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한국의 모든 것 알고있다"...한미동맹의 위기! [새연재: 한미동맹의 탄생-끝]

2주간 국빈 방문, 미국회 연설 "휴전 무효, 중공군 추방전쟁 선언"
"한국은 구걸하지 않는다" 한국 복구와 군비 원조는 미국 의무
1년치 원조 7억불 합의...합의서 교환, 한미동맹 마침내 발효

인보길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7.11.16 17:3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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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이승만史(2) 한미동맹의 탄생⑰ 국빈 방미와 한미동맹 발효


인 보길 /뉴데일리 대표, 이승만 포럼 대표

7월26일 여름날 오후, 워싱턴 내셔널 공항에 시커먼 미군용기 한 대가 내려앉았다.

서울 김포공항 이륙후 무려 40시간 만에 도착한 일행은 이승만 대통령 부부와 수행원들,
유엔군총사령관 헐 장군의 전용기 컨스텔레이션 호는 “일본에 기착하지 말라”는 이승만의 고집 때문에 일본 열도를 우회하여 알류산 열도의 해군기지에서 급유하고 알래스카를 돌아 시애틀 기지에 들렀다가 미대륙을 횡단하는 길고 긴 여정을 강행군해 온 참이다.

아이젠하워의 환대는 예상을 넘는 것이었다.
국빈이라지만 닉슨 부통령과 덜레스 국무장관까지 부부동반으로 출영하고 함참본부장등 군장성들과 다수의 관리들, 그리고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도와준 미국인 친우들도 대기 중이었다.
시민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로 환호하였다.

비행기를 내린 이승만은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한국전을 지휘한 리지웨이, 밴플리트 장군의 뜨거운 포옹도 받았다.
미국 관리들은 “경의와 단결의 표시”라며 이대통령에게 ‘행운의 열쇠’를 증정하였다.

21발의 예포와 한미 두 나라 국가 연주를 들으면서 이승만은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해방후 귀국 9년 만에 다시 온 미국, 끝까지 ‘국적 없는 독립투사’로 40년을 떠돌던 땅은
제2의 고향 같은 나라, 태극기를 흔들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한국동포들과 어린이들의 꽃다발을 받는 이승만은 무명의 망명객이 독립국가 대통령이 되어 다시 만난 미국에서 일종의 ‘금의환양’
같은 감격과 국무성에서 냉대 받던 설움, 그리고 보기 좋게 독립을 쟁취한 승리감이 한꺼번에 밀려왔을 것이다.


충격의 도착성명 “미국이 겁쟁이라 아직도 통일을 못했다”
닉슨의 환영사가 끝나자 이승만은 마이크 앞에 서더니 자신이 써온 도착성명을 치우고 즉석연설을 시작하였다. 그는 1904년 ‘국가없는 인간’으로 난생처음 미국에 상륙하였을 때의 이야기와 
독립이 가망 없는 것으로 보이던 때의 망명생활에 관한 이야기, 1950년 공산침략에 대하여 말할 때는 감회를 못이기는 듯 꺼져가던 음성이 갑자기 톤을 높였다.

“미국의 수많은 청년들이 한국을 도우러 와서 목숨을 바쳤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통일을 이루지 못하였다.
미국이 ‘겁을 먹어서’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우리는 후퇴해야만 했다.
조금만 용기를 더 가졌더라면 우리 두 나라는 지금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 있을 것이다.”

그 순간 닉슨과 덜레스, 리지웨이등 장성들은 표정의 변화없이 연설을 듣고 있었다고 한다.

이승만은 또 톤을 바꾸어 함께 싸운 미국과 미군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면서
“우리는 앞으로도 함께 싸운다. 하나님은 우리 계획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항상 함께 하실 것”이란 말로 15분간 즉흥연설을 끝냈다.
비행장 환영식이 끝난후 이승만 부부는 녹색 리무진을 타고 백악관으로 향하였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던진 “미국은 겁쟁이”라는 한마디,
준비한 원고에는 없던 그 말은 이승만이 미국과 마지막 결판을 내고자 싸우러 왔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왜냐하면 ‘제네바 정치회의에서 통일을 관철’하겠다던 미국이 제네바에서 양보를 거듭하는 행태에 분격한 이승만은 아이젠하워와 통일을 위한 담판을 끝장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서울 출발 전날 경무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과 유엔은 중공군을 북한에서 즉시 철수 시키라”는 포문을 열고 “소련이 제안한 새로운 통일국제회의는 서방측 항복을 받아내려는 음모“라며 ”판문점 중립국감시위도 해산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백악관 정문 앞에서 기다리던 아이젠하워 부부가 이승만 대통령 부부를 맞아 들였다.

곧 이어 아이젠하워가 베푼 백악관의 국빈 만찬 역시 화려하고 성대하였다.

닉슨 부통령과 각료들, 국회의원들과 외교관들, 국방관계 인사들과 그들의 부인들이
‘세계의 반공지도자’ 동양 노인대통령의 손을 잡고 감사와 존경의 찬사를 이어갔다.

아이젠하워는 잔을 들고 이승만 대통령을 위해 축배를 들겠다며 건배사를 시작하였다.

이날 밤 이승만 부부는 백악관에서 잠을 잤다. 이런 특별배려도 전례가 드문 환대였다.

공식 수행원들은 본격적인 스테이트 비지트(state visit)였기에 네팀 27명이 따라와서
백악관 인근 영빈관 블레어 하우스에서 숙박하였다. 


제1차 정상회담 '한일 관계' 동상이몽 격론

이튿날 아침 블레어 하우스로 옮긴 이승만은 10시부터 백악관 오벌 룸에서 아이젠하워와
1차 정상회담을 가졌다. 아이크의 대통령취임 전부터 휴전 반대로 갈등을 벌였고
제네바 협상에서도 양보하는 유화적 태도에 실망한 이승만은 ‘못 믿을 포퓰리스트’로
아이젠하워를 내려다보는 입장인지라 불편한 심기를 감추고 기세등등했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상회담의 첫 의제가 양국이 똑 같은 ‘한일관계’임이 드러났다.

한국이 제시한 의제는 ‘한일 공동방위체제에 관한 문제점’인 반면,
미국이 제시한 것은 ‘한일 국교 정상화’였다. 첫 눈에 이승만의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미국의 일방적인 일본지원을 비판해온 이승만의 눈앞에 국교정상화를 들이밀다니...
아이젠하워가 한일회담 결렬문제를 꺼내자 이승만은 벼락같이 언성이 올라갔다. 

“수석대표라는 구보다란 자가 일본의 식민통치는 한국에 유익했다는둥 망발을 했는데
그것도 모르오? 이런 반성도 없는 일본과 어찌 관계정상화를 하라는 겐가?”

양유찬 대사가 재빨리 끼어들어 지난해 10월15일에 터졌던 구보다의 망언 경과를 설명했다.

화를 삭이던 아이젠하워는 덜레스에게 “사실이냐?” 물었고 덜레스는 보충설명을 했다.

한시간 반 동안 진행된 첫 회담은 구보다에 걸려 두 번째 의제 ‘원조 증가와 군원-민원 문제’로
넘어가지 못하였다. 미국측 의제도 똑 같이 ‘대한 군원 및 민간경제부흥’이었다.

이날 저녁 덜레스 국무장관이 베푸는 만찬은 역사적인 고택 애디슨 하우스에서 열렸다.

이승만은 인사말에서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방책이 있어야한다”고 말했다.

오전 백악관 정상회담에서도 이승만은 아이젠하워와 대좌하자마자
“나는 이번에 양국이 협의할만한 제안을 가져왔다”고 말을 꺼냈는데
‘방책’과 ‘제안’이 무엇인지는 다음날 국회연설에서 드러난다.
주최자 덜레스는 이승만의 무거운 분위기를 풀어주기 위해 곰 이야기를 내놓았다.

갈홍기 공보실장의 ‘이대통령 각하 방미 수행기’에 보면 그 곰은 국군이 강원도 산골에서 잡아 온 것을 백악관에 보낸 한쌍이다. 덜레스는 “이대통령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그 곰을 정원에 풀어달라 했더니 너무 크게 자란 맹수라서 안된다 하니 유감입니다. 각하께서도 그 곰과 같이 노년에도
원기 왕성하시니 보기 좋습니다.”라며 웃었다. 

이승만은 즉각 “나도 지금 곰처럼 갇혀있는 것 같아서 부자유를 느낍니다”라고 받았다.

