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인터뷰] 영화 '레인보우'를 연주하는 일곱 빛깔의 비트
  • ▲ 신수원 감독ⓒ뉴데일리
    ▲ 신수원 감독ⓒ뉴데일리

    "어제 도쿄에서 와서 정신이 없네요."

    제23회 도쿄 국제 영화제에서 '아시아 바람'부분 최우수상을 수상한 영화 레인보우 신수원 감독과 주연배우들을, 기습 추위에 코끝이 시렸던 지난 2일 오후 왕십리 CGV에서 만났다. 인터뷰 내내 그들이 들려준 진솔하고 유쾌한 이야기는 어느새 기자의 양 볼을 빨갛게 물들이며 마음 한켠까지 훈훈하게 덥히는 마력을 발휘했다.

  • ▲ 인터뷰 내내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어준 '레인보우'팀ⓒ뉴데일리
    ▲ 인터뷰 내내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어준 '레인보우'팀ⓒ뉴데일리

    영화 '레인보우'는 영화 감독의 꿈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워킹맘의 이야기다. 각본, 연출, 제작을 겸한 신수원 감독의 데뷔작이다. 대학 졸업 한 직후인 1990년 첫 발령을 받은 후 약 1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중학교 사회 선생님으로 재직하던 신수원 감독은 34세에 돌연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입학해 영화를 시작한다.

    "젊지도 않은 아줌마가 영화를 하겠다고 덤비니 가족들이 좋아할리가 없죠. 원래 처음엔 시나리오 작가를 하다가 단편영화 한편을 찍고나니 영화를 꼭 찍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바로 사표를 내고 영화판으로 나온겁니다."

    영화 이야기를 하자 신수원 감독의 눈빛이 반짝 거렸다. 하지만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엔 너무 많은 변수가 있었다. 그 사실을 아는데 10년이 걸렸다.

    "처음엔 다큐멘터리를 만들려고 했어요. 엎어진 영화의 다큐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거죠. 그래서 구성안을 썼는데 그게 시나리오로 바뀌면서 탄생한 이야기가 '39살 영화감독의 실패담'이 된거예요. 그러다 원래 오랫동안 준비해오던 게 음악영화라, 결국 음악영화라는 이름을 붙여주게 된거죠."

    음악영화란 컨셉트에 왠지 밴드 활동을 했을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에 신수원 감독은 사실 연주할 수 있는 악기는 '장구' 하나라고 고백하며 웃었다.

    "음악을 정말 좋아해요, 음악을 가리지 않고 많이 들었던거 같아요. 그래서 아마 음악영화를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기타를 꼭 배우고 싶어요."

    영화 '레인보우'에서 음악은 단순히 영화의 배경에 그치지 않는다. 전체적인 이야기를 축약하며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체로 작용한다. 영화의 음악 감독을 맡은 밴드 '에브리 싱글 데이'의 리더 문성남은 올해 초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파스타'로 이미 잘 알려진 실력파 뮤지션이다. 영화 '레인보우'에서 인디밴드의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를 구상하고 있는 지완, 뮤지션의 꿈을 가지고 있는 아들 시영으로 인해 영화음악은 시나리오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였다. 에브리 싱글데이의 감성적인 음악, 신수원 감독과 문성남 음악감독이 함께 작업한 재치 넘치는 가사, 백소명의 보이스와 연주 는 환상의 조화로 영화의 매력을 한 층 더 업그레이드 시킨다.

  • ▲ '시영'역에 백소명군ⓒ뉴데일리
    ▲ '시영'역에 백소명군ⓒ뉴데일리

    영화의 메인 테마이자 엔딩곡인 '행인 3'은 영화의 내용을 압축해 보여준다. 이 행인 3을 연주한 백소명군은 영화 속 지완의 아들 시영역을 맡았다.

    첫 캐스팅 제의를 받고 "전 음악만 할거에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던 백 군은 어느새 대본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매력을 영화 속에서 마구 발산해 보는 이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다.

    "사실 전 밴드에서 기타를 치는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시영이의 배역에 제가 맞는 이미지라며 찾아오신거에요, 전 정말 음악만 하려고 했기에 처음엔 계속 갈등했죠. 음악만 하다 연기를 할 수 있을까..그런데 감독님께서 그냥 니가 있는 그대로 연기하면 돼 라고 용기를 주셔서 촬영하게 됐어요."

