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귀신이 단상으로 올라왔다.

    ‘지는예. 영남서 중소기업하다 죽은 귀신이라예. 참말로 이 자리에 오고 싶어 죽을 뻔 했는기라. 이봅세. 대통령님. 내사 대통령님 만난다 카믄 맥살이라도 잡아가지고 팍 쌔려버릴라고 생각했어예. 어예 말 잘하는 대통령님 우째 말이 없는교?’

    영남 말씨 쓰는 귀신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올라 있었다.

    ‘거게 대통령님, 지 목에 꺼먼 짜국 보이지예. 이 짜국이 우째 생긴 건지 아십니꺼? 이게 예, 지가 야산 나무에 목 매달아 팍 죽어가지고 생긴 짜국이라예. 대통령이 이 종이 쪼가리가 먼지 아십니꺼. 대통령님도 짱소천인지 짱소팔인지 중소기업 해보셔서 아시지예? 어음 아닙니꺼? 내 이거 한 묶음 손에 들고 죽었음둥. 대통령님, 서민이 잘 사는 나라 맹글어 준대매 이기 뭐요? 대통령님, 동북아 중심국가 맹근다 카드니만 동북아 중심국가가 아이고, 이기 동북아 깽판국가아이오. 차라리 내는 뒤졌다지만 외려 살아있는 백성들이 불쌍하요. 대통령님, 갱재 성장 7% 한다드니만 이기 머요. 이기 머요!’

    영남 말씨 쓰는 귀신도 감정이 격앙된 모습을 보이자 사회자가 끌어 내렸다.

    ‘자, 대통령님. 주로 경제 문제에 대한 비판이 나왔습니다. 여기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예. 참…. 맞습니다 맞고요. 저도 여러분들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겠습니다. 그리고 남는 임기 동안 경제살리기에 올인하겠습니다. 직접 챙기겠습니다.’

    대통령의 말이 끝나자 마자 귀신들이 앉은 좌석에서 고함이 쏟아졌다.

    ‘할만큼 다 해먹고 무슨 인제와서 챙긴다고 지랄이냐!’

    ‘하려면 진작에 잘해야지. 온 국민 개털만들고 이게 뭔 짓이냐!’

    사회자는 황급히 귀신들을 자제 시켰다.

    ‘그만 하십시오. 오늘 자리는 대화를 위한 자리이지 성토를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먼저 고통받고 죽은 유령들의 사례를 듣고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대통령께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다음 유령 모십니다.’

    다음 유령이 올라왔다. 노동자 복장을 한 유령이었다.

    ‘예, 안녕하십니까? 저는 아무개 중공업에서 일을 하던 노동자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노조위원장 출신입니다.’

    술렁이던 좌중이 조용해졌다.

    ‘저는 분신자살을 했습니다.’

    이 말이 떨어지자 좌중 여기저기에서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불쌍하게 죽었다는 한탄이 나왔다.

    ‘참, 대통령님께서 등장하셨을 때 노사관계에서 어느 정도 동등한 방향으로 균형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 보시겠다고 한 말씀에 감동받았습니다. 그래서 참여정부 시기에는 저희같은 놈들도 사람 대접 받고 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시위를 하다보니 회사와 관계가 악화되었고, 정직히 말하면 회사에 피해도 좀 주었습니다. 그러니 회사가 우리들 노동자 몇몇 사람들에게 손배소를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액수가 어마어마한 액수였죠. 그래서 속 터져서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홧김에 회사에 나가서 온 몸에 기름을 끼얹고 자살을 했습죠.’

    노동자는 고개를 푹 숙였다. 대통령도 측은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 보았다.

    ‘이제 와서 대통령님을 원망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 저는 회사도 원망 안합니다. 다만 저처럼 불쌍하게 죽는 노동자들이 앞으로는 없었으면 합니다. 저 무식한 놈입니다. 진본지 보순지 그런 거 알지도 못하구요. 가방끈도 짧은 놈입니다. 하지만 우리네 서민들, 빈민들이 사람 대접받고 사는 사회를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아직 대통령님 임기가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까? 대통령님이 바른 일을 하시면 그딴 레임덕인지 내임덕인지 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까? 요즘 들리는 말로는 진보라는 분들도 대통령님을 많이 원망한다합니다.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정책을 펴주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겠지요. 하지만 저도 감투 써 본 놈입니다. 대통령님 입장 이해됩니다. 대통령님이 국민의 대통령이라고 하셨으니 돈 있는 사람, 많이 배운 사람들 이득도 고려해주셔야겠지요. 자기 이해관계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우리처럼 못 배우고 가진 것 없는 놈이나 가진 것 많고 가방 끈 긴 놈들이나 마찬가지더라구요.’

