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준호(명지대학 북한학과 초빙교수)
    지난 10년은 대북정책에서 대한민국정체성의 위기로 점철된 세월이었다.
    김대중정권에선 이나라 고관을 지내다 배신하고 북으로 간 자의 부인이 제1차 이산가족상봉 북측 대표단장으로 와도 항의 한번 하지 않았고, 북이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은 대한적십자총재와 통일부장관의 교체를 요구하자 두말없이 교체했다.
    자신들이 그토록 ‘역사적’이라고 강조하는 6.15 남북공동선언에 북의 연방제 논의 공간을 열어줌으로써 이 조항이 ‘자유민주주의를 기조’로 한 우리헌법의 통일조항에 위배된다는 시비가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노무현정권도 마찬가지였다. 10.4 공동선언에서 무려 50조원이 넘는 경제협력과 지원을 약속했으면서도 정상회담에서 우리의 안보에 치명적인 북의 핵개발 문제를 따지지 않았으며, 북의 핵개발은 ‘자위용’이라며 오히려 미국을 설득하려 했다. 국민들이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으면 김정일과 인사에서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악수한 국방장관에게 박수를 보냈겠는 가.
    지난 정권들의 남북관계는 북은 주인이고 남은 ‘종’이나 다름없었다. 이들정권은 햇볕정책으로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겠다고 큰 소리쳤지만 그동안 69억5950만달러(8조6800억원)라는 천문학적 현금(29억222만달러)과 현물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변화는 고사하고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로 자신들의 독재체제만 강화시켜줬다.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러한 잘못된 대북정책에 대한 반성과 극복의지에서 출발했다. 그속에는 국가 정체성을 훼손하면서까지 북한과 거래하지 않겠다는 신념이 깔려 있다.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을 한마디로 말하면 잘못된 북의 행동에 대해 지금까지처럼 보상하지 않고 상호주의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상호 호혜적인 입장에서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기계적인 상호주의가 아닌 유연성을 갖고 북한을 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명박정부가 공식적으로 표명한 대북정책 ‘비핵 개방 3000’은 너무 경제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가 비판이 있긴 하지만 상호주의의 다른 표현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하고 중국과 같은 개방정책을 취하면 10년내에 북한주민 소득을 3000달러로 올려 주겠다는 것이다.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비핵화’와 ‘개방’의 전제조건을 명시함으로써 핵문제를 외면하던 김대중-노무현정권과의 차별성을 뚜렷이 했다. 시간이 걸리지만 실질적이고 본질적인  문제해결방식이다.
    이명박정부 대북정책의 또 다른 축은 국제공조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주변국은 물론 유엔과 공조체제를 강화해 북한핵을 포기토록하고 북한변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이명박대통령의 그간 어록을 보면 이러한  인식이 잘 들어 난다.
    “(개성공단에 대한)북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 들일 수 없다. 북이 계속 무리한 요구를 하면 개성공단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릴지 현재로선 대답할 수 없다”<자난 6월 한미정상회담 로즈가든 기자회견>
    “지난 10년간 김정일에 갖다 바친 천문학적 돈과 물자가 핵과 미사일 개발에 사용됐다는 의혹이 있다. 천문학적인 물자와 돈을 (북에) 지원해 준다고 (한반도)평화가 온다고 생각하지 않는 다”<유럽방문중 유로뉴스와 인터뷰>
    “(북한이) 남쪽사회를 분열시켜 국력이 모아지는 것을 방해하려는 (북측의)시도는 계속 될 것인 만큼 이에대한 대책을 강구하라”<2008.8.18 청화대 국무회의>
    “과거와 달리 위협적인 (북의)발언 때문에 북한을 도와 주고 협상하는 것은 앞으로 없다” <2008.4.15 한미정상회담 참석차 방미중 열린 교포세미나에서>
    “우리는 언제나 대화 할 준비가 돼 있고 식량지원등 인도적 측면에서는 다른 것과 연계하지 않고 지원할 자세는 되어 있으며 북한 미사일 발사에 군사적으로 대응하는 데 반대한다”<영국에서 열린 G20정상회담발언>
    “민족만을 앞세운 좁은 시야로는 세계속에 대한 민국을 만들 수 없다. 우리는 세계를 지평으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를 써야 한다”<2009.8.15경축사>
    대북정책은 이러한 기조위에 추진됐다.
