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청춘배우로 추앙받던 신성일이 <청춘은 맨발이다>는 자서전을 팔기 위해 별 소리를 다하고 다닌다. 심지어는 어느 여자 아나운서 하고 바람 피워 아이가 생겼는데 낙태를 해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그리고 또 한다는 말이 첫 번째 책이 안 팔리는 바람에 두 번째 책은 더 잘 팔기 위해 그런 말까지 꺼냈다고 한다. 아직 결혼관계에 있는 엄앵란에게는 미안하다고도 떠들어댄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해 댄다. 가정의 달에도 텔레비전 방송에 비슷한 이야기를 하러 몇 부작으로 나온다고 예고가 되어 있다.

    참 대단한 신성일이다. 신성일은 낙태가 무엇인지 알고나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바람 핀 여자가 외국으로 가 있었고, 전화가 왔는데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신성일은 그 말에 가타부타 답변을 못했다고도 했다. 그리고 몇 년 뒤 다시 만났는데 낙태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둘이 얼싸안고 엉엉 울었다고 자기 입으로 털어놓았다. 비겁하기 짝이 없다. 낙태를 하긴 했는데 자기는 모르는 사이에 여자가 했다는 것이 아닌가? 낙태에 자기책임은 별로 없다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신성일이란 이름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말하고 싶다. 낙태는 살인이다. 그러므로 신성일은 살인자이다. 공소시효가 끝났는지 남았는지 따져보시길 바란다.

    낙태, 무슨 궤변을 늘어놓고 이상야릇한 말을 덧붙여도 낙태는 살인이다. 살인 중에서도 죄질이 아주 나쁜 살인이다.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일, 아무 저항할 힘이 전혀 없는 그 어린 생명을 움직일 수 없는 자궁이라는 울타리에 가둬놓고 죽이는 극악범죄이다. 더구나 조직적인 살인이다.

    첫 번째 범인 - 정자제공자이다.
    두 번째 범인 - 임신부이다.
    세 번째 범인 - 살인청부업자 역할을 한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이다.
    네 번째 범인 - 정부를 비롯해서 관계기관 담당자이다.   
    다섯 번째 범인 - 아뭇 소리 안 하고 묵인한 모든 사람들이다.
    아, 진짜 큰 범인은 꼭 언급해야겠다. 산아제한정책을 처음 아이디어를 내고 기안하고 시행한 사람이다.  

    세상에 이보다 더 끔찍한 조직 범죄가 있을까 싶다. 유괴살인보다 더 끔직하다. 그런데 더 끔찍한 것은 낙태 살인에 대한 무감각한 반응이다. 대한민국 사람들 정말 대단하다. 그 죄과를 어떻게 치르려는지……

    수정하는 순간부터 생명이 깃들고 몇 개월만 지나면 팔다리에 손가락까지 생기고 몸의 주요 기관이 다 생기는 것이 뱃속 생명인데, 자기를 죽이러 들어오는 의료기기를 피해서 그 좁은 뱃속에서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장면을 혹시 본 적이 있는가?

    낙태, 그 은밀한 죄악의 어둡고 침침한 죽음의 골짜기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갇혀있을까? 겉은 멀쩡해서 교육도 제대로 받았고, 남편도 있고, 자녀도 있고, 집도 사고, 차도 굴리고, 혹은 유학도 다녀 왔을 수도 있고 박사학위를 땄을 수도 있지만, 누구에게 잘 이야기도 못하고 자기만 아는 어두침침하고 음습한 살인죄를 뒤집어 쓰고 혼자 끙끙앓는 주부들 얼마나 많을까.

    아니면 그 반대일수도 있겠다. 학교를 제대로 못 다녀서, 너무 일찍 이성을 알아버려서 이리저리 살다보니, 이게 사랑인지 쾌락인지, 나를 아끼는 건지 이용하는 건지 판단도 하기 전에 덜컥 열매가 맺어져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딱한 사정이 왜 없었을까.
    낙태하기 위해 방문한 산부인과, 그곳에서 일하는 의사와 간호사와 직원들과 같은 살인집행인들 과연 그 정서가 온전할 것이며 그렇게 생긴 돈이 과연 얼마나 보탬이 됐을까?
    낙태를 한 사람들 그 마음은 온전할까? 두리번 두리번 거리면서 소곤소곤 대면서 어느 곳에 가서 내 뱃속 아이를 죽여 없애야 할 지 정보를 수집하고 음모를 꾸미고 살금살금 기어 들어가서, 의사를 만나서 상담하고 하는 그 모든 과정을 겪으면서 그 사람은 온전했을까?

