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일가와 싸워온 하기와라 료(萩原遼)씨가 지난 22일 별세한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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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

일본 공산당원이면서도 김일성 일가와 싸워온 하기와라 료(萩原遼)씨가 지난 22일 별세한 것으로 밝혀졌다. 향년 80세였다. 그는 1972년 일본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다의 평양 특파원으로 갔다가 김일성의 '反공산주의적 수령 독재'를 경험하고는 김일성의 정체를 폭로하는 언론, 출판 활동을 해왔다. 한국전 때 미국이 노획한 문서를 정리한 '조선전쟁'은 북한자료가 증언하는 남침 내막이다. 그는 평양 특파원 때 고등학교 친구인 조총련 인물이 北送된 뒤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하다가 스파이로 몰리기도 하였다. '북조선으로 사라진 친구와 나의 이야기'로 大宅壯一 넌픽션 상을 받았다. 황장엽 선생의 著書를, 작년엔 조갑제닷컴이 처음으로 펴냈던(현재는 다산 북스가 판매중) 在北 소설가 반디의 '고발'을 번역하였다. 그는 身病中에도 북한의 실상을 폭로하는 글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생애를 거기에 바치겠다고 선언한 사람이었다. 1970년대엔 김지하 씨의 시를 번역 일본에서 출판하였다.

하기와라씨는 '나의 사명은 김정은 정권과 끝까지 싸워 그의 최후를 목격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곤 하였다. 그는 김일성 3代에 의해서 희생된 순수한 사회주의 동료들의 원수를 갚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는 듯 하였다. 
  
그는 자신이 아직 공산당원이라면서 이런 말을 했다. 
'김정일은 세계 공산주의자들의 진정한 敵입니다. 권력을 세습하고 주민들을 굶겨죽이면서 호화롭게 사는 자가 어떻게 공산주의자입니까. 김정일이야말로 히틀러와 같은 극우파쇼입니다.'
그는 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김정일은 눈사람입니다. 난로가에 가까이 오면 녹아버립니다.'
그가 말한 난로란 개방된 사회, 자본주의, 또는 외부정보 같은 것이다.

그는 1990년대 북한의 餓死는 적대 계급을 표적으로 한 餓殺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모자라는 식량을 골고루 나눠주지 않고 적대 계층엔 공급하지 않아 이 계층에서 죽는 사람이 집중적으로 났으니 계급학살이란 것이었다. 

2016. 7. 17. 산케이(産經)신문
  
  그 단편 소설집은, 극비리에 탈북자 손에 맡겨져 북한 밖으
  로 반출되었다. 집필로부터 20년의 시간을 거쳐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언어로 출판되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작가는, 북한에서 권위 있는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으로, 체제를 찬양하는 입장이어야 한다. 그런데, 
  처형까지 각오하고 작가가 써낸 것은, 김씨 일족이라는 
  幽靈(유령)에게 지배되어 '울타리 안의 짐승' 같은 생활을 
  지속 강요당하는 주민들의 모습이었다. 
  
  ■반항하면 오직 죽음만 있을 뿐
  
  <울음 소리조차 반항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만다. 반항하면 
  가차없는 죽음만 기다리고 있을 뿐인 곳. 나아가, 아파도 
  웃어야 하고, 배가 고파도 침을 삼키며 참아야 하는 것이 
  이 땅의 법칙이다.>
  
  이번에 일본에도 출판된 단편집 『告發』에 나오는 내용 
  중 일부다. 
  
  주인공은, 북한 최고지도자가 참석하는 '1호 행사'의 警備
  를 이유로 이동이 제한되어 위독한 모친에게 갈 수가 없게 
  되었다. 
  
  속으로 울부짖는다. <내가 무슨 罪를 지었나? 내 나라 내 
  땅에서 위독한 모친을 찾아가는 것도 罪가 되나!>
  
  허가증 없이 열차에 올라타, 몇 번이나 검열을 피했지만 
  고향을 바로 눈 앞에 두고 붙잡혀 노동교화소로 보내진다. 
  집에 돌아온 후, <우리는 울타리 안의 짐승과 같다. 갇혀
  있는 동물이다!>라는 비탄한 심정에 빠져있을 때, <모친 
  사망>이라는 전보를 받는다.
  
  울분에 차, 술을 들이키며 친구와 이렇게 주고 받는다. 
  
  <너는 이제 완전히 가축과 다름없이 길들여진 것 아닌
  가? 인간이 어떻게…양(羊)도 아니고.>
  
  <잠깐만, 길들여지는 것도 그렇지만, 이 땅에서 살아남
  는 재능을 터득했다고도 볼 수 있지.>
  
  북한에서 비교적 대우받는다는 작가도 이렇게 예외가 
  아니다. 불합리한 현실을 묘사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기 
  때문에, 길들여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김씨 일족의 
  지배를 부정하는 글을 쓰는 것이 발각 되면, '가차 없이 
  죽음만 있을 뿐'이다.
  
