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5일 라디오 및 인터넷 정례연설에서 언급한 '근원적 처방'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연설에서 "민심은 여전히 이념과 지역으로 갈라져 있고 권력형 비리와 부정부패는 끊임없이 되풀이 된다. 상대가 하면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정쟁의 정치문화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뒤 "이런 고질적인 문제는 대증요법보다는 근원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한 이 대통령은 즉시 "현재로선 개각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조기개각설을 일축했다. 또 20일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와 회동을 갖고 "국면전환용 개각은 하지 않겠다"고 거듭 밝혔다. '깜짝쇼'와 같은 개각, 즉 대증요법은 쓰지 않겠다는 뜻을 재차 확인한 것이다.

    "귀국해서도 많은 의견을 계속 듣고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를 판단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는 이 대통령의 처방은 '개혁'과 '민생' 두 가지 코드로 귀결됐다.

    ◆ '파격 인사' 배경은 쇄신과 개혁…"조직 변화 줄 필요 있다"

    이 대통령은 21일 신임 검찰총장에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 국세청장에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을 각각 내정하는 인사를 전격 단행했다. 천 내정자는 사시 22회 출신으로 임채진 전 검찰총장(19회)보다 세 기수나 아래다. 뒤이어 검찰내 선배 기수의 연쇄 사퇴가 진행되면서 대대적인 인적쇄신을 예고했다.

    청와대는 "변화하는 시대상황에 맞게 검찰분위기를 일신하고 법질서 확립에 대한 확고한 소신을 바탕으로 검찰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미래지향적인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섬기는 리더십을 갖춘 적임자로 판단됐다"고 천 내정자의 발탁 배경을 설명했다.

    국세청장 인선에서도 이 대통령의 개혁 의지가 읽힌다. 당초 이 대통령은 참모진에 외부 인사 물색을 지시, 과거 비리로 얼룩져온 국세행정을 근본부터 변화시키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백 내정자는 이화여대 교수 출신으로 국세청 재직경험이 없는 철저한 외부인사다. 지난 3명의 내부출신 국세청장이 모두 불명예 퇴진했다는 점에서 외부인사 기용을 통해 국세행정의 개혁을 이끌어내겠다는 복안이다. 청와대가 백 내정자에게 기대하는 바 역시 "국세행정의 변화와 쇄신"이다.

    이 대통령은 22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조직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인사를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검찰을 향해 "검찰은 법치를 확고히 지켜나가면서도 기존 수사관행에 무엇이 문제가 있었는가도 차제에 되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으며, 국세청에도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국세행정 개편에 대해 충분히 논의를 해 제대로 된 개혁이 이뤄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 ▲ 이명박 대통령이 20일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와 여야 2당 대표 회동을 갖고 정치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뉴데일리 <=청와대 제공>
    ▲ 이명박 대통령이 20일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와 여야 2당 대표 회동을 갖고 정치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뉴데일리 <=청와대 제공>

    ◆ 수석비서관회의, 수요일→월요일 로 앞당겨 '선제적 정책 대응'

    수석비서관회의는 과거 수요일에 열리던 것을 월요일로 앞당겼다. 청와대 참모들이 정책의 중간 점검 차원에서 벗어난 선제적 대응을 강조한 이 대통령의 주문에 의한 것이다.

    22일 회의에서는 이 대통령의 PI(President Identity)가 집중 논의됐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이 대통령의 PI에 변화를 주기로 했다"면서 "좋은 것은 강화하고 부족한 것은 보충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만기친람(萬機親覽)형 업무 스타일과 참모진의 나열·망라식 보고 방식을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바꾸기로 했다.

    '부자 정권' '공안 통치' 'MB 독재' 등과 같은 일부 세력의 구호에 끌려 다닐 것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홍보 대책에 변화를 주고 대국민 이미지를 쇄신, 능동적이고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2시간 가량 진행된 회의 끝에 이 대통령의 이미지는 '친서민 대통령'으로 방향이 잡혔다. 이 대변인은 "정부 출범 이후 서민에 대한 배려가 꾸준히 지속돼왔음에도 이미지와 감성적 공세와 홍보 부족 때문에 제대로 반영이 안된 측면이 있었다"면서 "좀 더 친서민 행보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도 회의에서 '마이크로 크레딧'(Microcredit, 서민과 빈곤층을 위한 무담보 소액신용대출)을 언급하며 "서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정책을 적극 도입해 활용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상황이 급박한 서민들에게는 몇백만 원이 중소기업에 수억 원을 대출해 주는 효과를 내는 것"이라며 서민지원 의지를 강조했다.

    ◆ MB 'PI' 재정립, '친서민 대통령'…스킨십 강화로 '정치 복원'

    이 대통령의 친서민 행보는 '정치 복원'과 괘를 같이 한다. 이날 회의에서 정치권, 종교계, 언론계 등 여론 주도층과의 회동을 통해 이 대통령의 소통을 강화하고 30-40대 샐러리맨, 젊은층과의 스킨십도 넓히기로 의견을 모았다. '여의도 기피'에서 탈피, 정치 현안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사회적 공감대 형성에 참여하겠다는 뜻이다.

    이 대변인은 "회의에서는 비정규직 대란이 예고돼있는데 입법이 늦어지고 있으며, 시급한 민생관련 경제살리기 법안은 처리가 돼야한다는 점에서 걱정이 많았다"면서 국회를 겨냥했다. 또 "특히 미디어 관련 법안들은 여야 대표가 합의했던 대국민약속이란 점에서 여론조사 등을 이유로 야당이 처리를 거부하는 부분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고 전했다. 회의 도중에는 '4월에는 미루고 5월에는 놀고 6월에 싸우는 국회가 돼서 되겠나'는 한 언론 사설이 거론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의 '근원적 처방'은 쇄신과 개혁을 목표로 한 '파격 인사', '친서민 대통령'으로의 이미지 강화, 그리고 '정치 복원'을 향한 소통 확대로 연결되고 있다. 국정운영에 있어서 큰 틀의 변화로 읽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