    작년 7월 금강산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군 초병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자 북측에 사과, 진상조사,재발방지를 요구했으며 북이 거부하자 금강산관광을 중단시켰다. 김대중정권때는 서해교전이 일어나 우리장병이 죽어나가는데도 금강산관광을 계속 했다. 국민의 안녕을 무엇보다 우선 시킨 조치였다.
    또 곡절이 있긴 했지만 북이 ‘전쟁선포’로 간주하겠다며 끈질기게 반대하던 PSI(대량살상부기확산방지구상)에도 가입했다.
     북한인권개선에도 적극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전임정부들은 유엔의 북한인권개선결의안에 기권하거나 불참했지만 공동발의국이 되어 이 결의안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냈다.
     북의 반발과 협박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현정부 출범 1년동안 북의 선전매체들은 이대통령을 2390차례에 걸쳐 직간접으로 비난했으며 이대통령을 구체적으로 거명한 것만도 243회에 달했다.
    지난 1월17일엔 북한 인민군총참모부 대변인 명의로 ‘대남전면대결태세’를 선언하는 성명을 발표했으며 그달 30일에는 조선노동당의 대표적 대남기구인 조평통은  ‘정치 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관련된 모든 합의사항 무효’를 선언했다.
    또 개성공단을 인질로 잡고 휴전선 통행을 차단하거나 제한했으며 토지사용료 추가요구와 북한근로자 임금인상등 협상관례에 어긋나는 갖가지 조건을 내걸며 남한을 괴롭혔다. 급기야는 현지주재 현대아산직원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체포해 강제 억류했다.
    이런 힘든 상황에서도 정부가 원칙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평가할 만하다.
    북은 자신들의 온갖 협박과 조치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반응이 달라지지 않자 이번 8.15를 전후해 태도변화를 보이고 있다.
    우선 그동안 남측의 석방요구에 ‘조사 중’이라며 뒤로 미루기만 하던 현대아산직원 유성진씨를 136일 만에 풀어줬다. 미국 여기자 2명에 이은 유씨 석방은 정부가 그간 남북접촉에서 유씨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해 협상한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북의 2차 핵실험과 미사일발사이후 효과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국제사회의 제재로부터 벗어나려는 의도 때문이다. 자신들이 국경 침입죄로 12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한 미국 여기자 2명을 석방함으로써 미-북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유 씨 석방으로 남북대화분위기를 조성해 실익을 챙기겠다는 속셈이다.
    이번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이대통령이 제시한 북한주민의 삶 향상을 위한 국제협력 프로그램과 5대 북한개발프로젝트 및 남북간 재래식 무기감축을 골자로 한 신 한반도평화구상이 북의 핵무기포기를 전제로 하고 있는 데도 종전과 같은 비난 대신 대화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것은 이런 맥락 때문이다.
    그러나 대화제의 방식은 과거의 잘못된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김정일은 평양을 방문한 현대아산 현정은 회장과의 면담을 통해 5개항을 합의했다. 금강산관광재개 및 비로봉 관광시작, 군사분계선 육로통행등 원상회복, 개성관광재개 및 개성공단사업 활성화, 백두산관광시작, 금강산에서 이산가족상봉행사 등이다. 대부분의 내용이 정부당국과의 협상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데도 김정일이 선심 쓰듯 민간기업 회장에게 약속함으로써 정부당국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현재로선 북의 진정성이 불분명하다. 남한정부 흔들기인지, 어물쩍 넘어가면서 금강산관광 등을 재개해 달러를 챙기려는 것인지 또는 현재의 제재국면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남한과의 실질적인 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는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 같다.
