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로 억지 누명 들이대선 안돼
  • “김백일 장군은 46만 조선족을 보호하기 위해 독립군이 아닌 마적과 맞서 싸웠다”

    “김백일 장군은 절대로 독립군과 싸우지 않았고 오히려 46만 조선족을 보호하기 위해 마적 등이 침략해오면 즉각적으로 맞서 싸웠다.”

    김백일 장군과 중학교 같은 시절 공부했던 김광옥 해군제독(예비역 해군 중장)이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의 첫 마디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내 건립된 ‘김백일 장군 동상’에 대해 김백일 장군이 친일파라는 이유를 들먹이며 철거를 요구하는 세력들의 주장에 반박한 말이다.

    만주 용정에서 중학교를 다녔던 김광옥 예비역 해군제독이 ‘간도특설대’와 ‘김백일 장군’에 대해 밝힌 내용은 이러하다.


    당시 만주지역에는 일본, 조선, 중국, 몽고, 만주족 등 5개 소수민족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합쳐져 만주국이 만들어졌다.

    이들 소수민족들은 자신들의 거주지구 보호를 위해 자치부대를 만들었는데 간도특설대는 1938년 말, 간도 조선인 치안유지 및 불순세력 퇴치를 위해 만들어 졌다. 몽고인들도 몽고인 자체 부대를만들었다.

    만주국에서의 간도특설부대는 이름만 부대였지 초기에는 총검술과 사격훈련을 위주로 하다 43년부터 남만주에 팔로군이 출현해 이들을 퇴치하는 활동을 했다. 나도 중학교 2.3.4학년때는 학교주관으로 한번씩 학생들과 함께 간도특설부대에 가서 제식훈련 및 총검술 훈련을 받은적이 있다.

    그때 간도특설대에는 일본인 고급장교 1명과 대위 1명이 부대를 통제하고 있었고, 부대원 대부분이 조선인이었으며 똑똑한 사람들이 지원을 많이 했다.

    그 지역에있는 소수민족들이 간도특설대를 싫어하고 질투를 많이 했는데 그중에서도 중국사람들은 더 심했다. 그 이유는 당시 소수민족끼리 만든 군대가 서로 총검술과 사격 시합을 했는데,  항상 간도특설대원들이 1등을 했다. 특히 북조선 지역에는 조선인 지식층들이 활동을 많이 하고 있었다.

    1932년 이후에는 만주국의 치안유지가 잘 되었기 때문에 그곳에는 독립투사들이 남아있지 않았는데, 김일성 부대(중국공산당 동북항일연군)는 활동하고 있었다.

    김백일 장군이 일본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다는 얘기를 하는데, 당시 만주국에서는 일만 잘하면 많은 사람에게 훈장과 표창을 줬다. 우리군대도 일을 잘하면 표창을 주듯이 그것이 일을 잘하도록 하기위한 동기유발 방법이었다.

    김백일 장군은 소대장과 중대장시절 부하들을 무척 아꼈다. 추운 겨울날 부하들이 장갑이 없어 고생하면 개인 사비를 털어 부하들 장갑을 사주어서 부하들한테는 욕심이 없는 장교로도 소문나 있었고 당시 부하들은 김백일 장군 같은 분이 우리나라에 3명만 있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평을 듣고 있었다.

    김 장군의 경우는 할아버지도 민족을 위해 헌신한 유명하신분이다. 그러한 가문에서 태어나 자라고 6‧25전쟁에서도 훌륭한 업적을 이룬 장군을 친일파로 매도하는 행위는 매우 잘못된 것이며, 나라를 위해 헌신한 사람을 모독하는 행위다.

    이상과 같은 김광옥 제독의 말과 함께 누란의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구한 김백일 장군을 친일파 논쟁으로 폄훼하며 동상을 훼손하고 철거준동에 입을 맞추는 행위가 다시는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 ‘친일파’에 대한 의미와 개념정립 필요

    친일파라는 말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탈한 시기에 일제에 가담하여 그들의 침략과 약탈정책을 지지하거나 옹호하고 추종한 무리를 친일파로 봐야 하는 것은 그 어느 누구도 반대의 여지는 없을 것이다.

    친일행위와 친일파의 분류기준이 모호한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친일 행위를 했다거나 한일합방 당시 고위 관직자로 있으면서 일제의 합방정책에 도움을 준 인사라면 친일파로 해도 되겠지만 창씨개명자 등과 같이 당시 절대 다수 국민이 겪어야 했던 생존을 위해 소극적으로 협력한 정도까지 친일파로 몰아세우는 것은 국민을 이간질하고 분열 시키는 행위로 봐야 할 것이다.

    특히, 김백일 장군의 가문을 보더라도 김백일 장군 조부가 건국 훈장을 받은 독립운동가 였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 김백일 장군을 친일파로 규정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실체 인식

    김백일 장군을 찬일파라고 규정한 친일인명사전을 펴낸 민족문제연구소는 좌편향 인사들과 좌익사건 연루자들이 주도하는 단체이다.

    이 연구소의 김승교 고문변호사는 대표적 친북좌파단체인 남북공동 선언실천연대(이하 실천연대)의 상임대표이며, 또한 이 연구소의 활동을 주도해온 3대 소장 임헌영(본명 임준열)은 김일성에게 조직의 결성을 알리는 편지 초안을 작성한 인물임을 주시해야 한다.

    이러한 편향된 시각의 연구진들로 작성된 친일인명사전은 신뢰성이 없는 자료에 불과하다 할 것이다.

    조갑제 닷컴에 의하면 '임준열(임헌영)은 1977.7.1경 반국가단체인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이른바 남민전)에 가입하고, 1977.10 경 ‘남조선 인민들이 자신의 손으로 혁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지식인, 학생, 노동자 등 광범위한 각계각층의 세력이 모여 민족해방전선을 결성했으며 앞으로 굳게 투쟁해 나갈 것입니다. 아낌없는 성원을 바랍니다. 사회주의국가 건설을 지향하는 이 투쟁을 당의 이름으로 굳게 유대 맺어줄 것을 당부합니다’라는 요지로 김일성에게 남민전의 결성을 알리는 서신 초안을 작성하였다는 등의 범죄사실로 기소돼 1980.5.2 서울형사 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 및 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은 바 있고, 그 외에도 한 차례 더 공안사건에 연루된 바 있다고 밝히고 있다.(Kon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