    이처럼 백 군이 인터뷰에 답변하는 솔직한 모습은 영화 속 시영과 겹쳐져 모두를 또 한번 뻥 터트렸다.

    백 군은 '초딩 밴드 페네키'로 예능 프로그램 '스타킹'에 출연해 유명세를 탔다. 그 후 지완의 아들을 배역을 물색하던 신수원 감독이 인터넷에 떠도는 페네키 영상을 보고 백 군을 직접 찾아가 영화를 찍게 되었다. 시니컬하고 까칠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열 다섯 사춘기 시영을 백 군은  싱크로율 100%로 영화 속에서 연기한다.

    "영화를 찍을때가 여름이어서 너무 더웠고 움직이는 것 조차 힘들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우리 영화가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감회가 새로워요."  

  • ▲ '지완'역을 맡은 배우 박현영ⓒ뉴데일리
    ▲ '지완'역을 맡은 배우 박현영ⓒ뉴데일리

    영화 레인보우의 메인 포스터의 카피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공 지완은 서른 아홉에 영화 감독을 꿈꾸며 뒤늦은 사춘기를 겪고 있는 대한민국 주부다.

    지완은 노 메이크업 주근깨 가득한 민낯은 기본, 푸석푸석한 헤어 스타일에 패션 테러리스트를 방불케 하는 내츄럴 룩으로 외모부터 남다르다. 여기에 본업인 주부의 본분을 잊은 채 한가지 일에 몰두하면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성격까지. 대체로 이상하지만 오직 '영화 만들기'를 향한 처절한 몸부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오히려 사랑스런 매력을 발산한다.

    지완 역을 맡은 박현영은 '강원도의 힘', '살인의 추억'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서 조연으로 활약해 온 실력있는 연기파 배우다. 그녀는 이번 영화에서 실제 나이를 가름할수 없는 얼굴로 미혼임에도 불구하고 과김히 망가지는 서른 아홉 워킹맘 지완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처음에 감독님이 출연제의를 하셨을 때 정말 많이 망설였어요. 사실 제가 살짝 슬럼프였는데 감독님이 딱 찾아오신거에요. 그런데 배역이 39세 주부라는 것이 너무 마음에 걸리는거에요. 출연은 해야겠는데 왜 그런거 있잖아요. 결혼은 엄청하기 싫은데 다음날이 결혼식장으로 끌려가는 신부 느낌이랄까? 제가 연기 일을 쉬면서 매일 걷던 길이 있었어요. 그 날도 별 생각없이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하는데 신호등 너머로 네 글자가 눈에 들어오는거에요 "레 인 보 우" 정말 2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걷던 길인데 그날 딱 보게 된거에요. 그래서 그냥 이건 운명이구나 하고 지완역을 맡기로 했어요."

    지완 역의 박현영은 이번 영화를 통해 빛나는 연기를 다시 한번 확인시키며 여배우로써의 매력과 진가를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실제론 너무나 소녀같으면서도 털털해 인터뷰 내내 "그 지완이 이 지완?"이라는 착각까지 들게 만들어 다음 작품 속 그녀의 모습이 기대된다.  

  • ▲ '상우'역에 배우 김재록ⓒ뉴데일리
    ▲ '상우'역에 배우 김재록ⓒ뉴데일리

    '레인보우'는 영화감독의 꿈을 향해가는 주부 지완의 이야기를 다루고는 있지만, 그 속에 얽혀 있는 인간관계와 가족에 포커싱을 맞춘다. '꿈을 찾아가는 여성의 성장기'라는 자칫 진부해질 수 잇는 이야기는 주인공 지완과 가족, 주변인물들로 인해 풍부하게 덧입혀지며 충분히 의미 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완성된다.

    수년째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빌미로 집안일은 뒷전인 지완에게 자신도 힘들다며 닥달하는 남편 상우 역을 맡은 김재록은 독특한 마스크에 개성 강한 연기로 잘 알려진 배우다.

    영화 '방문자'를 통해 인상 깊은 연기로 안정된 연기력을 자랑하며 대중들에게 점차적으로 존재감을 각인시키고 있다.

    "사실 영화 처음 제의를 받았을때는 당연히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 아내로 나오는 지완 역에 박현영씨가 캐스팅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럼 더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저와 현영씨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라 같이 연기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인지 촬영장 분위기는 너무나 즐겁고 편안했습니다."