좌중은 웃음을 터트렸다. 미국과 미국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가득찬 이승만과 수행원들은 농담아닌 농담에 웃을 수가 없었다. 그 말들은 다음날 국회에서부터 2주일간 쏟아진다. 


▶ 미의회 양원합동회의 연설...

미국 의회 의사당 대회의실에 여러대의 TV 카메라와 조명등이 켜졌다.
상하 양원의원들과 각료들, 대법원 판사들이 임시 좌석까지 채우고 특별입장권 소시자들만 방청석에 들어왔다. 오후 4시 32분, 청색양복의 이승만이 들어서자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미국민들이 진심으로 존경하는 자유를 위한 불굴의 투사를 소개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마틴 하원의장의 소개에 등단한 이승만은 다음과 같이 40분 동안 열변을 토한다.

    *이승만 대통령, 미의회 연설 전문

 

I thank you. Mr, Speaker, Mr, President, honorable Senators and Representatives, ladies, and gentlemen, I prize this opportunity of speaking to this august body of distinguished citizens of the United States,
국회의장님, 부통령님. 상하(上下) 양원(兩院) 의원님들, 신사 숙녀 여러분!
나는 미국의 저명한 시민여러분이 모인 이 존엄한 자리에서 연설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음을 흔쾌(欣快)히 생각하는 바입니다.

You have done me great honor by assemblying in this historic Chamber. I shall try to reciprocate in the only way I can- by  telling you honestly what is in my mind and heart. That is part of the great tradition of American democracy and free government, and it is a traditon that I have believed in for more than half a century.
Like you, I have been inspired by Washington, Jefferson, and Lincoln.
Like you, I have pledged myself to defend and perpetuate the freedom your illustrious forefathers sought for all men. I am Korean, but by sentiment and education I am an American.[Applause]

여러분이 이 역사 깊은 의사당에 모여주심으로써 나에게 커다란 명예를 베풀었습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 나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솔직(率直)히 여러분에게 말씀 드림으로써 여러분의 후의(厚意)에 보답하려 합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미국의 민주주의와 자유정부의 위대한 전통에 관한 것이며, 그것은  내가 반세기 이상 신봉(信奉)해온 것입니다. 나도 여러분처럼 워싱턴, 제퍼슨, 링컨에게서 자극을
 받아왔습니다. 나도 여러분처럼 여러분의 영광된 선조들이 전인류를 위해 추구했던 자유를 수호보전하려고 스스로 맹서해온 사람입니다. 나는 한국인입니다. 하지만 정서적으로 미국 교육을 받은 미국인이기도 합니다.(박수)

I want first of all to express the unbounded appreciation of Korea and Koreans for what you and the American people have done. You saved a helpless country from destruction, and in that moment the torch of true collective security burned brightly as it never had before. The aid you have given us financially, militarily, and otherwise in defense of our battlefront and for the relief of the refugees and other suffering people of Korea is an unpayable debt of gratitude.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여러분과 미국민이 해주신 일에 대해 한국과 한국국민의 넘치는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여러분은 고립무원(孤立無援)한 나라를 파멸에서 구출하여 주었으며, 그 순간에 진정한 집단안전보장의 횃불은 전례(前例)없이 찬란하게 불타올랐던 것입니다.
우리 전선의 방어를 위해서, 피난민과 이재민의 구호를 위해서 여러분이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그리고 각 방면으로 보내준 원조는 갚을 수 없는 감사의 빚입니다.

We owe much also to the former President Truman, whose momentous decision to send armed forces to Korea saved us from being driven into the sea, and General Eisenhower, the latter as President-elect and now as Chief Executive, for their help and knowledge of the enemy peril.

우리는 또한 즉각적인 한국파병 결정을 내려 바다로 빠지려는 한국을 구해준 트루먼 전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자 아이젠하워 장군이 현 행정수반으로서 적의 위협을 잘 알고 우리를 원조해준데 많은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The President-elect came to a Korea which for 40 years had been under a cruel Japanese subjugation. Few foreign friends had ever been permitted on our soil. Yet here, for the first time in history, because your military might alone regained our freedom, came the great man you had chosen as President. He came to see what could be done to help the Koreans.[Applause]

 여러분의 대통령당선자는 40년이나 일본의 잔학한 정복하에 놓였던 한국에 왔었습니다. 우리 국토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던 외국 친우들이 드물었는데, 그러나 오직 여러분의 군대가 우리 자유를 회복하여 주었기 때문에 여러분이 대통령으로 선출한 위대한 인물이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와서, 한국인을 돕는 일이 무엇인가를 보고자 했던 것입니다.(박수)

 

I cannot bear to pass this occasion without mentioning our deep and heart-felt thanks to the American war mothers. We thank them for sending their sons, their husbands, and their brothers in the American Army, Navy, and Air and Marine Corps to Korea in our darkest hours. We shall never forget that from our valleys and mountains the souls of American and Korean soldiers went up together to God. May the Almighty cherish them as we cherish their memory.[,Applause]

 나는 이 기회에 미국의 참전용사 어머니들에게 마음 속에서 울어나는 깊은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미국 육해공군 및 해병대에서 복무하는 자식을, 남편을, 그리고 형제를 우리가 가장 암담했던 순간에 한국으로 보내준데 대하여 감사하는 바입니다. 한-미 양국 군인들의 영혼이 수많은 계곡과 산중에서 하나님 앞으로 함께 올라갔음을 우리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소중히 여기듯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소중히 보살펴주옵소서.
 (박수)

 

Ladies and gentlemen of the Congress, these noble compatriots of yours had magnificent leadership in Generals Mac Arthur, Dean, Walker, Almond, Ridgway, Clark, Hull, and Taylor. Then, too, in 1951 General Van Fleet arrived in Pusan to command the Eighth Army. It was he who discovered the soldierly spirit of the Korean youths and their fervent desire for rifles with which to fight for their homes and their nation. Without much ado he gathered them together in Cheju Do, Kwang Ju, Nonsan, and other places and sent Korean military advisory group officers to train them almost day and night. Within a few weeks they were sent to the front line and they performed marvelously.[Applause]

 국회의 신사 숙녀 여러분! 여러분의 고귀한 애국장병들은 맥아더, 딘, 워커, 아몬드, 리지웨이,
클라크, 헐 및 테일러 장군과 같은 훌륭한 지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1951년에는 밴플리트 장군이 제8군을 지휘하기 위하여 부산에 도착하였습니다. 한국청년의 용감한 정신과 가정과 조국을
위하여 싸우기 위해 총을 달라는 열망을 발견한 사람은 바로 그였습니다. 그는 큰 어려움 없이
한국청년을 제주도, 광주, 논산 기타 여러 곳에 모아서 주한미군사고문단 장교들을 보내 주야로 훈련시켰습니다. 몇 주일 이내로 이들은 일선에 배치되어 경이적인 성과를 올렸던 것입니다.
(박수)

Today this army is known to be the strongest anti-Communist force in all Asia. [Applause] This force is holding more than two-thirds of the entire frontline. So General Van Fleet is known in Korea as the father of the Republic of Korea Army, the hard ROK’s as ther GI’s called them. Now, if the United Stares could help build up this force, together with the air and sea strength in adequate proportion, I can assure you that no American soldier would be required to fight in the Korean theater of action. [Aplause.]

 오늘날 이 군대는 아세아 전역 최강의 반공군(反共軍)으로 유명해졌습니다. (박수)
이 군대는 전전선의 3분의2 이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밴플리트 장군은 GI(미국군인)들에게 굳센 락스(ROKS)라고 불리워지고 있는 ‘대한민국 육군의 아버지’로서 알려져 있습니다.
이제 만약 미국이 이 군대 적절한 비율(比率)의 공-해군력과 함께 증강하도록 원조해준다면 한국전선에서는 단한명의 미국 병사도 싸울 필요가 없게 될 것임을 나는 여러분에게 보장할 수 있습니다. (박수)

Yet many, many Americans gave all they had to give to the good cause: but the battle they died to win is not yet won. The forces of Communist tyranny still hold the initiative throughout the world. On the Korean front, the guns are silent for the moment, stilled temporarily by the unwise armistice which the enemy is using to build up his strength. Now that the Geneva Conference has come to an end with no result, as predicted, it is quite in place to declare the end of the armistice. [Applause0The northern half of our country is held and ruled by a million Chinese slaves of the Soviets. Communist trenches, filled with troops, lie within 40 miles of our national capital. Communist airfields, newly constructed in defiance of armistice terms and furnished with jet bombers, lie within 10 minutes of our national assembly.

