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와 '머리수' 대신 원칙과 책임을,지역구민 이익 아니라 국익을 쫓으라
  • 한나라당의 잡종 오렌지들에게 (1)


    나는 보수가 아니다. 멍게다. 자웅동체, 보수-진보, 지속-변화를 함께 가지고 있는 <개인>이다. 멍게의 관점에서 보면 당신들은 마땅히 보수, 지속, 시장원리, (세계, 과학, 문명에 대한) 개방성을 꿋꿋이 지키는 역할을 해야 마땅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당신들은 스스로를 싸구려 잡종 오렌지로 타락시켰다. 게다가 이제는 아무 예의도 없는 상스런 존재들이 되었다. 정확한 정책 검토/기획 프로세스 없이, 1년에 6조씩 들어가는 정책을 뚝딱거려 떠드는 상스런 작태는 도대체 누구에게 배운 것인가?
     
    대한민국 예산 규모가 대충 삼성 정도 될 게다. 삼성의 신규사업 개발 본부장이, 매년 6조를 영원토록 처박아야 하는 사업 계획을 1,2주만에 즉흥적으로 내놓는다면, 그날로 해고될 게다.
     
    당신들은 스스로를 주인이라고 착각하는 모양인데, 내가 보기엔 가장 상스럽고 무례한 <발랑까진 종놈>에 불과하다.
     
    당신들은 자주  '보수'를 이야기해 왔다. 처음부터 길을 잘 못 잡았던 것이다. 보수가 무슨 옆집 강아지 이름인 줄 아는가?
     
    대한민국에는 보수가 자리잡기 어렵다.  수백년 동안 쌓인 좋은 전통과 가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소한 근대 정치에 관해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이곳은 인구의 대부분이 아파트--'상품화 된 집', '표준가격이 정해진 집'---다른 말로 '주거를 위한 기계'(living machimne)에서 살기 때문에 언제든 팔아치우고 뜰 수 있는 생활양태를 보이는 나라이다. 
     
    조상이 준 전통과 가치가 부족하고 하루하루의 생활이 유목민(Nomad)같은 떠돌이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이 어떻게 보수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당신들이 잡았어야 할 길은, 변화와 지속을 통합할 수 있는 전략적 관점이었어야 한다.
     
    시장 원리와 사회안전망을 통합하는 관점이다. 시장과 민생을 통합하는 관점이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굵직 굵직한 진보적 개혁---3대 보험, 국민연금,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는 모두 한나라당(신한국당, 민자당, ..)에서 이루어졌다. 또한 우리나라의 시장원리 강화 및 세계화 개혁--80년대의 시장중심 정책(김재익 등의 '안정화정책),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 노동시장 유연화, WTO가입, OECD가입---- 역시 100%  한나라당에서 이루어졌다. 즉 당신들의 행적이 이미, 보수와 진보, 시장과 민생의 절묘한 결합이었다.
     
    이제 이 결합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지혜, 전략, 전통을 당신들은 헌신짝처럼 버렸다. 그 결과는, 매우 참혹할 게다.
     
    당신들은 스스로 창녀가 된 것이다. 당신들은 스스로, 썩은 잡종 오렌지가 된 것이다.
     
    당신들은 보수가 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당신들은 기개있는 보수 정치인의 스타일은 철저히 배웠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스타일은, 표와 '대가리 수'를 쫓는 것이 아니라, 원칙과 책임을 좇은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구민의 이익을 좇는 것이 아니라, 국익을 좇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주의 정치사상의 원조, 버크(Edmund Burke)의 이야기를 들려주마. 출력해서 달달 외우고 살아라. 그것이 지금 당신들의 비참한 걸레 근성을 조금이라도 씻어내는 길이다. 보수주의 정치철학의 아버지가 얼마나 기개있고 원칙있는 철학자 정치인이었는지, 잘 봐둬라!
     

