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의 心臟(심장)이 썩고 있습니다

    재미동포가 조국의 형제들에게 띄우는 글

    崔應杓 한미자유수호운동본부 상임대표


    우리의 싸움은 인간을 적대자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로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 : 12)
     
      1994년 4월 ‘문화 가치와 인류 발전’이라는 심포지엄의 논문들을 《문화가 중요하다(Culture Matters)》라는 책으로 엮어낸 새뮤얼 헌팅턴은 문화가 정치, 경제에 미치는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국과 아프리카의 가나를 그 예로 들었습니다.
     
      1960년대 초 경제 사정은 두 나라가 비슷했습니다. 그러나 30년 뒤 한국은 통상규모 세계 14위의 산업국가로 발전한 반면 가나는 제자리에 머문 상태로 1인당 GNP가 한국의 15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발전의 차이를 가져온 그 결정적 요인을 헌팅턴은 문화의 차이에서 찾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한국인들은 검약, 투자, 근면, 교육, 조직, 기강, 극기정신 등을 지켜야할 가치로 생각한 것이 가나와의 격차를 벌인 주요 원인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소중한 정신적 유산인 문화의 가치를 잃어버린 대한민국의 현 주소는 어떻습니까?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결정적 요소가 문화라는 헌팅턴의 주장이 맞는다면, 조국의 미래가 너무 어둡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지금 한국을 관통하고 있는 문화는 발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비전의 문화가 아니라 사치와 허영과 노예근성과 거지근성을 바탕으로 한 퇴폐문화와 병든 정신문화가 아닌가 합니다.
     
      거기에 고약한 김정일의 적색 바이러스에 감염돼 사이코팩스처럼 되어버린, 한마디로 모두 미쳐 돌아가는 난장판 조국을 바라보는 해외동포들의 마음은 우울하고 착잡할 뿐입니다. 이러고도 한국이 견뎌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에 미치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눈물과 땀과 피를 흘린 선열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을 얼마나 압니까? 세계평균 수준을 웃도는 생활여건을 제공해 주고 있는 대한민국의 가치를 얼마나 아는가 말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누리는 자유와 豊饒(풍요)와 평화는 결코 공짜로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거기엔 우리가 지고 온 역사의 무게만큼의 고통과 희생, 그리고 천년 미래를 설계한 李承晩 精神(이승만 정신)과 함께 대한민국 탄생의 터전을 닦으며 흘린 선열들의 거룩한 눈물과 땀과 열정이 녹아 있습니다.
     
      어찌 그뿐이겠습니까. 恥辱(치욕)의 역사지우기와 희망의 새 역사 만들기가 맞물리면서 온 국민의 가슴에 박아놓은 아픔과 恨(한)은 아직도 민족의 가슴에 풀리지 않은 채 응어리로 남아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는 치욕과 영광, 굴절과 분노, 그리고 갈등과 분열의 상처가 아물 사이도 없이 반복되는 삶과 죽음의 인간 드라마가 스며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무 거칠 것 없이 만끽하는 자유와 풍요와 평화의 대한민국은 이렇게 탄생한 것입니다.
     
      대한민국, 이 얼마나 가슴 벅차고 자랑스러운 이름인가요. 여러분이 지금 기적의 나라, 감동의 나라, 감사의 나라에 살고 있다는 축복된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여러분의 미래는 없습니다.
      “민족의 敍事詩(서사시)를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은 언젠가는 반드시 망한다”는 역사의 경고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조국의 고마움을 너무 모른 채 분에 넘치는 자유와 풍요에 취해 便宜主義(편의주의)와 刹那主義(찰나주의)의 노예가 되어 마이너스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나라는 도덕적 힘을 가진 나라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倫理的 自由와 道德的 自由의 진정한 가치를 무시한 채 방종과 사치와 허영의 자유만을 쫓는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습니다. 도덕적 힘은 윤리적 자유와 도덕적 자유를 바탕으로 해서만 얻어지는 것이니까요.
     