 수많은 미국인들은 대의를 위하여 모든 것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승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 싸움은 아직도 승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폭군 세력은 지금도 전세계의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습니다. 한국전선에서는 현명(賢明)치 못한 휴전(休戰)으로 말미암아 포화(砲火)는 잠시 중단되고 일시적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적(敵)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무력을 증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제네바 회담도 예상한 대로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으니만치 휴전의 종결을 선언할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박수)

우리나라 북반부는 소련의 1백만 중국인 노예가 점령 지배하고 있습니다. 적병이 가득 찬 공산군 참호(塹壕)는 우리 수도 서울에서 불과 40리 이내에 있습니다. 휴전협정 규정을 무시하고 새로이 건설되어 제트 폭격기로 가득 찬 공산 공군기지들은 우리 국회까지 10분 이내 비행거리에 있습니다.


Yet death is scarcely closer to Seoul than to Washington, for the destruction of the United States is the prime objective of the conspirators in the Kremlin. The Soviet Union’s hydrogen bombs may well be dropped on the great cities of America even before they are dropped on our shattered towns.[Applause]
그러나 죽음은 워싱턴보다 서울에 더 가까운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미국을 파괴하는 것이야말로 크레믈린 음모자들의 최고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소련의 수소폭탄은 파괴된 우리나라 도시보다오히려 미국의 대도시에 먼저 떨어질는지도 모릅니다.(박수)

 

The essence of the Soviet’s strategy for world conquest is to lull Americans into a sleep of death by talking peace until the Soviet Union possesses enough hydrogen bombs and intercontinental bombers to pulverize the airfields and productive centers of the United States by a sneak attack. This is a compliment to the American standard of international morality: but it is a sinister compliment. For the Soviet Government will use the weapons of annihilation when it has enough to feel confident that it can eliminate America’s power to retaliate. We are obliged, therefore, as responsible statesmen, to consider what, if anything, can be done to make certain that when the Soviet Government possesses those weapons, it will not dare to use them.[Applause]

소련의 세계정복 전략의 본질은 평화를 말함으로써 미국을 달래어 죽음의 잠속으로 유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소련이 미국의 비행장들과 생산중심지를 분쇄할만한 수소폭탄과 대륙간 폭격기들을 보유하여 몰래 공습할 수 있을 때까지입니다. 이것이 미국의 국제도의 기준에 대하여 소련이 찬사를 보내는 이유로서, 그러나 그것은 사악한 칭찬입니다. 왜냐하면 소련 정부는 미국의 보복능력을 제거하기에 충분히 자신할 수 있는 섬멸무기(殲滅武器)를 가지게 될 때에는 곧 사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책임 있는 정치가로서 우리는 소련정부가 그런 무기를 소유하게 될 때라도 감히 그것을 사용하면 안되겠구나 확신하도록 할만한 무슨 대책을 강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박수)

We know that we cannot count on Soviet promises, Thirty-six years of experience have taught us that Communists never respect a treaty if they consider it in their interest to break it. They are not restrained by any moral scruple, humanitarian principle or religious sanction. They have dedicated themselves to the employment of any means, even the foulest-even torture and mass murder-to achieve their conquest of the world. The Soviet Union will not stop of its own volition. It must be stopped. [Applause]
우리는 소련의 약속은 믿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36년간 경험을 통해서 우리가 배운 것은 공산주의자들은 어떠한 맹약이라도 그것을 깨트리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할 때는 결코 그것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도덕적 가책(苛責)이나 인도적 원칙이나 종교적 제재에도 구속을 받지 않습니다. 그들은 세계정복의 야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즉 집단학살 같은 가장 잔인한 수단까지도- 가리지 않고 사용해 왔습니다. 소련은 그러한 전략을 스스로의 자유의사로 중지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우리가 중지시켜야만 하는 것입니다.(박수)

 

Does this necessarily mean that the United States and its allies must either drop bombs now on the Soviet factories or stand like steers in a slaughterhouse awaiting death?

 The way to survival for the free peoples of the world- the only way that we Koreans see-is not the way of wishfully hoping for peace when there is no peace; not by trusting that somehow the Soviet Government may be persuaded to abandon its monstrous effort to conquer the world; not by cringing and appeasing the forces of evil; but by swinging the world balance of power so strongly against the Communists that, even when they possess the weapons of annihilation, they will not dare use them. [Applause.]

 그렇다면 미국과 우방들은 지금 소련의 공장들에 폭탄을 투하해야 할 것입니까? 아니면
도살장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거세된 소(去勢牛)처럼 우두커니 서있어야만 하겠습니까?

 전세계 자유시민들이 생존할 수 있는 길은 - 우리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오직 하나만의 길은 평화가 없을 때에 부러운 눈치로 평화를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소련정부로 하여금 그 무도한 세계정복 공작을 포기하도록 우리가 어떻게든지 설득시킬 수 있다고 믿는 길도 아니며,
악마의 힘에 굽신거리거나 유화적이 되는 길도 아닙니다. 오직 세계의 세력균형을 강열히 요동시켜서 공산측에서 불리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섬멸무기를 갖더라도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길 뿐인 것입니다. (박수)

There is little time, Within a few years the Soviet Union will possess the means to vanquish the United States. We must act now. Where can we act? 

We can act in the Far East. [Applause]
우리에게 시간적 여유는 얼마 없습니다. 수년 내로 소련은 미국을 정복할 수단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행동해야 합니다. 어디서 행동할 수 있습니까? 극동에서 행동을 개시할 수 있습니다.(박수)

Ladies and gentlemen, the Korean front comprises only one small portion of the war we want to win- the war for Asia, the war for the world, the war for freedom on earth.

 Yet the Republic of Korea has offered you its 20 equipped divisions and the men to compose 20 more. A million and a half young Koreans ask for nothing better than to fight for the cause of human freedom, their honor and their nation. [Applause].
The valor of our men has been proved in battle and no American has doubted it since General Van Fleet’s statement that a Korean soldier is the equal of any fighting man in the world. [Applause.]

 신사 숙녀 여러분! 한국전선은 우리가 승리 하고자 원하는 전쟁- 아세아를 위한 전쟁. 세계를 위한 전쟁, 지구상의 자유를 위한 전쟁- 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은 여러분에게의 20개 사단의 무장과 또 20개 사단을 더 편성할 수 있는 인원을 제안하였습니다. 150만의 한국청년들은 인류의 자유와 자신의 명예와 자신들의 조국을 위하여 싸우는 것 이상 더 좋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박수)

우리 군인들의 용감성은 전투에서 실증되었고, 밴플리트 장군이 한국군은 세계의 어느 군인들과도 비견할 만 하다고 언명한 이래 이 사실을 의심하는 미국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박수)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China in Formosa also has offered you 630,000 men of its Armed Forces and additional reserves. 

The Communist regime on the mainland of China is a monster with feet of clay. It is hated by the masses. Although the Reds have murdered 15 million of their opponents, thousands of free Chinese guerrillas are still fighting in the interior of China. Red China’s army numbers 2,500,000. but its loyalty is not reliable, as was proved when 14,369 of the Communist Chinese army captured in Korea chose to go to Formosa, and only 220 chose to return to Red China. [Applause]

 대만 중화민국정부도 여러분에게 무장군 63만명과 예비병력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중국본토의 공산정권은 결정적 약점을 지닌 괴물입니다. 이 정권은 대중의 증오를 받고 있습니다. 중공은 반대세력을 150만 명이나 학살하였지만 아직도 수많은 자유중국 게릴라들이 중국본토 내에서 투쟁하고 있습니다. 중공의 육군은 2백만 병력을 가지고 있으나 그들의 충성심은 결코 믿을만한 것이 못됩니다. 그것은 한국에 포로가 된 중공군 중 14,369명이 대만 송환을 선택하였으며, 중공 귀환자는 불과 220명이었다는 사실이 입증합니다.(박수)

Furthermore, the economy of Red China is extremely vulnerable. Sixty percent of its imports reach it by sea and seaborne coastal traffic is its chief means of communication from north to south. A blockade of the China coast by the American Navy would produce chaos in its communications.

 게다가 중공의 경제상태는 극도로 취약합니다. 수입의 60%는 해상을 통하며 연안해운이 남북교통의 주요수단입니다. 미국해군이 중국해안을 봉쇄하면 교통망에 일대 혼란이 야기될 것입니다.

