지망생과 성관계를 맺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이라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하지만 고영욱은 경찰 진술조사에서 "피해여성이 미성년자인 줄은 몰랐다", "나에게 죄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여성이 이제 와서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상호 합의 하에 이뤄진 관계였다", "강간이 아니다"라는 항변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영욱은 파장이 불거진 뒤 소속사 홈페이지를 통해 "공론화 된 것만큼 부도덕한 인물은 아니다", "고소인이 나를 고소한 저의가 궁금하다"며 억울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이 반려되고 고영욱의 심경문이 공개되자 악화일로로 치닫던 여론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고영욱도 일종의 피해자일 수 있다는 '동정론'이 일기 시작한 것.

  • ▲ 서울 용산경찰서 전경.   ⓒ 윤희성 기자

  • ▲ 고영욱과 피해 여성이 성관계를 맺은 장소로 알려진 OO구 OO로 소재 A오피스텔 외경.   ⓒ 윤희성 기자
    ▲ 고영욱과 피해 여성이 성관계를 맺은 장소로 알려진 OO구 OO로 소재 A오피스텔 외경. ⓒ 윤희성 기자

    ◆ 고영욱-피해여성 나눈 '카톡 메시지', 대체 무슨 내용이..

    더욱이 일부 언론을 통해 고영욱과 피해 여성의 카카오톡(카톡) 메시지가 공개되면서, 고영욱의 'KO패'로 흘러가던 이번 사건이 전혀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는 분위기다.

    1차로 공개된 카톡 메시지는 고영욱이 피해 여성에게 보낸 '추파'가 대부분이었다. 고영욱은 "우리가 무슨 사이일까", "서로 호감이 있으니 좋은 관계로 지내자"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낸 뒤 피해자를 불러내 성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언론을 통해 해당 내용을 접한 고영욱은 "절대 사실이 아니"라며 억울하다는 심경을 피력했다. 한 측근은 "어디에서 이런 얘기들이 흘러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영욱은 그런 내용의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 측근은 "오히려 만나자는 의향을 먼저 보인 쪽은 여성 분이었다"며 "카톡 메시지를 보면 이 여성이 고영욱에게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조용이 만나자'는 메시지를 보낸 사실도 있다"고 주장했다.

    만일 두 사람이 이같은 대화를 나눈 게 사실이라면 "두 사람의 성관계에 강제성이 있었다"는 경찰의 판단 대신, "양자가 호감을 갖고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졌다"는 고영욱의 주장에 한층 무게가 실릴 공산이 크다.

    이번 사건에서 성관계에 강제성을 띤 케이스는 딱 한 차례다. 술에 취한 여성이 의식이 혼미해진 사이 간음이 이뤄졌다는 것. 두 번째 관계시엔 별다른 저항이 없었던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따라서 경찰은 4월 5일에 벌어진 사건은 강간 혐의가 아닌,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를 적용했다. 즉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성관계를 유도했다는 것.

    문제는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가 피해자의 '진술'과 '정황 증거' 외에는 없다는 데 있다. 만약 성관계시 피해 여성이 정신적 충격이나 외상을 입지 않았다면 사건 정황을 떠나 강간 혐의를 입증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더욱이 피의자와의 만남 전후로 호의적인 관계가 지속됐다면 사건 자체가 피의자에게 유리하게 흘러갈 공산도 있다.

    당초 피해 여성이 미성년이라는 점에서 피의자가 무조건적인 처벌을 받는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현행법상 13세 미만의 아동이 간음이나 추행을 당했을 경우엔 고소가 없거나 취소돼도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형법 제305조 미성년자에 대한 간음·추행). 한 마디로 성관계 자체가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18세 미만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양자 동의 하에 성관계가 이뤄지고, 성관계시 폭행·협박 등이 동반되지 않으며, 성관계 후 고소를 하지 않으면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 ▲ 고영욱과 피해 여성이 성관계를 맺은 장소로 알려진 A오피스텔 복도 전경.   ⓒ 윤희성 기자
    ▲ 고영욱과 피해 여성이 성관계를 맺은 장소로 알려진 A오피스텔 복도 전경. ⓒ 윤희성 기자

    ◆ 술 마시기 전 '합의'가 있었다면..?

    경찰이 고영욱에게 적용 가능한 법조항은 크게 4가지다.

    형법 287조 = 미성년자를 약취 또는 유인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형법 288조 = ①추행, 간음 또는 영리의 목적으로 사람을 약취 또는 유인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형법 299조 = 사람의 심신 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는 강간 또는 강제추행의 예에 의해 처벌된다.

    형법 302조 = 미성년자 또는 심신미약자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일단 3월 30일 벌어진 사건의 경우, 술을 잘 못마신다는 피해 여성에게 고영욱이 미리 준비해 놓은 와인이나 스카치, 칵테일 등을 마시도록 권유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후 피해 여성은 인사불성 상태가 됐고 고영욱과의 성관계가 이뤄졌다.

    미성년자인 피해 여성에게 "연예인 할 생각이 없느냐"며 자신의 오피스텔로 유인한 행동을 법조항에 엄정히 적용할 경우, '약취'나 '유인'에 대한 내용을 담은 형법 287조, 혹은 288조로 처벌이 가능하다.

    또 만취 상태까지 술을 마시도록 권유한 행위는 '심신 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 내용을 담은 형법 299조로 처벌할 수 있다.

    4월 5일 발생한 사건은 '위력에 의한 간음' 내용을 담은 형법 302조에 적용시킬 수 있다.

    그러나 경·검찰 수사 결과, "성관계 전 합의가 있었다"는 피의자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정반대의 결론이 날 수도 있다.

    만약 술을 마시기 전 합의가 있었다면 심신이 상실된 상태에 이뤄진 성관계라 하더라도 이를 위법한 행동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두 번째 이뤄진 성관계 역시 법률상 '위력 행사'로 간주하기는 힘들다는 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취재 = 조광형 기자 ckh@newdaily.co.kr
    사진 = 윤희성 기자 ndy@new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