  金正日 총서기의 실정 때문에 200만 명 이상이 餓死한 
  것으로 알려진 1990년대'고난의 행군' 시대에 많은 친구
  를 잃은 작가는, 결국 다짐하게 된다. 비밀리에 쓴 소설
  을 탈북하는 친척에게 맡겨 북한 땅의 실상을 온세상에 
  알리고자 마음 먹었다. 
  
  번역을 맡은 작가 하기와라 료(萩原療)씨는 이렇게 강조
  했다. 
  
  '탈북 후에 북한의 실상을 고발하는 사람은 있다. 하지만, 
  북한에 있으면서 목숨을 걸고 글을 쓴다는 것과는 서로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발각되면 죽음밖에 없다는 
  것을 각오하고 쓴 이것은 그야말로 목숨을 건 소설이다.' 
  
  ■정말 있었던 '惡魔'의 우화
  
  작가는 1950년생이다. 노동현장에서 일하며 쓴 문학작품
  을 인정받아 작가동맹 기관지 등에 기고해온 지명도 있는 
  작가라는 점 이외에는 상세한 정보가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에 소개될 당시, 암담한 북한 땅에 희미하게나마 불을 
  비추고자 하는 의도에서 '반디'(螢)라는 펜네임이 부여되
  었다. 
  
  『告發』에 수록된 7개의 단편 대부분은, 金日成 주석이 
  사망한 1994년 전후에 쓰여진 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은 
  전혀 퇴색하지 않고, 현재의 金正恩 시대에도 북한 외부의 
  사람들이 품고 있는 커다란 의문을 푸는 데 유효한 힌트를 
  제공해주고 있다. 
  
  커다란 의문이란, 어째서 그토록 압제에 시달리고 있으면
  서도 거기 사람들은 체제타도에 나서지 않고 있는가?, 혹
  은, 나서지 못하고 있는가? - 라는 점이다. 
  
  '복마전'이라는 단편에서는, 최고지도자의 '1호 행사'를 이
  유로 열차운행이 정지되어, 지방의 역에서 발이 묶인 노부
  부와 손녀의 모습이 등장한다. 
  
  언제 운행이 재개될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빵 같은 먹
  을 것을 확보하고자 서로 다툰다. 그러는 사이에 날이 저물
  어 할머니는 혼자 걸어서 동생 집으로 가고자 마음 먹는다. 
  주변의 도로 또한 전부 봉쇄된 상태였다. 
  
  그런데, 걸어가는 할머니 곁으로 차량행렬이 멈춘다. 김 주
  석이 탄 차량이다. 김 주석은 '여행하기 좋은 여건이 완전
  히 갖추어진 이 시대에 그렇게 걷고 있으면 곤란하잖소'라
  며 고사하는 할머니를 차에 태웠다.
  
  할머니는, 철도와 도로가 봉쇄된 원인이 바로 이 인물 때문
  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치밀어 오른다. 열차 운행이 재개된 
  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급히 개찰구로 몰리는 바람에 손
  녀가 큰 부상을 입는다. 손녀를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참담한 심정이 된 할머니에게 돌아온 것은, '위대한 수령의 
  자애로, 차량에 동승하여 행복하게 여행을 할 수 있었다'며
  웃음을 내보이는 체제 선전에 동원되는 것이었다.
  
  상처와 공포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할머니는, 옛날 이야
  기 해줄 것을 재촉하는 손녀에게 들려줄 우화를 떠올린다. 
  늙은 악마가 부하들에게 마술을 걸어 웃음을 강요하는 '복
  마전' 이야기다. 
  
  <어째서 그런 마술을 걸고 싶었을까? 부하를 못살게 구는 
  자기의 죄를 덮고, '우리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나 행복합니
  다'라고 눈속임하기 위해서지. 그리고, 옆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것이나, 왔다갔다 하는 것까지 못마땅하게 여겨
  서, 높은 담장을 만든 거란다.> 
  
  불행에 허덕이는 주민을, 오히려 자신을 위한 우상화에 이
  용하여 억지 웃음을 강요하고 있다. 아무리 아파 신음하고, 
  아무리 슬퍼 크게 울어도, 장벽을 높이 쌓아놓아 이러한 
  고통의 신음소리가 나라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차단시
  킨다.
  
  이러한 선전선동력과 정보통제술이야말로 김씨 일족 체제
  를 연명시키는 가장 큰 기둥 중 하나다. 아이들에게 들려
  주는 동화로서는 잔혹하겠지만, 김씨 일족의 본질을 보여
  주는 우화라고 할 수 있다. 
  