    배우 김제록은 영화 속에서는 아내에게 막말까지 해가며 감독을 그만두라 말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화해를 통해 자상하고 따스한 대한민국 아버지의 모습을 훌륭하게 소화한다.  

  • ▲ '최PD'역을 맡은 배우 이미윤ⓒ뉴데일리
    ▲ '최PD'역을 맡은 배우 이미윤ⓒ뉴데일리

    레인보우는 감독이 되는 영화를 그려 감독을 준비하는 감독 준비생에게는 큰 힘이 되는 영화다. 엎어지고 또 넘어져도 계속 해서 키보드를 타닥거리며 시나리오를 쓰는 지완의 모습과 그런 지완을 은근히 쪼이고 압박하면서 영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힘이 되어주는 최PD. 영화는 이런 지완과 최PD의 관계를 통해 일반 대중에게 영화사라는 낯선 공간과 영화인들의 실생활을 살짝이나 엿볼수 있게 해준다. 최PD역을 맡은 이미윤은 목소리부터가 연극배우 출신임을 알려주는 명쾌하고 똑 부러지는 배우다. 연극 '버자이너 모롤로그'에서 활약해 이미 연극계에선 매력적인 연기로 정평이 난 그녀는 영화 레인보우가 자신의 대표작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저만 오디션을 봐서 캐스팅 된거에요. 감독님의 눈을 봤는데 이 감독님이면 절대 영화를 끝까지 끌고 나가시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 결심한거죠, 영화 찍는 내내 정말 한번도 배우에게 심적인 부담을 주시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맡은 최PD를 보신 주위 PD분들이 그러시더라구 너같은 PD없다고, 아 사실 제가 엄마 역을 했음 했는데…."

    그녀는 영화에 대한 무한 애정을 담은 답변으로 인터뷰를 한층 더 따뜻하게 만들었다. 이번 영화에서 지완과 묘한 긴장감을 형성해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지완의 작업을 지지하는 최PD역으로 극의 활력을 불어 넣은 그녀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 ▲ 영화 '레인보우'팀ⓒ뉴데일리
    ▲ 영화 '레인보우'팀ⓒ뉴데일리

    사실 '레인보우'는 총 예산 3500만원에 20여명의 스태프, 20회 차의 촬영으로 시작한 영화다. 저예산에 열악한 환경으로 신수원 감독은 영화를 찍으면서 정말 수많은 난관에 부딪혔다고 말한다.

    "정말 큰 모험이었어요. 예산 확보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공모에도 떨어졌죠. 점점 안되겠다 하고 있는데 한 친구가 예산을 투자하겠다 하는거에요. 정말 그때 너무 고마웠어요."

    "지난해 7월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촬영을 시작했어요. 단 하루 동안 뭐가 되든 찍자라는 생각으로 영화를 찍었어요. 영화를 찍으면서도 감독이자 제작자였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과 싸움을 했어요. 스케줄은 곧 돈 그리고 빚이었죠, 정말 작년 여름 한달은 전쟁같은 시간이었어요."

    영화를 찍으며 때론 시간과 비용때문에 포기할수 밖에 없는 상황도 수없이 발생했다. 그러나 누군가의 말처럼 포기는 또하나의 선택이었다. 중요한 것에는 힘을 주었으나 조금 덜 중요한 것에는 힘을 뺐다(신수원 감독은 '사실 덜 중요한건 없었지만' 이라고 덧붙였다). 20회차 촬영으로 장편을 찍을 때 어쩔수 없이 버릴 것과 가져갈 것을 선택해야 했다.

    "8월 30일 마지막 촬영을 했어요. 큰 사고 없이 촬영을 마칠 수 있었던 점과 절 믿고 끝까지 따라와준 배우, 스태프들이 감사해요."

    신수원 감독은 말한다.

    "세상엔 성공 스토리가 넘쳐나요. 항상 성공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주를 이루죠, 그런데 사실 현실에선 성공하는 사람이 거의 없잖아요. 이 영화는 실패담이에요. 제대로된 실패담을 만들고 싶었어요."

    영화 '레인보우'는 뜻대로 되지 않았을때 우리가 마지막까지 버리지 말아야할 소중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상의 수많은 루저들에게 진짜 위너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영화 레인보우는 오는 18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