    정부는 일단 북의 제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우선 이산가족상봉행사를 추진하기로 했다. 대한적십자사는 곧 올 추석에 금강산에서 이산가족상봉행사를 갖자고 제의할 예정이다. 나머지 항목 중 당국간 협의가 필요한 것은 단계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앞으로 있을 당국 간 협의과정은 이 정부 대북원칙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남측이 박왕자씨 사망사건에 대해 진상조사 사과 재발방지를 조건으로 내 걸고 있는 금강산관광재개 경우 북측은 김정일이 현정은 회장에게 한 “앞으로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란 말로 적당히 넘어가려 할 것이다. 이를 받아주면 전임정부들처럼 남북문제주도권은 북으로 넘어가게 된다. 현 정부가 그동안 국민에게 여러 차례 약속한 “잘못된 행동에 대해 보상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무너진다. 금강산관광재개를 하려면 명시적인 북의 조처가 필요하다. 동시에 유 씨와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구체적이고 자세한 신변안전보장규정이 마련돼야한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남측근로자나 관광객을 억류해도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는 현재의 신변안전보장규정은 휴지나 다름없다.
    또 금강산관광대금이 북한 핵개발에 전용돼다는 의혹이 있는 만큼 앞으로 관광대금은 현금이 아닌 현물로 주는 방식을 추진해야 한다. 금강산관광뿐 아니라 개성공단관광 등 모든 관광에 적용해야 한다. 유엔안보리 결의 1874호의 주요내용중 하나가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이고 거기에 더하여 미국은 별도로 달러가 북한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차단하고 있는 마당에 현금을 주는 방식은 지양해야한다.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다른 축인 국제공조는 어느 때보다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있다. 국제공조에서 가장 중요한 미국과의 관계는 이명박정부가 ‘물샐 틈 없는 공조’라고 자평할 정도로 돈독하다. 지난 6월 한-미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북핵 폐기를 위한 대북압력에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했으며 한미동맹을 기존의 군사동맹에서 벗어나 정치 경제 사회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포괄적이고 전략적 동맹관계로 발전시키는 한-미동맹공동비전을 채택했다. 이에는 미국이 유사시 핵우산은 물론 재래식 무기로 한반도방위를 약속하는 ‘확장된 억지력’이 포함돼 있으며 논란이 되고 있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따른 한-미연합사해체문제도 ‘기존합의를 존중하되 한반도 안보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과 한국군의 방위능력 향상 및 준비태세를 점검하면서 전작권 전환을 추진’하기로 해 재논의 여지를 남겨 놓았다. 특기 할 것은  남북통일 지향점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통한 남북통일로 명시함으로써 양국간 가치동맹을 명확히 했다는 점이다. 전임정부들 경우 우리에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한민족공동체동일방안이 있는데도  북한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공개적 언급자체를 회피했으나 현 정부는 우리자체는 물론 미국과의 동맹가치로 이를 격상한 것이다.
    또 유엔 안보리제재안 1874호를 채택하는 과정에서도 우리의견을 적극 반영했으며 G20의장국으로 활동함은 물론 일본 중국등 주변국과의 관계가 원만하다. 글로벌 정신과 실용주의에 입각한 이대통령의 외교스타일이 각국의 호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 성공여부는 상호주의를 통한 대북주도권을 장악하고 현재의 견고한 국제공조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북이 ‘돌이킬수 없는 핵포기’약속을 받아내고 협상테이블에 앉힐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가 주도권을 잡지 못하면 잘못된 행동에도 보상하는 과거의 패턴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으며 북의 장단에 놀아나는 남한내 좌파세력들이 이명박정권퇴진등을 요구하며 나라를 난장판으로 만들 우려가 있다. 이들에 대해서 엄격한 법집행이 필요하지만 주도권이 북에 있는 한 법의 효용성이 얼마나 발휘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또  국제공조가 깨어져 한국을 따돌리고 미북대화가 이뤄지면 우리는 ‘창밖의 남자’가 되기 십상이다. 북이 통미봉남정책으로 회귀하고 우리국가의 사활이 걸린 문제에 발언권을 행사할 기회도 봉쇄된다.
    지난 94년 1차핵위기 때 이른바 제네바 어그리맨트(geneba agrement)합의과정에 우리는 전혀 참여하지 못하고 거기에 필요한 경수로건설비용만  사실상 다 부담했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