      자유의 가치를 바로 알고 바르게 활용하면 藥이 되고, 지금처럼 국가반역에 가까울 정도로 무분별하게 활용하면 자신은 물론 그 사회와 국가까지 병들게 하는 毒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는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에게만 적용될 수 있다”고 일러준 것 같습니다.
     
      멀리 해외서 바라보는 조국의 현실은 한마디로 정신공황 상태에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총체적인 위기상태에 놓여있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릅니다. 무엇보다도 종북, 친북세력의 勢 확장과 그들의 기세가 지금처럼 전국을 누비며 활개 치는 현상은 친북정권 10년보다 더한 것 같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해방정국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라는 것도 무리는 아닌 상 싶습니다.
     
      지금 조국은 김정일의 한반도 적화통일전선 전술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참담한 실정입니다. 100배의 국력을 가진 대한민국이 세계를 상대로 구걸하는 거지국가와 싸우면서 제대로 된 전술전력 하나 내놓지 못한 채 전쟁에서만 아니라 전투에서도 번번이 참패를 당하고 있습니다.
     
      조국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는 철없는 젊은이들과 적색 바이러스에 걸린 저질정치인과 종북, 친북세력의 정신적 각성을 위해 모윤숙 시인의 ‘국군은 죽어서 말 한다’의 詩 몇 구절을 소개합니다.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나는 조국의 군복을 입은 채/ 골짜기 풀숲에 유쾌히 쉬노라..... 나는 자랑스런 내 어머니 조국을 위해 싸웠고 / 내 조국을 위해 또한 영광스리 숨 지었노니.....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 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달라고,/ 저 가볍게 나르는 봄 나라 세여/ 혹시 네가 나르는 어느 창가에서/ 내 사랑하는 소녀를 만나거든/ 나를 위해 울지 말고 거룩한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일러다오.....물러감은 비겁하다 항복보다 노예보다 비겁하다./ 둘러싼 군사가 다아 물러가도 대한민국 국군아!/ 너만은 이 땅에서 싸워야 이긴다./ 이 땅에서 죽어야 산다/ 한번 버린 조국은 다시 오지 않으리라/ 다시 오지 않으리라.
     
      다음 세대 몫까지 빼앗아 먹겠다며 반값등록금 촛불을 들고 아까운 젊음을 불태우는 그 힘으로 조국을 위한 열정의 촛불을 드는 것이 젊은이들이 해야 할 소임이 아닌가요.
      청계천 물 오염 방지를 위해 출입을 금지 당할 정도로 추잡해 진 정치인들이 오염된 금배지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의 미래를 위해 거룩한 울음을 울어 준다면 2012년의 보장은 물론 세계일류국가의 문턱을 넘어 자유통일의 대업을 이루는 제2의 건국 주역이 되리라 믿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심장이 썩는 중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理性 보다는 感情이, 국가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영혼까지 붉은 악마에게 팔아넘길 수 있을 만큼 추락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조국의 중병을 올바로 진단할 의료진 찾기가 왜 그렇게 힘든 건가요.
     
      지금 한국사회는 이성보다는 감정이 지배하고, 공동체 이익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우선하는 역사후퇴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감정의 지배를 받으면 합리적 판단이 흐려지고 김정일 바이러스에 감염될 확률은 배가 되며, 개인의 이익이 지배하는 사회는 부패하고 파멸의 길을 가게 되겠지요. 지금 한국의 심장이 썩어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나폴레옹에게 짓밟힌 독일국민이 좌절과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독일의 대표적 知性 피히테는 독일 패망의 원인을 이기심에서 찾고 이 이기심을 새로운 국민교육으로 뜯어고치고, 이런 새로운 교육에 의해 독일이 참된 민족적 의식이 각성될 때 새로운 독일이 탄생할 수 있다고 내다보았습니다.
     
      그래서 피히테는 나폴레옹 점령 하에서 목숨 걸고 국민정신 각성운동을 벌이며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 주는 동시에 학생의 정신적 자주 활동을 자극하는 교육의 실시를 역설하면서 14번에 걸쳐 유명한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강연을 했습니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지식인의 역할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국가가 위기상황에 놓일수록 사회지도층은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을 발휘해 대중을 선도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지도층은 그 반대인 것 같습니다.
     