    보건복지부의 관련 정책 담당 공무원들, 산부인과 관련 업무 담당 전문가들, 혼외 임신한 상대에게 떼어버리라고 말한 남자들, 혹은 말은 안 했지만 실질적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조한 남자들, 여친이 임신하자 아뭇 소리 없이 군대로 도망간 놈팽이들, 이런 사람들 마음속 온전할까?

    사람사는게 그렇지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고 하지 마시길 바란다. 낙태 살인 엄청나게 굉장히 많다. 보건복지부가 연세대에 의뢰해 지난해 가임여성(15~44세) 4,000명을 조사했다. 5년 만에 실시한 조사이다. 낙태 살인은 2010년 1,000명당 15.8건이나 됐다. 2005년 보건복지부와 고려대 의과대학이 실시한 '인공임신중절실태 조사 및 종합대책 수립'을 보면 한 해 출생아는 44만 명인 반면, 낙태 살인은 34만 2443명에 달했다. 34만명! 매년 34만명이 비명 한 번 못 지르고 죽었다. 34만명이면 하루에 931명이다. 하루에 931명! 지금 저 소리없는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 날(5일), 어버이 날(8일), 부부의 날(21일), 성년의 날(21일) 아이와 부모와 부부에 관한 기념일이 모두 5월에 들어 있다. 5월 들어 가정과 관련된 첫 번째 뉴스는 청소년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내용이었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2010년 청소년(15~24세)의 사망 원인 중 1위는 자살이었다. 인구 10만명 당 청소년 자살자수가 13명이었다. 2위는 운수사고가 8.3으로 2번째, 세 번째는 암이 3.6명이다. 2009년 우리나라 전체 자살자 숫자는 15,413명이었다. 자살률(10만명당 자살자수)은 28.4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우리나라에서 왜 자살이 많이 나타날까? 당연한 일이다. 낙태가 저렇게 많은데, 실제로 실행되지 못한 살인기도는 얼마나 많았을까? 얼마나 많은 임신부들이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병원갈까 생각했을까. 병원가서 상담받다가 돌아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친구들과 상의해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혼자서 아이를 죽일까 살릴까 고민도 많이 했을 것이다. 임신부의 생각과 정서는 뱃속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죽이려는 살의를 품은 어머니 뱃속, 도망갈 곳도 없는 그 안에서 몇 개월 동안 죽느냐 사는냐 갈림길에 놓였던 그 아이의 정서는 어떻게 형성됐을까? 편안하고 유쾌해야 할 그 자궁이라는 아기집에 사는 동안 그 끔찍한 살인의 기억에 사로잡혀 몇 개월을 보냈으니 그 정서가 온전할 수 있을까. 살 방법 보다 죽을 방법을 더 많이 생각하는 우울증에 사로잡히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처음 본 사람끼리 동반자살하는 게 그냥 저절로 됐을 것 같은가?

    이 글을 읽는 당신 마음이 불편한가? 화가 나고 힘이 쭉 빠지는가? 수백 만명은 족히 될 만큼 많은 불쌍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비명 한번 못 지르고 무덤도 없이 죽어나갔는데 불편한 정도 가지고 되겠는가?

    내 생명의 불꽃이 다 사그라져서 죽은 다음에 혹시 뱃속에서 죽인 아이를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 당신은 어떻게 하려는가? 이 가정의 달에 나는 살인자였다고 고백하고, 밤새 떼굴떼굴 구르면서 울부짖어 보시길. 그래도 안 풀리면 길거리에 가서 무릎 꿇고 내가 내 자식을 죽였다고 소리치기 바란다. 용기가 없으면, 교회가서 목회자 붙잡고 통곡이라도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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