The American Air Force, as well as the Navy, would be needed to insure the success of the counterattack on the Red Chinese regime, but, let me repeat, no American foot soldier. [Applause]

 중국 붉은 정권에 대한 반격이 성공하려면 미국의 해군과 공군이 필요할 것입니다.
미국 지상군(地上軍)은 필요없다는 것을 나는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박수)


The return of the Chinese mainland to the side of the free world would automatically produce a victorious end to the wars in Korea and Indochina, and would swing the balance of power so strongly against the Soviet Union that it would not dare to risk war with the Unites States. Unless we win China back, an ultimate victory for the free world is unthinkable.[Applause]

 중국본토가 자유진영 편에 환원 된다면 한국과 인도차이나 전쟁은 자동적으로 승리로 귀결 될 것이며, 세력균형은 소련에 극히 불리하게 기울어지게 되어 감히 미국과의 전쟁모험을 기도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중국을 다시 찾지 못하는 한, 자유세계의 궁극적 승리는 바랄수 없습니다.
(박수)

Would not the Soviet Government, therefore, launch its own ground forces into the battle for China, and its air force as well? Perhaps. But that would be excellent for the free world, since it would justify the destruction of the Soviet centers of production by the American Air Force before the Soviet hydrogen bombs had been produced in quantity. 

I am aware that this is hard doctrine. But the Communists have made this a hard world, a horrible world, in which to be soft is to become a slave.[Applause]

그러므로 소련정부는 이 중국 탈환 전쟁에 지상군과 공군을 투입하지 않을 것인가, 아마도 투입하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자유세계에는 아주 좋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소련의 참전은 소련이 수소폭탄을 대량생산하기 전에 그 생산지를 미공군이 파괴하여도 정당화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런 주장이 강경론이란 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산주의자들은 이 세계를 고통스럽고 무서운 세계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부드럽게 대해주면 공산당 노예가 되어버리는 세상 말이오. (박수)

 

Ladies and gentlemen of the Congress, the fate of human civilization itself awaits our supreme resolution. Let us take courage and stand up in defense of the ideals and principles upheld by the fathers of American independence, George Washington and Thomas Jefferson, and again by the great Emancipator, Abraham Lincoln, who did not hesitate to fight in defense of the Union which could not survive half free and half slave.[Applause]

 미국 국회의 신사 숙녀 여러분! 인류 문명의 운명은 바야흐로 우리의 최고 결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용기를 가집시다, 그리고 궐기합시다. 우리의 이상과 원칙을 수호합시다.

미국 독립의 아버지들 조지 워싱턴과 토마스 제퍼슨이 펼친 이상과 원칙, 그리고 다시 한번 저
위대한 해방자 에이브러햄 링컨이 절반의 자유 절반의 노예론 살수 없다며 연방 수호 전쟁을 주저하지 않았던 그 이상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 일어납시다. (박수)

.

Let us remember, my friends, that peace cannot be restored in the world half Communist and half democratic. Your momentous decision is needed now to make Asia safe for freedom, for that will automatically settle the world Communist problems in Europe, Africa, and America. [Applause]

다 같이 명심합시다, 친구들이여! 절반 공산주의 절반 민주주의 세계에서는 평화란 회복될 수 없다는 것을! 이 순간 여러분의 중대 결단이야말로 아시아 자유 정착에 필수불가결하며 그래야만 전세계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공산주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임을 기억합시다.

(박수)


★연설은 대성공이었다. 기립박수등 33차례나 박수가 터지는 바람에 연설은 자주 중단되었다.

영어의 묘미를 십분 살린 이승만 특유의 선동적 어휘구사와 자유투사로서의 신념과 투지가 불꽃처럼 청중들을 사로잡아 미국민 대표자들의 뇌리에 낙인찍히는 감동적인 반공강의였다.

국무성에서 실무협의를 하던 한국 대표들도 회담을 중단하고 달려와 연설을 경청하였다.

"극동의 약소국 백성으로서 이때처럼 긍지를 느껴본 적이 없다. 이승만 박사에 대해 말이 많지만 그는 미국을 가지고 노는 위대한 인물이다."라고 백두진은 뒷날 회고하였다.

이날 미극에 제시한 이승만의 주장은 대강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휴전협정에 규정된 정치회의(제네바회담)가 실패로 끝났으니 휴전협정은 무효라는 것,
한국의 통일을 정치회의에서 달성시켜주겠다는 미국의 약속은 물거품 되었으므로
지금 바로 ‘휴전 무효 선언’을 해야 한다.

둘째, 한국군은 자유진영 최고의 반공군이므로 미국이 조속히 강화시켜 달라. 그러면 

중공군을 한국 단독으로 물리칠 것이며 미국 지상군 한명도 싸울 필요가 없다.
셋째, 중공군이 침략무장을 강화하기 전에 공격하여 중국 대륙을 자유세계로 탈환해야 한다.

중국이 공산체제인 한, 한국은 살아남을 수 없으며 세계 평화도 보장 못한다.

넷째, 소련이 한-중 전쟁에 참전하면 미국은 즉시 소련의 군수기지를 공습하라.
미국과 자유세계의 위험을 사전에 제거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된다.

다섯째, 이것은 강경론이 아니다. 절반이 공산주의 세상은 곧 그들의 노예세상 된다. 

이 날은 6.25전쟁 휴전1주년 다음날이다. 박수소리가 컸던 만큼 충격도 커졌다.
휴전 1년만에 미국이 지금 당장 중국에 선전포고를 하란 말인가?
지겨운 한국전쟁을 금방 또 하라고? 원조를 요청하러 온 한국 대통령이 또 전쟁을 요구한다고
받아들인 여론이 수근거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반응이 나올까봐 가장 염려했던 사람은 이승만 정치자문역 올리버 박사였다.

이대통령의 주요연설문에 자료를 제공하고 원고를 검토했던 그는 이번에야말로 중요한 국빈방문이므로 이승만이 타이프라이터로 찍은 원고들을 보살폈는데 국회연설문이 보이지 낳았다.

올리버는 언제 보려주려나 기다렸지만 워싱턴에 도착해서도 안보여주는 것이었다.
견디다 못해 국회연설 하루전날 블레어하우스에서 이승만에게 ‘보여달라’고 말을 꺼냈다.

“안되오” 이승만은 올리버가 가리키는 공문가방에 재빨리 손을 얹고 고개를 저었다.

“그냥 훑어보기만 하겠습니다. 고치거나 다시 쓰는 일은 않겠습니다.” 올리버가 간청하였다.

“절대로 안되오. 그럴 수 없소. 나는 휴전에 대한 내자신의 생각을 말하려고 미국에 왔소.
꼭 그렇게 할 것이오. 내 식대로 말이오. 올리버 박사가 내 창끝을 무디게 하고 싶은 모양인데
그렇게는 못하오.” 

이러면서 이승만은 다른 연설문들을 건네주고 손질할 곳을 봐달라고 요구하였다.

“이런 것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소. 박사 뜻대로 하시오. 그러나...” 순간 이승만은 문서가방을 들어 두 팔로 가슴에 안았다. “이 의회연설만은 나 자신의 이야기인 것이오. 내가 꼭 하고싶은 말이 들어있고 정확히 그대로 전하려고 하오.”

“손대자는 게 아니라 그냥 한번 보고 도움되는 말씀이라도...” 올리버가 어물거렸다.

“이제 박사도 그만 가보시게. 덜레스 만찬 전에 좀 쉬어야겠으니...” 이승만은 고개를 돌렸다.

                             (올리버 지음 [이승만의 대미투쟁] 비봉출판사 2013 발행)

국회에서 폭풍같은 연설과 환호를 겪은 올리버는 사후 소감을 이렇게 적었다.

“그는 가장 진정한 의미에서 위대한 연설가이다. 주요한 문제는 언제나 도덕적, 인도적 관점에서 보았다. 그의 목소리와 연설 태도는 놀랄만큼 함축적인 표현을 담고 있으며 연설의 전환점에서
엄숙한 ‘멈춤’의 가치를 잘 활용하고, 마치 대성당의 오르간처럼 목소리를 바꾸고, 누구라도 집중할 수 밖에 없도록 점점 강력한 열정적 표현으로 메시지를 토해냈다. 미국 국민들의 혼을 빼놓은 듯 열렬한 환호와 박수의 회수를 표시해보니 서른 세 번이다.

