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륵보살이 농부가 물을 대려는 논 한가운데 엉거주춤 서있다. 1969년 경주다.

    욕심스레 천하대장군 장승이 다섯 개나 나란히 선 산마루를 오르던 아낙은 다리도 쉴 겸 털퍼덕 맨땅에 앉아 버선을 고쳐 신는다. 1972년 경기도 양주.

    수몰로 지금은 볼 수 없는 경북 안동군 예인면 풍경엔 2층짜리 정자가 우두커니 담겨있다.
    1970년대 우리 흑백 모습들이다.

    돈 버느라 땅 파느라 간첩 신고하느라 숨 가빴던 1970년대의 사건 현장을 달리던 사진기자는 이제 백발이 됐다. 전시장에 내걸린 그의 흑백 작품과 닮았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사진기자를 15년 하고 미국으로 간 그가 돌아왔다. 1967년부터 찍은 작품 139점과 함께 왔다. 그리고 그 139점 대부분은 우리가 다시 못 볼 우리 풍경들이다. 외국에 그 모습들 버려두기 아까워 한미미술사진관에 모두 기증했다. 

    우리 삶의 풍경이고, 자기 삶의 전부일 작품일 터인데 큰 용기를 냈다. 우리 가슴속 켜켜이 쌓인 그 풍경들은 4월 4월 18일까지 송파구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 20층 전시장에서 전시된다.

    시대의 기록은 냉철하다. 게다가 사진기자의 시각이니 예리하다. 하지만 작품 앞에 서면 한없이 편하다. 나이 들으나 젊으나 한국 사람들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전시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