    ****************************************


    1760년부터 약 30년 동안 영국 정치에 있어 가장 진보적인 사람은 누구였을까? 버크였다. 글을 잘 쓰고 연설을 잘하는 철학자였을 뿐 아니라 청렴 결백한 진취적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어마어마하게 컸었다. 버크에게 잘못 걸리면 박살났다. 동인도 회사 지배인이었던 헤이스팅스(Hastings)는 인도에서 권력을 함부로 사용해서 인도인들을 학대하다가 버크에게 걸려서 의회에서 16년 동안이나 청문회를 당했다. 버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 무굴제국. 인도는 영국에 의해 무력으로 식민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도 지배 왕조(페르샤 계통의 무굴 왕조)와 지방 호족들이 18세기 초반에 앞다투어 영국의 동인도 회사와 손을 잡음으로써 자발적으로 영국의 영향력 안으로 들어왔다. 사분오열된 인도 지배계급은 동인도 회사를 ‘무역 및 치안을 위한 시스템’으로 받들어 모셨다. 18세기에 동인도 회사 관계자들은 약탈과 다름없는 방식으로 부를 축적했으며 이 과정에서 인도의 전통적 관습과 가치에 의해 보호되어 온 권리마저 무시했다ⓒ
    ▲ 무굴제국. 인도는 영국에 의해 무력으로 식민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도 지배 왕조(페르샤 계통의 무굴 왕조)와 지방 호족들이 18세기 초반에 앞다투어 영국의 동인도 회사와 손을 잡음으로써 자발적으로 영국의 영향력 안으로 들어왔다. 사분오열된 인도 지배계급은 동인도 회사를 ‘무역 및 치안을 위한 시스템’으로 받들어 모셨다. 18세기에 동인도 회사 관계자들은 약탈과 다름없는 방식으로 부를 축적했으며 이 과정에서 인도의 전통적 관습과 가치에 의해 보호되어 온 권리마저 무시했다ⓒ


    (버크의 말)
    동인도 회사의 우두머리 헤이스팅스는 “인도 사람에게는 아무런 자유, 아무런 법률, 아무런 전통, 아무런 부동산, 아무런 토지, 아무런 상하질서, 아무런 명예감각, 아무런 수치심이 없다"고 말합니다…그러나 인도 사람 역시 상하질서와  재산권을 가지고 있으며  전통 법률, 명예감각, 수치심을 갖추고 있습니다…. 동인도 회사가 인도에서 저지른 짓을 보면, 우리가 인도를 통치한다는 개념 자체를 버리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인도에 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신의 섭리에 의해 그곳을 다스려야 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처지에 의해 의무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호시탐탐 왕권 강화를 노리던 조지3세(George III)는 버크에게 걸려서 왕권이 축소되었다. 버크는 아예 왕실로부터 독립한 공무원 시스템을 만들고, 왕의 재정낭비 소지를 제거해 버렸다. 이 개혁을 밀어붙이기 위해 버크가 했던 말은 개혁의 타이밍에 대한 그의 통찰을 보여 준다. 1780년에 이루어진 이 말은 9년 후에 벌어지게 될 프랑스 혁명의 혼란과 광기를 정확하게 예견하는 듯 하다.
     
    상황이 악화되기 전, 조기에 이루지는 개혁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이 개혁에 우호적일 때 가능합니다. 반면에 때늦은 개혁은 마치, 적을 정복한 후 힘으로 강제하는 것과 같습니다. 조기 개혁은 냉철한 분위기 속에 이루어집니다. 이에 반해서 정복 개혁은 과격한 분위기 속에 이루어집니다. 정복 개혁이 이루어지는 상황은, 국민의 눈에는, 세상에 존경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입니다. 단지 부패와 타락만 보이는 상태입니다. 부패하고 무능한 사회 지도층이 우왕좌왕하는 상태에서 국민은 매우 과격한 선동 세력의 밥이 될 뿐입니다. 그리하여 골 아프게 이것 저것 따질 것 없이, 사회 시스템 자체를 무너뜨리게 됩니다.
     
  • ▲ 무굴제국. 인도는 영국에 의해 무력으로 식민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도 지배 왕조(페르샤 계통의 무굴 왕조)와 지방 호족들이 18세기 초반에 앞다투어 영국의 동인도 회사와 손을 잡음으로써 자발적으로 영국의 영향력 안으로 들어왔다. 사분오열된 인도 지배계급은 동인도 회사를 ‘무역 및 치안을 위한 시스템’으로 받들어 모셨다. 18세기에 동인도 회사 관계자들은 약탈과 다름없는 방식으로 부를 축적했으며 이 과정에서 인도의 전통적 관습과 가치에 의해 보호되어 온 권리마저 무시했다ⓒ

    버크는 또한 1770년대 초, 영국에서 이민간 사람들로 만들어진 북아메리카—나중의 미국—에서 독립의 기운이 꿈틀대고 있었을 때, 북아메리카에 파격적인 자치권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775년 4월 19일, 미국 독립전쟁의 첫 전투가 일어나기 약 한 달 전에 버크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유럽에서는 더 이상 종교재판이나 강압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과연 아메리카에서 통할까요? 아메리카의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교육과 지식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 아닌가요? 그들에게 과학 지식을 담은 책을 불태우라고 말할 건가요? 그들에게 변호사와 같은 고급 지식인을 없애라고 말할 건가요? 그들에게, 이민지(북아메리카) 주민의회의 의원들이란, 책을 많이 읽어서 권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의원 선거를 보이콧트함으로써 주민의회의 성립 자체를 무산시키라고 말할 건가요? 변호사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주민의회 전체를 몰살시킬 건가요? 그렇게 하고 나면 이민지에서 운영하고 있는 군대를 어떻게 관리할 건가요? 이민지 군대가 우리말을 순순히 들을까요?...정책을 결정할 때에는 그 정책에 의해 얻을 이익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 정책을 밀어 붙였을 때 치러야 할 대가도 봐야 합니다.
     
