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병은 회장이 설명하는 동의대 사태 일지 

    총학생회 간부 등 50여 명이 1989년 3월 21일부터 신입생 부정입학 진상규명 요구 총장실 점거농성.


    파출소에 화염병 50여개 투척, 쇠파이프로 경관 폭행

    -5월 1일
     

    오후 2시 30분 경 노동절 기념 청년학도 궐기대회 후 교문으로부터 500m 떨어진 가야 3파출소에 기습적으로 화염병 10여 개 투척.

    파출소 경찰관이 학생을 해산키 위해 칼빈총 공포10발 발사. 주동자 정성원(경영3) 검거.

    시위학생들, 쇠파이프 등으로 김장호 파출소장 폭행 뒤 도주.

    동료학생 구출위해 100여 명이 화염병 50여 개를 투척하며 파출소 기습.

    김장호 파출소장, 경고 뒤 칼빈 소총 공포탄 3발 발사.

    흩어진 학생들이 재차 기습 총 3회에 걸쳐 24발의 공포탄을 발사해 해산.

    전경 5명 납치하자 "풀어달라" 12시간 협상 실패

    -5월2일
     

    오후 3시 30분 경 300여명이 ‘경찰총기난사 규탄실천대회’후 교문 밖 진출해 화염병 투척, 시위. 장성철(기계2) 등 8명 검거,

    학생 40여 명 교문 밖 300여m 지점에서 근무 중이던 전투경찰 5명을 강제 납치, 학교 도서관으로 끌고 가 감금·폭행.

    경찰이 납치전경 구출을 위해 학생처장과 총학생회 측에 협조 요청. 학생들은 검거된 학생 9명과 교환 요구, 경찰은 당일 연행된 8명은 가능하지만 이미 구속영장이 집행된 정성원 학생은 불가능하다며, 영장사본까지 제시해 설득했으나 학생들은 끝까지 불복

    12시간에 걸친 협상 노력 결국 실패.

    서너 석유 계단에 붓고 기물과 화염병 마구 던져

    -5월 3일
     

    오전 5시 5개 중대 634명을 대학 내에 투입해 전경 구출작전 실시.

    경찰이 도서관으로 진입하자 4층 및 7층 옥상 베란다에 집결해 있던 학생들이 화염병과 돌, 쇠파이프, 의자 등을 투척.

    책상과 걸상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경찰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시너와 석유를 계단에 붓고 화염병을 던져 화재가 발생. 경찰관 7명 사망 10여 명이 중상,

    사건 관련, 95명을 검거하여 살인, 현주 건조물 방화 등 혐의로 77명 구속 18명 불구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