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8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싹쓸이 문화권력’ 씻어내 문화 다양성 되찾아야2003년 9월 문화계에 과거의 관례를 뒤엎는 ‘문화 사변(事變)’이 발생했다. 운동권 음악인 조직인 민족음악인협회 전 이사장 김철호씨가 국악계의 대선배들을 제치고 국립국악원장으로 결정됐다. ‘문화 사변’의 조짐은 일찍부터 드러났다. 국악원장 후보 심사 이틀 전 심사위원 4명이 갑자기 교체됐던 것이다. 전국 대학 국악과 교수들은 “국악원장의 불공정 임용을 거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국악계 원로들은 국악원장 취임식 참석을 거부했다.

    문화계, 그것도 스승과 제자 간에 장유유서의 질서가 서 있는 국악계로선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문화쿠데타’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5년 내내 문화계를 뒤엎는 ‘한국판 문화혁명’의 시발에 지나지 않았다. 기성 보수문화예술인들이 총성을 듣고도 우연한 사건이거니 하고 내쳐 잠을 자고 있었을 뿐이다.

    노무현 정권과 함께 문화계에 진주한 좌파 예술인의 문화권력 접수는 주도면밀하게 준비된 것이었다. 2003년 1월 민예총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문화연대 집행위원장은 “새 정부에서는 예총(예술단체총연합) 같은 기득권 세력이 발을 못 붙이게 하고 민예총(민족예술인총연합) 등 진보세력을 전진 배치해 개혁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요 문화기관을 밖에서 공격하고 안에선 이에 호응해 대문을 열어주도록 한다는 식의 각본이 씌어졌던 것이다.

    점령군 사령관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공신인 영화인 명계남·문성근씨였다. 명씨와 문씨는 장관 인선에까지 입김을 불어넣어 문화부 장관에 자신들의 인맥을 앉혔다. 민족문학작가회의 간부가 장관 정책보좌관이 되고 산하 주요 기관장에 민예총 계열 인사들이 차례로 들어섰다. 먼저 문화예술계의 돈줄을 쥐고 있는 문예진흥원 원장과 사무총장 자리가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과 상임이사에게 돌아갔다. 국립현대미술관장에도 민예총 이사장이 앉았다. 문화관광정책연구원장은 좌파 문화이론가 조직인 문화연대 간부, 한국영상자료원장은 민족영화연구소 출신 차지가 됐다. 그리고 문화계 주요 인사는 민예총 출신이 장기집권하거나 민예총이 나간 자리를 다시 민예총이 메우는 회전문 방식으로 돌아갔다. 이 문화혁명을 보고 한 문화계 인사는 “인민군이 남한을 무력 점령해도 이처럼 무모하고 안하무인식 인사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노하면서도 자신들의 무력을 자탄했다.

    언론 권력은 권력 유지와 재집권 구도 아래서 집중 공략 대상이 됐다. 노 정권은 언론계 평정의 첫 걸음으로 정연주 한겨레신문 논설주간을 KBS 사장에 임명했다. 정씨는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 후보 아들의 병역 문제가 불거지자 “현역 3년을 꼬박 때우면 ‘빽’ 없는 ‘어둠의 자식’이고, 면제자는 ‘신의 아들’로 부른다”는 선동적 왜곡 칼럼을 썼던 인사다. 그런 그가 2005년 국정감사에서 자신의 두 아들 모두 미국 국적을 얻어 군대에 가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자 “아들들이 미국에 내린 뿌리를 뽑아 한국으로 옮긴다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정씨의 장남이 지금 한국에 돌아와 한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정씨 사장 체제 아래서 대한민국 건국 원로들을 친일부역배로 모는 연속극이 제작됐고 남미의 반미독재자 차베스를 한국이 본받아야 할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투사로 부각하는 다큐멘터리가 대한민국 공영방송의 황금시간대에 방영됐다. 정씨는 2006년 KBS 안팎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임됐다.

    2006년 7월 출범한 3기 방송위원회는 상임위원 5명 중 위원장·부위원장·상임위원 등 3명이 언론계 정권 친위세력의 집결지인 민언련 출신이었다. KBS 이사회와 MBC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 한국언론재단 등 언론계 주요 기구도 노무현 정부와 코드가 맞는 인사들이 5년 내내 들어왔다 나가고 다시 돌아오기를 되풀이했다.

    노무현 정권이 문화예술계와 언론계를 장악하려고 집요하게 매달린 것은 문화의 힘을 알기 때문이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주변부에 있던 1970~80년대 문학과 영상 분야 및 출판사와 잡지계를 거점으로 좌파 이념을 생산해 내면서 20대 전후 세대와 사회 저변을 파고들었다. 이들은 권력의 장악과 유지를 위해서는 사람들의 정신과 정서를 지배하는 문화를 먼저 점령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좌파들의 이런 공세 앞에서 일부 깨어 있는 사람이 저항하고 대책을 모색하긴 했지만 많은 경우는 체념 반, 무기력 반으로 속수무책이었다.

    문화의 생명은 다양성이다. 우리는 지난 5년 권력의 선전선동대로 전락한 예술이 얼마나 불모지대이고 얼마나 예술가를 황폐화시키는지 목격했다. 문화권력을 탈취한 좌파 진영에서는 소설다운 소설, 시다운 시를 별로 내놓지 못했다. 그들 역시 권력을 얻고 예술을 잃어버린 것이다. 정권이 바뀐다지만 문화예술계의 알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새 출발의 발목을 잡으려 들 것이다. 우리 사회 모두 문화가 더불어 살고 예술이 어울려 사는 자연스런 문화 생태계를 복원시킬 지혜로운 방안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