      피히테처럼 지식인은 국가와 사회와 일반 대중에게 길을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죽은 지식인의 사회엔 봄이 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역사를 거꾸로 돌리며 김정일에게 아첨하는 기회주의적이고 변질된 지식인이 판치는 저질 사회엔 결코 봄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한국사회가 그렇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도 2012년이 보장될 거라고 믿는다면 그것 자체가 국가 패망의 징조입니다. 36년 전의 월남패망의 비극을 기억하는지요. 월남은 힘에 의해 망한 것이 아닙니다. 월남패망 원인은 부패와 분열, 간첩과 데모, 공산당의 속임수와 베트공의 이간질, 그리고 국론 분열과 정치싸움이 국가를 패망의 길로 끌고 간 것입니다. 한국의 현실이 어쩌면 그렇게 닮았는지 섬뜩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공산통일을 이룩한 공산월맹은 “한번 반역한 인간은 또 다시 반역한다”
     는 논리를 내세워 민주를 외치며 극성맞은 데모를 벌여 월남 공산화를 도운 지식인, 학생, 종교인, 베트콩을 제일 먼저 처형해 버렸다. 이것이 공산당의 정체입니다. 김정일은 그보다 더 惡辣(악랄)하겠지요.
     
      월남패망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보트피플 116만 중 11만이 바다에 빠져 죽었고, 기회주의자 약 95만은 해외로 도망가고, 수용소에 갇힌 350만 명은 10여 년 동안 맞아 죽고 굶어 죽고 병들어 죽었다는 비극을 기억 한다면 절대 한국에서 빨갱이 노릇을 할 수 없을 겁니다.
     
      “한반도 적화통일이 달성될 때, 1천만 명은 이민 갈 것이고, 2천만 명은 숙청될 것이며, 남은 2천만과 북의 2천만으로 공산국가를 건설할 것이다”
      이런 김정일의 호언장담을 듣고도 從北勢力 편에 서서 극가를 배신한다면 온전한 사람이 아니라 정신병자겠지요. 이제 월남 패망의 비극을 교훈으로 삼자는 뜻을 이해할 줄로 압니다.
     
      불순한 세력의 속임수에 춤을 추는 반값 등록금 촛불이 또다시 국가기둥을 쥐고 흔들 기세입니다. 5천년 역사 상 최대의 사기사건인 부산 저축은행의 썩은 쓰나미도 국가전체를 쓸어버릴 태세구요. 여기에 無色無臭(무색무취)의 맥 풀린 청와대와 경쟁적으로 좌클릭에 바쁜 정치권의 난맥상은 불안을 넘어 절망에 가까울 정도인 듯합니다.
     
     이제 썩어가는 나라의 심장을 치유할 방법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피히테와 같은 지식인, 때 묻지 않은 정신과 순수한 애국심으로 낙동강 전투에 참가해 나라를 지킨 그런 학생들, 한반도 공산화의 음모를 꺾고 자유대한을 건국한 건구주역들 같은 정치인, 의지와 신념으로 세계 공산세력을 무너뜨린 레이건 같은 대통령, 독일통일에 결정적 역할을 한 동서독 종교인들처럼 양심적인 종교인, 그리고 노블리즈 오블리제 정신이 살아있는 사회지도층의 역할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가 바로 지금인 듯싶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이제 또 망가지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2012년을 잃으면 대한민국 희망이 없습니다. 36년 전 월남패망의 비극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현실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콜로서스’의 저자 니알 퍼거슨은 “현실을 바로 보면 그 속에 길이 있다”고 했습니다. 2012년을 맞는 우리의 현실을 지혜의 눈으로 꿰뚫어 보면 반드시 길이 있을 겁니다. 썩어가는 나라의 심장을 치유할 손길도 그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나라 살리는 길 우리의 현실 속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