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막살인과 인육 등 잔혹한 묘사로 제한상영가 논란을 빗은 김지운 감독의 영화 '악마를 보았다'가 숨가쁘게 개봉길에 나섰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세 차례 권고 끝에 지난 10일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얻어낸 '악마를 보았다'는 11일 오후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그 모습을 처음 드러냈다.

  • ▲ 영화 '악마를 보았다'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이병헌(좌)과 김지운 감독(우) ⓒ 뉴데일리
    ▲ 영화 '악마를 보았다'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이병헌(좌)과 김지운 감독(우) ⓒ 뉴데일리

    '악마를 보았다'에 두 번의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린 영등위는 “도입부에서 시신일부를 바구니에 던지는 장면, 절단된 신체를 냉장고에 넣어 둔 장면 등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현저히 훼손시킨다고 판단된다”고 밝힌바 있다. 한국 상업영화가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첫 사례로 국내 상영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속에 '악마를 보았다'는 문제의 장면 약 8곳 가량을 삭제한 끝에 관객들과 만난다.

    언론시사회에 모습을 드러낸 김지운 감독은 이날 자신의 필름을 가위질 해야만 했던 것에 대한 아쉬운 심경을 피로했다. "밖으로 할 수 있는 말과 마음 속의 말은 차이가 있다"고 웃어 보인 그는 "마음 속 이야기는 평생 혼자만 간직할 것이다"라고 말해 마음고생을 엿보였다. 이에 대한 질문이 계속되자 김 감독은 조심스레 솔직한 심경을 입 밖으로 내놓기도 했다. "지독한 복수가 지루한 복수가 되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며 "프레임 단위로 편집에 많은 고민을 했다"고 전했다.

  • ▲ 영화 '악마를 보았다'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이병헌(좌)과 김지운 감독(우) ⓒ 뉴데일리
    ▲ 영화 '악마를 보았다'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이병헌(좌)과 김지운 감독(우) ⓒ 뉴데일리

    컷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 아닌 지속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최대한 영화의 기운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김 감독은 “와사비를 덜 뭍힌 생선초밥 같은 느낌”이라며 “육질은 그대로 살아있지만, 톡 쏘는 말이 달라진 것 같다”고 말해 아쉬운 마음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이병헌은 “충분히 와사비 범벅의 회무침 같은 느낌”이었다는 말로 그를 위로하기도 했다.

    이날 공개된 영화 '악마를 보았다'는 잔혹함의 연속이었다. 영화 상영 중간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김 감독은 "내 영화는 기존의 영화들에 근거해 표현했다"며 "모두 다른 영화들에서 다뤘던 부분들이나, 유독 이 영화에만 삭제요청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결국, 그가 내린 결론은 칭찬이라는 생각. 두 배우의 연기가 너무 리얼해 너무 가깝게 다가왔기 때문이라 결론지었다.

    상영 전부터 모방범죄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김 김독은 “영화는 현실을 모방하는 것”이라며 “영화가 현실을 따라 갈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는 “최민식이 시체를 토막내는 두 장면 정도가 잘려나갔다. 영화를 보고 현실로 옮겨야 겠다고 생각하는 인성을 가진 이들은 영화와 상관 없이 그런 일을 할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한니발', '친절한 금자씨' 등 인육을 먹는 장면이 등장하는 영화가 있었지만, '금자씨'를 보고 모방범죄가 일어난 일은 없었다."라며 "영화 속에서 한달 전 인육이었던 고깃덩어리는 소고기로 대체됐다."고 덧붙였다.

    '악마를 보았다'에서 연쇄살인범을 연기한 배우 최민식 역시 영화가 현실을 반영한다는 것에 대한 동의를 표했다. 그는 "문화소비에 대해 파급과 사회적 도덕성이 회자되고 논란이 되고 있으나, 실제 우리는 그보다 더 폭력에 중독돼 있는게 현실이다"라며 "우리가 숨을 쉬는 공기 만큼이나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 바로 이 폭력이다. 물리적인 것 뿐 이나라 정치적, 언어 등 폭력의 홍수 속에 중독돼 있다."고 현실을 꼬집었다.

    그는 "최근 히말라야 영화제에서 ‘안티 크라이스트’라는 영화를 봤다."라며 "왠만하면 영화를 보면서 눈을 감지 않는데 두 세변 눈을 가렸다. 여기저기 관중에서는 박수도 나오고 욕도 했다. 영화가 끝난 뒤 근처 맥주집에 갔는데 열띤 토론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좋아보였다. 표현에 대해 논란이 이어졌다. 사회 모습 중 폭력이 존재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감염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러내놓고 이야기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 감독은 회자되고 있는 할리우드 진출 소식에 대해 "최근 다른 환경에서 작업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21세기 이러한 제도권 안에서 영화를 계속 해야하나 심각하게 고민한 시기가 있었다"라고 고백해 눈길을 끌었다. 다음달에 미국팀과 미팅을 계획중인 그는 "아직은 순수한 미팅"이라며 "그 이후에 뚜렷한 윤곽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악마를 보았다'는 살인을 즐기는 연쇄살인마(최민식)와 그에게 약혼녀를 잃고 그 고통을 뼛속 깊이 되돌려주려는 한 남자(이병헌)의 광기 어린 대결을 그린 영화로 12일 개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