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전자제품은 다 제한” “배터리 빼면 돼” “꼭 원한다면...” 창구 담당자, 콜센터 직원 바뀔 때마다 이랬다 저랬다
  • 미국에 택배 보낼 때 전자제품은 안된다고?
    가자가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간 아들에게 10일 우체국 택배를 이용해 집에서 쓰던 국산 전자사전을 보내주기 위해 한 우체국을 찾았다.
    “주 내용이 뭐냐”는 직원 질문에 무심코 “전자사전”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전자제품은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수출금지품목이라도 되냐? 왜 안 되느냐”고 묻자 직원은 자세히 모르는 듯 “운송규약에 그렇게 돼 있다”는 식으로 대답하며 ‘안된다’는 점을 계속 강조했다.

    다시 “아는 사람은 노트북까지 보냈는데 전자사전이 왜 안 되냐”고 재차 따졌더니, “아마 배터리 때문에 그러는 것 같다”고 얼버무렸다.
    “전자사전 노트북 컴퓨터 디지털카메라는 비행기에도 갖고 타는데 안될 리가 있냐”고 지적했더니, 알아보겠다며 콜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끊더니 “배터리를 빼면 된다고 하더라”는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전자사전에 배터리를 빼고 보내면 장난감이 아닌가.

    “국산제품인데 배터리 없이 보내면 미국에서 사서 끼울 수도 없지 않느냐”고 했더니 규정상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우체국을 나와 지식경제부 사이트를 뒤져봐도 소관 부서를 찾기 어려웠다. 우체국 콜센터에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해봤다. 한참동안 안내 ARS음성을 듣다 겨우 연결된 상담직원은, 자초지종을 듣더니 전문상담원에게 전화를 직접 하게 한다며 끊었다.
    얼마후 전문상담직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필수품인 전자사전을 접수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해달라고 하자 “파손우려가 있고, 국가 세관상의 업무로 그렇다”고만 막연한 대답을 했다. 그러면서 “유리, 모든 전자제품은 접수제한 품목”이라고 덧붙였다.
    “노트북을 보낸 사람은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보험이 안 되기 때문이다. 꼭 요청하면 접수는 한다. 그러나 보험이 안 되니 피해가 생기면 감수해야 한다. 이런 내용을 고객에게 설명하도록 교육시켰다”고 직원의 말이 바뀌었다.

    “실제 창구에선 그렇게 말을 하지 않았다. 콜센터 담당직원도 ‘제한품목’이라고만 했다”고 하자 대답을 못했다.

    결국 몇명의 담당자를 연결하는 동안 “제한품목이다”→ “배터리를 빼면된다” → “파손우려가 있어 그렇다” → “관세가 부과될 수도 있어 그렇다”→ “보험이 안돼서 그렇다”→ “꼭요청하면 해 준다”로 상담직원이 바뀔 때마다 대답이 오락가락했다.

    우정사업본부 콜센터 관계자는 “반송되거나 지연될 수도 있어 고객을 위해 ‘제한품목’으로 정해둔 것이다. 포장상태가 괜찮으면 될 수도 있다”며 알쏭달쏭한 설명을 했다.

    내용을 정리하면, 미국에서 관세를 물릴 수도 있고 또 보험이 안 된다면 고객이 손해를 입을 개연성은 있다.  해당국가에서 관세를 물리거나 반송하거나 폐기하면 고객이 손해를 입게 될 것이고 이 경우 우정사업본부는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제한품목으로 정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본부 콜센터의 설명대로 정작 창구직원은 고객에게 정확한 규정도, 조건도 설명하지 않고 “제한품목”이라고만 했다.

    정부도 이를 우편 당국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전자제품이라는 게 얼마나 범위가 넓은가. 사전, MP3, 휴대폰, 각종 컴퓨터 주변기기 등 날이 갈수록 신제품이 쏟아져 나온다.
    우편당국의 설명대로 정말 관세 때문이라면 다른 문제도 생긴다.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신제품을  ‘전자제품’이라는 막연한 분류에 묶어 낱개이건, 선물이건, 중고고제품이건 관세를 물리는 일이 벌어진다면 해당국가와 이에 대한 개선책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이날 결국 배터리를 뺀 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