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일리아’ 한국을 깨워라

      

  • ▲ <김정일리아>를 만든 N. C. 헤이킨 감독ⓒ
    ▲ <김정일리아>를 만든 N. C. 헤이킨 감독ⓒ

    헤이킨 감독이 만든 영화, 아니 실화 <김정일리아>는 우리에게 무엇을 전해 주는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이 우리의 본질적 상황인가를, 무엇이 우리를 ‘나태한 축생(丑生)’ 수준으로 격하 시키고 있는지를 소스라치게 일깨워 준다.

      인간은 어떻게 인간다울 수 있는가? 존엄성을 갖춰야만 인간다울 수 있다. 북녘 땅에서는 김정일 폭정이 인간들로부터 존엄성을 박탈하고 있다. 남쪽에서는 북녘의 ‘박제된 인간다움’에 대한 무관심으로 인해 사람들 스스로 비인간화의 길을 걷고 있다.

      한 쪽에서는 본디 존엄했던 인간들이 요덕수용소의 완전통제구역에서 소똥에 박힌 콩알을 빼먹고 있는데, 또 한 쪽에서는 그런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달걀을 뾰족한 쪽에서 먹기 시작할 것인가 둥근 쪽에서 먹기 시작할 것인가를 두고 하구한 날들을 지새운다면, 그리고 그런 북녘 인간상황을 함께 고민하자는 북한인권법안을 두고 된다느니 안 된다느니 한가로운 입씨름이나 벌인다면, 한반도에는 인간이란 ‘영혼 가진 존재’는 살고 있지 않다.

      이게 우리가 처한 가장 본질적인 상황이다. 이보다 더 생생한 현실은 없다. 한반도의 남과 북을 참 인간들이 사는 땅으로 만드느냐, 아니면 계속 무의식 축생(丑生)과 포악한 야차(夜叉)가 각기 남과 북의 산하를 채우고 있는 현실을 속절없이 방치하느냐, 하는 게 ‘한반도 문제’의 알파요 오메가다.

      우리는 위기관리라는 ‘너무 기능주의적일 뿐인‘ 접근방법에서 나아가 ‘한반도 인간화’라는 보다 철학적인 접근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녘의 축생적(丑生的) 무의식부터 혼몽(昏懜)에서 깨어나야 한다. 무관심의 주술에서 깨어난 인간들이 북녘의 대량학살(genocide)을 인류양심의 법정에 고발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반도 문제라는 광맥(鑛脈)의 진짜 첫 단초(端礎)가 잡힐 것이다.

     <김정일리아>를 관람한 어떤 사람은 ‘무의식의 마술’에서 퍼뜩 깨어났던지 눈물을 흘리며 감독에게 말했다. “외국인인데도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어 고맙다”고. 그러자 헤이킨 감독은 답했다. “나는 외국인 아닌 인간으로서 인간의 문제에 다가간 것이다” 바로 이거다. 인간다움의 문제. 그야말로 외국인인데도 이렇게 한반도 문제의 핵심을 꿰뚫는데 정작 한반도에 사는 우리는 ?

     류근일 /본사고문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