    노동자는 잠깐 말을 쉬었다. 목이 메인 것 같았다.

    ‘대통령님, 제발 국민들과 대화해 주십시오. 그리고 저처럼 고통받는 노동자들과 돈 있는 회사 사람들이 원만하게 합의볼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대통령님, 수십 명의 힘없는 노동자들이 자살한 것은 알고 계십니까? 대통령님은 민주화운동 하셨던 분입니다. 저희 같은 개털들이 비참하게 사는 것을 딱하게 여기셨던 분입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국민들과 많이 대화하시면서 저같은 불쌍한 노동자가 생기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궁궐같은 청와대에서 매일 뭐 하십니까? 댓글달기요? 댓글달기 하셔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국민들과 이야기많이 해주십시오. 곁에 있는 분들이 데려다 매일 좋은 일만 이야기하도록 시키는 사람들 말구요. 우리 같은 개털 서민들 말 좀 들어주십시오. 물론 돈 있는 사람들 말도 들으셔서 양쪽 편 이야기 다 듣고 모두 같이 잘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으면 합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했는데요. 이 놈이 무식해서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진리는 먼 곳에 있다고 생각 안합니다. 많은 국민들이 서로 가슴을 열고 대화해야 우리 모두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이미 죽은 마당에 누굴 원망하겠습니까? 저는 진심으로 어려운 와중에도 열심히 일하시는 대통령님 존경하구요. 제가 피해를 끼친 회사에 죄스러운 마음입니다. 한때 세상 다 뒤집어 버리자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죽고 보니…얼마 안되는 돈, 알량한 체면 때문에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권리와 이권이 될 수 있는 한 신장되었으면 합니다. 대통령님은 노동자들이 도에 넘는 행동을 하기 전에 매사가 원만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공무원들에게 명령해주셨으면 합니다. 대통령님, 힘내십시오. 감사합니다.’

    노동자는 대통령에게 공손하게 인사하고 사라졌다. 대통령은 그 모습을 보며 가슴이 더욱 무거워졌다.

    ‘저는요. 왕따 당해 맞아 죽은 학생인데요.’

    어느 여학생이 단상 위에 올라왔다.

    ‘제가 말을 안 한다구요. 애들이 저를 미워했어요. 다른 애들하고 어울리지 못했거든요. 우리 집에 돈이 없어서요. 아빠는 매일 술 만 먹구요. 엄마는 술 먹고 때리는 아빠가 싫어서 도망갔어요. 아빠가 무서워서 말을 안하다 보니까 다른 애들하고 말 잘 안하게 되었구요. 친구없이 혼자만 앉아 있으니까 애들이 괴롭혔는데요. 여러 명이 괴롭히니까요. 무서워서요. 괴롭히지 말라고 말을 못하니까 다른 애들이 더 많이 괴롭혔어요. 그러던 중에 맨날 때리는게 싫어서요. 괴롭히는 애 가운데 하나를 팼는데요. 그런데 걔네들이 몰려와서 사람 없는데로 데리고 가가지구요. 막 때리고… 남자애들 불러서… 강제로 하도록 하구요. 막 발로 밟아서 제가 죽게 만들었어요. 죽은 다음에 집에 가보니까요. 아빠는 제가 죽은 것도 술 때문에 뭐가 뭔지 모르고 있더라구요. 그래도 제가 있을 때는 아빠 챙겨줄 사람이 있었는데요. 제가 죽어서 아빠가 더 불쌍하게 되어서 안됐어요. 원래 아빠도 착한 사람이었는데요. 장사하다 망하고 사기당해 망하고 해서…화병이 나서 술을 마셨고…그래서 이상한 사람이 된 거예요. 아빠가 불쌍해서 도망도 못 갔구요…그리고 도망가서 살 데도 없어서 도망도 못 갔어요.’

    좌중에 훌쩍 거리는 소리가 났다. 울고 있는 귀신이 있는 것이었다.

    ‘대통령님, 우리 아빠 죽지 않게 해주세요. 맨날 술만 먹구요. 기침하면 입에서 피나와요. 그런데 우리 아빠 돌봐주는 사람 하나도 없구요…대통령님, 우리 아빠도 죽지 않게 돌봐주세요. 우리 아빠 원래 나쁜 사람 아니었거든요…화병나서 술 먹다가 술 없으면 죽게 되었어요. 아니 술 계속 먹으면 죽어요. 우리 아빠 술 안 먹게 해주세요. 우리 아빠도 죽으면 안돼요.’