만약 이대통령이 연설문을 손봐달라고 부탁했더라도 그 감동적인 원문을 더 좋게 만들 재주는
나에게 없었다. 단지 ‘평화와 협력을 더 강조하는 것’ 말고는...“

18일간에 걸친 미국 방문이 끝난 뒤에 서울에서 다시 만난 이승만이 이렇게 말했다고 헌다.
“올리버 박사, 그 의회연설은 내 일생의 큰 실수였소.”
이승만의 말에 동감하는 올리버는 그 연설이 미국 여론을 악화시켜 역효과를 가져왔다고 그의 책에서 지적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일찍이 외교독립론을 주창하며 미국 조야의 여론을 한국편으로 모으고자 평생을 애써온 이승만이, 그것도 미국 국회에서 중계방송되는 국빈 연설을 ‘실수’인지도 모르고 감행했단 말인가?
동의하기 어렵다. 이승만의 여행길을 좀더 따라가 보자.


★7월 29일 방미 사흘째, 이승만은 국빈 스케줄에 따라 마운트 버논,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한다. 마운트 버논(Mount Vernon)은 미국의 건국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묻힌 유택(幽宅)으로 외국원수들이 의례적으로 방문하는 곳, 이승만이 이곳을 처음 찾았던 때는 반세기전 1905년이었다.

난생처음 미국에 와서 조지 워싱턴 대학에 입학한 30세 한국청년은 미국 독립의 영웅 워싱턴의
독립투쟁을 자기화하면서 여러번 이곳을 찾곤 하였다고 회상한다. 

“포토맥 강 굽이를 돌아가는 배들과 물결을 비추는 그때 달빛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당신들은 태어나기도 전이오. 일본에 점령당한 조국을 떠나 독립을 갈망하던 유학생 심정을
여러분은 짐작이나 하겠소?” 

수행원들과 취재진에게 역사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이승만은 한국서 가져온 단풍나무를 그곳 정원에 기념으로 심었다. “이 나무가 자라거든 ‘일본 단풍’이란 푯말은 붙이지 마시오. 이 단풍나무는 난쟁이 같은 일본단풍과는 전혀 다른 ‘한국 단풍’이라고 설명하시오.”
이곳 관광명소의 책임자에게 이승만은 장난스런 미소로 말했다.

이어서 알링턴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거기에도 ‘한국 단풍’나무를 심었다.

영빈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예정에 없는 링컨 기념관에도 들러서 대형 석고상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였다. 누구보다도 링컨은 한국의 분단 비극을 잘 이해해줄 것 같았다.

‘반쪽 노예상태’론 안된다며 남북 통일전쟁을 성공시킨 링컨,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소멸되지 않도록 우리도 남북통일 할 수 있게 도우소서” 눈감은 이승만은 링컨과 대화를 나눈다.
어떤 여인이 다가와 눈물을 머금고 “신께서 당신 나라를 축복하시기 기원합니다‘라고 말했다.
또 어떤 여인은 7살된 어린이 손을 잡고 함께 사진 찍자고 요청하며 사인도 부탁하였다.

예정에 없던 곳을 또 찾아갔다.
펜실베니아 거리 ‘워싱턴 스타’ 신문사, 친구인 카우프만 회장은 출타중이어서 맥켈웨이 편집인을 만나 “6.25전쟁중에 한국에 호의적인 보도를 많이 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마치 독립운동 시절 홍보활동을 했듯이 현직 대통령 스스로 홍보활동을 다시 하고 있다.

“조지 워싱턴처럼 꼭 이루리라” 다짐하던 청춘시절의 이상향 워싱턴, 백악관과 국무성은 물론
수많은 희로애락이 얽힌 ‘독립운동의 고향’ 워싱턴은 대한민국 꿈이 무르익은 곳이다.



▶.“저런 고얀 사람이 있나”...이승만, 아이젠하워에 분노 폭발


이날 오후 2시30분 이승만은 백악관으로 가서 아이젠하워와 2차 정상회담을 열었다.

백악관으로 떠나기전 블레어 하우스로 미국무성 관리가 회담후 발표 할 공동성명서 초안을 들고 찾아왔다. 초안을 훑어본 이승만의 표정이 느닷없이 변색되었다.

“이 사람들이 나를 불러다놓고 올가미를 씌우려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회담은 하나마나지.”

공동성명 초안에는 이대통령과 합의되지 않은 귀절이 들어있었다. 

다름 아닌 한일관계, “한국은 앞으로 일본과의 관계에서 우호적으로 협력하며...운운...”

1차 회담에서도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한 문제에 대하여 미국측은 공동성명 발표 전에 은근슬쩍 이승만의 고집을 건너뛰어 넘으려 시험하듯 통고하듯 일종의 압력이다.

1950년 후반 미국의 대한 원조가 시작된 이래 이승만은 미국의 ‘일본 지원 우선정책’(Buy Japan)에 대하여 끈질기게 시정을 요구해 왔다. 한국엔 식량등 소비재만 공급하는 미국이 필요한 공산품은 모두 일본서 만든 제품을 구입하게 했던 것. 건국초부터 ‘수입품 대체정책’을 추진한 이승만은 원조자금으로 생산공장을 지으려했으나 번번이 미국이 막았으므로 이번에 '원조사용 재량권'을 다시한번 확대, 다짐받아야 할 부분이다..

“아이젠하워를 더 이상 만날 필요가 없겠네.”
정상회담 시간이 다가와도 이승만은 움직이지 않았다.
백악관의 독촉전화를 받은 측근들이 “그래도 회담은 하셔야 합니다”라고 거듭 건의하였다.
마지못한 듯 이승만은 30분 늦게 백악관에 도착하였다.

아이젠하워 역시 미국의 반공전략 한일관계 정상화를 이번에 결판내려 하였다.

“중단된 한일 회담을 속히 재개하여 국교 수립을 추진해야...” 아이젠하워가 말을 이었다.

“그렇게는 안되오. 내가 살아있는 한 일본과는 상종하지 않을 것이오.” .

한미방위조약을 맺은 이유의 하나가 일본의 재침을 예방하려는 것인데 일본을 재무장 시켜주는 미국이 언제 또 한국을 ‘팔아넘길’지도 모를뿐더러, 한일수교는 미국의 압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한국 주도로 추진해야 하고 사전에 풀어야할 과제가 산더미인 것이다.

무슨 말인가 더 하려는 듯 이승만을 쏘아보던 아이젠하워가 화난 얼굴로 방을 나가버렸다.

“저런...저런 고얀 사람이 있나...”
이승만이 아이크의 등을 가리키며 소리질렀다.

잠시후 아이젠하워가 흥분을 삭인 듯 회담장으로 돌아와 앉았다. 

이번엔 튕기듯 이승만이 벌떡 일어섰다. “외신기자들 회견할 준비나 해야겠소.”

이튿날 발표된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는  ‘한일관계’ 부분이 빠져 버렸다.

★ “조지 워싱턴 대학의 아들, 대한민국 대통령, 높은 분별력과 기독교정신이 결합된 인물,

동양적인 적을 서양적인 것으로, 서양적인 것을 동양적인 것으로 새로운 해석을 내놓은 비범한
재능, 항상 민감하게 정의의 편에 서는 이승만, 너무나 짧은 방문이라도 너무 기쁘다“

조지 워싱턴대학 총장 클로이드 마빈이 이승만의 두손을 잡고 소개하였다.

“우리 대학교 이사회와 교수회의를 대표하여 당신에게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수여합니다”

1905년부터 2년동안 고학 끝에 학사학위를 받았던 모교에서 47년 뒤 독립국 대통령이 되어 명예박사학위를 받는 이승만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입학당시 이승만을 테스트한 학장은 영어실력과 해박한 미국역사 지식에 놀라서
“한국의 배재 대학(배재학당)의 연구 수준이 이렇게 높은 줄 몰랐다”며 2학년에 편입시켜주었다. 그 와중에 한국서 보낸 6대독자 태산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남의 집에 맡겼다가 디프테리아로 잃고 말았다. 그는 마음속에 쌓였던 과거와 현재를 털어놓는 긴 연설을 하였다.

“.....내가 조지 워싱턴 대학을 택한 이유는 조국에 있을 때 벌써 미국 독립의 아버지 워싱턴을
열렬히 흠모하였기 때문입니다. 나도 조국의 독립운동을 하였고 조지 워싱턴 대학이 아주 이상적으로 보였습니다. 미국 민주주의 중심부에서 배운 민주정부 운용방식과 국민의 자유를 보호하는 방법등 내 평생의 삶에 진정한 초석이 되었고 내민족의 자유를 쟁취하는데 큰 힘이었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나를 ‘국부’라고 부르는데 조지 워싱턴대학 덕분입니다....(중략)....나는 두 가지 일, 한민족의 자유와 약소민족의 자결주의를 위해서 투쟁해온 사람입니다. 우리의 이 두가지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공산주의자들이 우리를 크레믈린의 노예로 만들려합니다.