  ■조지 오웰이 묘사한 감시사회가 실현된 곳
  
  단편 '유령의 도시'는, 지병에 걸린 자식을 가진 평양 중심
  부에 사는 모친 이야기다. 자식은, 자택 창가 너머로 보이
  는 김일성 광장 옆에 있는 마르크스 초상화를 두려워 하며
  발작을 일으킨다. 
  
  광장의 김 주석 초상화를 볼 때도 같은 증상을 보이게 되
  자, 모친은 창문을 파란색의 두터운 커튼으로 막아놓을 
  수 밖에 없었다.
  
  100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명령 한 마디에 따라 광장으
  로 일사불란하게 모여드는 모습을 본 모친은, '무슨 힘이 
  작용하여, 도시에 흩어져 있는 군중들을 저렇게 모으는 
  것인가 라며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인근 주민들의 신고로, 당국으로부터, 눈에 금방 띄는 색
  의 커튼으로 창문을 닫아놓은 것이 뭔가 '간첩의 암호' 같
  은 것이 아닌가라는 추궁을 받게 되고, 김 주석의 초상화
  에 관한 말실수가 더해져 식구들은 평양으로부터 추방된
  다. 평양을 떠나게 된 시점에서, 모친은 100만 명의 군중
  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공포스러운 '괴물'의 존재를 비로
  소 깨달아 알게된다. 
  
  미래의 감시사회를 묘사한 조지 오웰의 명작 '1984년'이 
  연상되지만, 크게 다른 점은, 북한에서는 그것이 현재진
  행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이라는 점이다. 
  
  커튼의 열고 닫음이나, 가벼운 말실수 등 일거수일투족
  이 주변 주민들에 의해 감시의 대상이 되고, 당의 명령에 
  불복하는 것이라고 조금이라도 의심을 사는 것을 두려워 
  하여 일사불란하게 동원명령에 응한다. 이런 식의 철저한 
  감시사회와 動員力이, 독재체제를 지탱하는 또하나의 기
  둥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소설의 큰 테마가 되고 있는 것이, 공산주의를 표방하
  면서도, 엄연히 존재하는 階級制에 관한 것이다. 
  
  북한 주민은, 출신에 따라, 핵심계층, 동요계층, 적대계층
  으로 분류된다. 
  
  '脫北記'에서는, 부친이 '反당反혁명 宗派분자'라는 낙인
  이 찍혀, 가장 낮은 계층으로 떨어진 기술자와 결혼한 아
  름다운 아내의 심정이 처절하게 묘사된다. 
  
  기술자인 남자 주인공은, 남편의 당원자격 회복을 위해 무
  진 애쓰는 아내의 본심을 오해하여 당간부와의 불륜까지 
  의심한다.
  
  신분의 차이에서 오는 자격지심까지 겹친 주인공은, 자학
  의 심정에 빠지게 되어, '기만과 허위와 학정과 굴욕의 땅'
  으로부터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또다른 단편 '무대'에서는,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진 부친
  을 둔 여성과 자기 아들이 서로 사랑하며 교제하는 것을 
  말리지 못해 고민한 끝에 자살을 선택하는 비밀경찰 간부
  의 모습을 그렸다. 
  
  가족조차 서로 믿지 못하고 견제해야만 하는 현실이야말
  로, 북한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합하여 체제에 대항하게 
  하는 힘을 갖지 못하도록 만드는 근본적 원인이 되고 있으
  며, 이 부분이 바로 북한사회의 가장 어두운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붉은 毒버섯을 뽑아버려라!'
  
  '붉은 버섯'에서는, 아이를 돌보는 시간조차 아껴가며 주
  민들을 위해 일해온 기술자가, 지방의 당간부에게 속아넘
  어가 재판까지 받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이 기술자를 취재하는 주인공인 記者는 '붉은 버섯'이라는 
  隱語가 간부들이 모여있는 붉은 벽돌의 廳舍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러
  했다. 
  
  <저 붉은 버섯을, 저 毒버섯을 뽑아버려라! 이 땅에서, 아
  니, 지구상에서, 영원히!>
  
  '붉은 毒버섯'이, 지방간부보다 높은 곳에서 군림하는 김
  씨 일족을 가리킨다는 점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이 부
  분이 바로 작가가 이 작품에 담은 최대의 메시지이기도 
  할 것이다. 
  
  처형이 임박해서야만 비로소 진실을 외치게 되는 현실이 
  북한 주민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불행이다. 
  
  리얼리티에 충실한 작품을 북한내에서 공개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현실이 '반디'씨에게 있어서나, 북한
  에 있어서나 最大이자 最惡의 불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 
  
  『告發』은, <北韓 거주 작가가 목숨을 걸고 쓴 김씨 왕
  조의 欺瞞과 서민의 悲哀>를 副題로, '가자히노 文庫'가 
  출판했다.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