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대통령의 52주기에 돌아보는...

맞짱, 대화, 그리고 남는 건?

이덕기 칼럼 | 최종편집 2017.07.20 09:3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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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덕 기 / 자유기고가

  동네 어귀에서 마을 꼬마 두 녀석이 맞짱을 뜰 거라는 소문이 돌자,
동네 어른과 애들은 물론이고 이웃 마을 어른들까지 구경을 왔다. 

  누더기 옷을 입은 인상 험악한 녀석은 체구에 비해 큰 주먹을 휘둘러대며 한 방 날릴 기세다.
이에 맞서, 곱게 차려입은 모범생 얼굴을 한 녀석은 기마(騎馬) 자세를 취한 채, 주먹 꽉 쥔 두 손을 얼굴까지 올렸다. 상대를 째려보면서 여차하면 받아치겠다는 표정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모범생 얼굴을 한 녀석이 주먹 쥔 손을 풀고 팔을 내리면서
 “나는 너를 이길 마음이 없어. 마을의 평화를 위해서야!”라고 외친다.
그리고는 허허로운 웃음 띤 얼굴로 오른손을 인상 험악한 녀석에게 내밀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동네 어른과 애들, 그리고 이웃 마을 어른들은 일제히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의 속내를 금세 파악한 양, 또한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측이나 한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뿔뿔이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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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종전(終戰)과 함께 관련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북핵문제와 평화체제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으로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   우리는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는다...
어떤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진하지 않을 것이며 인위적인 통일을 추구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와 우리 정부가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오직 평화다...”


  [신(新) 한반도 평화]‘비전’인지 [베를린]‘구상’인지를 발표하고 나서 며칠 지나지 않았다.
드디어... 아니 확실하게 예상했던 일이다.

  “국방부가 군사분계선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체의 적대행위를 중지하기 위한
남북 군사회담을 오는 21일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개최할 것을 제의한다...” 그리고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행사 개최 등 인도적 현안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을 8월 1일 판문점 우리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가질 것을 제의한다...”

  이와 관련, “이번 [회담] 제안에 대해 미국 등 주요국에 사전 설명했고, 충분한 이해가 있었다...”는 발표도 있었다. 그런데...

  양키나라에서는 “[트럼프]대통령은 [북한과] 대화를 위해 충족해야 하는 조건을 명확히 해왔고, 이 조건들은 우리가 [지금] 있는 위치와는 분명히 멀리 있다...”는 반응을 보였단다. 

  왜국도 “지금은 [대북] 대화가 아닌 압박을 가해야 할 시기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반면에...

  뛔국 외교부 대변인은 “[대화 노력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모든 관련국이 남북의 대화 재개와 관계 개선 노력을 이해하고 지지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건설적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렇듯 엇갈린 반향을 접하면서 이 나라의 많은 국민들은 헷갈리기 시작했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동맹(同盟)과 우방(友邦)이 한꺼번에 바뀌는 거 아닌가 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6·25전쟁 휴전협정 체결 64년이 된다. 당연히 금석지감(今昔之感), 격세지감(隔世之感)일 수밖에 없는 세월이 흘렀다. 그 세월의 흐름 속에서 “전쟁을 결심하지 않고는 적(敵), 특히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없다!”는 역사의 외침이 점점 공허(空虛)해만 간다고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기억할 건 기억해야 하지 않겠는가. 장황할 수도 있으나, 결코 업수이 넘겨서는 안 될 이 나라 역정(歷程) 중의 한 단락을 찾아보았다. 오늘의 이 나라와 국민에게 던지는 그 무엇이 결코 가볍지 만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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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의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며칠 지나지 않은 64년 전(前), 1953년 8월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 이하 내용은 『건국과 나라 수호를 위한 이승만의 대미투쟁-1942∽1960』 (로버트 T. 올리버 著/한준석 譯) 중에서 발췌·인용한 것이다 =

  휴전에 반대하며 ‘북진(北進) 통일’을 주장하던 이승만 대통령은, 협상 차 태평양을 건너온 ‘존 포스터 덜레스’ 미(美) 국무장관과 마주 앉았다. 협상 의제(議題)는 휴전협정에 대한 이승만 대통령의 승인과 ‘한-미 상호방위조약’[1953년 8월 가조인, 10월 정식 서명]의 세부사항에 관한 것들 이었다...

  덜레스는 회유적인 말로 이렇게 말했다. “각하를 무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휴전에 대한 각하의 승인입니다...” 덜레스는 미국뿐만 아니라 유엔도 한국 자신의 민주적이고 독립적인 정부 아래 한국을 통일해야 한다는 목표를 전적으로 지원하다고 말을 이었다. 

  “우리의 목표는 정확히 각하의 목표와 같습니다. 유일한 차이는, 각하께서는 그것을 전쟁에 의해 달성하기를 원하고 우리는 평화적 수단에 의해 달성하기를 바란다는 것뿐입니다. 어째서 우리가 계속 싸워야 한다고 고집하십니까?” 

  이 대통령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장관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 전쟁으로 한국만큼 큰 고통을 당한 나라도 없고, 평화적으로 우리 목표가 달성될 수 있다면 한국 국민보다 더 기뻐할 국민도 없을 것이오. 장관께 묻고 싶은 단 하나의 질문은 이것이오. 만약 평화적 협상에 의해 공동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경우,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것이지요? 

  “그 다음은 어떻게?”라는 이 질문이 최종적 이견(異見)의 핵심이었고, 어느 쪽도 피할 수도 없고 가능한 해법도 없는 위기의 국면이었다... 그들[미국과 유엔]이 합의한 해결책은 “평화적 수단에 의해” 이러한 목표를 달성할 목적으로 공산주의자들과 평화회담을 개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 이 대통령은 조소(嘲笑)를 감추지 않았다. “장관께서 전쟁으로 얻을 수 없던 것을 어떻게 공산주의자들이 협상 테이블에서 장관께 드릴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단 말이오?”

  이 질문에 덜레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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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년 전(前)인 1965년 7월 19일, 그 ‘망명(亡命) 노인’은 꿈에 그리던 조국 땅을 다시 밟지 못한 채 하와이에서 거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를 간절히 추모(追慕:죽은 사람을 그리며 생각함)할 수밖에 없는 이 시운(時運)을 탄(歎)하며, 삼가 고인(故人)의 명복을 빈다.

  “인걸(人傑)은 간 데 없지만,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구나...”

<더  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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