미국과 모든 자유국가 대학들은 이들과 투쟁에 선봉에 나서야 합니다.....(중략)....여러분은 중립일 순 없으며 한가한 강의실에 앉아서 자유세계가 파멸하는 것을 방관해선 안됩니다. 후배들이어, 지금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단결과 행동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작심하고’ 연설....기자들에게 '반공전쟁'의 당위성 홍보

외신기자클럽의 연설은 30일 스타틀러 호텔(Startler Hotel)에서 오찬을 겸해 진행되었다.

"나는 작심하고 언론일들을 향하여 연설을 했다"고 이승만은 일기에 써놓았다.

특히 이틀전 행한 미국회연설에 대하여 ‘오해’하지 말도록 해명하며 또 한번 되풀이 주장한다.

“....내가 작성한 최초의 연설 원고는 좀 길었습니다. 친구들이 줄이면 좋겠다해서 줄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복잡한 문제룰 몇 마디 단어로 요약하니 그 배경과 설명이 지워졌습니다.그 결과,
내 연설을 들은 몇사람들은 내가 미국에게 즉시 중공과 전쟁을 개시하라고 축구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는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나의 제안에 대해 일체의 오해가 없도록...“

이승만은 한달전 결렬된 제네바 회의를 비롯, 한반도 정세변화를 설명하고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러 아이젠하워를 찾아와 회담을 나눈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어떻게 공산주의자들을 한반도에서 몰아내느냐는 것입니다....한국군은 제3차대전을
초래할 위험 없이도 중공군을 몰아낼수 있습니다.....(중략)......만약 중공군이 축출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구출 될 수 없습니다. 중국이 공산화된채 북한과 아시아 지역이 공산당 손아귀에 놓이면 대한민국은 둑립국가로, 민주국가로, 통일국가로 존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중략).....

나는 미국더러 지금 중공을 공격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제안은 미국이 중국대륙을 구원하는데 필요한 결단을 지금 내려야한다는 것입니다. 즉 중국본토의 해방을 항구적인 미국 목표로 삼으라는 것, 그 정책을 지금 함께 강화하여 실천하자는 것입니다.“

중국 대륙의 공산화과정에서 미국이 저지른 실수들과 한국분단 현실을 열거한 이승만은
중국대륙의 자유회복 전략에 대하여 언급하고 기자들에게 간곡히 당부한다.

“언론인 여러분, 우리가 권고하는 정책은 중국을 구출하는 결단을 빨리 내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미국 정부와 위대한 힘의 원천인 미국 국민에게 호소해 주기 바랍니다.
자유롭게 살기 위하여, 미국의 자유를 보전하기 위하여 투쟁하고 있는 세계 도처의 국민들을
지원하자고 말입니다. 미국인들이 도와준다면 우리는 반드시 공산주의 불길을 진화하겠습니다.”

미국회 연설에서나 기자클럽 연설에서나 이승만의 초점은 한곳으로 모아진다.

그것은 ‘한국군을 최대로 강화시켜라. 한국 경제를 키워달라.’ 요컨대 원조 극대화이다.

뒷날 “미국회 연설이 실수였다”는 이승만의 말이 진정이라면 그것은 ‘전략적 실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워싱턴을 떠나 뉴욕 필라델피아 시카고 등을 돌면서도 그는 ‘반공 전쟁’의 시급성을
가는 곳마다 반복하여 강조하였다. 


▶ "모두들 날 비난하라...하나님만 나를 책망하지 않으면 된다"

한국대사관에서 베푼 워싱턴 마지막 리셉션에는 망명시절 사귀고 도움받았던 많은 미국 친구들과 저명인사들이 몰려와 자유민주공화국 독립이란 목표를 이룬 이승만을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나는 행복했다”고 이승만은 방미일기에 적었다.

1주일간의 워싱턴 방문을 마친 이승만 대통령 부부는 이튿날 7월31일 아침11시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 도착, 한국인 중국인 미국인들의 환영인파에 묻혔다. 장미 꽃다발과 눈물과 웃음소리로
서로서로 잡은 손을 놓을 줄 모르는 감격의 재회가 끝나자 월돌프 아스토리아 호텔로 달려갔다. 호텔 정면에는 대형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저녁에는 뉴욕 총영사관이 개최한 리셉션에 더욱 많이 몰린 인파 속에서 이승만은
“해외 모든 동포들은 궁극적인 조국통일에 굳은 믿음을 가져달라”고 연설하였다.

★ 다음날 8월1일은 일요일, 파운드리 감리교회(Foundry Methodist Church)가 이승만을 워싱턴으로 다시 불렀다. 대학시절 고학생 이승만의 영혼을 사랑해준 교회, 망명 막바지 10년간 워싱턴서 투쟁할 때 예배드리던 교회, 평생 친구인 프레데릭 브라운 해리스 목사(the Rev. Frederick Brown Harris)가 이승만 부부를 초청하여 특별예배를 베풀어주었다.

이승만은 즉흥연설을 하였다.

“한구이 자유공화국이 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이 100만 중공군을 몰아내려 한다면 원자폭탁보다 무서운 수소폭탄이 순식간에 세계를 파괴할것이라고 겁냅니다.

그렇습니다. 끔찍한 3차대전이 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말하고자 합니다.

우리에겐 수소폭탄보다 더 위력적인 무엇이 있다고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손을 잡아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승만은 신념과 성령에 떨리는 목소리로 강조하였다.

“I know God will not tell us what we are doing is wrong. He is a God not only of love but a God of righteousness. I am not afraid. Let them all criticize me. But as long as God does not condemn me, that is all.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하고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냐다.

그분은 사랑의 하나님이이자 정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두렵지 않습니다.

모두들 나를 비난하라 하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책망하지 않는 한 그걸로 충분합니다.“


★ 저녁엔 필라델피아로 날아갔다.
외국참전용사회(the Veterans of Foreign Wars) 회장등 간부들과 주지사등 관리들이 공항에 나와 환영식을 열어주었다. 의장대를 사열한뒤 특별호위대의 인도를 받아 행사장으로 갔다.
일요일 저녁 컨벤션홀에는 역전의 용사들이 5000여명이나 운집해 있었다.

“세계 인류의 자유와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키는 숭고한 수호자들”에 대한 감사와 찬사와
특히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치하한 뒤 이승만은 6.25때 비화도 꺼냈다.

“그날 공산주의자들이 소련 탱크로 밀고 내려올 때 나는 단파방송국으로 달려가서
나의 고뇌를 호소했습니다. ‘적들이 우리 문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친구들은 무엇을 하렵니가?’
라고요. 나는 누가 들을지 신경 쓸지 기대 못했지만 워싱턴에서 미국 대통령이 즉각 각의를 소집 파병을 결정해주었습니다.“

이 자리에서도 이승만은 미국참전의 고마움과 함께 양보를 거듭하는 유화노선을 비판하였다.

“미국은 자유세계의 주축입니다. 목표를 추구하는데 확고부동하고 두려움이 없어야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곰처럼 덤비는 소련앞에서 공포감을 숨기지 못합니다. 여기서 찔끔 저기서 찔끔 계속 양보하며 우유부단한 행동과 정책으로 바꿔나갑니다....(중략)....하루는 수백만불을 지원해주고 다음 날엔 그 돈을 회수하려 합니다. 동맹국에게 무기를 사용말라고 애원합니다.

며칠전 의회연설에서 나는 중국본토 해방을 미국의 최우선순위에 두라고 제안했습니다.
중국본토를 자유화 않고 아시아를 구출할 길은 없습니다.“

이승만은 아시아의 현실과 소련과 중공의 위협을 설명한 뒤에 평화론자들을 공격했다.

공산주의자들에게 무엇을 양보해서라도 어떻게든 전쟁을 피하자, 전쟁보다 나쁜 것은 없다는
주장들을 믿으면 안됩니다. 공산당이 요구하는 대가를 치르는 것은 평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세계 정복입니다. 모든 자유와 모든 해방의 종말. 크레믈린 전제추의 지배입니다
......

