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에 서면 왜 슬퍼지는가?"

온종림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09.12.01 14:25:37

광화문 네거리에 가면 왜 허전해지는가? 
광화문 일대가 재개발 태풍을 맞으며 맛집들이 사라져서만이 아니다. 


▲ 광화문 광장은 뭔가 부족하다.ⓒ 뉴데일리

이것도 광장일까. 대리석 깔았다는 도로에서 재깔거리는 자동차 바퀴 소음은 왜 이리 시끄러운지. 광장이 아니라 삭막하고 거대한 중앙분리대 같다. 잡다한 공사판 같은 분위기, 걷다 보면 말들이 많다. 세종대왕이 ‘화장’을 하신 것 같다는 말도 들리고 뭔가 어색하고 낯설다는 느낌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한 다혈질 택시기사는 “아니, 이렇게 하려고 그 많은 돈 쳐들였냐”며 열을 올린 적도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첫 개방 때는 인파가 몰리더니 요즘은 부쩍 줄었다. 날씨 탓도 있겠지만 아예 썰렁한 때가 많다. 시선 처리가 안 된다. 광장이 나를 말없이 바라본다는 느낌이다. 이럴 때 사람은 슬퍼진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막연한 시선은 부재(不在)를 의미한다. 또 덧없는 기다림이기도 하다. 부활의 ‘네버엔딩스토리’를 듣는 느낌이다. 그 풍채 좋은 은행나무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가 광화문에 대한 ‘아주 아주’ 많은 국민들의 ‘뭔가 서운함과 불편함’의 정체를 한 마디로 설명해줬다. ‘인터랙티비티(interactivity)’의 결여다. 미디어를 다루는 동네에선 양방향성 또는 쌍방향성이라고 번역하는데 철학을 하는 동네에선 뭐라 번역하는지 모르겠다.

박 교수는 서울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사르트르의 '집안의 백치'를 연구한 '비현실의 미학으로의 회귀'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선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한 그는 '싸르트르의 실존주의'를 펴낸 뒤 싸르트르에서 미셸 푸코로 지적 관심을 돌린다. 그는 1979년 푸코의 '성의 역사 제1권, 앎에의 의지'를 '성은 억압되었는가?'라는 제목으로 번역해 한국에 푸코를 가장 먼저 소개했다. 이후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비정상인들' 등을 번역해낸 국내에서는 푸코 연구의 1인자로서 인정을 받는 학자이다.  사르트르와 푸코에 관한 자신의 글들을 모아 사이트(http://www.cjpark.pe.kr)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박 교수가 1990년 번역출간한 앙리 르페브르의 '현대세계의 일상성'은 사회주의 변혁이론에만 경도되어 있던 젊은이들에게 처음으로 현대세계를 지배하는 일상성의 문화에 대해 일깨워준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일상성 문화의 대표적인 광고가 단순한 상품 홍보가 아니라 현대인의 의식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이며 미학적 1차 소비재임을 예고하고 진단하는데 일조했다고 자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박 교수는 시카고 중심가의 밀레니엄 파크와 새 단장한 서울 광화문 거리를 비교한다. 
짧게 설명하면 밀레니엄 파크는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과 녹색 개념을 적용했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 옥상 정원이기도 한 밀레니엄 파크는 야외음악당이며 어린이들이 온갖 놀이 도구들을 가지고 마음대로 놀 수 있는 지붕 덮인 넓은 공간, 1천명의 시민 얼굴 파노라마 같은 최첨단 피라미드 분수 거울등 참여성을 높인 세심한 배려가 잘 배치된 유저 프렌들리(user freindly) 공간이란다.

그러면 우리 광화문은?


▲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 ⓒ 뉴데일리

박 교수는 “꽃의 카페트를 만들었다는 광화문 광장에서 서울 시민들은 자기 혹은 자기 이웃이 거기에 참여했고 또 참여하고 있다는 어떤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꽃의 카펫이 아름답기는 그림엽서에 한 번 실리면 그만이란다. 그리고 “광화문 광장을 설계한 사람은 누구인지, 그 디자인 개념은 무엇이며 엄청난 예산은 어디에 다 썼는지 알고 싶다”고 화를 낸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박 교수는 게다가 “구상 단계부터 시위를 걱정했다는 오세훈 시장의 말을 들으면 디자인 이념이 오로지 시위 방지에 있는 듯한데 궁색하기 짝이 없다. 앞으로 10년 뒤 혹은 백년 뒤까지 시위만 걱정하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사회의 미래란 말인가”라고 묻는다. 하다못해 친근한 현대사의 상징물 하나 없는 옛날식 마차시대의 돌밭 같은 공간, ‘인터랙티비티(interactivity)’는 단순히 디지털 용어만이 아니고 현대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중심개념이 되었는데 광화문 광장은 구태의연, 초등학생 교과서 수준의 일방적인 볼거리 제공에 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박 교수는 안타까워한다.