    버크는 또한 영국의 국교(Anglican)에 의해 박해받거나 차별대우를 받던 가톨릭 교도 및 비국교 개신교도들에게 공정한 자유와 권리를 주기 위해 평생 노력했다. 이 덕분에 버크는 광신적 국교회 신도들에게 테러 위협을 당했을 뿐 아니라, 정적으로부터는 ‘교황의 스파이’라는 모함을 받기도 했다. 1780년 광신적 국교 폭도들이 날뛰고 있었을 때, 버크는 이렇게 말했다.
     
    시민을 종파에 따라 차별하는 것, ‘국가적 차원의 이성’이라는 미명 아래, 또한 ‘헌법과 국가의 수호’라는 미명 아래 시민을 차별하는 것—이것이 (국민으로부터든, 신으로부터든) 권력을 신성하게 위임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할 짓입니까? (오직 국민의 편견을 선동해서 권력을 잡겠다는) 인정머리 없는 야심 때문에 이런 차별을 방치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국민으로부터든, 신으로부터든) 권력을 위임 받을 자격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정치가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눈꼽만큼의 미덕도, 쌀알만큼의 에너지도 없는 작태 아닙니까? 이러한 차별이야말로 인간의 인간에 대한 악의, 비열함, 무례함의 결정체 아닙니까?.....죄를 짓는 것은 사람이지, 그가 믿는 종교가 아닙니다.
     
    버크는 또한 세계 최초로 정당정치의 모델을 세운 사람이다. 그 전에는 정당이,  ‘가치를 공유하는 정치집단’이었던 적이 없었다. 영향력이 큰 정치인을 중심으로 이합집산하는   보스정치(Statesmanship)였었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는 계파 보스와 대권 후보 뒤에 옹기종기 줄을 서는 보스정치가 정치판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240년 전에 정당정치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버크가 어느 정도 앞선 사람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774년, 버크는 지역구였던 브리스톨(Bristol)에서 다음과 같은 유세 연설을 하고도 당선됐다.
     
    저는 여러분의 대리인(Delegate)이 아니라 대표자(Representative)가 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뽑아준 국회의원이 되고자 합니다.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저의 의무는, 여러분의 눈치를 보면서 저 자신의 판단과 의견을 굽히는 일이 없도록 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 같은 의무는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고귀한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함도 아니고, 법률과 헌법에서 규정한 국회의원의 의무를 지키기 위함도 아닙니다. 이는  신(神) 앞에 제가 지켜야 할 예의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뽑아주신 대표자인 국회의원은 바로 그 자신의 판단과 양심에 따라 행동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곳 브리스톨의 성원으로서 저를 뽑으시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 성원으로서 뽑으시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국익 전체를 해치는 정책을 선호하신다면, 저는 마땅히 여러분의 의견에 대해 반대하게 될 것입니다.
     
    계파 보스와 대권 후보의 뒤에 줄을 서서 지역 선거구의 표밭에만 온통 신경을 쓰고 있는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과연 버크의 이 같은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진실이냐 아니냐, 원칙이냐 아니냐, 국익이냐 아니냐에 따라 처신해야 할 사람들이 온통 “당선이냐 아니냐?”에만 신경이 곤두서 있는 것은 본인에게도 비참한 일이고 국민에게도 짜증나는 일이다.




  • ▲ 무굴제국. 인도는 영국에 의해 무력으로 식민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도 지배 왕조(페르샤 계통의 무굴 왕조)와 지방 호족들이 18세기 초반에 앞다투어 영국의 동인도 회사와 손을 잡음으로써 자발적으로 영국의 영향력 안으로 들어왔다. 사분오열된 인도 지배계급은 동인도 회사를 ‘무역 및 치안을 위한 시스템’으로 받들어 모셨다. 18세기에 동인도 회사 관계자들은 약탈과 다름없는 방식으로 부를 축적했으며 이 과정에서 인도의 전통적 관습과 가치에 의해 보호되어 온 권리마저 무시했다ⓒ

    박성현 저 술가/뉴데일리 논설위원.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학생운동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지도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보상도 일체 청구하지 않았다. 
    한국일보 기자,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
    본지에 논설과 칼럼을 쓰며, 두두리 www.duduri.net 를 운영중이다.
    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망치로 정치하기>
    역서 :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웹사이트 : www.bangmo.net
    이메일 : bangmo@gmail.com
    페이스북 : www.facebook.com/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