인간 신앙의 종말입니다. 그런 운명은 전쟁보다 나쁜 것이며 죽음보다 나쁜 것이며.....(중략)....
미국이 정의와 자유의 힘으로 두 번씩이나 세계를 구원했던 바로 그 정신을 다시 점화시켜 주십시오. 대의에 대한 확신과 승리의 결심을 거머쥐고 다시 전투 준비를 합시다!“



뉴욕 브로드웨이 ‘영웅 행진’...민간원조단체 '한미재단'서 감동 연설

월요일 낮 12시 뉴욕에 돌아온 이승만은 월돌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휴식을 취한뒤
로버트 와그너(Rovert F. Wagner) 뉴욕시장의 안내로 브로드웨이(Broadway)로 나아갔다.

유명한 이 ‘영웅 행진’(Hero March)은 미국 역사상 영웅적인 공헌을 세운 사람을 찬양하기 위해 거행해왔는데 최초로 대서양을 비행 횡단한 린드버그를 비롯, 트루먼이 해임한 맥아더 장군의 귀환때 폭발적인 환영 기록을 누렸고 외국 원수로는 이승만이 처음이었다.

부슬비도 그친 거리, 미군 군악대를 선두로 고층 마천루와 연도의 1백만 시민들이 뿌리는
오색찬란한 종이꽃 세례를 맞으며 브로드웨이를 남쪽으로 행진하여 뉴욕 시청에 도달하였을 때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프란체스카가 이승만의 머리에 덮인 종이가루를 털어주었다.

뉴욕시 의장대 사열을 받은뒤 화려한 환영식이 열리고 와그너 시장의 환영사가 인상적이었다.

“심장이 젊고 영혼이 젊은 청년 대통령님, 애국심과 자유와 민주의 상징인 귀하께 유엔의 고장
뉴욕은 귀하의 도시, 독립운동의 뉴욕은 귀하의 고향입니다. 국가가 존망위기에 처했을 때 홀로 유례없는 용기와 역동적인 리더십으로써 국민을 자유의 깃발아래 규합한 그 기막힌 기록을 역사는 영원히 새겨놓았습니다.” 80세 노인을 젊은이라 격찬하며 감동을 이끌었다.

이승만은 답사에서 영웅 퍼레이드중에 기동대장으로부터 그의 아들이 2년전 바로 오늘 한국서
전사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소개하고 자유를 생명보다 더 귀중하게 여기는 미국 애국자들을 존경하며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월돌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남자들만 참석한 오찬에서 또 한번 연설을 했다. 

오후에는 개교 200주년을 맞은 컬럼비아 대학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우리는 구걸하지 않는다"...한국 복구원조는 미국의 공동의무
한미재단(American-Korean Foundation)이 월폴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베푼 만찬회는 이승만에게 ‘가장 즐거운 시간’의 하나였다는 메모를 남겼다. 양국 국가를 한국의 소프라노 김자경이 오르간 연주에 맞추어 불러 감회가 새로웠다고 한다.

TV와 라디오가 이승만의 연설을 생중계하였다. 이승만은 1500여명 참석자들과 미전역 시청자에게 ‘한국을 원조하는 민간단체’들의 노고에 대하여 깊은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미국의 원조계획에 따라 제공되는 재원, 상품, 식량은 무리 국민들을 살려주었고 공산주의자들과 싸우는데 큰 용기를 돋아줍니다. 어느 운전기사 한분은 부인과 두 딸까지 한국을 돕기위해 절약하여 기부하였으며 자신은 단 한벌인 신사복도 제공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승만은 미국 기자들로부터 “이번에 원조를 얼마나 받아냈느냐? 만족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연하게 말을 이었어갔다.

“This is my answer. I knew never be discouraged, because I did not expect too much at the officaial level. I am not here to ask for more aid, more funds, moe everything. Nor am I here to complain that we do not get enough, that we are starving to death, and all that.

나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공적차원에서 나는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기에 결코 낙담하지 않습니다. 내가 여기 온 것은 더 많은 원조나 더 많은 자금 또는 뭐든지 더 많이 요구하러 온게 아니란 것을 알아주기 바랍니다. 또 뭐가 부족하다든지 굶어 죽게 생겼다고 불평하러 온게 아니란 말입니다.“

“It is true that we are in a difficult situation, but our people are not crying for help. They fight back their tears, and with quiet determination and brave smiles, they set about the difficut task of combating poverty and destruction. We don not beg and never shall. We have gratitude for wahtever our friends are able to give us, and we shall remain grateful.

우리가 힘든 상황에 처한건 사실입니다만, 그러나 우리 국민은 도와달라고 울지 않습니다.
눈물을 감추고 조용한 결의와 용감한 미소로 굶주림과 파괴를 이겨내는 싸움에 나섰습니다.
우리는 구걸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구걸하지 않을 것입니다. 친구들이 제공하는 것이면 뭐든지
감사하며 앞으로도 감사한 마음을 가질 것입니다.“

‘구걸하지 않는다. 주면 받는다. 감사한다’는 이 말이 가지는 의미는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이 연설을 두고 이승만 연구자들은 “역시 이승만은 다르다. 원조를 요구하면서도 국가자존심
구기지 않고 당당하게 받아냈다”고 평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단정은 오해이다.
6.25전쟁의 성격에 대한 인식체계의 오해, 이승만의 6.25전쟁관을 간과한 성급한 결론이다.

6.25남침 그날로 돌아가 보자.

이승만은 도쿄 유엔군사령부에서 잠자는 맥아더를 깨워 호통을 친다. 

“미국이 내 말을 안 듣더니 이 꼴이 났소. 빨리 달려와 이 나라를 구하시오.”

이승만의 ‘내 말’이란 무슨 말인가. 1948년 건국 순간부터 미국에게 요구했던 말들이다.

“미군이 이대로 철수하면 전쟁 난다. 한국군을 키우고 충분한 무기를 달라. 나토(NATO)와 같은
안보조약을 맺자. 그것도 안되면 한국을 지키겠다는 선언이라도 해 달라”...등등이다.

들은 척도 않고 철군했던 트루먼 미국대통령에게 비장한 결심을 통고한다. 

“이 전쟁은 통일전쟁이다. 이 기회에 한반도가 자유통일 되지 않는다면 미국도 세계도 평화는
존재할 수 없다. 공산주의냐 민주주의냐, 자유세계가 결단해야 할 때를 놓치면 안된다.”

그리하여 소련의 남침에 유엔군이 달려왔고 중공군 개입에 유엔군은 또 물러나고 말았다.

자유세계와 공산진영의 정면 승부, 안이한 미국의 거듭된 ‘실수’로 세기의 대결은 원점회귀!

이승만과 미국의 세계사적 역사관 차이, 결단에 필요한 신념의 격차가 비극의 뿌리이다.

“한국을 복구해놓아라. 한국군을 무장만 시켜주면 미국의 도움 없이 통일은 내가 한다”

무지무능 탓에 자유세계의 보루 한국을 망쳐놓은 미국이 오롯이 책임져야 마땅한 일이다.

‘실수의 댓가’나 억울한 피값 만이 아니다. 중공군 1백만이 북한에서 한국을 노리는 이 위기를
극복, 자유를 지켜내야 하는 자유수호 비용은 미국과 자유세계에 부여된 공동의무이다.


이승만은 TV 조명을 받으며 제한시간도 잊은 듯 열변을 그칠 줄 몰랐다.

“지금까지 자유세계는 공산주의자들에 대항할 때마다 패배하는 전투를 계속합니다.

동유럽에서 그랬고 중국 대륙을 내주었고 한국과 인도차이나에서 밀려났습니다.

우리 동맹의 주역들은 싸울 의지가 없습니다. 서서히 죽음에 이르는 유화정책과 공존이라는 함정을 선호합니다. 우리는 갈수록 약해지고 적들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 사태를 시급히 반전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다행히 자유세계는 ‘한국이라는 싸우는 동맹’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국민들은 싸우기 위한 수단과 기회만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 이상의 것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시 싸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미국 고위 관계자들도 한국 휴전은 끔찍한 실수라 합니다.

승리하지 못한 전쟁은 처음부터 다시 싸워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우리 한국의 150만 아들들이 적을 무찌르고 그들의 가정만이 아니라
미국 여러분들의 가정들도 방어할 수 있도록 무장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TV 중계가 꺼졌는데도 이승만의 열정은 꺼질 줄 모르고 청중을 휘어잡는다.

