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등록금-물가에 이성끼리 ‘한집 살림’ 늘어“잘 지내면 좋겠지만...” 캠퍼스 어두운 풍속으로
  • “넌 아직도 혼자 사니?”
    대학가에 동거 열풍이 불고 있다. 과거 외국인 유학생들이 비싼 한국 집세며 물가를 감당하기 어려워 원룸을 친구들과 함께 사용하던 것과는 다른 ‘열풍’이다.
    지방이 집인 학생들이 자취방을 함께 얻거나 원룸을 둘이 빌려 함께 쓰는 경우가 급격하게 늘고 있는 것이다.

  • ▲ 한 대학 주변에서 학생들이 원룸, 하숙 전단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연합뉴스
    ▲ 한 대학 주변에서 학생들이 원룸, 하숙 전단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연합뉴스

    마산이 고향인 외국어대생 A군은 2학기 집을 구하면서 학교 게시판을 통해 ‘동거인’을 공개 모집했다. 원룸 보증금 1000만원을 각자 500만원씩 부담하고 월세 40만원과 관리비 역시 균등하는 조건이었다.
    게시판에 글을 올린 지 이틀 만에 A군은 룸메이트를 구할 수 있었다.
    어느 대학이건 학생게시판에는 이 같은 ‘룸메이트 구함’이란 글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동거’가 절대 편할 수는 없다. 본의 아닌 프라이버시 침해도 있을 수 있고 사소한 불편도 살아가면서 많이 겪게 된다는 것이 자취생들의 말이다.
    이런 불편에도 이들을 ‘동거’로 내모는 것은 단연 경제사정이다.
    군복무를 마치고 지난 9월 복학한 고려대 B군은 집이 여수이다. 그 역시 서울 성북구 미아동 부근에서 같은 과 후배와 자취를 하고 있다.
    “선배라서 더 후배와 생활하기가 조심스럽다”는 B군은 “가능한 한 후배가 자유롭도록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집에선 잠만 잔다”고 말했다.
    “복학을 하면서 알아보니 학교 앞의 방값이 너무 올랐어요.”
    2년 반 만에 돌아온 캠퍼스는 등록금이며 방값을 포함해 식당의 김치찌개 값까지 모든 것이 비싸졌다는 것이다.
    “복학생이면 이제 어른인데 여수 부모님에게 돈 벌리기도 미안해요. 어쩔 수 없이 방값을 줄이고 최대한 절약을 하지만 어려워요.”
    B군은 “휴대전화 요금 폭탄도 두려워 가능하면 통화를 안 하고 문자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동거열풍’에는 다른 그림자가 있다.
    생활비를 줄이려는 목적을 위해 ‘이성 동거’ 역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동대문구 청량리 인근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C씨는 “지난 8월에 원룸이며 자취방을 찾는 남녀 커플들을 하루에도 몇 쌍이나 봤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나 혹은 학교가 달라도 중간 지점에 방을 구해 같이 지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는 지방대학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구인구직 포털사이트 알바몬이 지난해 7월 대학생 1167명을 대상으로 '대학생 동거 인식'을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학생 5명 중 2명(응답자의 43%)이 '이성친구와의 동거'를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서 이성과 함께 자취생활을 하는 D씨는 아직 군복무를 마치지 않은 대학교 3학년이다.
    그와 함께 사는 E양도 대학교 3학년. 소개팅으로 지난 6월에 만났다는 이들은 지방이 집이고 ‘비싼 방값’ 때문에 지난 9월 2학기가 시작되면서 동거를 시작했다.
    서초동은 이들이 각각 다니는 대학의 중간 정도의 위치. 생활비 역시 함께 내고 있다.
    D씨는 “등록금이나 생활비 외에도 취업 때 요구되는 외국어 스펙 등을 쌓으려면 집에서 보내주는 돈으로는 어렵다”며 “동거를 해도 따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들은 실제 부부처럼 동거를 한다. 이 동거에는 당연히 육체관계도 포함된다.
    E양은 “지금 서로 좋아하는 마음상태가 좋다”라며 “오래도록 잘 사귀었으면 좋겠지만 헤어지더라도 조금 마음만 아프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이성 동거’의 경우 지방 부모님의 급작스런 상경 예고에 남자친구가 급히 짐을 다른 친구 집으로 옮겼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다시 가져오는 해프닝도 잦다는 것이 대학생 커플족들의 이야기다.
    치솟는 등록금과 물가가 대학가에 새로운 그늘 하나를 더 만들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