‘인터랙티비티(interactivity)’처럼 우리의 일상에서 자주 쓰는 단어들이 있다. 아우라, 키치, 시뮬라크르, 해체 등등... 자주 쓴다는 얘기는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정작 이들 단어들의 정확한 뜻을 아는 이들은 드물다.
예를 들어 언론정보학의 한 부문인 정보화사회론에선 포스트모던이며 데리다, 케네스 볼딩이며 푸코까지 다 들먹여진다. 강의도 듣고 발표도 여러 차례 했다. 그러나 누가 포스트모던에 대해 설명하라면 ‘지식인’에서 찾아보라고 대답할 것 같다. 평소 누구나 안다는 듯 아무런 설명 없이 쓰는 이런 용어들을 우리는 ‘막연히’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아주 심하게 막연히.
우리가 ‘아주 심하게 막연히’ 아는 척 하는 이런 단어들과 궁금증을 박정자 교수가 단 칼에 풀어준다. 뉴데일리에 연재했던 ‘노마드 강의’를 출판사 기파랑을 통해 ‘마이클잭슨에서 데리다까지’라는 이름으로 펴냈다.


▲ ‘마이클잭슨에서 데리다까지’ ⓒ 뉴데일리

개념어 사전 같은 인문학 입문서는 아니다. TV 드라마 ‘미워도 다시 한 번’이 나오고 마이클 잭슨의 ‘빌리진’과 ‘스릴러’도 등장한다. 송강호는 왜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에서 성기 노출을 했을까? 이런 일상의 사건들이 박 교수에 의해 최신의 미학 이론으로 설명된다. 그래서 ‘일상의 미학, 미학의 일상’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박 교수는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면서 가장 바탕이 되는 개념에 대한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이 없다는 안타까움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라고 말했다. 아주 쉽게 일상의 예를 통해 잘 머리에 녹아들지 않는 개념들을 설명하려 했다는 얘기다.

책에는 여러 가지 미학이론이 등장한다.   
신종 플루 초기 단계에서 중국 등 일부 국가들이 보여주었던 과도한 대응에서 박 교수는 미셸 푸코가 말하는 생체 정치학 이론을 떠올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 기간 중에 보였던 비이성적 대중의 쏠림 현상에 대해서는 냉철한 인식의 눈을 가리는 신화화 현상을 경계하면서 롤랑 바르트의 신화학 이론과 그 토대가 되는 구조 언어학 및 기호학 이론을 소개했다. 박 교수는 "신화는 사람들의 이해를 구하는 듯하면서 사실은 무섭게 강요한다"며 "문제는 강요당하면서도 강요당한다는 의식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반복성, 중독성의 문제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신화는 누군가의 가치가 거기에 투입된 가치체계인데, 신화의 소비자는 그것을 사실체계로 간주한다"며 "신문 독자 혹은 TV 시청자로 하여금 순진무구하게 신화를 소비하도록 하는 것은 이처럼 신화가 가진, 소위 역사의 자연화 기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서울 근교의 러브호텔이나 웨딩 홀의 건축 양식으로 굳어진 서양 성(城) 양식의 모방에서 키치 현상을 찾아하고, 현대 미술이 전반적으로 키치의 미술임을 확인하기도 한다.
그리고 소녀들의 동화로 알려진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박 교수는 이 동화에서 플라톤의 생성 이론, 더 나아가 들뢰즈의 의미 이론이 감춰져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소녀들의 동화가 아니라 고도의 철학 동화라는 것이다.


▲ 르네 마그릿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 뉴데일리

박 교수는 “현대라는 사회를 해석하는 독특한 방법을 독자들에게 가르쳐주기 위해 이처럼 다양한 주제, 다양한 접근의 방법을 썼다”고 말했다.
그는 “독자들, 특히 공부하는 독자들은 이론과 용어의 개념을 명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정확하지 않은 개념은 혹세무민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계했다.

박 교수는 벨기에 출신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릿트(Rene Magritte)의 그림을 미학으로 해석하는 책을 준비하고 있다.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 작가와 그림을 통해 또 어떤 이야기가 그려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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