“Thank you, thank you, thank you, all night. Thank you, all of you- all the American people, in government offices and the man in the street. We have so much to thank you for all this help, and we thank God for all these friends...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밤이 새도록 감사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정부 여러분에게 거리의 시민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모든 도움에 감사합니다. 여러분 같은 친구들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날밤 이승만이 행한 뜨거운 연설문 전체를 옮겨 적을 지면이 없다. 

그는 아이젠하워와의 대화내용도 소개하고 양국 대통령이 얼마나 친밀하고 의기투합한지를
되풀이 강조하면서 미국은 자유수호의 천사임을, 반드시 한국을 지켜줄 것임을 믿는다고 말했다.

스미스 상원의원과 와그너 뉴욕시장의 연설이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이승만은 한미재단 이사장
러스크에게 서울서 가져간 ‘감사의 훈장’을 달아주엇다.

*8월3일 유엔본부로 하마슐트 사무총장 방문. 뉴욕타임스 발행인 슐츠버거 주최 오찬 참설.

*8월4일 시카고 방문. 드레이크 호텔에서 상공인들과 오찬 연설.

*8월5일 미주리 인디펜던스 시로 트루먼 방문. 큰 외과수술후 용양중인 트루먼에게
         6.25 참전결정을 내려준데 대해 한국대통령으로 처음 감사 인사. 

*8월6일 로스앤젤레스 방문. 시청행사 연설. 세계정세협회(World Affairs Council) 오찬 연설. 

*8월7일 샌프란시스코 방문. 커먼웰스 클럽 오찬 연설.

*8월8일 총영사관에서 예배후 미본토를 출발. 하와이 도착. 


★샌프란시스코에서 국빈방미 공식일정 2주일을 마친 이승만은 하와이에서 3일간 비공식일정을 보냈다. “내가 1913년부터 1938년까지 25년간 망명생활을 했던 이곳, 조국을 잃고 떠돌아다녔던 그 옛날 하와이와 워싱턴은 나의 제2의 고향이다. 정든 동포들의 손을 다시 잡으니 여러 남녀들이 소리내어 울었다.”라고 이승만은 그날 일기에 감회를 적어 놓는다. 

진주만 태평양 함대사령부를 찾아 감사와 격려를 보내고, 이올라니 궁전에 가서 주지사에게
이상범 화백의 ‘아침’이란 그림을 선물했다.  

인천상륙작전 참모장이던 러프너 소장의 안내로 펀치볼(Punchbowl) 국립묘지 참배하고.

자신이 설립한 한인기독교회, 한국 동지회, 한국기독교학원등 추억의 순례길을 순방하였다. 
[태평양 잡지]를 발간하면서 “하와이 8도를 조선8도로” 이민 동포들을 모아 ‘기독교 공화국’의
꿈을 실험했던 발자취를 더듬은 이승만은 총영사관에서 70세 이상의 한일들과 오찬을 나눈 다음 마지막 기자회견을 했다.

“하와이의 재회는 정말 행복했습니다”라고 토로한 그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는 적들에 대항하여 싸우는데 주저하지 않아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나는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의 자유인들에게 말합니다. 미국더러 오늘 내일 선전포고하라는 게
아닙니다. 자유동맹을 구하는 성전을 한국에서 시작한다면 세계의 반공세력은 용기백배할 것입니다. 중국과 한국과 아시아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나의 절실한 기도입니다. 이것은 또한 바로 미국 자신을 위한 기도입니다.“

(사진 알로하 레이 부부)

잠시후 히캄 공군기지를 이륙한 공군기는 태평양을 날아올라 위이크 섬과 유황도를 지나
쏜살같이 한반도로 향하였다.
한국시간 13일 아침11시 여의도 공항에 도착한 이승만 대통령은 방미과정을 국민들에게 설명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지칠줄 모르는 건강한 노인, 연도에는 수십만 인파들이 환영해주었다.



마침내 ‘한미상호방위조약’ 발효...서울 조인 1년3개월만에

이승만 대통령의 방미후 석 달이 지난 11월17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발효되었다.
1년전 서울에서 가조인(8월8일)된지 15개월만이다. 

‘Agreed minute between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and thd United States of America based on the Conferences held between President Rhee and Presedent Eisenhower and their Advisers in Washington July 27~30, 1954. subsequent Discussion between Representatives of the two Governments’

이 긴 이름이 ‘한미 의사 합의록’이란 문서 제목이다. 

우리말로 ‘1954년 7월27~30일 사이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국 이대통령과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 및 보좌관들간의 회담과 그후 한미 양국정부 대표자간에 이루어진 협의에 입각한 한미정부간의 합의 의사록’이다.

서울에서 변영태 외무장관과 브릭스 주한미국대사가 서명하고 같은 날 워싱턴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 비준서’가 교환되었다. 지난 1월 양국 국회에서 비준된 조약은 이로써 열달만에 발효절차를 매듭짓고 마침내 역사적인 한미동맹이 역사적인 첫 걸음을 내디디었다.

조약 비준 후만 따져도 열달 동안 제네바 정치회의등 진통을 거듭한 줄다리기의 핵심은 미국의
대한(對韓) 원조 문제다. 통일의 마지막 희망, 국가 부흥과 군사력이 평화통일의 힘이다.
손원일 국방장관과 백두진 경제조정관이 담당한 협상의 결과는 합의 의사록에 이렇게 적혀있다.

“미국은 1955년 회계연도에 한국에게 군사원조 4억2천만 달러, 경제원조 2억8천만 달러등
7억달러를 제공하고, 10개 예비사단 추가 신설과 군함 79척, 100대의 제트전투기를 제공한다.” 

이 합의의사록 체결로 육군 66만1천명, 해군1만5천명, 해병대 2만7천5백명, 공군 1만6천5백명, 한국은 이제 상비군 72만명을 갖춘 군사강국의 면모를 강화하게 되었다.
워싱턴을 떠나기 전날 밤 이승만이 블레어 하우스로 손원일, 백두진 등을 불러 “국군증강과 

10억불을 꼭 받아서 주머니에 넣고 오시오”라고 당부했지만 이만하면 괜찮은 거래다.

1년에 7억달러, 당초 한국정부가 미국측에 제시한 5년간 총액은 23억달러, 년평균 5억달러도
안되는 규모에 비하면 전무후무한 거액이다.
이승만이 받아낸 1년치 원조액이 박정희가 일본으로부터 받아낸 ‘일제 36년 노예값‘ 6억달러보다 1억달러나 많다. 

이런 막대한 원조를 받으면서 이승만이 미국에 준 것은 문서 한 줄: ‘미국이 한국방위를 책임지는 동안 한국은 유엔군사령부에 이양한 작전지휘권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뿐이다.

지난해 ‘통일 없는 휴전 반대’ 투쟁 속에 한미방위조약 체결의 합의를 얻어냈을 때 한국이 미국에 준 것도 한마디 약속뿐, ‘한국은 휴전을 반대한다. 단 휴전을 방해하지는 않는다‘는 것.

세계 최강 강대국과 최빈 약소국의 거래,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가? 

한국나이 80세 대통령의 승리, 20세때 배재학당에서 다짐한 꿈을 60년 만에 실현시켰다.

러시아 품에 안긴 고종황제가 이승만등 독립협회 애국청년들을 감옥에 쳐넣고 소일하다가
러일전쟁의 정복자 일본의 강압에 굴복 ‘을사 늑약’을 맺은 날이 11월17일,
그 49년뒤 이승만이 다시 찾은 자유나라에 안보의 만리장성을 준공(발효)시킨 날이 11월17일.

그로부터 다시 63년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한미동맹은 그동안 미국에게 무엇을 주었고 한국에겐 무엇을 남겼는가.

지난 주 서울에 온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한국 국회연설에서 말했다.
“한국인들이 이룬 것은 한국의 승리 그 이상. 인류의 정신을 믿는 모든 국가의 승리다”
그것은 한미동맹이 이룩한 승리, 바로 이승만이 만들어낸 ‘평화체제의 승리’인 것이다.

누가 이 평화체제를 깨려하는가, 역대 한국 대통령들의 '무덤파기' 만행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인들은 오늘도 트럼프의 언행에 온신경을 쏟는다. "믿을 것은 한미동맹뿐!"

트럼프의 연설을 보면 그가 한국인보다 한국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긴다"고 사람들은 속삭인다.
한미동맹의 위기! 국민이 의지할 데 찾아 헤매는 나라로 되어가는가?
"미국 믿지 말라" 이승만의 말이다. "뭉치면 산다" 이것도 이승만의 말이다.

 

 <'한미동맹의 탄생' 연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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