    사회자가 아예 울고 있는 여학생을 단상에서 내려보냈다. 다음에는 노인 한 사람이 올라왔다.

    ‘저는 지난 해 죽은 사람이올시다. 저는 죽을 때 편안하게 죽었소이다. 그렇지만 내 대통령께 할 말이 꼭 있어 이렇게 나왔소이다. 그나저나 우리 대통령님은 부친, 모친도 없소? 좀 심하게 말하면 애비 에미도 없냐 이말입니다. 내 다른 사람…아니 귀신들도 이야기하셔야 하니 말을 빨리 하는데 아니 도무지 이 놈의 참여정분지 참깨정분지에서는 왜 노인네들 말은 안 듣는 거요. 이거 어디 원 나이먹으면 죄인인지… 아니 당장 대통령이란 양반부터가 쌩판 젊은 놈들하고 어울려 개혁인지 개발인지 한다고 주절거리고… 아니 그걸 헌다고 하다 일을 잘 하면 내 말을 안해… 이것도 뜯어 고치고 저것도 뜯어 고치고 한다며 맨날 쌩 난리를 치더니만 도무지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소. 이보시오. 대통령님. 나라를 도대체 어디로 끌어가는 거요. 나야 이미 죽은 노인네니 상관없다지만 내 아들 딸, 손주들은 어째 살라는 거요. 나라 경영을 참 희한한 방법으로 하니 내 하는 소리요. 아니 그래도 기특하게 요즘 몇 년은 가만히 있던가 싶드니 이제는 아니 미국 양반덜한테 시비를 붙으니 어쩌자는 거요.’

    노인 귀신이 대통령을 쳐다보며 목청을 높였다.

    ‘지난 번에 대통령님 대통령될 적에 우리 애들 둘이 미국 사람 바퀴찬가 무슨 찬가 하는 것에 깔려 죽은 일이 있소. 그거 나도 알지. 우리 손주 놈이 그것 때문에 무슨 촛불시윈지 뭔지 빨갱이같은 놈들하고 지랄을 한다고 하더라고. 아니 이놈이 할애비가 가지 말라는데 기어코 말을 안 듣고 그 놈의 집회에 참예를 하더니만 대통령님…그러니까 그때는 후보지. 후보. 대통령님을 대통령 만들겠다고 그 놈의 나사몬지 나사못인지 하는 것에 참예를 해가지고… 아니 그나저나 웃기는게 무슨 애기들 돼지저금통을 나눠주고 그 안에 돈도 채워 오라고 했담서? 희망돼애애애지이이이? 가만 생각해보니 희망돼지가 아니고 기망돼지야? 그래서 내가 손주 놈한테 죽기 전에 그랬어. 야 이 놈아. 니가 희망돼진지 뭔지 갖다 바쳤더니만 그 대통령이란 놈이 한다는 꼬라지가 저 모냥이다. 그랬더니만 이 손주 놈이 할애비가 모르는 소리를 헌다고 타박을 주네? 아니 그래서 어이 이 놈아. 할애비는 너보다 세 갑절을 살았는데 왜 몰러, 모르긴 이 놈아! 하고 짜증을 냈더니만 이 놈이 할애비는 대통령님의 진정성을 모른다고 짜증을 팩 내고는 나가버린더라고. 어떻게 그렇게 젊은 놈들을 세뇌시켰는지 모르겠다만 하여간 좀 잘 하시오. 그리고 빨간 놈들은 왜 그리 싸고 돌아. 불안하니 그 놈의 빨간 놈들도 빨리 잡아 쳐놓고 나라 살림 좀 안정되게 하쇼. 그나저나 대통령님이 요즘은 조용히 있으니 세상 조용하더만. 그렇게 입 좀 콱 다물고 사쇼. 그리고 귓구멍은 좀 열고, 귀가 두 개 달렸으니 하나는 젊은 놈들 말 듣고, 다른 귀는 우리 같은 늙다리들 말 좀 듣고 사시오. 귀는 하나만 열고 젊은 애들 말만 듣고, 우리 같은 늙다리들 말은 아예 신경도 안 쓰고 사니 이래가지고 서야 누가 대통령님을 믿고 따르겄소. 경제가 안 풀리지요? 그게 다 젊은 애들말만 들으니까 그런거야. 우리 늙다리들도 국민인데 대통령이 얄미우니 돈 쓰겠소? 투자를 하겠느냔 말이오. 맨날 젊은애들 말만 듣고 개혁을 합네 깽판을 놓네 난리 지랄을 허더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